앤더슨의 테이프 - P
로렌스 샌더스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2년 1월
평점 :
절판


저번에 추리소설 22권 구입했을 때 샀던 고려원 페이퍼 북 책입니다.  왕창 구입한 책들을 읽느라 정신이 없는데 헌 책까지 17권 추가되서 고민입니다. 접 떄 산 책 중에서 제일 좋았던 책은 <당신을 닮은 사람>. 제가 여태까지 읽어본 단편집 중에서 최강이었다는... 도박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던데 도박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엿보는 가장 흥미로운 단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두 포커를 한번 해본 적이 있는데 도박 열기가 후끈 달아 오르면서 서로들 경쟁적으로 돈을 올인하게 되더군요. 결국 돈을 못 딸 거라는 걸 알면서도 파멸로 달려가는 느낌...자기 자신이 완전히 파괴되고 싶다는 이상 심리가 생기더군요... 포커 멤버들의 눈은 다들 미칠듯한  자기애(돈을 따고 싶다는..)와 자기파괴(남김없이 잃고 파멸되고 싶다는..)라는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이 쏟아지더군요.  <당신을 닮은 사람>은그런 도박과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성공적으로 담은 걸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참고로 그날 포커에서 제가 자기 파멸을 생각하며 올인했던 돈은 8000원입니다..-_-;;; 너무 거창했죠 ㅋㅋㅋ)

어쨌든 어제 하루만에 다 읽은 <앤더슨의 테이프>이야기로 넘어가죠...
고려원 페이퍼북은 좋은 작품도 많고 분량도 적절하며 책 질도  좋은 편인데 3000원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런 기획이 성공하여 많은 책들이 출간되어야 하는건데 말입니다.

이 책은 존 '듀크' 앤더슨이라는 전과자가 동지들을 규합해 아파트 한 동을
통채로 털어버리겠다는 작전을 짜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듀크가 동지들을 만나고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기는 모든 장소들이 그 전부터 정부에 도청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듀크가 동지를 만나는 술집이 세금 탈세 문제로 10달전부터 도청을 당하고 있었다! 머 이런 설정이지요. (조금 작위적이기도 합니다. 모든 장소가 그 전부터 공교롭게 도청을 당하고 있었다는 설정은...치명적인 단점이죠.) 그래서 작품의 모든 전개는 이 도청 테이프와 증인들의 기록 등에 의거해서 진행되지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해요.

이러한 특이한 설정은 리얼한 현장감 (내가 범죄를 모의하는 현장에서 몰래 듣고 있는 거 같은..)과 생생함을 독자들에게 제공합니다. 구성 면에서 독특한 작품으로 처녀작에서 이런 신선한 구성을 생각해낸 로렌스 샌더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물론 이러한 스타일은 너무도 독창적이라 다른 작가가 흉내냈다간 바로 표절이 되겠죠. 본인 자신도 마찬가지구요. 데뷔작에서 온전한 샌더스 스타일을 만든 겁니다. 아~! 멋집니다.

처음에 동지들을 모으는 장면들은 <오션스 일레븐>이나 <이탈리안 잡>같은 케이퍼 영화들과 비슷한 재미를 안겨 줍니다. 재주꾼들이 한명씩 모여드는 걸 확인하는 재미 말입니당. 듀크를 비롯해 나오는 캐릭터들 모두 생동감이 있구 실제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예요.

무엇보다 가장 멋진 등장 인물은 주인공인 듀크입니다. 듀크는 새도-매저키스트의 변태성욕자에 범죄자에 불과하지만 샌더스의 손 끝에서 빚어진 그의 모습에는 무언지 모를 고결함이 흐르고 있습니다. 자존심과 어려운 상황에서 보여주는 불굴의 투지, 뛰어난 지성같은 장점들이 있지요. 그를 회상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서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받고 고결한 인물로 그를 회상합니다.

사실 이 책에서의 그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전술했듯이 그의 모든 뛰어난 작전들은 전부 도청되고 있었죠. 부처님 손바닥의 손오공같이 말입니다. 아무리 날고 겨도 그는 잡힐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겁니다. 그렇지만 그 사실 자체를 모르는 그는 계획하고 행동하고, 또 계획하고 행동하는 투지를 보여 줍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을 바라보고 통제하는 신의 존재를 모르고 발버둥치는 인간의 약한 모습이 듀크에게로 오버랩되는 느낌입니다. 그렇지만 듀크의 지칠 줄 모르는 발버둥은 그 자체로 감동입니다. 그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거든요...

듀크는 어느 정도 순문학에서 튀어나온 듯한 인물로 보입니다. 그는 범죄를 계획하고 행동하지만 딱히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도 별로 없습니다. 그가 사랑했던 여자와 대화하는 장면도 녹음되는데 그는 상당히 허무한 인물입니다. 그가 변태 성욕에만 몰두하는 것도 그 허무를 달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죠.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훔친다는 식의 자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서 그는 범죄를 저지르는 거 같습니다. 모든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산다고 한다면 듀크는 범죄가 자신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자신을 입증하기 위한 그의 처절한 분투는 그야말로 감동입니다.

어제 무거운 책 짊어지고 3시까지 술 마시러 돌아 다녔더니 오늘 몸이 좀 안좋군요. 그래서 좋은 리뷰가 못 된 거 같습니다. 머리도 멍하고 글도 왜케 안 써지는지..-_-; 어쨌든 <앤더슨의 테이프>는 장르 문학으로 뛰어난 성취를 이뤘습니다. 무엇보다 뒷 이야기가 궁금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잼있구요. 책 뒷머리의 홍보 문군에 현대인의 실존적 고뇌를 담았다고 하는데 전 무식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 확실히 담겨 있습니다.


처녀작으로 이런 놀라운 작품을 쓴 샌더스의 작품에 앞으로는 올인!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한국에 추리 대학이 있다고 하면 전 전공으로
<로스 맥도널드>, 부전공으로 <로렌스 샌더스>를 택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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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10-29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렌스 샌더스의 이름만 보고 처음 듣는 제목의 책을 한권 샀습니다. [태양을 버린 플로리다]라는 책인데 혹시 아시나요? ^^;

panda78 2005-10-29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빛 동전]도 재밌었어요. [케이퍼]랑 [블랙 로맨스]도 그런대로 재밌었고.. 맥널리야 뭐.. ^^ 로렌스 샌더스 좋아요.

jedai2000 2005-10-29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양을 버린 플로리다>는 잘 모르겠네요. 제가 알기로 '대죄 시리즈' 4권, 맥널리 시리즈 4권. 계명 시리즈 3권, 해리의 사랑 이 정도가 국내에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같은 책인데 제목이 다른 경우가 많으니 주의해서 구매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