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문
김래성 지음 / 명지사 / 199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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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내성 작가님의 단편집입니다.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야금야금 한 편씩 읽는 맛에 2시간도 안 되서 다 읽게 되더군요... 일단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감동이었습니다. 우리 추리 문학계에도 이런 작가가 있었구나...세계 추리 문학계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30년대와 40년대에 활동한 작가가...마치 나무의 굳건한 뿌리같은 그런 존재가 한국 추리 문학계에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

 

 비오는 런던 거리가 아닌, 종로에서의 살인 사건.  원산, 금강산등의 익숙한 지명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너무 흐뭇합니다. 특히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살해 현장 요약도가 그려져 있는 것도 보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살해 현장인 양옥집 옆 '행길' ㅋㅋ에 흐르는 강이 대동강이라는 것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1. 비밀의 문 - 수록된 다른 작품들과 달리 유머러스한 소극입니다. 원래 라디오 방송 대본을 소설화한거라고 하더니 흐뭇한 마무리가 훈훈한 작품입니다. 유괴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2. 이단자의 사랑- 가장 엽기적인 이야기네요. 한 여자를 사랑하는 예술가와 외과 의사의 집념을 보여주는 작품인데, 식인까지 동원한 극도의 그로테스크가 오히려 예술성을 조금 훼손하지 않았나 싶네요.

 

3. 악마파- 좋은 작품입니다. 역시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악마파 화가의 이야기입니다. 결말이 몹시 섬뜩합니다. 새디스트-메저키스트인 두 화가의 관계가 결국 끔찍한 파국을 낳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금동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가 생각나기도...

 

4. 백사도- 추리 소설이라기보다는 한국적인 괴담입니다. 무속(무당)을 소재로 한데다 부모님의 원수를 갚는 오누이, 뱀과 대화하는 여인 등 한국적인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공포 소설의 요소가 강합니다.

 

5. 벌처기- 전반적으로 괴담의 성격이 강한 작품집에서 비교적 본격의 요소를 갖춘 작품입니다. 마무리도 좋고요. 중요 단서를 강조하는  꼼꼼함도 돋보입니다. 구성에 있어서는 법정 기록이 쭉 나열되는 형식인데, 당대에는 참 신선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6. 광상 시인- 남편의 아내를 향한 집착이 낳은 병적인 사랑 이야기.

 

7. 타원형 거울- 가장 좋은 작품입니다. 일단 미해결된 범죄를 현상 응모해 풀어낸다는 도입부가 흥미롭고, 트릭도 아주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세계 단편 추리 소설 걸작선>같은 앤솔로지에도 충분히 수록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8. 복수귀- 죽은 자가 살아돌아온다는 괴담스러운 이야기지만 반전이 있지요...

 

9. 무마- 에도가와 람포 작품과 굉장히 비슷합니다. 특히 정통파 추리 소설을 쓰는 주인공과 변격 추리 소설을 쓰는 변태 소설가가 나오는 부분은 완전 <음울한 짐승>입니다. 전반적인 분위기와 모든 요소가 에도가와 람포를 벤치 마킹한 듯 보입니다.

 

김내성 님의 작품의 중요한 특징은 2가지 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에도가와 람포의 영향을 굉장히 많은 듯 보입니다. 에도가와 람포의 변격 추리 소설을 지향하는 듯 해요. 퍼즐이나 트릭보다는 음산한 배경 묘사와 기이한 정신 세계를 가진 인물들, 엽기적인 사건을 중점적으로 묘사하고 있거든요.

 

또 하나는 여성에 대한 시각입니다. 위의 요약에서도 얼핏 눈치채셨겠지만 그의 작품은 거의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특히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팜므 파탈스러운 여성들이 많습니다. 독특한 아름다움과 천진난만한 순수함을 갖춘 그의 여주인공들은 그 육체적, 정신적 매력으로 인해 지식인 남성들을 홀려 도덕적 타락을 감행하게 만드는 이질적이고 공포스런 존재입니다.

 

작가 해설을 보니 어느 정도 해답이 보이는 듯 하더군요. 13살에 결혼을 했다고 하던데,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정신적 성숙보다도 육체 관계에 먼저 눈을 뜨게 되고, 그런 면이 작가의 섬세한 도덕성에 큰 상처를 준 듯 보입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한 여성들을 보면 제 말씀이 이해가 될 듯 하네요.

 

정말 역사적 가치는 물론이고 읽는 재미도 있는 책이었습니다. 꼭 구해서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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