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네이버에서 보잘 것 없는 포스트를 대문에 걸어주는 바람에 모처럼 추리소설 팬들의 유입이 급증됐다. 나 또한 골수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이 호기(?)를 놓치기 싫어 급히 업데이트를...



Locked room - 밀실  


선정적 - <세 개의 관> by 존 딕슨 카


 

 

 

 

 

 

 

 

 

 

 

 

 


 

최종 후보작 - <황제의 코담뱃갑> by 존 딕슨 카


 



 

 

 

 

 

 

 

 

 

 

 

 

밀실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은 아마도 흔히 본격이라 불리는 퍼즐 미스터리 영역에서 예나 지금이나 가장 인기 높은 장르일 것이다. 이중, 삼중으로 잠겨 있는 문 안쪽에서 교살당한 피해자, 그런데 용의자는 모두의 눈이 모여 있는 만찬장에서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딱 봐도 범인은 분명한데 범행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니 환장할 노릇이 아닌가! 우리가 읽고 있는 추리소설이 이런 내용이라면 그 답을 알기 전에 책장을 내려놓고 산책을 나갈 만큼 무신경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즉 인간은 누구나 호기심의 노예인 바, 살인과 그에 얽힌 미스터리에 원초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난이도를 자랑하는 밀실과 불가능 범죄가 사랑받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밀실을 전공으로 하는 추리소설가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이 역시 당연한 게 독자들이 완벽하게 한 방 먹었다고 감탄할 만한 초일류의 밀실 트릭을 짜는 게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에서 예를 든 사건의 진상이 막상 모두가 범인과 꼭 닮은 대역을 보고 속았다는 것이었다면? 아마도 작가는 밤거리를 돌아다닐 때 두둑한 뱃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쓰기 힘든 밀실 추리소설만을 50편 넘게 줄기차게 써내려갔던 미국 추리소설가 존 딕슨 카야말로 밀실의 제왕이라 할 만하다. 단순히 양만 많은 게 아니라 흔히 밀실 추리소설 베스트 10을 꼽으면 그중 8~9편은 딕슨 카의 작품인 걸로 볼 수 있듯이 질에서도 으뜸이니, 30~50년대 퍼즐 미스터리 계열에서는 애거서 크리스티, 엘러리 퀸과 함께 3대 거장이었다는 점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기디온 펠, 헨리 메리베일 경이 탐정으로 나오는 절정기의 작품은 거의 모두가 수작이라 오히려 선정작을 꼽기 애매했지만 역시나 <세 개의 관>이 내 기준에선 최고 걸작이다. 트릭의 스케일이나 진상이 몇 번이나 뒤바뀌는 반전, 게다가 작가가 주인공의 입을 빌려 뻔뻔스럽게(?) 수십 장에 걸쳐 펼쳐놓는 밀실론 강의까지 밀실 추리소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최종 후보작인 <황제의 코담뱃갑> 역시 딕슨 카의 베스트 중 한 편으로 추리소설을 1천 권 넘게 읽은 필자가 범인의 정체에서 가장 놀란 작품 중의 하나였다. 초능력자라도 불가능할 것 같은 범행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한 분이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보너스로 밀실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딕슨 카의 작품 중에서 <유다의 창>도 필견! 역대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밀실 트릭이 나온다. 그 밖에 다른 작가로 엘러리 퀸의 <킹은 죽었다>, 클레이튼 로슨의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도 수준급 밀실물로 추천한다.




Man - 남자


선정작 - <흥분> by 딕 프랜시스


 


 

 

 

 

 

 

 

 

 

 

 

 

 

최종 후보작 - <심야 플러스 원> by 개빈 라이얼


 


 

 

 

 

 

 

 

 

 

 

 

 

 

 

재미난 추리소설을 보면서 남녀를 따지는 것은 우습고 불필요한 일일 테지만, 유독 남자들이 선호하는 분위기의 작품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Man'편에서는 남성들이 좋아할 만한 추리소설들을 추천하면서 여성에 비해 현격히 독서율이 떨어지는 남성의 분발을 촉구하는 바이다. 선정작인 <흥분>은 원제가 'For Kicks'로, 영문과를 나왔음에도 영어 까막눈에 가까운 필자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일본의 출판사가 붙인 제목일 게 분명한데, 어떻게 보면 원제보다 나을 정도로 작품의 테마를 한마디로 잘 표현해놓은 것 같다.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가 펼쳐지는 소설이라는 말씀. 영국의 경마계에서 누가 봐도 그저 그런 경주마들이 연속 우승하는 일이 펼쳐진다. 부정이 있는 것은 같은데 도핑을 해봐도 소용이 없고, 물리적인 어떤 증거도 없다. 더구나 폐쇄적인 영국의 경마계에선 부정이 있어도 제 식구를 감싸기 마련이니 수사가 제대로 될 리가. 이런 판국에 호주의 초야에 묻혀 목장을 하는 다니엘 로크에게 영국 경마위원회에서 제안이 들어온다. 어떤 연줄도 없는 당신이 가서 어떤 일이 펼쳐지고 있는지 조사해달라고. 로크는 영국으로 건너가서 유력 용의자의 마방에 잠입하는데, 그곳은 중세를 방불케 하는 극악의 환경으로 마부들을 숫제 조지고(?) 있다. 과연 로크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경마계의 부정을 밝혀낼 수 있을까? 대강 이런 내용이다. 기본적으로는 60~70년대 대인기를 끌었던 영국의 모험소설과 스파이소설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시시한 경주마를 우승시킨 부정에 얽힌 트릭도 수준급이라 추리소설로도 부족함이 없다. 신분을 숨기고 위험한 일에 뛰어든 로크에 대한 보상일까, 가슴 뛰는 로맨스도 기다리고 있으며, 특히 최종장에서 악당들과의 2대1 대결은 주체가 힘들 정도로 '흥분'된다. 새벽에 읽다가 심장이 벌렁거려 잠이 오지 않았을 정도. 작가 딕 프랜시스는 실제 유명한 경마 기수 출신으로 기사도를 준수하는 현대의 쾌남들이 경마계에서 온갖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20여 편의 '경마 미스터리'로 일가를 이뤘으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제조기였다. 2010년에 별세한 그의 명복을 빈다... 최종 후보작인 <심야 플러스 원>의 주인공 루이스 케인은 아마 <흥분>의 다니엘 로크를 보고 '젊은 시절에는 나도 저렇게 패기가 넘치고 박력이 있었지' 하며 씁쓸하게 미소 지을 중년의 남자이다. 2차대전 당시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영웅적인 활약을 했지만 전쟁이 끝난지도 어언 20년, 지난 과거를 묻어두고 생활인으로 살고 있다. 그런 케인에게 한 사업가와 여성 비서를 무사히 호송해달라는 제안이 들어온다. 제안을 받아들인 케인은 보디가드로 총잡이를 구하는데, 최고의 총잡이 두 사람은 연락이 안 되고 겨우 찾은 넘버 3 미국인 총잡이는 알코올중독으로 손을 덜덜 떤다. 케인이 이 오합지졸을 데리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걱정되고 궁금해서 한 번 잡으면 끝날 때까지 내려놓을 수가 없다. 전쟁은 분명 비극적인 것이지만 한편으로 온갖 신화와 영웅들을 탄생시키는 산파 역할도 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전쟁은 이미 끝났고, 무수한 영웅들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 이 소멸이 예정되어 있는 존재에 대한 허무와 쓸쓸한 정서가 공존하는 남성소설의 정수와 같은 작품이다. <흥분>과 마찬가지로 짜릿한 결말부의 총격전은 놓치면 후회할 것이다. <흥분>이 전성기의 남자가 펼치는 패기와 박력이라면, <심야 플러스 원>은 주변부로 물러나는 중년 남성의 허무와 비애가 주제라서 같이 읽으면 멋진 대구가 될 거라 생각한다.




Neo Mystery - 신본격


선정작 - <시계관의 살인> by 아야쓰지 유키토


 

 

 

 

 

 

 

 

 

 

 

 


 

최종 후보작 - <말레이 철도의 비밀> by 아리스가와 아리스


 



 

 

 

 

 

 

 

 

 

 

 

신본격 미스터리라는 것은 온전히 일본 추리소설에서만 쓰이는 용어이다. 대충 신본격의 역사를 얘기하자면...일본에선 흔히 코넌 도일이나 크리스티, 딕슨 카 등 기발한 트릭과 명탐정의 등장을 특징으로 하는 퍼즐파를 본격 미스터리라고 불렀다. 남의 것을 우라까이(?)하기 좋아하는 일본의 특성상 서양의 본격 미스터리를 자국의 배경과 문화를 담아 현지화한 작가들이 속속 출연해 각광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우리도 익히 아는 에도가와 란포와 요코미조 세이시. 이른바 원조 본격파로 대인기를 누리던 이들에 반기(?)를 든 걸물이 그 유명한 마쓰모토 세이초였다. 아무래도 퍼즐풍의 추리소설은 장르의 성격상, 리얼리티보다는 대저택이나 고립된 섬 등 클리셰적인 세트와 독자들이 헷갈리지 않고 무의식 중에 받아들일 수 있게끔 극히 전형화된 인물군상 등이 출연하는 게 특징이다. 세이초는 트릭이나 반전, 퍼즐보다는 인간심리와 사회적인 메시지, 소설로서의 문학성을 추구하는 일명 '사회파 추리소설'로 사실상 오늘날 일본 추리소설계의 상업적 대성공의 발판을 일구었다. 그러나 아무리 인기 있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질 수밖에 없듯이 80년대까지 사회파가 득세하자 이에 따른 피로를 호소하는 추리소설가들이 발생했는데, 시마다 소지 그리고 아야쓰지 유키토 같은 작가들이 본격으로 회귀하자는 신본격 운동을 내세우며 또 한 번 대세를 타기 시작한다. 바닷가에서 발견된 두 구의 시체, 그들은 현 국회의원의 비서와 그의 내연녀. 평범한 동반자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미국 방위산업체의 무기 거래 로비와 관련된 정황이...운운하는 세이초식 사회파 추리소설에는 어린 시절 읽었던 본격 추리소설의 원초적인 즐거움이 없다, 추리소설은 뭐니뭐니 해도 기발한 트릭과 과감한 논리, 그리고 명탐정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신본격의 아버지, 아야쓰지 유키토의 집필 철학이 아닐까 싶다. 유키토는 고전적인 본격파의 트릭에 당시 이미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던 재패니메이션의 캐릭터 같은 명탐정 시시야 카도미를 내세워 스타 작가로 부상한다. 개인적으로 신본격 하면 왠지 재패니메이션이 떠오르는데, 악마적인 재능의 건축가가 남긴 10개의 저택에서 매번 불가사의한 사건이 펼쳐지고 그걸 명탐정이 족족 해결하는 플롯 자체가 이미 소설보다는 연작 만화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듯 어딘가 가벼운(?) 분위기야말로 신본격을 대표하는 이미지라고 생각하는데, 서양에서는 최근 상이란 상은 죄다 휩쓸고 있는 루이즈 페니 같은 현대 본격 추리소설가조차 트릭에 있어서 리얼리티를 중시하고 명탐정도 고전적인 천재형이 아니라 나름의 약점이나 심리적인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신본격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 같다. 처음부터 10권을 예정한 유키토의 '관 시리즈'는 현재까지 8권이 나왔는데 그중 5권 <시계관의 살인>이 제일 탁월한 듯하고, 7권부터는 필력이나 구상력이 조금 떨어진 느낌이 든다. 오로지 일본에만 있는 신본격의 주창자가 부진을 떨치고 강력한 신작으로 복귀하기를 바란다...유키토와는 조금 느낌이 다르지만 아리스가와 아리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작가 아리스 시리즈'와 '대학생 아리스 시리즈'로 현재까지 건실하게 활동하고 있다. 유키토보다 만화적인 느낌은 덜한 편인데, 아무래도 그는 논리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엘러리 퀸을 추앙하는 작가라 신본격 중에서는 그래도 고전 본격 작가들과 가장 비슷한 작풍이지 않나 싶다. '대학생 아리스 시리즈' 중에서는 <외딴섬 퍼즐>, '작가 아리스 시리즈' 중에서는 <주홍색 연구>를 추천하고 싶고, 제목부터가 엘러리 퀸 워너비임을 증명하는 최종 후보작 <말레이 철도의 비밀>도 상당히 잘된 밀실 추리소설이다.




Obstacle  - 장애


선정자 - 링컨 라임 by 제프리 디버


 

 

 

 

 

 

 

 

 

 

 

 


 

최종 후보자 - 맥스 캐러도스 by 에너스트 브래머  


 


'Obstacle'이 장애라는 뜻인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O항목이 암만 해도 생각이 나지 않아 영어사전을 뒤지다 겨우 발견한 것인데, 이런 글을 쓰면서 영어 공부까지 해야 할 줄이야ㅠ.,ㅠ 아무튼 추리소설의 역사라는 게 실은 탐정의 역사나 매한가지다. 추리소설의 주제는 결국 나쁜 짓을 저지른 놈을 붙잡아서 벌주고 기존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게 아니던가. 이때 악당은 평화에 대한 위협을 증폭시키기 위해 최대한 간교한 트릭을 선 보이므로, 이를 해결하는 탐정 역시 초인적이고 영웅적이어야 한다. 이런 초인형, 영웅형 탐정의 선두주자는 누가 뭐래도 셜록 홈스인데, 워낙 캐릭터 조형이 잘된 덕분에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불멸의 히어로로 사랑받는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홈스는 첫 등장할 때부터 슈퍼스타였기 때문에 그에 맞서는 아류 탐정들도 반드시 다양한 개성과 특징으로 무장해야 했다. 이게 도를 지나치자, 너네 홈스는 정상인이지? 우리 탐정은 눈이 안 보여도 홈스만큼 범인을 잘 잡아! 하는 등의 일견 유치한 경쟁으로까지 치닫게 됐다. 이때 등장한 온갖 문제가 있는 탐정들을 추리소설 사조상 'defective detective(결점 있는 탐정)'라고 부른단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음에도 놀라운 활약을 펼치는 탐정은 그 장애의 그늘이 짙은 덕분에 더욱 빛나는 셈인데, 이 장애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작가가 바로 전신마비 탐정 링컨 라임을 창조한 제프리 디버이다. 법의학과 각종 자연과학에 통달한 과학수사관이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다. 그는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해오는 파트너 아멜리아 색스(나중에 연인 관계로 발전), 그리고 동료 수사관들과 함께 오직 머리로만 희대의 악당들을 상대하는데, 벌써 10권 넘게 이어진 링컨 라임의 수사 기록은 그야말로 천의무봉이다. 대표작은 영화화된 <본 컬렉터>이지만, 개인적으로 시리즈 2작 <코핀 댄서>를 베스트로 꼽으며 7작 <콜드 문>도 못지않다. 링컨 라임이 몇 번의 수술 끝에 오른손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최신작 <킬 룸>에서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정교한 저격수와 상대하는데 이 역시 강력 추천작. 제프리 디버는 현대 영미 추리소설가 중에서는 희귀하게 각종 단서들을 '수사 보고서'라는 명목으로 독자에게 가감없이 공개하는 작가로서 독자와의 두뇌싸움을 내세웠던 퍼즐파의 향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어 유독 일본에서 인기가 높다. 물론 자주 보다 보니까 어느 정도 반전이 예상 가능하다는 점은 있지만 거의 언제나 돈값을 하는 보증수표이다... 어네스트 브래머의 '맥스 캐러도스' 탐정은 위에서 예로 든 바로 그 홈스 시대의 장님 탐정이다. 물적 증거가 무엇보다 중요한 살인 현장에서 장님이 어떻게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지가 키 포인트인데, 아쉽게도 현재 국내에서 따로 책으로 구할 수는 없다. 아주 예전에 자유추리문고에서 단편집이 한 권 나왔을 뿐, 그 후로는 잊혀져 있는 것이다. 고전 추리소설이 이따금 나오는 요즘 맥스 캐러도스의 재출전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Police - 경찰


선정작 - <웃는 경관> by 펠 바르, 마이 슈발


 

 

 

 

 

 

 

 

 

 

 

 

 


 

최종 후보작 - <살의의 쐐기> by 에드 맥베인


 


 

 

 

 

 

 

 

 

 


 

 

고전 추리소설과 명탐정이 동격인 데 반해, 아쉽게도 현대 추리소설에서는 명탐정의 활약이 적은 편이다. 아무래도 경찰 조직이 세포처럼 전국 방방곡곡에 박혀 사건을 해결하는 요즘, 명탐정이 등장해 난해한 사건을 척척 해결한다면 리얼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마 실제로는 암만 명탐정이라도 경찰이 통제하는 사건 현장에 들어가보지도 못할 걸. 경찰소설은 이런 흐름을 타고 등장했다고 보면 된다. 처음 경찰소설을 쓴 작가는 그 유명한 에드 맥베인. 맥베인은 87분서라는 가공의 경찰서를 배경으로 7~8명의 살인과 형사들이 대형 사건을 팀으로써 해결하는 구조를 최초로 선 보였는데, 딱 한 명의 영웅적인 주인공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과 심리적 특징을 가진 형사들이 등장하므로 형사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온갖 소회와 현대 사회의 각종 문제들을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었다. 더구나 조직적으로 착착 움직이면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형사들의 활약은 이미 조직을 떠나서는 살 수 없게 된 현대인들의 삶의 방식과도 절묘하게 부합해 이 역시 인기 요인의 하나이다. 맥베인 열풍을 멀리 스웨덴에서 벤치마킹한 작가가 바로 부부작가 펠 바르, 마이 슈발이다. 그들은 스톡홀름의 살인과 형사들을 주인공으로 10편의 시리즈를 썼는데, 형사들 중에서도 가장 지위가 높은 주요 캐릭터가 마르틴 베크라서 '마르틴 베크 시리즈'라 불린다. <웃는 경관>은 시리즈 제4작으로 영어로 번역되자마자 놀라운 평가를 받고 상업적으로도 대성공했다. 솔직히 맥베인의 영향이 굉장히 짙은 시리즈라서 오리지널리티의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겠지만, <웃는 경관>만큼은 감히 원조 맥베인조차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대걸작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역대 경찰소설 가운데서도 1위로 꼽고 싶고, 모든 장르를 통합한 올타임 베스트 추리소설을 꼽아도 아마 열 손가락 안에는 있지 않을까 싶다. 스톡홀름의 2층버스에서 벌어진 기관총 난사사건을 해결하는 베크 팀은 누구 한 사람 소외되지 않고 각자의 단서를 바탕으로 수사를 펼쳐 나가는데, 끝에 가서 이 모든 단서가 가리키는 범인이 딱 하나로 떨어질 때의 쾌감은 가히 아름다울 지경. 한 개인의 탁월한 추리력이 아니라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현대 경찰의 조직 수사를 이토록 완벽하게 묘사한 소설은 지금껏 없었다. 그 어느 작품보다 통쾌하면서도 씁쓸한 비감이 전해지는 결말도 일품. 요즘은 스칸디나비아 미스터리도 많이 소개되는데 불멸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왜 내지 않는 것인지가 출판계에 느끼는 나만의 미스터리이다...<살의의 쐐기>는 수십 권이 이어진 87분서 시리즈 중 비교적 초기작으로, 경찰서에 자살 폭탄테러를 가하려는 여인이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서스펜스와 팀의 리더 격인 스티브 카렐라 형사가 맞닥뜨린 밀실 살인사건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합쳐지는 구성은 가히 대가의 솜씨라 할 만하다. 87분서 시리즈는 워낙 권수가 많아 그간 국내에 잘 소개되지 못했는데, 초기작부터 순서대로 차근차근 내고 있는 출판사가 있어 무척이나 반갑고, 앞으로도 더욱 활발한 출간을 부탁드리고 싶다.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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