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유다의 별 - 전2권 유다의 별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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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을 맞아 변호사 탐정 고진이 등장하는 네 번째 작품 <유다의 별>이 출간되었다. 전작 <정신자살>이 굉장히 만족스러워 꽤나 기대를 하고 읽었는데, 여러모로 전작을 능가하는 지점이 눈에 띄어 공히 작가의 최고작이라고 봐도 좋을 듯싶다. 이 작품 이전에 나온 시리즈들이 죄다 주인공 고진이 철저하게 가상의 사건 속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다뤘다면, <유다의 별>은 일제시대 악마의 사교 집단 '백백교'를 주요 소재로 삼아 본격 추리소설 애호가뿐 아니라 더 넓은 독자층을 품으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물론 작가는 기록된 살인 및 암매장 피해자 숫자만 300명이 넘는 희대의 사교를 책에 살짝 흘려넣어 독자의 반짝 호기심만을 자극하는 용도로 쓰진 않았다. 도진기 작가는 그렇게 얄팍한 추리소설가가 아니다. 백백교라는 흥미로운 모티브가 작품 전체의 줄거리와 주제에 호응하여 매력적으로 쓰인다는 점을 보증한다.

 

 

<붉은집 살인사건>으로 데뷔했을 때는 현역 판사라는 점이 도진기 작가의 최대 홍보 포인트였다. 그때도 트릭 제조 능력은 탁월했지만 문장력이나 구성에서 어느 정도 아마추어의 느낌이 있었다면, 어느새 여섯 번째 소설을 낸 지금은 원래 좋았던 트릭과 반전은 여전히 좋은데다 언급한 단점들도 전부 극복해 읽는 맛이 출중하다. 어쩌면 도진기 씨도 <유다의 별>을 작가생활의 전반부를 마무리하는 대작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작품의 재미가 다채롭다. 전매특허인 밀실살인이 두 건이나 등장해 중심을 잡아주고 암호풀이와 보물찾기로 잔재미를 더한다. 백백교를 등장시켜 팩션의 맛까지 전달하며 진범이 세 번이나 뒤집히는 반전도 갖추고 있어 한마디로 추리소설의 종합 선물세트이다. 놀라운 건, 이 모든 요소들이 중구난방으로 얽히고설키지 않고 적재적소에 투입되어 읽으면서 걸리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 시도한 상하권 구성이라서일까. 분량에 맞춰 고진의 파트너이자 현역 광역수사대 팀장인 이유현의 수사 파트도 비중있게 다뤄지는데, 열혈 형사인 이유현의 강렬한 개성 말고 다른 형사들은 특별한 성격이나 차별점이 없어 조금 아쉬웠다. 무대가 거의 서울이었던 전작들과 달리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건도 수사하고 보물도 찾는데, 여행지에서의 견문이나 정서 등을 담은 점은 마쓰모토 세이초 느낌도 풍겨 그 점도 좋았다. 얄밉기로 따지면 역대급인 악역 용해운(도입부에서 밝혀지니 스포일러가 아님)의 묘사가 탁월해, 이 죽을 때까지 때리고 딱 세 대만 더 때리고 싶은 악당을 미치도록 잡고 싶은 이유현의 처절한 심정에 독자가 자연스레 몰입하게 되는 부분도 이 소설의 잘된 점이다. 꼭 용해운이나 이유현뿐 아니라 기타 등장인물, 예컨대 사슴피를 좋아하는 돈의 노예 김성노 노인, 얼굴은 별로라는데 묘하게 매력적인 화미령 변호사 등 새로 모습을 드러낸 인물들도 전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처럼 느껴지며, 전작들에서 다소 심각해 보였던 주인공 고진은 죽을 때까지 때리고 딱 세 대만 더 때리고 싶은 미치도록 썰렁한 유머를 구사해 독자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등 익숙한 캐릭터의 신선한 면모도 드러난다. 고진 시리즈를 한 권도 빠짐없이 본 독자라면 더욱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바로 직전작인 <정신자살>과 비교해보면 어떨까. 개인적으로 <정신자살>에 등장한 두 건의 밀실 알리바이 트릭의 완성도가 조금 더 높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다의 별>은 위에 길게 언급한 다채로운 재미의 향연으로 (내 기준에서) 전작보다 살짝 떨어지는 트릭을 충분히 보완하고 있으므로 이 점은 독자들의 취향 차이로 남겨둘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신자살>의 최대 악당인 이탁오 박사가 일종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로서 악마적인 상상력을 현실화시켜 독자들의 뇌리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긴 공로는 있지만 아무래도 비현실적인 인물이라서 유독 현실성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독자들의 관점에서는 <유다의 별>의 진범이 더 받아들이기 쉬울 듯하다. 정리하자면 <정신자살>은 추리소설가의 꿈, 머릿속에 잠재한 악몽을 일필휘지로 그려냈다면, <유다의 별>은 추리소설가의 이성, 현실에 바탕을 둔 사건을 세심하고 논리적으로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분명하게 장단점이 갈려지지만 결론은 둘 다 좋은 추리소설이니 독자들이 직접 읽어보고 어떤 게 나와 맞는지 판단하는 게 옳겠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뿐 아니라 도진기 씨의 다른 작품에 유독 '한국식', '한국형' 추리소설이라는 홍보 문구를 붙이는 게 유감이라는 말씀을 좀 드리고 싶다. 대체 한국식 추리소설이라는 게 뭘까? 혹시나 일본이나 서양의 추리소설에 비해 좀 부족하지만 신토불이 아닙니까, 의리로 우리 작가 추리소설도 좀 밀어주쇼, 하는 의미라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도 일본이나 서양의 정통(본격) 추리소설에 비해 결코 밀리지 않는 수준이니 작품의 재미나 완성도만 내세워도 충분히 독자와 교감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요즘 물 건너온 추리소설들에도 이 정도 고난도의 트릭을 정공법으로 밀어붙여서 독자와 당당하게 정면승부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아직도 대다수의 국산 추리소설이 다른 나라의 수준작에 부족한 점이 상당히 많겠지만 도진기 씨 작품도 도매금으로 평가절하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해 첨언했다. 다른 나라 작품이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작품이라고 다 나쁜 것도 아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이제는 눈치 보지 말고 좋은 건 좋다고 당당하게 말할 때가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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