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F가 된다
모리 히로시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주말내내 붙들고 있었던 책입니다. 모리 히로시라는 작가가 썼구요. 아주 예전에 서울문화사에서 <웃지 않는 수학자>라는 그의 두번째 작품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서 웬지 작가에 대한 인상이 좋네요. <모든 것이 F가...>는 1996년작으로 그의 데뷔작입니다.



사실 살까 말가 망설였는데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습니다. 대학 시절의 한 때가 생각나거든요... 연세 지긋하신 우리 과 교수님이 늘 말씀하셨죠.
"나군! 그런 식으로 공부하면 모든 것이 F가 된다네..."
(이 문장은 전부 농담입니다...-_-;;; 정말 썰렁하군요..)



모리 히로시는 일본에서 대단한 사랑을 받는답니다. 현직 모대학 건축과 조교수 작가로서 역자 후기를 보니 총판매부수가 500만부를 넘겼다더군요. (모대학이라지만 나고야 대학이라고 밝혀진 지 오래랍니다.) 역시 인기 작가인 교고쿠 나츠히코하고 비교가 많이 된답니다. 데뷔 시기도 비슷하고 무언가 독특한 작풍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비교가 많이 되는데, 아주 재미있게도 모리 히로시는 이공계 작가, 교고쿠 나츠히코는 문과계 작가로 나눈다고 하네요..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럴 듯 합니다. 모리 히로시의 두 작품 모두 이공계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전공인 건축에 대한 언급부터 컴퓨터, 수학 등이 수시로 등장하지요. 요괴, 민속학 등에 천착하는 교고쿠 나츠히코와는 묘하게 대조가 되네요. 여튼 문과와 이과를 대표해 일본 미스터리계를 주름잡는 두 작가랍니다.



<모든 것이..>는 전형적인 밀실 살인입니다. 천재중의 천재 마가타 시키 박사는 9살때 컴퓨터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14살에 일본 컴퓨터계의 거성이 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을 칼로 찔러 살해하지요. 그러나 워낙 천재라 체포하지 않고, 연구소를 설립해 그녀를 가둬둔 후 연구에만 매진하게 합니다. 15년동안 말입니다. 역시 비범한 두뇌를 가진 N대학 건축과 조교수(작가 프로필을 유심히 보시길..) 사에카와 쇼헤이와 그의 제자이자 그를 연모하는 모에양은 시키 박사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시키 박사가 연금되어 있는 연구소에 찾아간 두 사람...

그 날 밤 피의 참극이 벌어집니다. 굳게 닫힌 시키 박사의 방문이 안에서 열리고 그녀의 시체가 운반용 로봇에 실려 나옵니다. 시체에는 팔다리가 없었죠. 박사의 방은 완벽하게 차단한 밀실이었고 문밖에서 감시하던 사람도 사에카와 교수와 모에양을 비롯해 5명이 넘습니다. 그녀의 방에는 역시 아무도 없었고, 쓰던 컴퓨터에는 이런 문구만 남아 있습니다.
'모든 것이 F가 된다'
살인자는 어디에 있을까요? 과연 그날 벌어진 사건의 진상은 무엇일까요?



이상이 대략의 줄거리입니다. 전형적인 밀실 추리의 플롯이지만 현대적인 트릭을 가미했다는데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현대적인 트릭이라고 기계 장비나 컴퓨터만 이용하는 건 아니고 기저에는 심리적 트릭도 깔려 있습니다. 현실과는 완전히 담싼 도락으로서의 추리소설의 재미를 강조하는 신본격 작가답게 조금은 비현실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하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수수께끼 풀기라는 미스터리 소설 본연의 맛을 추구하는 신본격 작가다운 기발한 퍼즐의 제시와 논리적인 해명에 조금 높은 점수를 주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단점 중 하나라면 인물에 깊이가 없고 문장이 조금 딱딱하다는 겁니다. 주인공인 사에카와 교수, 시키 박사는 천재답게 늘상 요설을 뱉고 다니는데 많은 지식이 투영된 그 대사들이 현학적이라기보다는 멋만 부린다는 생각이 팍팍 듭니다. 모에양은 집에 헬리콥터가 있을 정도로 엄청난 부자의 유산 상속인인데, 애처롭게도 작가가 개성있는 인물을 만들어 보려고 애쓴다는 느낌만 줍니다. 인물들이 종잇장처럼 얄팍해서 정이 가는 인물이 없습니다.

특히 작가는 연애 감정을 모르는 천재 사에카와 교수와 그런 그를 연모하는 모에양이 서로 가까워지는 러브 플롯이 작품의 재미를 돋운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유감스럽게도 인물들이 매력이 없으니 두 사람이 어떻게 되든 별 관심이 안갑니다. 그저 '그래서 이 사건의 진상이 뭔데? 쓸데없는 연애질말고 빨리 해답이나 가르쳐줘! '이런 생각만 드니 아쉬운 노릇입니다.



이공계 작가답게 문장도 조금 딱딱한 편인데, 이점은 어여삐 넘겨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품의 현학적이고 강의하는 듯한 분위기와 조금은 딱딱한 문장이 잘 어울리거든요...컴퓨터 관련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몰라도 지장은 없지만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을 것 같네요.



사에카와 교수와 모에양 시리즈는 10권이나 나왔다더군요. 두 사람이 어떻게 연애에 골인하게 될지는 솔직히 전혀 관심이 안갑니다.

그러나 모리 히로시의 독창적이고 기발한 트릭을 조금 더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품이 잘되서 그의 작품이 다 나왔으면 좋겠네요...



평점: F (ㅋㅋ 농담입니다.)
        ★★★★

        



P.S/ 작품 뒤표지에 아야쓰지 유키토, 노리즈키 린타로, 아리스가와 아리스같은 신본격 클린업 트리오의 열광적인 찬사 글이 있군요. 이 세 작가의 훌륭한 작품들도 빨리 좀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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