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야수 블랙 캣(Black Cat) 24
마거릿 밀러 지음, 조한나 옮김 / 영림카디널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국내에 거의 소개된 적 없는 영어권 서스펜스 거장 마거릿 밀러의 대표작이다. 본연의 확고한 작품세계를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스 맥도널드의 아내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는데, 이번 <내 안의 야수> 출간을 계기로 그녀의 대표작들이 더 많이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해본다.

<내 안의 야수>는 평범한(해 보이는) 인물들이 범죄와 악의에 맞닥뜨리면서 느끼는 공포와 불안감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심리 서스펜스 계열의 선구자 격인 작품으로 1955년에 나온 고전이지만 지금 봐도 손색 없는 깊이와 완성도를 자랑한다.

서스펜스라는 용어가 낯선 사람을 위해 적절한 예를 찾아본다면 아마도 동화 <푸른 수염> 같은 게 아닐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러 명의 아내가 죽은 남자에게 시집간 평범한 새 아내에게 남편 '푸른 수염'은 열쇠를 하나 주며 다른 방은 다 들어가도 좋지만 마지막 방은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말한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새 아내가 방문을 열자 그곳에는 죽은 아내들의 시체가 줄줄이 놓여 있고, 푸른 수염은 자신의 비밀을 눈치챈 새 아내 역시 살해하려고 하는데...

여기에 서스펜스의 모든 것이 있다. 비밀을 간직한 배우자, 호기심 많고 영리하지만 연약한 주인공, 마침내 드러나는 진실과 경악스런 결말! 굳이 동화에서만 이런 얘기를 찾을 필요도 없는 게 얼마 전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결혼한 남편들마다 수면제를 먹여 재운 다음 눈을 바늘로 찔러 실명시킨 악녀가 신문지상을 장식하지 않았는가. 만약 이 악녀의 남편이 잭 리처였다면? 잘 훈련받은 헌병 출신답게 바늘을 붙잡은 손을 뒤로 꺾어버린 다음 악녀 위에 올라타 망치와 같은 주먹을 내리칠 것이다. 아마도 숨이 끊어질 때까지. 악녀의 남편이 링컨 라임이었다면? 악녀 소매에 묻은 흰 가루를 몰래 분석해 수면제와 동일한 성분이라는 걸 밝혀내겠지. 그리고 함정을 파놓고 기다린 후에 기분 좋게 범인 체포~

그러니까 서스펜스의 주인공은 범죄수사의 천재도, 완력이 남다른 터프가이도 안 된다.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평범한 남녀에게 닥친 위기를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게 필수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 안의 야수>의 여주인공 헬렌이 신경쇠약 직전의 광장공포증 환자인 건 적절했다. 옛 친구의 전화 협박을 받고 불안에 떤 그녀가 아버지의 투자상담가였던 블랙쉬어에게 협박을 한 친구 에블린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면서 이야기는 굴러가기 시작한다.

당대에는 결정적인 반전으로 유명했을 듯한데, 요즘에는 영화나 소설 등에서 수십 번은 써먹은 듯한 반전이라 그쪽에서는 유효가 다했다고 본다. 다만 간결하면서도 선명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문장과 폭력 장면을 거의 넣지 않고도 스물스물 공포감이 피어오르게 하는 솜씨에서 거장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은근히 유머도 있고, 특히 처절하리만큼 아름다운 마지막 장면은 다섯 번쯤은 다시 읽게 만든다. 여러모로 명성에 부끄럽지 않은 클래식이라는 생각이다.

1955년 에드거상 수상작으로 당시 라이벌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재능 있는 리플리 씨(태양은 가득히)>였다. 그 작품은 아직 읽지 않았는데, 이참에 읽은 다음 비교해보고 싶다. 그리고 서두에도 썼지만 <엿듣는 벽>, <천사처럼>, <내 무덤의 이방인>, <이 뒤에는 괴물들이 산다> 등 마거릿 밀러의 다른 심리 서스펜스 걸작들도 꼭 다시 만나보고 싶다.


p.s/ 스포일러가 될 소지가 다분한 제목과 표지는 불만족. 특히 팝아트풍의 느낌을 내려 했던 것 같은 표지는 작품 내용이나 밀러의 명성과 그다지 맞지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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