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홈즈걸 1 -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명탐정 홈즈걸 1
오사키 고즈에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내 어릴 적 꿈은 서점 주인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책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동네 서점에 가면 책을 붙들고 몇 시간이고 나올 줄 몰랐다. 그러다 보다 못한 서점 아저씨가 안 사려거든 좀 가다오, 핀잔을 주면 겨우 안 움직이는 발을 떼며 나오기 일쑤였으니. 갖고 싶은 책을 살 수 있는 돈이 없었던 시절이기에, 서점에 산처럼 쌓인 책들을 바라보며 군침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서점을 해서 마음놓고 책을 읽어야겠다는 상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몇 년 전에 많은 인기를 모았던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에서는 우승자에게 서점에서 자신이 들고오고 싶은 만큼 책을 주는 혜택을 주었는데, 나도 한 번 저런 기회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에 꿈까지 꿨을 정도. 그러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서점이란 역시 동경과 추억, 황홀한 꿈으로 온통 파랗게 채색된 공간이 아닐까 싶다. 그뿐이랴. 예전에는 동네 서점이 사랑방 역할도 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우리 아파트 상가에 있던 서점에 가면 책 한 권 사놓고, 서점 주인 아저씨가 쌍팔년도에 데모했던 이야기 듣느라 몇 시간을 앉아 있다 오곤 했으니까.
 
 

그러나 2010년 3월 현재, 나는 꿈만으로 동네 서점을 한다는 게 얼마나 수지가 안 맞는 장사인지 아는 나이가 되었다. 열혈 운동권 출신 아저씨가 하던 동네 상가 서점은 이미 도산한 지 오래. 그 아저씨는 간 곳을 모른다. 물론 나는 요즘도 가끔 서점을 가곤 하지만, 책표지나 만든 꼴만 확인하고 냉큼 집에 들어와 인터넷으로 주문을 한다. 집에서 편하게 받아볼 수 있고, 각종 할인이나 적립금, 이벤트 등이 온라인에서 훨씬 풍부해 굳이 서점에서 책을 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게 다 편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바뀌어버린 생활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가끔 서점에 얽힌 즐거운 옛 생각이 날 때면 가슴 한구석의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이렇듯 조금쯤은 예전에 분명히 있었던 훈훈함과 재미가 사라진 시절에 우연히 만난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은 서점이라는 공간을 너무도 따뜻하게 그리고 있어 읽는 동안 너무 만족스럽고 행복했다.

 

'서점에 얽힌 사건은 서점이 해결한다'는 모토를 내세운 일종의 서점 미스터리인 이 작품은 총 다섯 편이 수록된 단편집. 주인공은 6년차 나름 베테랑 서점 직원 교코와 날카로운 추리력을 지닌 아르바이트생 다에(실제 사건들은 전부 다에가 해결한다). 불후의 명콤비 홈즈와 왓슨을 떠올리게 만드는 두 파트너가 역앞 중규모의 '세후도 서점'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파헤친다. 그러나 기껏해야 책값으로 몇 만 원 정도가 오가는 서점에서 강도나 살인 같은 초강력 범죄가 일어날 리 있겠는가. 치매로 거동을 못하는 할아버지가 사다달라고 한 책을 찾아준다거나(다만 할아버지가 병으로 말씀도 잘 못해 책 제목을 적어준 쪽지가 암호를 방불케 하는 수준이다), 손님이 병원에 있을 때 너무도 좋은 책을 추천해준 이름 모를 세후도 서점 직원을 밝혀낸다거나, 서점에서 준비한 판촉물을 훼손한 범인을 알아내는 등의 소소한 내용이니 일상의 미스터리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사건 자체의 강도가 약한 편이라, 치밀한 추리나 경천동지할 반전...그런 건 없다. 어디까지나 안락한 분위기와 서점에 관한 공감 가는 정서로 승부하는 진짜 서점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을 듯.

 

무난하고 잘쓴 단편들이라 누가 읽어도 만족스럽겠지만, 책과 관련된 직업을 가졌던 나는 딱 두 배의 재미를 더 느꼈다. 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전차남>이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등 일본에서 꽤 화제가 되었던 책들이 자주 언급되니,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더 흥미로울 듯하다. 특히 첫 번째 단편에 나오는 중요 단서 중 하나인 신초샤(일본 메이저 출판사 중 하나)의 판다 마스코트와 문고본 카탈로그 책자 같은 건 실물을 본 적이 있기에 읽는 동안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막기 힘들었다. 미스터리로서도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지만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역시 서점이나 서점 일에 관한 정밀한 묘사가 아닐까 싶은데, 작가는 실제로 서점 직원으로 13년이나 일했다고 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서점 직원이 하는 일을 그려낸다거나 평소 서점에서 일하면서 느낀 생각 등을 적재적소에 녹여내 한 편의 직업 소개서로도 충분할 정도다. 주인공 교코는 서점에 깊은 애정을 가진 평범한 직장인으로, 요즘 유행하는 소설들의 등장인물처럼 온갖 자의식이나 트라우마로 가득찬 우울한 내면 세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한,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구김살 없는 보통 아가씨라 오히려 한층 더 호감이 가는 것이다. <명탐정 홈즈걸의 모험>은 서점이라는 우리가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잘 알지 못하는 세계를 손에 잡힐 듯 분명히 보여주고, 단지 책을 사랑하는 손님들을 돕기 위해 별난 모험에 뛰어드는 두 아가씨의 매력이 가득한 정말 사랑스런 서점 미스터리다.

 

p.s/ 책 말미에 실제 서점 직원으로 일하는 아가씨 네 명의 인터뷰가 꽤 길게 수록되어 있는데, 이게 또 무척 재미있다. 이 책에 나오는 기상천외한 손님들보다 더 골 때리는 실제 손님들의 일화라거나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공감대 등이 아가씨들 특유의 끝없는 수다로 계속된다. 개인적으로 첫 직장이었던 출판사는 당시 영세한 곳이라 편집자인 나도 영업을 도우면서, 실제 서점 아가씨들을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그중 국내 굴지의 서점 아가씨가 참 네가지가 없어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 한 적이 있는데, 이 인터뷰를 보니 서점 아가씨들 고충도 만만치 않더라. 우리는 한 사람이지만, 그분들이 만나야 할 출판사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명이 넘을 테니 어찌 모두 친절하게만 대할 수 있겠는가. 바빠서 그런 거라 이해해줄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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