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추럴 셀렉션
데이브 프리드먼 지음, 김윤택 외 옮김 / 지성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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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스>가 <주라기 공원>을 만난다면?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데이브 프리드먼의 2006년 소설 <내추럴 셀렉션>을 읽는 게 어떨까 싶다. 심해와 지상에서 펼쳐지는 괴생명체와 여섯 명의 해양생물학자 간의 대결을 다룬 이 스릴러가 꼭 그런 이야기라 독자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할 수 있을 것 같다. 특별히 이 책과 비슷한 줄거리를 가진 책이라면, 몇 해 전에 스티브 앨튼이라는 작가가 상어의 조상 격인 고대 괴수 메갈로돈이 현대에 출몰해 사람들을 살육하는 <메그>라는 소설을 발표해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유감스럽게도 <내추럴 셀렉션>은 <메그>만큼 파괴력 넘치고 몰입감이 강하지는 못했지만(상어공포증에 시달리는 개인 취향이 반영된 듯), 나름대로 짜임새 있는 설정에 매 페이지마다 액션이 넘쳐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거의 최초의 스릴러라 불리는 <39계단>이 1차대전을 일으키려는 독일 첩보조직(엄밀히 따지면 배후의 비밀조직이지만)과의 대결을 소재로 삼은 것처럼, 서구에서 독서계를 장악한 스릴러라는 장르는 항상 우리를 두려워 떨게 만드는(끊임없이 스릴을 자극하는) 어떤 것을 그리는 듯하다. 때문에 양차대전 때는 독일, 냉전시대에는 소련 세력 등을 주로 악역으로 설정했다면, 전세계적인 해빙 무드가 조성된 요즘은 그럴싸한 적을 찾기 어려워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최근의 스릴러 작가들은 다양한 곳에서 독자의 본능적인 공포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대상을 정하는데, 의료 현장에서 일어나는 불가해한 사건들을 메디컬 스릴러로 푼다든가, 연쇄살인범이 등장해 주변의 이웃들을 살해하는 사이코 스릴러 등 종류가 무척 많아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 아무래도 최근의 스릴러들은 더 이상 독자들의 본능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국가 차원의 거대한 음모보다는, 개개인에게 닥치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공포를 다루는 쪽으로 유행이 바뀐 모양이다.

 

흔히 테크노 스릴러라 부르는 과학을 기반으로 한 스릴러는 작년에 사망한 마이클 크라이튼의 수퍼 베스트셀러 <주라기 공원>의 영향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괴수를 등장시켜 사람들을 학살하는 고전적인 괴물 호러소설의 플롯에 현대생물학이나 유전공학 등의 과학 기술 등을 결합시켜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이 소설은 누구나 아는 것처럼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화해 기록적인 흥행을 달성하기도 했다.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은 물론이거니와 워낙 소설 자체가 영화로 만들기에 그림이 딱 나오는 그런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과학 공부 좀 했고, 글도 좀 쓰며, 큰돈 만지고 싶은 배짱 좋은 후배 작가들이 나도 한번 써봐, 하며 나서기에 충분한 조건이 아닐까? 더구나 기초 교육의 확대로 독자들의 과학에 대한 교양 수준도 예전에 비해서는 크게 올라갔다. 이제 어느 정도의 해설 만으로도 작품 속에 등장하는 과학 이론에 대해 충분히 독자들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니 과학을 소재로 삼는 어려운 스릴러를 집필한다는 부담감도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나 요즘 독자들은 소설을 즐기는 데서 만족하지 않고, 웬만큼의 지식도 얻어가는 걸 원하므로 오락과 과학이 결합된 <내추럴 셀렉션> 같은 소설이 앞으로도 더욱 큰 인기를 끌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책의 작가 데이브 프리드먼 역시 과학 공부 좀 했고, 글도 좀 쓰며, 큰돈 만지고 싶은 배짱 좋은 작가 중 한 명이다. <내추럴 셀렉션>에서 그가 비장의 무기로 내세운 건, 찰스 다윈의 그 유명한 <진화론>이다. 제목 '내추럴 셀렉션' 또한, 다윈 진화론의 핵심인 '자연선택'이라 풀이할 수 있다. 자연선택이란 어느 특정한 종의 개체 사이에 벌어지는 생존 경쟁 속에서, 특히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개체가 생존하여 후손을 남긴다는 뜻이란다. 예컨대, 아프리카의 원시 기린은 처음부터 오늘날처럼 목이 그렇게 길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기린들이나 다른 동물들이 나뭇잎 등의 한정된 먹이를 놓고 다툴 때, 유독 목이 긴 기린이 높은 가지의 잎사귀를 따먹을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목이 긴 기린들만 생존하고 목이 짧은 기린들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살아남은 목이 긴 기린들의 암수끼리 결합하여, 목이 긴 유전자를 계속 후손들에게 퍼뜨렸고, 그 결과 오늘날 아프리카 초원의 기린들은 전부 목이 긴 기린만 남게 된 셈이다.

 

작가는 대다수의 생물학자에게 공인받은 이 자연선택 이론을 기반으로 삼아 거기에 상상력을 더해 무시무시한 심해의 괴물을 창조했다. 몸길이가 7미터가 넘고 무게는 20톤이 넘는 거대 가오리떼가 깊은 바다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원인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져 익숙한 환경이 서서히 파괴되자, 원시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살고 있는 거대 가오리떼는 서서히 얕은 바다로 부상하고, 그중 선구자 노릇을 하는 가오리는 아예 거대한 날개를 사용해 뭍으로 상륙하는데 성공한다. 심해라는 환경이 파괴되자 그에 적응하기 위해 육지에 올라온 거대 가오리야말로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의 최종 승자가 된 셈이다. 날카로운 이빨로 3미터에 달하는 곰도 한 입에 물어죽이고 육지와 바다, 공중을 자유자재로 누비는 식인 가오리를 뒤쫓던 여섯 명의 해양생물학자는 이 새로운 가오리를 '악마가오리'라 명명한다. 그들은 악마가오리로 인한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기관총과 활, 헬리콥터, 보트 등을 총동원해 사냥에 나선다. 그러나 그들이 몰랐던 것 한 가지는 악마가오리 또한 역으로 그들을 사냥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오리가 아무리 커져봐야 하늘을 날고 사람까지 죽이는 게 말이 되느냐, 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심해는 우주만큼이나 인간의 인식이 미치지 못하는 곳. 지구상에서 가장 깊다는 마리아나 해구에 인간들은 고작 수십 분을 들어갔다 나왔을 뿐이다.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는 곳에서 어떤 생물들이 살고 있을지, 그 생물들에게 어떤 능력이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추럴 셀렉션>이 보여주는 상상력은 충분히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다윈의 <진화론>에 바탕을 둔 비교적 그럴듯한 내용에 후반부 200페이지는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모험과 액션의 연속이다. 심심풀이로 책을 잡은 독자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듯하다. 다만 약간 아쉬운 건, 설정이나 줄거리의 정교함, 기발함에 비해 인물의 성격이 지나치게 얄팍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여섯 명의 과학자들 중 한 명이 악마가오리를 사냥하는 게 무척 위험한 일이라는 이유를 들며 빠지려 하자, 리더 격인 인물은 이 일은 인류에게 있어 전혀 새로운 종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일이 될 것이며 아마 교과서에도 실리게 될 거라 회유한다. 리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교과서에 실리는 게 내 인생의 꿈'이었다며 참가를 결정한다. 그냥 한번 튕겨본 건가...백인 선남선녀 두 사람만 살아남게 되는 결말도 지나치게 할리우드 스타일이고, 살아남은 주인공들은 동료를 줄줄이 잃었음에도 그다지 슬퍼하는 것 같지도 않다. 아무리 아이디어나 플롯이 중요한 소설이라고 해도 이 정도라면 곤란하지 않을까. 문장이란 것도 죄다, '악마가오리가 다가왔다. 그들은 비명을 질렀다.' 이런 식이라 전개는 빠를지언정 문학 작품을 읽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데이브 프리드먼의 다음 작품은 흥미진진한 내용 못지않게 문장력이나 인물의 성격에도 공을 들이길 기대하며 이만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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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1-01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죠스가 주랴기 공원을 만난 책이라면 이미 메그라는 해양소설이 있읍니다.ㅎㅎ
제다이님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jedai2000 2010-01-04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스피님...사실 재미도 <메그>가 더 있었어요-_-;; 카스피님도 올 한해 원하시는 소원 다 성취하시고, 늘 댁내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