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은 작년 일본 문단 최고의 화제작이라 불릴 만한 소설이다. 2009년 5월에 일본 현지에서 출간되어 수백만 부가 팔려나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도 우리나라에 3개월만에 번역 출간되어 현재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걸 보면, 이제 우리나라와 일본의 출간 시차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듯하다. <고백> 역시 우리말로 소개되기까지 딱 1년 정도가 걸린 셈이라 우리 독자들은 미나토 가나에가 대체 어떤 책을 썼기에 일본 열도를 그토록 진동시켰는가를 비교적 빨리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백>은 2008년 미스터리 베스트 1위, 아마존 재팬 상반기 소설부문 2위, <소설 추리> 신인상, 무엇보다 서점직원들이 직접 가장 팔고 싶은 책을 뽑는 2009년 일본 서점대상에도 1위로 올랐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밀리언셀러에 조금 못 미치는 판매고를 올린 걸로 알고 있다. 한마디로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비평계뿐 아니라 독자들의 눈도장까지 확실하게 찍었다. 데뷔작이 이 정도라니 앞으로 연거푸 몇 작품이 미끄러지지 않는 이상 성공의 탄탄대로에 오른 행복한 작가라 할 수 있겠다.



필자는 지금은 출판사에 다니지 않지만 몇 년 일을 한 덕에 편집자 지인이 제법 있다. 덕분에 아직 서점에도 완전히 깔리지 않은 <고백>을 우연히 남들보다 빨리 받아들 수 있게 되었는데, 가뭄에 콩나듯 이런 호사를 즐길 수 있다는 게 출판계에 몸담았던 거의 유일한 장점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대단한 화제작이라는 걸 작년부터 알고 있었기에 출판사에 다닐 때 판권을 사자는 건의를 한 적이 있다. 물론 윗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해 계약을 하지는 못했고 나오면 꼭 읽어봐야겠다는 다짐만 하며 분루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 아는 분이 다니는 출판사에서 판권 계약을 해 이렇게 멋진 책으로 만들어주었으니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다. 이 책이 그렇게 내가 계약을 따내고 싶어했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을까, 만약 내가 이 책을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등등 책을 읽기 전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당시 시각은 새벽 0시 30분. 늦었으니 조금만 읽다 자야지 생각하고 몇 장을 넘겼는데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다 읽고 나니 새벽 3시 15분. 조금의 딴 생각이라든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든가 하는 일체의 딴 짓을 할 수 없었다. 경악, 또 경악. 대단한 몰입감이었다.



<고백>의 도입부는 어느 중학교 1학년 여교사가 학년이 끝나는 종업실 날 반 아이들에게 1년간의 소회를 담담히 털어놓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여교사가 이제 7년 동안의 교직 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기로 했다는 말을 하자, 아이들은 술렁거린다. 이유를 알고보니 몇 달 전 그녀의 아이가 사고로 죽었기 때문. 싱글맘인 여교사는 매주 교무회의가 있어 늦게 끝나는 수요일에는 아이를 유치원에서 미리 데려와 양호실에서 기다리게 했었다. 그러나 사고가 생긴 그날, 아이는 양호실을 빠져나와 학교 수영장 근처에서 얼쩡거리다 실수로 발을 디뎌 익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사고의 후유증 때문에 선생님은 학교를 그만두려나 보다, 하고 아이들이 고개를 주억거릴 때, 여교사는 충격적인 말을 던진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직하는가? 딸은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우리 반 학생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 책을 덮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대체 이날 무슨 일이 생겼길래, 하며 홀린 듯이 책장을 넘겼다. 그래서 마침내 드러난 이날의 비밀도 충격적이지만, 어린 나이로 인해 법으로 만족할 만큼 처벌하기 힘든 소년범들에게 여교사가 개인적으로 감행한 복수의 진상이 드러나는 순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놀라웠다. 머리가 쿵쿵 울리고, 먹은 것이 일시에 올라오는 기분이랄까(이 책을 읽어보면 내 말이 이해가 갈 것이다. 그야말로 진짜 '올라온다').



여기까지가 <고백>의 직접적인 모티브가 되었던 단편 '성직자'의 내용이다. 사실 <고백>은 이 '성직자' 편에 다섯 개의 뒷이야기를 더 붙여 장편으로 만든 소설이다. 원래 단편으로 썼던 내용을 장편으로 클로즈업했다고 할까. 각 장의 제목은 1장 '성직자', 2장 '순교자, 3장 '자애자', 4장 '구도자', 5장 '신봉자', 6장 '전도자'로 되어 있으며, 20페이지 남짓한 6장을 제외하고 모두 50페이지 내외라 분량이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이지만 어떤 두꺼운 책도 주기 힘든 강렬함이 있다. 각 장마다 1장에 등장했던 여교사뿐 아니라 범인A와 범인B,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같은 반 소녀 등 사건과 관계된 등장인물 개개인의 고백 형식으로 이뤄져 있어 누군가의 충격적인 비밀을 몰래 엿듣는 듯한 몰입감이 훌륭하며 형식적으로도 통일성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단순히 재미로도 빼어나지만 <고백>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만 14세 이하의 소년범 문제, 범죄 가해자의 인권에만 신경 써 정작 피해자의 인권은 실종되는 씁쓸한 상황,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심판하는 일이 윤리적으로 옳은 문제인가 하는 등 여러 가지 주제의식도 아울러 담고 있어 독서를 마치고 나서도 오래도록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게 한다.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고교 교사 경력이 있다는데, 그 경험을 살려 중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사와 제자 간의 참혹한 복수극을 다룬 이 책을 현실감 넘치게 그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잘한 복선 하나조차도 나중에 끔찍한 복수의 도구로 사용되니 모든 장면을 주의 깊게 읽어보시라. 데뷔작부터 미야베 미유키의 스토리텔링과 기리노 나쓰오의 강렬함을 아울러 선 보인 필력을 봤을 때 앞날이 유망한 작가라는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겠다. 1장 '성직자'가 원점이 된 소설이니만큼 1장의 완성도가 가장 뛰어나지만 소설 전체의 결말이 드러나는 6장 또한 끔찍하리만큼 충격적이다. 물론 소설 전체적으로도 어디 한 구석 나무랄 데 없이 빼어나고. 이 독후감을 쓰면서 가장 많이 쓰게 되는 낱말이 충격, 경악, 끔찍 등인데 아마 앞으로 읽을 누구나가 다 동의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자신의 제자에게 비정한 제재를 가하는 교사가 나오는 소설이라 도덕적인 면에서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좋아할 사람만큼 혐오하게 될 사람도 분명히 나오리라 본다. 그러나 이 책을 좋아하게 될 독자든 반대로 거품을 물고 씹을 독자든, 내가 한 가지 확실히 장담할 수 있는 건 누구든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만은 약속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