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키스 레인코트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전행선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읽는 사립탐정 소설이다. 베트남 전 참전용사 출신의 엘비스 콜은 파트너 조 파이크와 함께 LA에서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엄마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공연을 보고 반해 이름을 엘비스로 개명시켰다는 재미난 일화를 가지고 있는 그는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잘 때까지 농담을 일삼는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지만, 베트남 전 때 만난 조 파이크는 과묵하고 악당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병기다. 이렇게 성격은 달라도 두 사람은 큰 공통점이 있으니 둘다 정의감이 무척 강하다는 것, 그리고 약한 자의 슬픔을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느 날 엘비스는 바람나서 집을 나간 남편을 찾아달라는 엘런의 의뢰를 받아들이는데, 할리우드 에이전트였던 엘런 남편의 실종을 조사하면 할수록 이 사건이 생각했던 것만큼 단순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베트남 전 참전용사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읽는 동안 멜 깁슨 주연의 영화 <리쎌 웨폰>이 떠올랐다. 마침 <리쎌 웨폰>과 이 책이 발표된 시기도 1987년으로 동일하다. 물론 누가 누구를 표절했다는 건 아니고, 몇 가지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얘기다. 두 작품 다 LA 배경에, 주인공은 베트남 전 참전용사들이고, 그에 따라 강렬한 액션 씬이 연속되며, 서로 이질적인 성향의 두 파트너가 점차 가까워지는 걸 묘사하는 일종의 버디 액션 장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게 느꼈다. 그러고 보면 미국의 사립탐정 소설에서는 유독 무지막지한 파트너가 자주 등장하는 듯하다. 로버트 파커가 창조한 스펜서와 호크, 할란 코벤의 마이런 볼리타와 윈,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와 부바 등이 언뜻 떠오르는데, 전부 후자의 인물들이 무시무시한 액션 히어로들이다. 이렇게 모든 게 다른 두 명의 파트너를 작가들이 자주 한 팀으로 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각각 개성과 가치관은 달라도 정의 수호라는 공통의 목적으로 단결해, 사악한 적들을 물리치고 더욱 끈끈한 우정을 만들어가는 파트너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걸 독자들이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책없이 두꺼운 요즘 스릴러들에 비해 370페이지로 깔끔한 분량이다. 엘비스는 끊임없이 배꼽 빠지는 농담을 날리지만, 분량도 그렇고 사건의 구조가 비교적 단선적이라 머리 쓸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작가 로버트 크레이스는 사건의 핵심에 이르러서 마침내 나타나는 지하 세계의 거물 대 엘비스 콜-조 파이크의 정면대결에 소설의 모든 힘을 집중시킨 느낌이다. 베트남의 정글에서 했던 것처럼 얼굴에 온통 붉은 칠을 하고, 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채 적 아지트를 기습하는 결말의 박력은 정말이지 원초적인 쾌감이 넘친다. 특히 이 장면에서는 울창한 나무숲으로 뒤덮여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베트남의 정글과 네온으로 번쩍이는 할리우드의 거리는 그 모양부터가 전혀 다르지만, 돈과 마약, 환락으로 미쳐 돌아가는 LA도 베트남의 정글과 비교해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느껴진다.

 

액션이 한층 강화된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를 읽는 느낌, 혹은 기가 막힌 농담들이 추가된 로버트 파커의 스펜서 시리즈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수표 하나 제대로 쓰지 못했던 전업주부 엘런이 가정에 닥친 비극 앞에 점점 강해지고 스스로의 힘으로 역경을 이겨내는 모습, 마지막에 엘런이 결혼생활에 완전히 실패한 것이 아님이 확인되는 장면 또한 무척 상쾌하다. 작가는 엘비스 콜 시리즈를 현재까지 총9편 썼고, 파트너 조 파이크가 주인공으로 전면에 나서는 스핀오프 시리즈도 쓰고 있다는데 개인적으로 터프가이 조 파이크 시리즈도 꼭 읽어보고 싶다. 내 생각에는 미 육군 출신의 고독한 늑대 잭 리처가 등장하는 리 차일드의 작품들과 비슷한 분위기가 날 것 같다(리 차일드의 '잭 리처 시리즈'도  담배나 마약보다 강한 중독성을 자랑한다). 재치 있고 여자도 잘 낚는 재간둥이 엘비스 콜과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조 파이크를 만나보게 되어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헤이, 탐정들. 한국에 온 걸 환영해. 앞으로 자주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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