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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앤드 커맨더 1 ㅣ 오브리-머투린 시리즈 1
패트릭 오브라이언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삶이 팍팍해서일까. 요즘 바다에 한번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푸르른 대양을 바라보면 가슴이 뻥 뚫릴 것 같고, 내 머리 위에 불어오는 상쾌한 바닷바람은 온갖 망상과 잡념으로 찌든 머릿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누구나 바다를 동경하고 바다에 얽힌 추억 한 가지씩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바다는 틀에 박힌 삶에 지쳐가는 사람들의 잃어버린 모험심을 자극하며 잠시 고단한 현실을 잊고 꿈을 꾸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린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3부작의 성공 요인도 비슷한 이유에서가 아니겠는가. 여기 바다를 소재로 한 하나의 매력적인 소설이 있다. 해양 모험소설의 대표작인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마스터 앤드 커맨더>가 바로 이 작품으로, 갱 영화에서의 <대부> 같은 존재, 혹은 무협소설에서 김용의 <사조삼부곡> 같은 위치를 점한다고 보면 되겠다. 3년 전에는 러셀 크로 주연으로 블록버스터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이 작품은 아니고, 21편에 달하는 오브리-머투린 시리즈의 10번째 작품 <세상의 끝>을 영화화한 것이란다. 마침 영화도 DVD로 가지고 있어 조만간 볼 예정이다.
고등학교 때 <대항해시대>라는 컴퓨터 게임을 하며 주말 밤을 새우기 일쑤였는데, <마스터 앤드 커맨더>를 읽으며 그때 생각이 많이 나더라. 유럽의 18, 19세기라는 비슷한 시대를 다루고 있으며 항해의 준비 과정과 실제 항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그럴싸하게 묘사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잭 오브리는 아버지가 해군 장성이지만 밑바닥부터 다른 배에서 구르다 마침내 소피 호의 정식 함장이 된다. 그는 유능한 선원들을 모으고 오랜 항해를 위해 물자를 채우며 착착 밑준비를 한다(여기가 사실 <대항해시대>에서 가장 재미난 부분이다). 한번 출항하면 배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므로 의사가 꼭 필요하다. 오브리는 우연히 알게 된 박학다식한 학자이자 의사 스티븐 머투린을 군의관으로 삼아 마침내 닻을 올리고 바다로 향한다.
뱃사람으로서 유능하지만 재물과 승진, 여자 등의 욕망에 불타 있는 속물 잭 오브리와 생명을 중시하는 고결한 이상주의자 스티븐 머투린은 성격이 많이 다르지만 서로를 몹시 위하며 깊은 우정을 쌓아간다. 이 시리즈를 오브리-머투린 시리즈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 점점 깊어가는 두 사람의 우정과 내면의 성장, 파란만장한 인생 항로가 21권이라는 많은 양의 소설을 지탱하는 가장 커다란 돛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스터 앤드 커맨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작가 패트릭 오브라이언이 철저하게 19세기 초의 관점으로 모든 걸 묘사했다는 데 있었다. 솔직히 소피 호와 잭 오브리가 다짜고짜 적국인 프랑스, 에스파냐 상업선을 나포하는 장면들은 해적이나 다를 바 없었고, 오브리의 불륜 행각, 혹은 흑인이나 장애자들에 대해 편견 섞인 대사들을 마구 내뱉는 장면들은 아마 요즘 나오는 소설이라면 그렇게 쓰지 못했을 것 같다. 작가는 그저 철저하게 당시 뱃사람의 시선에 눈높이를 맞출 뿐 어떤 개입도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19세기의 시대상, 인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소설로서 이 작품이 가진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피 호는 4파운드 짜리 작은 대포 14개만을 갖춘 조그만 배다. 이 시원찮은 배를 이끌고, 뛰어난 전술로 적함을 연전연파하고 혁혁한 전공을 세우는 장면들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짜릿하다. 특히 오브리와 머투린의 순간적인 기지로 다 죽었다 싶은 장면에서도 무사히 탈출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통쾌하게 웃으며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였다.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대형 대포 32문을 갖춘 카카푸에고 호를 격파하는 부분. 적함으로 밧줄을 타고 뛰어들어 처절한 살육전을 전개하는 오브리와 소피 호 선원들의 모습은 박력이 철철 넘친다. 이 박진감 넘치는 장면은 절대로 놓치지 마시길. 작가 패트릭 오브라이언은 문필가면서 범선에 조예가 깊은 모양인지 엄청 정교하게 소피 호를 그린다. 앞돛대, 가운데돛, 아딧줄, 바람받이, 활대, 패덤...사실 뇌에 과부하가 걸리며 머릿속으로 그림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범선의 모습을 상상하며 읽어보려 했는데,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고 포기하게 되더라. 가치 있지만 솔직히 읽기가 쉽지는 않다고 고백하고 싶다. 나처럼 가볍게 해양 모험소설로서만 읽는 방법도 있을 테고, 역사나 범선, 해양에 관한 자료를 꼼꼼히 찾아가며 공부하는 독서도 있을 수 있다. 어떻게 읽든 잘 쓴 소설임은 분명하고 읽으면 유익한 작품이니 자기만의 독서법을 찾아 재미나게 즐기시길...
p.s/ 원저에는 단 하나의 역주도 없고 자주 나오는 프랑스어, 에스파냐 어 등에 대한 설명도 일절 없다고 하는데, 이걸 일일이 찾아 역주를 달고 번역한 번역자 분의 고생이 정말 굉장했을 것 같다. 번역에 2년이나 걸렸다는데 과연 그랬겠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다음 편은 2010년에 보게 되는 건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