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도우 J 미스터리 클럽 3
미치오 슈스케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절친한 두 가족이 있다. 아버지끼리는 의과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오래된 사이고, 어머니들도 대학 동창. 자식들까지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니 대를 이은 특별한 우정이라고 해도 좋겠다. 두 가족 중 가모 가의 어머니가 암으로 죽고 장례식장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슬픔에 잠기는 것도 잠깐, 아버지 가모 요이치로는 이제 아들 오스케와 함께 2인 가족으로 살아 나가야 한다. 익숙치 않은 살림살이에 난처하지만 뜻밖에도 아직 어린 오스케가 벌써 철이 들었는지 아버지를 돕는 것이 듬직하다. 하지만 오스케는 때때로 벌거벗은 두 남녀가 등장하는 환영에 사로잡히고, 요이치로 역시 기묘한 언행을 일삼아 평화로운 일상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한편 가모 가와 인연이 깊은 미즈시로 가에도 비극이 찾아온다. 어머니 사나에가 자살로 추정되는 사고로 추락사하고, 딸인 초등학생 아키도 교통사고를 당한다. 자동차 운전자는 아키가 일부러 뛰어들었다는 인상을 받았다는데 알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아버지 도오루는 정체 모를 약에 중독되어 있어 묘한 환상을 본다. 이쯤되면 시쳇말로 막장으로 가는 두 가족이다. 이 두 가족 주변에서 연이어 벌어지는 기묘한 일들은 무엇을 가르키는 걸까? 궁금해서 한번 잡으면 쉽사리 놓기 어려운 책이다.

 

제7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이라고 한다. 비록 정신병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라 어딘지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지만 끝에 가면 등장인물들의 환상에 전부 논리적인 설명이 뒤따른다. 특히 가모 가와 미즈시로 가에 일어나는 사소하지만 신경을 자극하는 사건들이 모든 진상이 밝혀지는 결말에서 착착 설명되는 부분이 짜릿하다. 예컨대 가모 오스케가 학교 운동회에서 썼던 파란 머리띠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 미즈시로 아키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가모 요이치로 아저씨의 팔이 슬쩍 닿기만 했는데도 경끼를 일으킨 이유, 뉴스에는 지진이 보도되지 않았지만 오스케가 잘 때 진동을 느꼈던 이유 등이 낱낱이 밝혀지는 장면은 앞에 일어났던 그 모든 기이한 사건들에 대한 정확히 설명을 제공해 감탄할 정도다.

 

그럴싸한 반전도 있어서 여러 모로 만족할 만한 본격 미스터리기는 한데 개인적으로는 약간 반칙 느낌을 받기도 해 무조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지는 못하겠다. 원래 본격 미스터리는 한정된 용의자를 대상으로 그 안에서 범인을 맞추는 게 장르의 규칙이라 할 수 있다. 과연 이 책에서도 사건이 일어나는 초반부에 용의자들(?)이라 할 수 있는 가모 가와 미즈시로 가의 구성원들의 행적을 한 명씩 실시간으로 묘사한다. 작가가 비록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레 독자들은 이 용의자들의 행적에는 거짓이나 누락이 없을 것으로 믿게 된다. 이것은 본격 미스터리 작가와 독자 간의 암묵적인 약속인 것이다.

 

하지만 작가 미치오 슈스케는 슬쩍 약속을 저버린다. 다른 모든 용의자들의 행적은 한 치의 숨김도 없이 그려내면서 단 한 명의 행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그리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작가와의 약속을 철썩같이 믿고 그 안에서 범인을 찾아보려 노력했던 독자들은, 실은 이 부분은 미스터리를 구성하기 위해 일부러 빼놓은 것입니다, 라는 작가의 말에 좌절할 수밖에 없다. 독자의 오해를 자아내기 위한 고의적인 숨기기인 셈인데, 다른 독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어느 정도 떳떳하지 못한 트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기는 했는데 흥미로운 줄거리에 비해 약간 느린 진행과 그다지 인상적으로 꾸미지 못한 클라이막스, 언급한 반칙성 트릭으로 아쉬움도 함께 남은 작품이었다. 

 

요즘 미스터리 소설이 활황세라서인지 여러 출판사에서 미스터리 소설들을 시리즈로 묶어 내고 있는데 특히 일본 쪽에서는 그동안 나온 책이나 앞으로 나올 책의 목록을 보면 'J미스터리 걸작선'이 가장 양질의 작품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다. 다카무라 가오루의 <황금을 안고 튀어라>는 그야말로 명불허전, <가위남>도 재기발랄했고, <섀도우>도 준수한 편이다. 앞으로 나올 <리비에라를 쏴라> <제3의 시효> <탈취> 같은 작품들에 일본 미스터리 마니아들은 그저 황홀해질 뿐이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들을 두루 소개해 많은 사랑을 받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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