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온다 리쿠의 2006년작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의 내용을 쉽고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실제 있었던 일과 거기서 힌트를 얻어 만드는 연극, 그 연극 안에 또 다른 극중극이 포함되어 있는 등 난해하고 복잡하기 짝이 없어 어느 것이 진짜이고 무엇이 허구인지를 책장을 덮고 나서도 모호하게 만든다. 기존의 온다 리쿠 작품과는 느낌이 많이 달라 그녀의 고정팬들조차도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 본다. 다만 대화나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보통 사람들의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하거나 섬세한 정경 묘사, 자주 묘사하곤 하는 연극 장면의 삽입 같은 익숙한 특징들은 여전해 지나친 낯설음은 피하고 있다.

 

호텔 안마당에 꾸며진 정원에서 두 여자가 대면한다. 얼마 전 같은 장소에서 있었던 파티에 참여했던 그녀들은 당시 벌어졌던 희곡작가의 독살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마주앉은 것이다. 그 중 한 여자는 다른 여자의 행동에서 어딘지 수상한 점을 발견하고 그 점을 토대로 상대방이 어떤 트릭으로 각본가를 죽였는지 폭로한다. 그 장은 그렇게 끝나지만 곧 똑같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 동일한 이야기를 문체만 달리 해서 다시 한 번 펼쳐낸다. 여기서 이미 허를 찔리고 말았다. 이거 녹록찮은 이야기로구나, 하고. 

 

다음 장은 지방의 연극 공연장을 향해 하염없이 걷는 두 나그네가 등장하는데, 둘 중 한 명이 빌딩 한복판의 분수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젊은 여자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녀가 발작을 일으키기 전 여러 명이 지켜보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목격자들의 증언이 모두 다르다. 누구는 여자가 웃었다고 하고, 다른 이는 울었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화냈다고 한다. 어쩌면 이 장면은 보는 이에 따라 하나의 사실도 여러 입장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그래서 누구도 무엇이 확실한 진실인가를 말할 수 없다는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는 복선일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호텔 정원에서 살해된 각본가가 남긴 '고백'이라는 희곡이 공연되는데, 어쩐지 이 연극은 각본가에게 벌어졌던 독살사건을 토대로 씌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연극 속에서도 각본가는 살해된 상태고, 용의자로 '고백'의 주연배우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였던 세 여배우가 지목되었다. 형사는 각각 그녀들을 취조하는데, 역시나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이야기를 쏟아내는 세 여배우. 여기서부터 처음에 제시됐던 각본가 독살사건이 과연 진짜로 일어났던 일인지, 도대체 이 연극은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머리를 쥐어뜯게 된다.

 

어떻게든 줄거리를 묘사해보려 애썼지만 괜한 짓을 하고 말았다는 후회가 든다. 다채로운 화자들과 끊임없이 변주되는 이야기들이 향연을 펼치는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은 도무지 설명할 방법을 찾을 길이 없다. 이런 작품은 그저 직접 읽어보고 느끼는 수밖에. 취향에 따라 누군가는 신선하고 감각적인 재미를 발견하거나, 누군가는 끝까지 읽어내지 못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모든 혼란스런 개개의 사건들이 결국에는 미스터리적인 장치를 이용해 풀려나가는 점이 만족스러웠고, 끝까지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 않는 몇몇 부분들이 주는 모호함도 인상적이었다. 안개 속을 한참 헤맨 것 같은, 그렇게 고생하다 결국 안개 속을 빠져나왔지만 이번에는 미궁에 갇혀버린 듯한 신비한 느낌에 근사한 당혹감을 느꼈다. 어쩌면 작가가 주문하는 건 이 복잡하고 난해한 이야기를 너무 해석하려 들지 말고 그냥 그 낯설음과 기이함을 즐겨라, 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작품 속에서 피살된 각본가 가미야는 절정의 인기 작가지만 이거다 하고 후세에 남길 만한 작품이 없다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래서 영원히 남을 만한 대표작 '고백'에 몰두하는 거고. 사실은 이 작가가 온다 리쿠 본인은 아닐까. 인기는 실컷 누렸지만 아직까지 비평가들을 쓰러뜨릴 궁극의 작품을 쓴 적은 없었다고 생각하여 환상과 현실, 실제와 허구, 소설과 연극이 혼합되고 나눠지는 변화무쌍한 실험작을 써보기로 마음먹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녀의 실험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걸지도. 2007년에 이 작품이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받았으므로. 나 자신, 힘들게 읽어내긴 했지만 꽤 만족스러운 독서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함부로 다른 이들에게 추천하지는 못하겠는데, 역시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눠질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A지점에서 B지점을 거쳐 C지점에서 끝나는 뻔한 스토리텔링에 지쳐 있는 독자라면 한번 잡아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말은 꼭 남기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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