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수집가 1
자비네 티슬러 지음, 권혁준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앞부분에서 암시되고 짐작 가능한 소설이지만, 완벽하게 아무 정보없는 상태로 보시고 싶은 분들은 주의하시길. 
 

현대 영화계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은 한창 활동할 때 애거서 크리스티나 앨러리 퀸 등의 미스터리 대가들의 작품들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음에도 미스터리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다. 누군가(아마도 프랑소와 트뤼포일 듯) 그 이유를 물어보자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렇게 답했다. "예전에 어느 라디오 방송국에서 시골을 무대로 벌어지는 미스터리극을 시리즈로 만들어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 그걸 시기한 다른 방송국에서 범인이 밝혀지는 최종회 몇 시간 전에 범인은 집사다, 라고 미리 발표해버렸습니다. 그토록 높은 청취율을 보인 프로그램이었지만 최종회는 거의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미스터리는 역시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는 데만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막상 범인이 중간에 드러나면 힘이 떨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는 다릅니다. 누가 누구를 죽였나에 몰두한다기보다는 극중에서의 긴장감을 강조하는 서스펜스는 초반에 범인이 등장해도 끝까지 관객을 몰입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거지요."

독일의 신인 스릴러 작가가 쓴 <아동수집가>의 전략도 여기에 있다. 아주 간단히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탈리아로 휴가여행을 떠났다가 열 살 남짓한 아들을 유괴당하고 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채 10년 동안 애태우며 사는 독일인 엄마가 있다. 남편 역시 절망적인 현실에 몹시 힘들어하지만 그는 서서히 비극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아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쨌든 살 사람은 살아가야 하지 않나, 는 게 남편의 생각이다. 아내는 남편의 말에 승복할 수 없다. 잊는다는 건 곧 포기하는 게 되니까. 아내는 남편의 곁을 떠나 10년만에 끔찍한 범죄의 현장으로 되돌아온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이탈리아 토스카나 마을로. 그곳에서 머물며 아들을 다시 찾아보려는 일념으로 여자는 살 집을 구하는데, 마음에 꼭 드는 집이 곧 나타난다.

그 집을 내놓은 주인 남자는 어딘지 속세를 벗어난 듯한 신비스러운 매력이 있다. 익숙치 않은 여자의 시골 생활을 도와주며 친절을 베풀어 친구가 되어준 그 남자.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그 남자가 아들을 유괴하고 살해한 범인이다. 하늘의 그물은 성기지만 광대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는 말처럼 천만분의 일의 우연으로 그토록 찾아 헤맨 범인과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다(그만큼 플롯이 우연에 의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여자는 남자의 정체를 모르지만 독자는 모든 걸 알고 있다. 우리는 점점 가까워지는 두 사람을 보고 이렇게 외치게 될 것이다. "안 돼, 그 남자가 범인이란 말야. 가까이 하면 안 된다고!"

2권으로 나눠서 출간된 <아동수집가>의 1권은 어린 시절의 학대와 무관심으로 정신에 이상을 일으켜 아동들을 납치하고 성폭행한 후 살해하는 남자의 범행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사실감있게 보여주는데 치중하고, 2권은 전술한 대로 살해당한 한 아이의 엄마가 범인의 정체도 모르면서 서로 가까워지게 되는 서스펜스에 몰두한다. 처음부터 모든 내용이 확 까발겨지기 때문에 그다지 머리쓸 구석은 없지만, 긴장감으로 손톱은 제법 물어뜯게 된다. 연쇄적으로 아동을 살해하는 남자의 심리나 그의 성장배경을 통해 범죄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질문에도 답하고, 아이를 잃고 세상이 끝난 듯 절망속으로 침잠하는 부모들의 이야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눈시울이 붉어진다. 속도감이나 진행은 느릿느릿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적과의 동침'을 경험하는 여주인공의 이야기 자체가 주는 서스펜스도 그럴싸한 편이고. 

이렇게 보면 유괴를 소재로 한 꽤 훌륭한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이다, 하고 부족한 이 독후감을 끝마쳐야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엄지손가락을 주저없이 치켜들 순 없을 것 같다. 안타깝지만 그러기에는 부족한 구석이 제법 커 보인다. 무엇보다 커다란 문제는 주인공의 행동에 개연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아동연쇄 유괴살해사건의 범인인 알프레드 피셔(그의 정체는 첫 장부터 나오기 때문에 스포일러라고 할 수 없다)의 행동은 도무지 설명하기에 요령부득인데 자신을 파멸시킬 가장 강력한 증거가 있는 장소를 아무 이유없이 팔아치워 위기를 자초하는가 하면, 특별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아동 외에는 성욕을 느끼지도 않으면서 성인 여자를 유혹해 동거하기도 한다. 여러 명의 아이를 유괴하면서도 나름 치밀하게 범행을 저질러 발각되지 않았던 알프레드는, 결말에선 부모가 자기에게 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한 아동에게 예의 그 끔찍한 짓을 저질러 결국 체포되고 만다. 제일 먼저 의심받을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보인 걸 그냥 이 남자의 광기가 도저히 통제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독자들이 알아서 이해해야 하나?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이런 몇 가지 개연성없는 부분들은 내 생각에 신인 작가가 처음에 구상했던 플롯에만 너무 매몰되어 그것들이 얼마나 어색한가를 파악할 수 있는 눈을 잃었기 때문인 것 같다. 몇몇 어색한 부분들을 수정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질 수 있는 작품이라 아쉬움이 더 크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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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시 2007-07-22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 감사합니다^^ 고민이 해결됐어요.

jedai2000 2007-07-22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살지 말지 고민을 하셨나보네요 ^^ 아이 유괴 같은 건 정말 최악의 범죄니까 그런 점에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면은 있지만 구조적으로 아주 훌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