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가들 모중석 스릴러 클럽 8
데이비드 모렐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폐허가 되어버린 황량한 건물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대부분 이제는 다시 올 수 없을 지난 날의 화려한 시절을 떠올리며 쓸쓸한 감회에 젖거나 낡고 퇴락한 것에 대한 본능적인 혐오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건물이 과거의 풍경, 기억, 생활상 등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는 일종의 보물창고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은 수십수백 년의 세월 속에서 버려진 빈 건물들-호텔, 공장, 지하터널, 창고 같은-에 몰래 잠입해 그곳에 놓인 부서진 가구나 신문쪼가리 등을 발견하고 예전에 여기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며 재미있어 하는데, 이런 사람들을 '도시 탐험가The Creepers'라고 부른단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금시초문이었지만 야후나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17만 개 이상의 도시 탐험가 관련 웹사이트가 뜬다고 한다.

 

먼지투성이 버려진 건물에는 도처에 위험이 넘쳐난다. 튀어나온 못, 부서진 계단, 쥐들이 옮기는 전염병 같은 치명적인 위험들이. 어쩌면 일부러 위험한 것을 추구하며 자신이 가진 힘과 지혜를 극한까지 발휘해야 하는 모험 정신이 익스트림 스포츠와 닮아서 그렇게 도시 탐험가들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험이 부족한 시대를 살고 있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항상 모험에 굶주려 있으니까. 이 책은 매우 독특한 소재인 도시 탐험가의 세계를 그리며 쉴새없이 페이지가 넘어가는 만점 스릴러이자, 악몽과도 같은 호러 소설이다. 주인공은 도시 탐험가들을 밀착취재해 기사를 작성하려는 프랭크 발렌저. 그는 역사학 교수 로버트 콩클린과 그의 제자들인 릭, 코라, 비니의 도시 탐험가 팀과 함께 직접 탐험에 참가하기로 약속이 된 상태다. 목적지는 1900년대 초반에 지어졌지만 1960년대에 폐쇄됐고, 곧 철거될 예정인 패러곤 호텔.

 

패러곤 호텔의 창립자는 일종의 광장공포증을 갖고 있어, 호텔 전체를 마야의 피라미드 모양을 본떠 지어 자신만의 성을 쌓은 다음 그곳에서 평생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단 한 번의 외출이 있긴 했지만 그것도 호텔 앞 해변가까지 걸어 나가 자살을 하기 위해서였다. 창립자 모건 칼라일이 사망한 후 쇠퇴일로를 걷다 몰락한 패러곤 호텔의 모든 문에는 강철 덧문이 잠겨 있다. 콩클린 교수가 조직한 도시 탐험가들은 배수로 터널을 이용해 호텔에 잠입하는데 성공하는데, 수십 년간 폐쇄된 장소에서 근친교배를 거듭해 돌연변이를 일으킨 쥐떼와 고양이가 그들을 반겨준다. 그 녀석들은 보통 다리가 다섯 개거나, 눈이 하나인 혐오스런 족속들이다. 한편 발렌저는 유일한 여성 탐험가 코라의 존재가 대원들에게 묘한 질투와 균열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감지한다.

 

여기까지가 아주 초반부의 내용이다. 발렌저를 비롯한 탐험대원들은 곧 8시간의 끔찍한 호러와 테러에 시달리게 될 예정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유령이나 흡혈귀 등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행스럽게도 그런 초자연적인 것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무서운 것이 그들을 찾아오니 그건 바로 사람이다. 육체적인 강인함과 교활한 머리, 각종 특수장비까지 겸비한 사이코가 어둠 속에서 한 명 한 명씩 그들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누가 살아나고 누가 희생될지 추측해보라. 그날 밤의 악몽은 날이 새도록 계속된다.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공포가 찾아올 것이다.

 

작가는 영화 <람보>의 원작자로 유명한 데이비드 모렐. 한국에서 '람보'하면 무뇌아 액션 기계의 대표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영화 <람보>도, 원작 <퍼스트 블러드>도 그다지 녹록한 작품은 아니다. 베트남 전쟁의 상흔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가지고 있는 존 람보가 미국의 광산 도시에서 지난 날의 악몽이 되살아나 폭주한다는 이 내용의 어디가 유치한가? 물론 2편부터는 정말 무뇌아 액션 기계가 되어버렸지만 데이비드 모렐이 원작을 쓴 1편은 폄하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아무튼 액션 스릴러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모렐답게 시종일관 긴박감 넘치고 영화 <다이하드>를 연상시키는 주인공 발렌저의 액션이 독자를 흥분시킨다. 사실 후반부는 거의 잘 만든 헐리우드 액션 영화를 씬 별로 감상하는 느낌까지 들 정도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처음부터 독자들에게 단서를 주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진행되면서 점차 사실들이 밝혀진다는 거다. 알고 보니 주인공의 정체가 뭐더라, 알고 보니 주인공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더라 하는 식인데 어차피 치밀한 반전이나 트릭보다는 손에 땀을 쥐는 스릴과 인상적인 공포의 한 순간에 무게중심을 두고 성큼성큼 건너뛰는 작품이니 큰 문제는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치밀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클라이막스에서 결정적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어떤 물건을 주인공 발렌저가 아무 이유없이 챙긴 다음 위기의 순간에 근사하게 써먹는데, 이 물건을 발렌저가 왜 챙겼는지 개연성 있게 설명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위에도 말했듯이 세부적인 것들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작품은 아니다. 발렌저와 도시 탐험가들이 걷는 길을 조용히 뒤따르는 것만으로도 오싹 소름이 돋고 온통 흥분으로 벌개진 채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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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gbong 2007-08-10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즈를 기대하게 만드는 '프랭크 발랜저'이름이 맞던가^^; 다음엔 더 흥미진진하고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 기대해 봅니다.

jedai2000 2007-08-10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편이 나온다고 하네요. <스캐빈저>라는 이름으로 나온답니다. 올 여름에 참 재미있게 봤던 작품인데, 내년 여름에도 속편이 나와 시원한 여름밤을 선물해주면 고맙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