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수법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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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접어든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원래 집에서 잘 안 나가는 히키코모리 성향이지만 가끔 목적 없이 거리를 거닐며 경치 구경, 사람 구경을 하다가 다리가 아파지면 커피숍에 들어가 망중한을 즐기던 나날이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느껴진다. 집에만 있다 보니 취미가 결국 책 아니면 영화, 영화 아니면 책이 될 수밖에 없는데 세월이 하수상하니 책도 쉬이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 


우울한 시국에서 만나게 된 <이별의 수법>은 어땠을까. 굉장한 몰입감과 더불어 뜻밖의 해방감을 만끽했다. 몰입감이야 잘 쓴 이야기 덕분이지만, 전설적인 여배우의 부탁을 받아 20년 전 실종된 그녀의 딸을 찾으러 줄기차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하무라의 여정에 마치 활보가 자유롭던 코로나 이전 시대의 해방감마저 느껴졌던 것이다. 비록 서울이 아니라 도쿄의 곳곳이지만 원하는 곳을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갈 수 있는 하무라가 부럽기까지 했다. 


미스터리 측면에서도 사립탐정물 혹은 하드보일드의 성취가 상당하다. 어머니와 잘 맞지 않는 딸의 단순 가출로만 여겨졌던 20년 전 사건을 파보면 파볼수록 수많은 실종자가 더해지는데, 각각의 실종자들이 결국 어떤 그림을 완성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는 재미에 한 번 탄력이 붙으면 단번에 독파할 수밖에 없다. 최종적인 그림은 애잔하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한데 여러 단서나 복선이 잘 배치되어 하무라의 단숨에 핵심으로 점프하는 추리를 수긍할 수밖에 없다. 유일한 약점은 사건의 진상이 비교적 중후반부에 배치되어 최후반부의 집중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지만 두어 가지 곁가지 사건들이 나머지 분량에 풀리면서 그런 약점을 상당 부분 상쇄하고 있다. 


무엇보다 하무라 아키라라는 탐정의 개인적인 매력이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국내에 출간된 시리즈 초반작들이 그저 터프하게만 보이려던 여탐정 느낌이었다면, <이별의 수법>부터 시작되는 2기 하무라 시리즈는 중년에 접어든 하무라가 느끼는 여러 감정이 훨씬 인간적이고 공감가게 다가온다. 냉소적인 말투와 생각과 달리 부탁을 잘 거절 못하고 상처도 잘 받는 하드보일드 사립탐정이라니. 나는 누군가의 거짓말로 인해 오랜 인연을 맺었던 셰어하우스에서 쫓겨나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홀로 베개에 눈물을 흩뿌리는 탐정을 본 기억이 없다. 냉철하고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추리기계 같은 탐정들 속에서 하무라의 인간미는 단연 독보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이 된 것도 결국 남의 부탁을 잘 거절 못하고, 불의를 보면 가만 있지 못하고, 불행한 처지에 빠진 사람을 보면 반드시 도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이 아닐까? 세상 어딘가에는 이런 불행한 탐정이 있기에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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