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처럼 기발하고 새로운 기법으로 고갈 위기에 놓인 일본 본격 추리소설의 돌파구를 열어가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한마디로 아이디어로 반은 먹고 들어가는 추리소설이라 그 아이디어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성향에 따라 반응이 극심하게 나뉠 듯. 도입부는 평범하게(?) 친구들 10여 명이 모인 산 속 콘도에서의 살인사건으로 시작한다. 그 순간, 갑자기 챕터가 바뀌며 또 다른 화자가 끼어든다. 그는 바로 <미스터리 아레나>라는 추리 프로그램의 진행자. <홍백가합전>이 이미 역사 속에 사라진 근미래의 일본에서는 1년의 마지막 날을 온 가족이 이 프로그램과 함께 보낸다는데, 도입부의 살인사건은 실제가 아니라 이 프로그램의 문제에 불과했다. 이 문제를 풀러 나온 참가자들 중 가장 빨리 맞춘 1인만 거액을 받기에 확신이 서면 중간에라도 바로 버저를 누르고 답을 말해야 한다. '내 생각에 범인은 누구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다고.' 그런데 참가자들이 전부 추리소설에 쩛어 있는 것들이라 기상천외한 답을 쏟아낸다. 서술트릭, 성별오인, 정통 본격파, 다중인격 등 참가자들 수만큼이나 다양한 가설들이 말 그대로 쏟아진다. 독자를 속이는 추리소설의 고전적인 수법들이 총망라되고 있어 추리소설(특히 본격) 마니아들은 더욱 흐뭇하게 볼 수 있다. 더불어 작중의 문제가 추리소설의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추리소설에 대한 소설, 즉 메타 추리소설이기도 해서 추리소설의 각종 법칙이나 클리쉐를 토대로 가설을 제시하는 참가자들은 영락없이 우리 추리소설 마니아들을 떠올리게 한다. 평범하게 하나의 사건에 하나의 해답이라는 추리소설은 더 이상 자극을 못 주는 걸까? <마루타마치 르부아>,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 이 작품처럼 마치 백화점식으로 여러 개의 가설이 폭죽처럼 터지는 추리소설로 한계를 돌파하려는 노력이 갸륵하기도 하고, 좀 애처롭게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작가의 아이디어에 감탄했고 매우 흥미로웠지만 결말이 좀 와장창 느낌인 건 아쉬웠다. 기왕에 여러 가설이 나온 김에 정말 끝판왕 격의 강력한 정답이 제시되길 바랐는데 그런 스타일의 결말은 아니었다.
2위 <사일런트 페이션트> - 알렉스 마이클리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