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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 빈스 ㅣ 블랙 캣(Black Cat) 12
제스 월터 지음, 이선혜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빈스 캠든에 대해 알아보자. 시민 빈스는 워싱턴 주 스포캔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당신을 허기지게 만드는 도넛' 가게에서 지배인 겸 수석 제빵사로 일한다.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4시 30분에 출근을 하고 점심 시간까지 근무하는 그는 출근하기 전에 온갖 인간 쓰레기, 낙오자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포커를 하는 '샘스 피트'라는 술집에 들른다. 샘스 피트의 전 주인이 샘이라 샘스 피트지만, 현재 주인은 에디다. 하지만 다들 그를 샘이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부르기가 더 편하기 때문이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빈스지만 사실 어두운 과거가 있었으니, 알고 보면 그는 뉴욕에서 마피아와 손을 잡고 일하던 카드 사기 전문가였다. 사정상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죽이려는 마피아에 대한 폭로 증언을 하고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따라 마티 하겐이라는 본명을 버리고 스포캔에 숨어 빈스 캠든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나 빈스는 스포캔에서도 제 버릇을 못 버리고 여전히 카드 사기와 마리화나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어느 날 자신의 동업자가 얼핏 봐도 무시무시한 인상의 한 사내를 데리고 나타난다. 음험한 분위기의 이 남자, 레이는 수 틀리면 다짜고짜 사람을 쏴 죽이는 흉악한 범죄자인데 빈스를 노리고 있다. 빈스는 생각한다. 마피아가 내가 사는 위치를 알아냈구나, 레이는 나를 죽이려는 킬러고. 사기꾼 잡범에 불과한 빈스에겐 마피아의 해결사와 맞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빈스에게 의혹의 눈을 거두지 못하는 듀프리 형사와 킬러 레이의 총 앞에서 간신히 몸을 빼고 결자해지하러 뉴욕으로 떠나는 빈스의 운명이 어떻게 풀릴지 관심이 가지 않는가?
전반적으로 풍부한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빈스의 심리 상태를 기술할 때도 자잘한 유머가 많고, 가끔 한 번씩 기가 막히게 웃겨주는 부분들이 있다. 이렇게 설명하면 믿지 못할 테니 예를 들어볼까. 레이에게서 도망가려는 빈스가 짐을 싸고 있는데, 레이의 차가 모퉁이를 돌아 나타난다. 무기가 될 거라곤 납 파이프 하나뿐. 그 순간 초인종이 울리고 대통령 후보(그러나 레이건과 카터에 비하면 지지율이 형편없는) 존 앤더슨의 홍보원 셜리가 들어온다.
셜리는 무척 불안해 보였다. "그만 가봐야겠어요."
이건 터무니없는 계획이었다. 빈스는 어리석은 짓임을 잘 알았지만, 이미 머릿속에 다른 방법이 떠오를 수 없을 만큼 이 생각 하나로 꽉 차 있었다. 그는 셜리에게 파이프를 건넨 뒤 현관문에서 무릎 높이쯤에 나 있는 우편물 수신용 함을 가리켰다. (...)
레이와 레니는 빈스의 시선을 따라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총신으로 보이는 물건이 우편물 홈 밖으로 나와 레이의 가슴을 겨누고 있었다. 레이는 총이 맞는지 확인을 하려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총신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
"파이프 아냐?" 레이는 실눈으로 현관 쪽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레니 역시 실눈을 뜨고 있었다. "저걸 총이라고 믿으란 말야. 빈스?"
레이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우릴 포위하려고 배관공을 불러모았군, 형씨?"
바로 그 순간 총신은 큐 사인을 받기라도 한 듯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문이 열리더니 셜리 스태퍼드가 활짝 웃는 얼굴로 걸어나왔다. 그녀는 손에 든 파이프를 흔들고 있었다.
"친구 분이 속아 넘어갔나요, 캠든 씨?"
위에서 얼핏 레이건과 카터의 이름이 등장했는데, 이 작품의 배경은 두 사람이 격돌했던 1980년 대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티 하겐이라는 이름으로 살 때는 쉴새없이 감옥을 들락거리느라 선거권이 박탈되었지만, 빈스 캠든은 새로 태어난 사람이나 다름없으므로 물론 선거권이 있고 선거용지도 배달되어 온다. 이 작품의 진정한 재미와 감동은 여기에 있다. 마티로는 밑바닥 삶을 살았지만 빈스로는 다시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깨달음. 빈스는 한 사람의 훌륭한 시민으로서,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다시 없을 인생의 기회가 이번 선거에 걸려 있음을 직감한다. 생명의 위기 앞에서도 선거에 광적으로 몰두하다시피 하는 빈스의 집착은 물론 우습지만 어느 순간 그 진심에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여기서 한 인간의 반성과 회오, 다시 시작하기 위한 굳은 의지와 열망이 한 순간에 교차하고 독자들은 진한 감동의 소용돌이에 빠져게 되는 것이다.
작가 제스 월터가 비교적 경험이 일천한데도 작년 미국추리작가협회 최우수상 수상작을 받은 작품으로 당시 경쟁자가 미국추리작가협회 회장 마이클 코넬리, 미지의 거장 토마스 쿡, 최근 국내에 두 작품이 소개된 조지 펠레카노스, 메디컬 스릴러의 신성 테스 게리첸으로 쟁쟁했음에도 수상의 영광을 이뤄 많은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막상 읽어보니 탈 만한 작품이 탔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내 유쾌하며 책장을 다 덮고 나면 커다란 감동까지 아울러 느낄 수 있었기에. 미스터리 장르라는 기준으로 보면 사실 근사한 트릭이나 반전 등이 없고 어떻게 보면 일반 소설에 더 가깝다. 빈스가 레이의 위협에 맞서 좀더 머리를 굴려 기발하게 끝냈으면 좋았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책 자체가 워낙 좋아 지금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개인적으로는 한 동안 여기저기 추천하고 입소문을 낼 작품으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나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부동산 중개인이 되려고 공부하는 중이예요.'하고 말하는 게 좋았고요."
베스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빈스..., 칫! 정말 기회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내가 그걸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어쩌죠? 그럴 만한 머리가 안 되면 어떻게 해요?"
"베스..."
"그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파요. 그런 것에 이렇게 목매달다니 정말 바보 같죠?"
빈스는 마침내 팔을 내밀어 베스의 부러진 팔을 잡았다.
"베스, 지금보다 나은 걸 원하는 건 바보 같은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