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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후를 기다리며
하라다 마하 지음, 오근영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7년 3월
평점 :
에메랄드 빛 파도가 넘실대는 남국의 섬,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한 러브 스토리. 제목 <카후를 기다리며>의 '카후'는 오키나와 사투리로 좋은 소식, 행복 등을 뜻한단다. 좋은 어감 만큼이나 좋은 뜻이다. 오키나와의 작은 섬에 사는 아키오는 28살이 되도록 변변한 연애 한 번 못해본 채, 자그만 잡화상을 운영하면서 애견 카후와 함께 하루하루를 재미없게 보내고 있다(애견만 없다 뿐이지 다른 신세는 필자와 비슷하다, 흑). 책 첫 머리에 아키오의 외로움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구절이 있었는데, 어쩐지 심금을 울리는 바가 있어 소개한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준다는 것. 그런 일과는 인연이 멀었던 인생이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준다는 것. 그런 일과는 인연이 멀었던 인생이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준다는 것. 그런 일과는 인연이 멀었던 인생이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준다는 것. 그런 일과는 인연이 멀었던 인생이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준다는 것. 그런 일과는 인연이 멀었던 인생이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준다는 것. 그런 일과는 인연이 멀었던 인생이다.
고백하자면 여기서부터 역시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준다는 것과는 인연이 먼 인생을 살고 있는 필자가 급격히 몰입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아키오는 섬 밖으로 관광을 나갔다가 한 신사에 들러 기원문을 매달아둔다. 신에게 던지는 한 마디가 아니라 소박하면서도 진지하게 미지의 여성에게 구애를 한 것이다.
"나한테 시집오지 않을래요? 행복하게 해줄게요 - 아키오."
개인적으로도 특정한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친구들이랑 어디 놀러 가서 절이나 사당 같은 곳이 나오면 꼭 헌금을 하며 소원을 비는데, 친구들이 돈 낭비라고 다 비웃어도 나는 진지하다. 짝사랑하는 사람이랑 잘 되기를 빌기도 하고, 지금처럼 항상 맑고 곱기를 기원하기도 하며 뭐 그런데, 인연이란 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도 때로 어긋날 수도 있는 모양이니 뜻대로 되지 않는 애정이 벽에 부딪쳤을 때 신을 찾게 되는 것도 인지상정이리라.
결국 그렇게 많이 빌었음에도 본인은 신으로부터 어떤 기별이나 연락을 받지는 못했지만, 질투나게도 이 작품의 주인공 아키오는 대뜸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니, 사치라는 이름의 낯선 여자에게서 온 것이다.
"기원문이 진심이라면 저를 당신의 아내로 받아주시겠어요? - 사치"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사치를 몹시 기다린다. 하루하루 기대감이 실망으로 변해가지만 사치는 오지 않는다. 그럼 그렇지, 아키오는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은 지금껏 전부 나를 떠나갔다. 어렸을 때 사망한 아버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떠난 어머니, 나보다 단짝 친구를 더 좋아했던 짝사랑하는 여자애...평생 이렇게 외로울 팔자인가 보다, 하며 포기한 순간에 사치가 찾아온다. 눈부신 미소에 단아한 아름다움, 활달한 성격에 싱그러운 젊음을 소유한 사치가...
"오늘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 사치"
아름다운 오키나와의 자연을 배경으로,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속으로는 외로움을 간직한 아키오와 사치가 점점 가까워지고,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과정이 흥미를 돋운다. 왜 이쁘게 사랑하는 커플을 보면 괜시리 훔쳐보고 싶고, 그저 예뻐 보이고, 잘 됐으면 하고 응원하는 게 더하고 뺄 것 하나 없는 우리네 마음 아닌가. 비록 소설 속의 인물이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 튼튼한 결실을 맺기를 열심히 바라며 읽었다. 제1회 '일본 러브스터리 대상'을 수상했다는데, 분명히 매력있는 소설이다. 만나고 가꿔워지다, 오해를 겪고 이별하지만, 헤어지고 나서야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는 대강의 설정은 통속적이고 대부분 짐작 가능하지만 솜씨 좋게 빚어져 있어 결점을 찾기 어렵다. 이 작품에서의 오해는 대부분 아키오의 우물쭈물함, 용기없음, 지레짐작에서 비롯되고 있어 '이런 바보'하면서 내내 욕을 하면서 보았다. 마지막 100여쪽을 볼 때는, '빨리 사치의 마음을 알아채란 말야', 하면서 하도 몰입하면서 봤더니 30분도 채 걸리지 않을 정도였다.
순진한 아키오의 성격에서 비롯되는 풋풋한 연애담, 꼭 한 번쯤 만나고 싶은 사치라는 여인의 매력,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남국의 싱그러운 바람, 전쟁 같은 도시가 아닌 한 박자 쉬어갈 수 있는 시골의 여유를 안겨줘 한참을 잊지 못할 독서가 될 듯하다. 좋은 연애소설은 아마도 책장을 모두 덮고 나면 나도 지금 당장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들게끔 만들어줘야 할 것이다. <카후를 기다리며>를 읽고 나는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닷가 모래밭을 단둘이 다정하게 걷고 싶어서, 철 지난 사랑 노래를 찾아 듣고 싶어서, 카메라처럼 내 눈에 나만을 보고 웃어주는 한 여인을 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