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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조르는 로맨티스트 - 인간실격.제로자키 히토시키, Faust Novel ㅣ 헛소리꾼 시리즈 2
니시오 이신 지음, 현정수 옮김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목 조르는 로맨티스트>는 미스터리 요소를 가미한 라이트노벨 '헛소리 시리즈'로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니시오 이신의 소설로 헛소리 시리즈 제1작 <잘린머리 사이클>에 이은 두번째 작품이다. 헛소리 시리즈가 뭔가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 텐데, 주인공 이짱(헛소리꾼)이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떠올리는 온갖 현학(적으로 보이려 애쓰는)과 철학, 상념, 망상, 요설 등 한 마디로 헛소리를 1인칭으로 담아내고 있기에 헛소리 시리즈다.
이 작품은 전작 <잘린머리 사이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데, 전작에서 '젖은 까마귀 섬'에 초청된 이짱과 친구이자 세계 최고의 해커인 쿠나기사 토모가 섬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을 해결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된다(앞으로의 시리즈에서도 매번 한 달 간격으로 사건이 일어난다고 한다. 주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수 명의 사람이 죽어 나간다니 김전일도 울고 가겠다). 알고 보니 이짱은 로쿠메이칸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이란다. 대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헛소리만 하다니 혼 좀 나야할 듯.
아무튼 평소 쿠나기사 말고는 변변한 친구도 없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이짱에게 귀여운 동기 여대생 아오이이 미코코가 찾아온다. 자신의 친구인 에모토 토모에의 생일 파티에 같이 가자고. 미코코는 웬지 이짱을 좋아하는 눈치인데, 그래 뵈도 거절은 잘 못하는 이짱은 못 이기는 척 생일 파티에 따라간다. 두 사람 말고도 몇 명의 친구가 더 와서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이짱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토모에의 전화를 받는다. 토모에와 이짱은 묘한 정신세계가 은근히 통했던 것이다. 그러곤 한 잠 푹 자고 깨보니 토모에가 그녀 집에서 목이 졸려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자신(이짱)을 포함해 그날 같이 있었던 친구들은 모두 알리바이가 있는 상황에 현장에는 기묘한 다잉메시지가. 과연 사건의 진상은 무엇일까?
요즘이야 세일즈 시대라 자신의 장점이든 단점이든 뭐든지 팔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하필 책 콘셉트를 다소 부정적인 느낌도 주는 헛소리 시리즈로 정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제일 간단하고 절박한 이유는 말꼬리 잡고 끝없이 반복되는 헛소리를 늘어놓다 보면 어느새 책 분량이 늘어나 원고료 상승이라는 흐뭇한 결과가 도출되기 때문이리라. 그 다음은 위에 언급한 대로 그럴싸한 현학(으로 보이려 애쓰는)의 느낌을 주는 헛소리들을 보고 주독자층인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니시오 이신 오빠, 형아는 정말 아는 것도 많구나'하며 감탄할 수 있기 때문이니 작가의 허영심마저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니시오 이신 특유의 헛소리가 작품의 트릭을 완성하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인류 최강의 청부업자'니 '살인귀 제로자키'니 하는 만화 같은 인물들이 연이어 튀어 나오고, 헛소리가 쉬지 않고 반복되기에 나중에는 어느 정도 몽환적인 느낌까지 받게 된다. 그러나 니시오 이신 미스터리의 특징은 등장인물의 특징과 심리, 헛소리는 비현실적이라도 사용된 트릭은 비교적 현실적이라는데 있다. 주지한 대로 작품이 주는 몽환적인 느낌 때문에 논리적인 해결을 포기하고 읽게 되는데, 사실은 단서도 공정하게 주어지는 편이며, 이번 작품에서는 트릭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면서 기발해 결말을 보고 나면 제대로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 든다(개인적으로는 <잘린머리 사이클>에 사용된 트릭보다 한층 간단하면서도 의표를 찌르는 이번 작품의 트릭이 훨씬 좋았다). 게다가 중요한 단서가 제시되는 순간도 헛소리로 눙치고 넘어갈 수 있으니 '헛소리'는 니시오 이신의 비장의 무기인 셈이다.
세상 천지의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어 고독하기만 한 이짱의 심리와 헛소리는 비슷한 생각을 품고 사는 십대에겐 공감가는 부분이 많을 거다. 그러나 이미 질풍노도의 시기는 지난 본인 같은 독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나는 철저하게 미스터리의 관점에서만 이 작품을 보았고, 사용된 트릭에 충분히 만족했다. 사실은 만화 같은 인물들이나 헛소리를 아예 빼고, 250페이지 내외의 콤팩트한 추리소설로 만들어졌으면 더욱 열광하겠지만 이 정도도 충분히 즐길 만은 하다. <목 조르는 로맨티스트> 정도의 트릭과 해답이라면 앞으로도 나는 언제든 니시오 이신의 '헛소리 시리즈'를 잡을 것이다.
p.s/ 이 작품에서 사용된 알리바이 제조 트릭은 단순하면서도 아주 신선하고 기발했지만, 다잉메시지는 완전히 독자 우롱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