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범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모방범>은 530 페이지 내외의 두툼한 책 3권으로 이뤄진 분량이 어마어마한 책이다. 실제로 보면 거의 벽돌 같은 두께라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져 사실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1권의 첫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고, 어느새 1권의 마지막에 도달해 있었다. 1권을 덮자마자 2권을 찾기 위해 호들갑을 떨었고...3권까지 완전히 다 읽고 든 생각은 '더 길어도 좋을 뻔했다'는 거였다. 이 놀랍도록 재미있는 책을 여기서 끝내야 한다는 것이 몹시 서글퍼졌으니까. 이 정도의 재미를 주는 책이라면 독자 입장에서 3권이 아니라 30권도 문제 없으렷다.

  

<모방범>의 작가 미야베 미유키는 1960년에 도쿄에서 태어났다. <대답은 필요없어>라는 그녀의 단편집의 해설을 쓴 이에 따르면 지독하게 가난한 집이었다고 한다. 생계 때문인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속기 전문학교에서 속기사 시험을 준비하며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는 등 문필과는 무관한 일을 했다. 그러다 1987년에 <우리들 이웃의 범죄>가 추리소설 신인상을 타면서 등단에 성공했고, 그 뒤로 현재까지는 다들 알고 계시다시피 초인기작가로 군림하고 있다. <화차>로 야마모토 슈고로상, <이유>로 나오키상, 최신작인 <이름없는 독>으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등 일본내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문학상을 휩쓸었으며 독자 인기 투표에서는 언제나 부동의 1위를 달린다. 아마도 특유의 완벽한 스토리텔링과 미스터리, SF, 시대소설 등을 넘나드는 다양한 소재, 세상과 사람을 보는 따뜻한 시선, 여운이 남는 좋은 결말이 그 인기 요인이 아닐까 한다.

  

<모방범>은 그 방대한 양에 걸맞는 완성도의 대작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최고작 중 하나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개인적으로는 <화차>와 <모방범> 사이에서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다). 일본에서 5년간 연재한 원고지 6,000매(일본은 원고지 한 장에 400자가 들어간다)의 작품을 단행본으로는 2권, 문고본으로는 5권으로 묶어서 냈으며 누적 280만부 판매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영화화도 되었다고 하나 2시간 남짓한 상영시간 안에 <모방범>을 전부 담는 건 불가능했는지 평은 그닥 좋지 않다.

 

도쿄 오가와 공원에서 여인의 토막난 팔 하나와 핸드백이 발견되면서 전 일본을 경악시킨 연쇄살인은 스타트를 알린다. 팔의 원래 주인을 둘러싸고 조사가 이뤄지던 중 방송국으로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음성 변조기로 달라진 목소리는 자신이 팔이 잘린 여자를 죽였으며, 핸드백의 주인은 자신의 손에 아직 살아 있다고 밝힌다. 핸드백의 주인은 후루카와 마리코라는 사회 초년생. 범인은 마리코의 외할아버지 아리마 요시오에게 전화를 걸어 손녀를 살리고 싶으면 자신의 명령에 복종할 것을 종용한다. 범인의 명령에 따라 온갖 굴욕을 겪으며 농락당하는 아리마 할아버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리코는 시체로 발견되며 수사본부는 총력을 기울여 수사에 나선다. 그러나 계속해서 젊은 여성들의 시체는 늘어만 가고. 범인은 연이어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일으키는 사건의 반향이 커져가는 것을 즐기는 양상을 보인다. 수사는 여전히 난항이지만, 아리마 할아버지는 범인과의 통화 도중 느꼈던 어떤 직감을 떠올리며 결정적인 추측을 한다. 목소리의 느낌이 달랐던 걸로 봐서 범인은 혹시 두 명이 아닐까 하는...

 

방송을 통한 '극장형 범죄'를 소재로 한 <모방범>은 전체 3부로 이뤄져 있다. 1부는 연쇄살인의 진행과정과 경찰의 수사를  다양한 시선에서 다큐멘터리처럼 그리며, 2부는 범인 혹은 범인들의 시점에서 그들이 왜,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는가를 세밀하게 그린다. 마지막 3부는 절묘한 행운으로 수사망을 벗어난 악의 화신 '피스(범인의 별명이다)'가 마침내 검거되는 장면이 나오고, 평생 슬픔을 않고 살아야 하는 희생자 가족들의 후일담으로 아프게 끝을 맺는다.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여러모로 다종다양해서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각각 다른 느낌을 받곤 한다. 어떤 작품은 만화처럼 유쾌하고, 다른 작품은 쓸쓸한 풍경화같고, 또 다른 건 투명한 수채화같고. 그런 면에서 <모방범>을 보면 이건 정말 완벽한 한 폭의 벽화다. 거대한 도쿄의 한복판에서 인간의 악의가 낳은 범죄에 맞닥뜨린 수많은 사람들의 온갖 사연들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이 작품은 벽화처럼 압도적이고 장중하다. 또한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등장인물이라 할지라도 작가는 세심한 관찰과 묘사로 생생한 현실감을 주고 있으니, 중요한 등장인물들-쓰카다 신이치, 아리마 요시오, 구리하라 히로시, 다카이 가즈아키, 유미코 남매 그리고 '피스!'-은 더 말해 무엇하랴.

 

아무래도 미스터리로서는 과도하게 많은 분량이다 보니 중요한 단서가 우연에 의해 발견되는 등 결말에서 약간 힘이 빠지는 감이 없지는 않지만 방송으로 흥한 피스를 방송에서 무너뜨리는 클라이막스의 긴장감은 정말 대단했다. 진짜 남자가 느껴졌던 72세의 아리마 할아버지 뿐만 아니라 사건 현장의 건축물만 보고 명추리를 전개하는 '건축가(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가 나오면 아주 좋겠다)'까지 매력있는 인물들이 흥미로운 줄거리 안에서 격돌한다. 정말이지 놀라운 작품으로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신공으로 썼구나 하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정도 작품은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작가의 야심과 물오른 필력, 여러 운과 때가 맞아야나오는 법이다. <모방범>을 볼 수 있었던 걸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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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hand 2007-03-08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다이 님 답지 않게 모방범 월드 가입이 늦었습니다. ^^

jedai2000 2007-03-09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분량이 너무 많아 차일피일 미루는 우를 저질렀습니다. 이 작품은 무조건 추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