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은 필요 없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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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약력을 설명하기도 귀찮은 한일 양국의 인기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단편집이다. '미야베 월드'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작품 여러 편을 순차적으로 소개하는 시리즈의 제3작인데, 예쁜 표지와 꼼꼼한 번역, 성실한 편집으로 만족감을 주는, 추천할 만한 시리즈라 생각한다. 일본에서의 전설적인 명성과는 무관하게 한국에서는 <화차> 한 권만을 겨우 만나볼 수 있었던 몇 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로 많은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이 작년에 쏟아져 나왔는데, 다작이지만 뭘 써도 평균 이상은 해내는 작가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그녀의 인기가 국내에서 더 지속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해본다.

 

<대답은 필요없어>는 처음 소개되는 미야베 미유키의 단편집이라 개인적으로는 꽤 궁금했다. 왜 장편 잘 쓰는 작가가 꼭 단편도 잘 쓰리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시기적으로 1992년 발표라는 비교적 초기작에 가까워 어느 정도는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책을 덮으면서 미야베 미유키는 미야베 미유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장편을 쓰는 이도 미야베 미유키, 단편을 쓰는 이도 미야베 미유키인데, 명필이 붓을 가리겠는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잘 읽히는 안정적인 느낌의 단편들이었다.

 

주제로는 주로 화려한 외양으로 번쩍번쩍하지만 내면은 황량하기 그지없는 도시 생활의 고독과, 또 그 차가운 고독을 뛰어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에의 의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 작품집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누군가에게 버림받거나, 마음을 터놓을 이 하나 없이 쓸쓸히 홀로 살아가거나 하는 이들이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 고독한 인간군상들이 소리없이 외치는 절규를 안타깝고 허망하게 그러나 약간의 희망도 섞어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6편의 단편 제목 모두가 구어체 문장이다. 예컨대 '대답은 필요없어' '말없이 있어줘' '배신하지 마' '들리세요' 등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의지가 절절히 느껴지지 않는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보았다.

 

책 말미에는 미스터리 평론가 차키 노리오라는 사람의 아주 쉽게 쓴 해설이 실려 있다(내용도 쉽지만, 참 해설 쉽게 날로 먹는구나 하는 이중적인 의미다). 그의 말에 따르면 92년도에 1월부터 9월까지 본서를 비롯해 국내에도 소개된 <화차> <용은 잠들다> 등의 여섯 작품을 연이어 발표해 일본 열도를 일약 진동시켰다는데,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하다. 엄청난 다작이면서도, 완성도에 전혀 흠잡을 데가 없는, 아니 일본 미스터리 사상 손꼽히는 작품들을 쏟아냈다는 것이 아닌가. 

 

짐작컨대 이 시기 미야베 미유키는 신용카드 빚을 매개로, 경제적 약자를 철저히 짓밟는 현대 자본주의의 폐해를 심도깊게 비판한 대표작 <화차>를 준비하면서 많은 조사를 했던 듯하다. 여기 실린 '배신하지 마'는 특히 <화차>의 원형이라 불릴 정도로 유사한 구석이 많은데 카드 빚더미에 오른 여자가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노형사가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친다. 과연 <화차>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표제작 '대답은 필요없어'는 은행 현금카드의 구조적 문제점을 이용해 은행을 터는 이야기다. 당시 작가가 은행과 신용카드사 등의 금융회사 취재에 집중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대답은 필요없어'는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로 결말을 맺고 있어 쓰는 작품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 그녀의 능력을 증명한다.

 

읽으면서 가장 만족했던 작품은 '들리세요'. 이사간 집에서 밤마다 나타나는 유령에 기겁하는 초등학생 소년이 주인공이다. 코지풍으로 귀엽게 전개되다 뜻밖에 안타까운 사람과 사람 사이(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일지라도)의 소통 부재를 확인하게 되는 결말이 쓸쓸하게 다가온다. 비교적 적은 분량의 단편들이므로 구구절절히 내용을 소개해 독서의 재미를 빼앗는 짓은 할 수 없고, 이 정도로만 소개를 마치겠다. 단편에서도 여전한 미야베 미유키의 따스한 작풍과 이야기 창조력, 결말의 애잔함 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요, 아무래도 장편에 비해 어느 정도는 힘이 떨어진다는 것과 전체적으로 무난하고 깔끔해 이거다 하고 탁 튀는 한 작품이 없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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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gbong 2007-08-10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괜찮은 단편집이죠...아!!!둘시네아로 오세요!!!!!

jedai2000 2007-08-1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기 단편집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높이 평가할 구석이 많은데 의외로 묻혀서 놀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