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타이어는 왜 레스토랑에 별점을 매겼을까? - 세계를 정복한 글로벌 기업의 브랜드 마케팅 스토리
자일스 루리 지음, 윤태경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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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9-024 <미쉐린 타이어는 왜 레스토랑에 별점을 매겼을까?(자일스 루리 지음/중앙books)>

세계를 정복한 글로벌 기업의 브랜드 마케팅 스토리

 

TV나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가장 많이 소개되는 대상이 바로 맛집이다. 검색창에 지명을 치면 바로 연관된 단어가 맛집일 정도다. 맛집 중 최고의 맛집이 바로 미슈렝 가이드에 소개된 맛집이 아닐까? 가본 적은 없지만 이름은 자주 들어본 미슈랭이 바로 이 책의 제목에 소개된 타이어제조회사 미쉐린이다.

참신한 타이어 판촉 방안을 궁리하다가 여행 가이드북이라는 개념에 착안해 만든 것이 바로 미쉐린 가이드다. 그들은 사람들이 더 많이 여행을 떠날수록 자동차 타이어가 마모되어 새 타이어를 사게 되리라 예측했다.

별 하나: 해당 지역을 방문하면 들를 가치가 있는 매우 좋은 식당

별 둘: 요리가 훌륭해 본래 여행지에서 다소 떨어진 곳이라도 들를 가치가 있는 식당

별 셋: 요리가 너무도 훌륭해 맛을 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

여기서 교훈은, 판촉물도 독자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판촉물을 상품화할 수 있는가?

 

저자는 모든 분야의 브랜드에 적용할 수 있는 마케팅에서 활용하는 스토리텔링의 기법 7가지를 알려준다.

1 브랜드 내러티브(서사)

2 브랜드 스토리(실화)

3 영감

4 친밀감

5 은유

6 고객의 입장

7 프레젠테이션의 스토리화

 

101개의 글로벌 브랜트 마케팅의 스토리가 일곱 가지의 주제로 구분되어 소개된다. 소개의 마무리는 항상 여기서 교훈은, ~~’으로 마친다. 우리에게 익숙한 브랜드의 배경과 연원을 알 수 있고, 생소한 브랜드의 경우에도 친절한 안내를 받는 느낌이다. 딱딱한 경영학 교과서가 아니라, 저자가 원했던 재미있는 이야기책으로 훌륭하다.

 

<브랜딩>

브랜드는 기업의 가치 창출 도구이며, 브랜드의 경제적 가치는 기업의 가장 귀중한 자산이다. 2016년 그랜드 컨설팅 업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글로벌 브랜드 평가 1위에 오른 애플 브랜드의 경제적 가치는 무려 1781억 달러에 달한다.

브랜드는 노래, , 영화에서 언급되는 현대 문화의 일부이기도 하다. 강력한 브랜드는 다수의 소비자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사회적 의미’-특정한 가치와 인격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브랜드의 사회적 의미는 사회적 통화의 한 단위가 된다. 설령 각자가 브랜드를 다르게 인식할지라도,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되는 각 브랜드의 특성과 의미가 무엇인지는 우리 모두 안다.

*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하고 귀환하는 우주비행사를 환영하는 코카콜라의 문구, “코카콜라의 고향인 지구에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 폭스바겐은 왜 망가진 도로를 샀을까? 형편없는 도로를 매입하고자 헤링겐 마을 의회와 협상을 해서 매입한 옛 도로를 통째로 에라레시엔으로 옮겨놓았다. 자갈돌 하나까지 모두 옮기고, 바퀴 자국과 웅덩이까지 똑같이 재현했다.

여기서 교훈은, 브랜드의 품질을 극한까지 검증하는 노력이 보상받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당신은 브랜드를 검증하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 노력할 의향이 있는가?

* 갱스터가 반한 차, 포드 V8이나, 마릴린 먼로와 샤넬 넘버5처럼 브랜드 구축에 도움이 되는 유명인사들의 이야기

* 레블론 화장품의 이야기 우리는 공장에서 화장품을 만들지만, 우리가 가게에서 파는 것은 희망이다.” 여기서 교훈은, 제품과 브랜드는 엄연히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정말로 파는 것은 무엇인가?

 

<기원>

브랜드의 유래는 아마도 브랜드 이야기의 가장 풍부한 원천이다. 수많은 브랜드들이 저마다 각양각색의 연유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가 나온 환경 역시 각양각색이다. 그리고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려는 적극적인 노력 끝에 탄생한 브랜드는 전체 브랜드 중 일부일 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 리바이스는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만든 청바지 브랜드이지만 다른 청바지와 구별되는 작은 단추 모양의 구리 리벳과 주황색 실로 만든 이중 박음선은 제이콥 유페스라는 러시아인의 아이디어였다. 텐트, 말 담요, 마차 가림막에 쓰던 무겁고 두껍고 질긴 코튼 덕코튼 데님천을 사용해서 작업용 바지를 만들었다.

여기서 교훈은, 시장에서 일어나는 혁신은 다른 시장에서 빌려온 것일 때가 종종 있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어디서 아이디어를 빌려오겠는가?

* TV 속 연예인이 입은 옷, 아소스‘ASOS’스크린에서 본 것처럼(As Seen On Screen)’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여기서 교훈은,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영감은 언제, 어디서든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신은 그런 영감을 얻고자 24시간 눈과 귀를 열어두고 있는가?

 

<네이밍과 아이덴티티>

아름다움이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는 말이 있지만, 최고의 브랜드 디자인은 브랜드를 알아보게 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브랜드의 의미를 드러낸다. 브랜드 로고부터 브랜드 아이콘까지, 디자이너가 상업적 목표을 위해 어떻게 상상력과 기술을 활용하는지 보여준다.

* 어둠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코카콜라 병. “형태가 너무나 특이해서, 심지어 어둠 속에서 만져도 무슨 병인지 알 수 있고, 부서진 조각만 봐도 무슨 병이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유리병.” 1915년 코카콜라 사가 새로운 병 디자인을 도입하고자 병 공급업체들을 상대로 공모전을 열었을 때 보낸 지침서의 내용이다.

여기서 교훈은, 포장용기는 조용한 세일즈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자사의 포장용기에 충분히 신경을 쓰고 있는가?

* 여자의 심장을 뛰게 하는 티파니 블루. “티파니에는 당신이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살 수 없는, 오직 티파니만이 당신에게 줄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티파니 상자다.”

여기서 교훈은, 브랜드를 상징하는 고유 색상을 정함으로써 소비자에게 특별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신이라면 브랜드를 상징하는 색상으로 어떤 색을 고를 것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마케팅 전략>

목적지에 대한 비전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알맞은 계획과 행동이 필요하다. 당신의 전략은 무엇이고, 어떻게 그 전략을 실행할 것인가? 경쟁자보다 많은 돈을 쓸 수 없는 처지라면, 결쟁자보다 앞선 생각은 할 수 없는가?

당신은 자사에 유리하게 시장을 세분화할 수 있는가? 다른 모든 경쟁자가 급격한 방향 전환을 할 때 당신은 직진해야 할까? 당신은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는가, 혁명을 시작하고 있는가?

*치약회사에서 글로벌 가전 기업으로, LG. 1957년 라디오 생산을 시작한다. 창업자인 구인회 사장은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하지 않고 전자산업을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투자하는 대담한 결정을 하였다.

여기서 교훈은, 최고의 브랜드는 큰 꿈을 꾸고 대담한 목표들을 설정한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더 멀리 바라보고 생각했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커뮤니케이션>

과거 브랜드와 고객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단방향 소통이었다. 요즘은 상황이 매우 달라졌다. 대중은 미디어뿐 아니라 마케팅의 의도도 알아차린다. 소비자들은 일방적으로 설득당해 구매하는 대신 기업과 대화할 수 있길 바란다.

소비자들은 자체적인 브랜드 콘텐츠를 자유롭게 만들고 있고, 일부 브랜드 콘텐츠는 제작자가 의도한 것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다.

*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드비어스. “드비어스가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광고를 내보내기 전만 해도 솔리테어 다이아몬드는 파혼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드비어스의 간단명료하고 대담한 광고 덕분에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되었고, 다이아몬드가 가장 귀한 보석이 되었다.”

여기서 교훈은, 아이디어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의 브랜드를 더 큰 성공으로 이끌 좋은 아니디어를 가지고 있는가?

* 광고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메막 오길비. 광고 대행사 메막 오길비가 킹 칼리드 재단과 함께 제작한 2013년 광고 캠페인. 그들이 제작한 광고에는 부르카를 쓴 여성이 얼굴을 근접 촬영한 사진이 실렸다. 이 사진을 자세히 보면, 여성의 한쪽 눈은 멀쩡하지만 다른 한쪽 눈에는 멍이 들어 있다. 멍이 든 눈 밑에 짧은 광고 카피가 적혀 있다. 영어 버전의 광고 카피는 덮을 수 없는 것들도 있다였고, 사우디 버전의 광고 카피는 빙산의 일각”(<포린 폴리시>의 중동 부문 편집자 데이비드 케너의 번역)이었다. 사진 밑에는 지역 가정폭력 피해 여성 보호소 전화번호가 소개되었다.

여기서 교훈은, 광고는 선한 일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어떻게 광고를 이용해 선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혁신>

혁신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로 바꾸다, 개선하다는 뜻의 ‘innovare’, 또는 새롭게 만들다는 뜻의 ‘novare’라고 한다.

혁신은 필요에 의해 혹은 면밀한 분석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

* 혁신적인 청소 도구, 스위퍼. 양동이에 세제를 풀고 대걸레를 담궜다가 바닥을 닦고 다시 양동이에 대걸레를 넣다 뺐다를 해서 다시 닦고. 그럼 대걸레에 묻은 먼지는 어디로 갈까?

스위퍼는 쓰고 나면 버리는 행주 조각처럼 바닥을 닦은 뒤 버릴 수 있는 종이를 밀대에 부착해서 바닥을 닦는 청소 도구다.

여기서 교훈은, 다른 사람이 전에 보지 못한 문제를 인식하고, 가끔은 접근법을 바꿔가며 끈기 있게 연구할 때, 혁신이 탄생한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혁신 기회를 인식하는 데 필요한 맞춤형 연구 접근법을 개발할 수 있는가?

*전투기 기술자가 만든 최초의 우산형 유모차, 맥클라렌. 여느 할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오언 맥클라렌도 손녀가 탄 유모차를 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육중한 유모차의 진행 방향을 바꾸기가 어려워서 애를 먹었다. 그는 삼각형 형태의 유모차 알루미늄 틀로 유모차를 재발명하기로 마음먹고 항공공학 기술을 활용하고 항공술 원리들을 적용해 새로운 유모차를 만들었다.

여기서 교훈은, 아이디어들의 이종교배가 훌륭한 혁신 원천이라는 사실이다. 먼 곳에서 온 아이디어들의 응용 가능성에 늘 주목하라.

 

<리포지셔닝과 리부팅>

브랜드는 지치거나 시대에 뒤처지지 않도록, 적절하고 신선한 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불행히도 경쟁자와 고객의 기대가 변화함에 따라 쇠퇴하는 브랜드가 많다. 그렇기에 브랜드도 변화해야 한다. 브랜드를 다시 젊어지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를테면, 새로운 타깃 청중을 대상으로 광고하기, 신제품 개발하기, 새로운 가치 제안하기, 새 파트너 찾기 등이 그것이다.

* 비평 속에 피어난 아름다운 동화, 디즈니. 디즈니가 픽사에게 배운 핵심은 건설적인 집단 비평 과정인 스토리 트러스트회의다.

여기서 교훈은, 브랜드는 건설적 비판의 혜택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어떻게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비판을 수용하고, 비판받은 내용을 고칠 것인가?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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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 낙관주의자 - 번영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매트 리들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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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3 <이성적 낙관주의자(매트 리들리 지음/김영사)>

번영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인류의 미래에 관한 담론을 지배해온 것은 비관주의적 관점이다.

1960년대에는 인구 폭발과 세계적 기근이, 1970년대에는 자원 고갈이, 1980년대에는 산성비가, 199년대에는 세계적인 전염병이, 2000년대에는 지구 온난화가 이를 대표했다.

이에 대해 10만 여 년에 걸친 인류의 역사를 망라한 이 책은 인류의 역사가 번영의 역사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인류는 교환하고 전문화하는 습성으로 집단지능을 창조했다. 인류가 놀라운 번영을 성취한 까닭은 아이디어들이 서로 만나고 짝짓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문화는 진화론의 자연선택 과정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게다가 오늘날 인류의 집단지능은 IT기술의 발전으로 전에 없던 수준에 도달했다.

600페이지가 넘는 인류사를 통해 우리 앞의 종말의 위기에 굴복하지 않을 이성을 확인할 수 있다.

 

프롤로그_아이디어들이 섹스할 때 / 나는 이성적 낙관주의자다. 이성적이라고 하는 것은 기질이나 본능 때문이 아니라 증거를 살펴본 결과 낙관주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1 더 나아진 현재_전례 없는 번영 / 옛 시대 농부의 삶을 미화하기는 쉽다. 배설물 떨어지는 소리가 한참 뒤에야 나는 재래식 화장실을 직접 사용해야 하는 게 당신이 아니라면 말이다.

인류가 각자 생산하는 물건의 종류는 점점 더 적어지면서 소비는 점점 더 다양하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전문가들이 누적해온 지식 덕분이다. 나는 이 지식이 바로 인류의 핵심 내력이라고 믿는다.

이노베이션은 세상을 변화시키지만,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다. 노동 분업의 완성을 돕고 시간 분업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교환과 전문화의 급격한 변화, 그것이 초래한 발명, 그리고 시간의 창조’. 잠시 뒤로 물러서서 인간이라는 종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자. 지난 10만 년간 진보해온(가끔 후퇴도 있었지만) 인류의 웅대한 사업에 눈을 돌려보는 것이다.

 

2 집단지능_20만 년 전 이후의 교환과 전문화 / 교환은 전문화를 촉진했고 전문화는 기술 혁신을, 기술 혁신은 더 많은 전문화를 초래했으며, 이것이 또다시 더 많은 교환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진보가 이루어졌다.

내가 말하는 진보는 기술과 관습이 해부학적 구조보다 더 빨리 변하는 것을 뜻한다. 이들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카탈락시(catallaxy, 노동의 분업이 진전됨에 따라 탄생한, 가능성의 무한한 확장)라고 명명한 것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인류학자 조 헨리치Joe Henrich에 따르면, “인간이 서로 기술을 배우는 방법은 명망 있는 사람을 모방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방상의 실수가 개선책이 되는 아주 드문 경우에 이노베이션이 일어난다. 이것이 문화의 진화 방식이다. 관련된 사람이 많을수록, 모방할 선생의 기술이 뛰어날수록 유익한 실수의 가능성이 커진다. 역을 관련 인원이 적을수록 전래된 기술이 지속적으로 퇴보할 가능성이 커진다.

 

3 덕성의 형성_5만 년 전 이후의 물물교환, 신뢰, 규칙 / 친족관계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은 인간만이 이룩한 업적인 듯하다. 다른 종에서는 과거에 전혀 만난 적이 없는 두 개체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재화와 용역을 교환하는 일이 없다.

내 주장의 핵심은 단순하다. 인류의 역사에서 신뢰는 후퇴하는 일도 자주 있었지만 대체로 점진적이고 발전적으로 성장하고 넓어지고 깊어졌다. 이는 교환 덕분이다. 교환은 신뢰를 낳으며 그 역도 똑같은 정도로 진리다. 당신은 의심스럽고 부정직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막대한 신뢰의 수혜자다. 신뢰가 없었다면 사람들을 잘살게 만드는, 노동의 작은 조각들의 교환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사회가 경쟁 사회들보다 먼저 교환과 전문화의 이익을 누리고 시민들의 삶을 물질적으로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개선할 수 있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새로운 규칙을 지키게 만듦으로써 그것이 가능해진 경우가 흔하다.

 

4 90억 명 먹여살리기_1만 년 전 이후의 농업 / 농업 덕분에 인구밀도가 높아진 사회들은 협동, 조직화, 노동의 분업이라는 잠재력을 더 잘 이용해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최초의 농업 정착지들과 관련해 흥미로운 점 가운데 하나는, 이들 지역이 교역 타운이기도 했건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5 도시의 승리_5천 년 전 이후의 교역 / 도시가 존재하는 것은 교역을 위해서다. 도시는 사람들이 노동의 분업, 전문화, 교환을 위해 찾아오는 장소다. 도시는 교역이 팽창할 때 커나간다.

황제나 잉여 농산물 덕분에 도시혁명이 가능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태를 거꾸로 보는 것이다. 교역 증대가 먼저 일어났다. 잉여 농산물을 이끌어낸 것은 교역이다. 농작물을 다른 곳의 가치 있는 물건들로 전환할 수단을 농부들에게 제공한 것이다. 지구라트(ziggurat, 피라미드 모양의 고대 신전)와 피라미드를 가진 황제들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도 교역 덕분인 경우가 많았다.

정부는 권력이 제한적이거나(약탈 행위가 광범위하게 일어날 정도로 약해서는 안 되지만) 공화제로 통치되거나 혹은 쪼개져 있는 편이 노동의 분업이 발전하는 데 뭔가 유리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강한 정부는 그 정의상 독점 체제이기 때문이다. 독점 기관은 언제나 현실에 안주하고, 침체하고, 스스로에게(고객이 아니라) 봉사힉 마련이다. 그렇지만 군주들은 독점 기관을 좋아한다. 스스로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경우에는 팔거나 자기가 총애하는 인물에게 넘긴 뒤 세금을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 노르베리Johann Norberg는 말한다. “무역은 감자를 컴퓨터로, 혹은 무언가를 다른 무언가로 바꿔주는 기계나 마찬가지다. 그런 기계를 손에 넣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6 맬서스의 함정을 피해_1200년 이후의 인구 / 오늘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인구 폭발보다 고령화다. 출산율이 매우 낮은 국가들에서 노동 인구 중 고령자 비율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맬서스주의자들의 훌륭한 구식 이론인 인구 한계론이 실제로 인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인간이 교환하고 전문화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식량 공급에 비해 수가 너무 많아졌을 때 기근과 역병으로 죽어가는 대신, 전문화 수준을 높여 가용 자원만으로도 더 많은 사람이 존속하게 할 수 있다.

앞으로 인구학적 천이에 관해 분명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국민들이 더 건강하고 부유해지고, 교육을 더 잘 받고, 도시화가 더 많이 진행되고, 여성이 더 해방되면 국가의 출산율은 낮아진다.

 

 

7 노예 해방_1700년 이후의 에너지 / 현대와 같은 생활수준이 가능한 것은 피스톤을 움직이고 발전기를 돌리는 화석연료 덕분이다. 석탄 같은 자원은 재생 불가능하지만 양은 충분히 풍부하다.

이제 수송용 연료를 재배하기 위해 땅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석유가 말먹이용 건초를 대체했다). 난방용 연료(천연가스가 목재를 대체했다), 동력(석탄이 수력을 대체했다), 조명(원자와 석탄이 밀랍과 짐승 기름을 대체했다)이 모두 그렇다.

 

8 발명의 발명_1800년 이후의 수확 체증 / 지식이 놀랍고 멋진 것은 진실로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디어, 발명, 발견이 고갈된다는 것은 심지어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낙관주의의 가장 큰 근거는 여기에 있다.

무엇이 수확 체증에 시동을 걸었는가? 계획이나 지시, 명령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전문화와 교환에서 생겨나 상향식으로 진화했다. 지난 세기의 특징은 부의 성장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는 것이다. 무엇이 여기에 동력을 제공했을까? 그것은 아이디어가 교환되고 사람들이 오고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 덕분이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기술이었고.

 

9 전환점 소동_1900년 이후의 비관주의 / 혹시 당신이 세상은 점점 좋아져왔다고 말한다면, 순진해빠졌고 둔감한 사람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세상이 지금까지와 같이 앞으로도 점점 좋아질 것이라고 말한다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미친 사람취급을 당할 것이다.

세계는 지금과 똑같은 상태로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인류 진보의 핵심이자 문화 진화가 보내는 가장 중요한 주제다. 진정한 위험은 변화의 속도를 늦추는 데서 온다.

어느 시사해설가가 내린 결론을 보자. “조류독감 대유행에 대한 대중적 히스테리는 하늘이 무너진다고 호들갑을 떠는 미디어, 저작자, 야심 찬 보건관리, 제약 회사에 매우 좋은 일을 해주었다……하지만 공황을 일으킨 많은 사람이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숨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히스테리의 흔적은 여전히 남았다. 더 심각한 다른 건강 문제에서 빼내온 수십억 달러도 잘못 배정된 채로 남았다. 종말을 말하는 사람들이 끼친 손실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10 오늘날의 양대 비관주의_2010년 이후의 아프리카와 기후 / 아프리카인들의 1인당 화석연료 소비량을 늘리지 않으면서 이들을 아시아인들만큼 잘살게 할 방법이 있을까?

에너지 가격이 높아지면 가장 크게 타격을 입는 것은 빈민들이다. 기후 변화 완화 문제를 서툴게 관리하면, 기후 변화만큼이나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11 카탈락시_2100년을 바라보는 이성적 낙관주의 / 역사를 보면 낙관주의가 종말론적 비관주의보다 실제로 더 현실적인 태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의 오랜 진보는 우리의 절망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내가 독자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생물학적 진화를 누적시키는 것이 섹스이듯, 문화적 진화를 누적시키고 지능을 집단화하는 것은 교환이다. 그러므로 인간 남녀의 혼란스러운 행동 뒤에는 인간사를 꿰뚫고 흐느는 불변의 흐름이 존재한다. 그 흐름은 썰물이 아니라 밀물이다.”

21세기에는 카탈락시(catallaxy, 하이에크의 용어로 교환과 전문화가 만들어내는 창발적 질서)의 팽창이 계속될 것이라고 나는 전망한다. 지능은 더욱 집단화할 것이고, 혁신과 질서는 점점 더 상향식이 될 것이며, 일은 점점 더 전문화하고, 레저는 더욱더 다양해질 것이다. 대기업, 정치단체, 정부 관료기구는 무너져 작은 조각으로 나뉠 것이다. 과거의 중앙계획 기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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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너를 사랑해서 슬프다
나태주 지음 / 동학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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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 <아직도 너를 사랑해서 슬프다(나태주 시집/동학사)>

풀꽃의 작가 나태주님의 시집

45년생이신 작가는 아직도 순수한 소년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어릴 적의 마음들이 불쑥불쑥 일어나서 놀랄 때가 있다.

아직도 내게 이런 마음이 남아 있나?’하고 놀라다가도 그 마음을 일깨워주는 시인의 능력에 감탄을 한다.

두세 줄, 열 줄을 넘지 않는 짧은 글에서 시인의 마음을 옅보다가 그만 그 마음에 전염되어 버린다. 시인의 그림 역시 그 마음을 잘 그려냈다.

시인의 글에서 아직 오지 않은 봄을 느끼며, 지나간 가을에 대한 그리움으로 다시 올 가을을 기대하게 된다.

올해 겨울은 큰 추위가 없었다지만 봄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어쩔 수 없나보다.

그러나 실제 봄이 왔을 때는 지난 겨울을 돌아보게 될 것 같다.

겨울에 만났던 나태주 시인의 시를 그리워하면서.

 

아버지

 

말없이 방구석만

차지하고 있는 장롱짝

정작 사라지고 나면

조금씩 그리워지는 이름.

 

 

서울

 

그냥

서운하고

울적한 심사.

 

 

이 가을에

 

아직도 너를 사랑해서

슬프다.

 

 

우정

 

힘들어하지 마

내가 옆에 있잖아.

 

 

인생

 

돌아보면

그 자리

 

멀리까지

온 것 같은데.

 

 

사는 법

 

그리운 날은

그림을 그리고

외로운 날은

음악을 듣고

그리고도 남는 날은

너를 생각해야만 했다.

 

 

사랑 · 1

 

밥 먹었는데도

배가 고픈 것 같고

 

물 마셨는데도

목이 마른 것 같은 마음.

 

 

시인 · 2

 

이름에서도

향내가 나는 사람

 

과연

나의 이름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

 

 

민들레

 

아저씨,

시인이 뭐 그래요?

 

나도 이렇게

꽃을 피웠잖아요!

 

 

구절초

 

아이의 웃음이 빛나는 아침

금방 찬물로 세수하고 난 얼굴로

나 여기 있어요

여기 있다니까요

향기로 불러 세우는

또 하나의 아이.

 

 

친구

 

어떠한 경우라도

나는 네 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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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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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19-021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유성호 지음/21세기북스)>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강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죽음. 그 죽음을 마주하는 직업을 가진 저자의 이야기.

그러나 죽음 자체라기보다는 죽음을 통한 삶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인생의 마침표인 죽음을 살펴보면서 지금의 인생이 가진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법의학자이다. 전국에 등록된 의사의 수는 2017년 기준으로 121571명인데, 이 가운데 법의학자 수는 정확히 40명이다. 사건, 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뿐 아니라 많은 경우에 이루어지는 부검과 많은 수업부담 등 어려운 현실을 담담히 소개된다.

또한 부검을 통해 진실을 밝혀낸 사례들이나 조선시대부터 연연히 내려오던 법의학의 전통이 일제강점기에 끊어지는 아픈 역사도 소개된다.

 

그러나 저자가 가장 강조해서 설명하고 있는 주제는 죽음을 통해 삶의 의의를 확인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주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저자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의 인생이 나의 것이면 나의 죽음도 나의 것이다. 그 죽음을 저주나 실패로 보지 않도록 하자. 부끄럽지 않은 나의 죽음을 준비하자는 이야기를 달리 표현하면 최선을 다한 인생을 살자는 이야기가 아닐런지.

 

법의학자로서 특별히 죽음과 인연 깊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인연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욱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아닌 삶이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도인은 아니지만 죽음을 생각하고 살피고 돌아보는 과정에서 삶의 경건함과 소중함이 더욱더 절실해지는 것이다. 더 나아기 법의학자로서 우리 사회에 죽음을 숙고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그래야 우리들 삶이 행복해지겠다는 깨달음 아닌 깨달음을 갖게 된 것이다. /p166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삶이 있고 100가지의 죽음이 있는 것이다. 나만의 고유성은 죽음에서도 발휘되어야 하지 않을까?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삶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꼭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죽음으로 삶을 묻는 이유다. /p246

 

1부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

1년에 두 번씩 개최하는 학회에 참석할 때도 법의학자들은 절대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 혹시 같은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가 만약 사고라도 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혹시 사고가 발생해 한꺼번에 죽는 일이 발생하기하도 하면 우리나라 법의학자가 전멸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농담이 포함된 진담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되도록 함께 이동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흩어져서 각자의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모인다. /p50

 

2부 우리는 왜 죽는가

현대사회에서는 과학과 자본주의의 발달로 죽음이 의학의 대상이 되었다. 의사라는 새로운 사제에 의해 마지막 순간이 결정되는 과학의 시대가 온 것이다. 또한 신과의 단절과 실존주의의 대두는 죽음에 대한 신의 심판에 기반된 두려움과는 도 다른 새로운 공포감을 고양하면서 쾌락주의의 대두 등의 복잡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p119

다양하게 제기되는 안락사 논쟁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입장을 띠고 있을까? 첫 번째는 연명희료 보류중지의 경우 우리나라 또한 보수적인 일본보다 늦기는 했으나 시행이 되고 있다. 두 번째 의사조력자실 또는 의사조력사망은 나름의 가치관에 따라 허용을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각자의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몇몇 나라에서 이미 법적인 보호 아래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아마도 우리 세대의 마지막쯤에서는 이슈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명히 이를 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적극적 안락사는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기는 하다. /p164

자살의 원인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된다는 부채 의식인데, 실제로 짐이 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본인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노인 자살이 많다.

두 번째 자살 원인으로는 소속감 부재와 그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소속감이 없어지면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단절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때 극심한 소외감으로 우울증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마지막 세 번째 원인은 죽음에 대한 무감각적인 학습이다. 이것은 사회적 역할이 방기되어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할 텐데,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문제의 해결책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p178

현재 우리나라 자살의 특징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노인 자살의 급등, 젊은 여성의 높은 자살률, 가족 동반 자살, 대중매체의 높은 자살 보도 영향이 그것이다. /p184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 자살 사고는 단계적으로 일어나는 일로, 우선 자살을 오래도록 계획한 후에 자살 시도를 하게 되기에 중간에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면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관심 그리고 사회적 안전망까지 잠재적 자실자에 대한 우리의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p192

 

3부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죽음에 관한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끝, 자연의 마지막 질서이자 나의 스토리의 마지막 종결로 보는 태도다. 이것을 중립적 수용 자세라고 한다. 종교적인 내세관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한 내세에 대한 믿음으로 접근적 수용 자세를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태도는 죽음에 관한 가장 안 좋은 자세라고 여겨지는데, 바로 죽음을 고통스러운 삶의 탈출로 받아들이는 탈출적 수용 자세다. /p216

우리에게 죽음학이라는 학문을 각인시킨 인물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그녀는 실제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죽음에 대한 인간의 심리학적 반응을 퀴블러 로스 사망 단계라는 5단계로 정리하였다.

첫 번째는 부정이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두 번째 심리적 단계는 분노. 어째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는지를 따지면서 화를 내는 것이다. 그 다음 세 번째 타협, 협상의 심리적 단계로 넘어간다. 의사를 상대로 하거나 신을 상대로 협상을 벌인다. 그러다 이내 네 번째 단계인 침체와 절망의 단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인 수용이 일어나게 된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p221

생을 하나의 여정 또는 작품이라고 본다면 죽음은 마지막 종착지 또는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즉 나만이 완성할 수 있는 내레이션인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죽음은 의사의 내레이션이 되고 말았다. 내 인생을 내가 끝내야 하는데, 인생의 결정권이 생판 모르는 의사나 가족에 의해 행사되고 있다. 물론 그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각자의 삶은 각자의 소유이고 스스로가 결정권자여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서 본다면 연명의료는 현대 의학에서 가장 큰 문제다. /p223

영생에 대한 환상을 가지더라도, 즉 죽음을 어떻게 인지하든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언젠가는 소멸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의 죽음은 실존적으로 반드시 부딪쳐야 되는 사건이며 우리 주변에도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는 죽음에 대한 논의를 금기시하고,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를 혐오하고 두려워하며 영생이라는 말에 오히려 끌려왔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 여정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여야만 현재 우리의 삶을 더 온전하게 살 수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어떠한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깊은 의미를 품는다.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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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사이언스 - 프랑켄슈타인에서 AI까지, 과학과 대중문화의 매혹적 만남 서가명강 시리즈 2
홍성욱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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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 <크로스 사이언스(홍성욱 지음/21세기북스)> [인문] [서가명강]

프랑켄슈타인에서 AI까지, 과학과 대중문화의 매혹적 만남

 

서울대학교에 재직중인 저자의 전공은 과학기술학이다. 과학기술학은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추면서 과학기술을 역사적, 철학적,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 전반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이다.

저자가 강의한 과학기술과 대중문화를 근거로 책이 엮여졌다. 저자는 과학기술과 대중문화를 연결시켜 생각하면서 과학과 인문학 두 문화 사이의 거리를 조금이라도 좁힐 수 있기를 바라며 [서가명강]으로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다룬 과학과 문화의 교차점들에 대한 이야기가 인간답고 민주적인 과학기술의 모습을 상상하고 이를 구현하는 우리 모두의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꿈꿔본다.”

  

대중문화의 예로 들고 있는 다양한 소설과 영화 이야기를 들으며 과학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이 책이 과학은 어렵지 않아요와 같은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여전히 천생 문과생인 나에게는 깊이 있는 분석과 해설이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꼭지들이 제법 많다. 그래도 꼭꼭 씹어먹으면서 느낄 수 있는 잡곡밥의 고소함처럼 다양한 학문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책이었다.

 

1/ 대중문화와 과학의 크로스 미친 과학자, 슈퍼우먼 과학자, 오만한 과학자

괴물이 아닌 과학자, 프랑켄슈타인 : 프랑케슈타인 박사는 기존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금기에 도전함으로써 괴로움을 당했는데, 이는 프로메테우스 이미지와 매우 흡사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지식을 발견한 대가로 고통을 당하는 프로메테우스와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는 이후 과학자의 전형적인 이미지 중 하나가 되었다. /p25

과학과 사회를 연구하는 나로서는 소설 속 여러 모티프라든지 주인공의 직업 등으로 생각해볼 때 당시 산업혁명 이후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누구도 그 방향이나 속도를 통제하지 못했던 과학기술과 관련해서 인간 스스로의 책임감을 질문하는 것에 이 작품의 무게가 실려있다는 해석을 선호한다. /p35

사이비과학의 오래된 역사 : 지금도 과학의 이름으로 우등과 열등을 나누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누가 우리를 멸시하면 발끈하지만, 우리가 유전적으로 우수하다고 하면 으쓱댄다. 백인이 흑인의 아이큐가 낮기 때문에 흑인이 가난하다고 하면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지만, 한민족의 아이큐가 다른 인종에 비해서 높다는 과학적인결과가 나왔다고 하면 뿌듯해한다. 한글이 가장 과학적인언어라는 얘기를 들을 때에도 그럼, 그렇지한다.

사이비과학은 이런 마음을 비집고 자라난다. 누군가 과학의 이름으로 내가, 한민족이, 한국 사람이 과학적으로 못났다고 한다면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학이 나를, 한민족을, 한국 사람을 잘났다고 하면 이런 얘기는 우리의 허영심을 살살 간지럽힌다. /p117

 

2/ 세상과 과학의 크로스 미래는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결국 디스토피아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들을 가만히 보면, 우리가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극복한다든지 혹은 이런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하고, 지금껏 어떤 길을 밟아서 여기에 왔는지, 즉 우리의 과거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누군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내가 속한 세상이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나와 내가 속한 사회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그중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실천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오웰과 헉슬리의 디스토피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풍성한 언어를 지키고, 언어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p188

 

3/ 인간과 과학의 크로스 로봇과 인간은 공존할 수 있을까

유전자가 우리 미래를 결정하는 게 아니듯, 우리 사회의 미래 역시 유전자 결정론이 지배하는 미래로 결정되어 있지 않다. 결국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실천을 하고, 어떻게 사람을 대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p218

오늘날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담론 속에서 가까운 미래에 AI의 발전이 인간을 공장과 사무실에서 쫓아낼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등장하고 있다. 사실 청년 실업이 많아지는 이유는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내는 일자리보다 없어지는 일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직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국가가 기본소득을 제공해야 한다는 말들이 지금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1932년에 제작된 로봇 알파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알파는 자신을 만든 해리 메이에게 총을 겨누고 발사했다고 보도되었다. 실제는 이와 너무나 달랐다. 알파가 발사하는 총에 화약을 넣다가 메이가 실수해서 화약이 터졌고, 그래서 메이는 손에 약간의 부상을 입은 것뿐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가 과장되고 왜곡되어 알파가 총을 인간에게 겨눠 발사했다는 기사가 나온 것이다. 실로 터무니없는 과장 보도였다.

왜 그랬을까? 당시에는 기계가 인간의 직장을 없앨 것이라는 불안감이 사회에 팽배해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작은 사고를 자극적인 사건으로 과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해 가진 두려움은 얼만큼 근거가 있는 것인가. /p277

 

4/ 인문학과 과학의 크로스 과학의 시대, 생각의 경계가 무너진다

근대적 삶의 이면, 식민지 민중의 애환 : 시계, 전차, 전등, 자동차 등은 도시의 새로운 근대적 삶을 상징했다. 그런데 이렇게 바쁜 삶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었다. 전등이 켜지고 전차가 들어서는 것이 외형적인 발전이긴 했지만, 어떤 작가들에게는 이것이 조선의 진보나 조선 사람의 행복과는 거리가 먼 침탈이었던 것이다.

전기의 도입 초기에 문학작품들은 전차, 전등, 활동사진같은 전기 문물을 새롭고 신기하고 계몽적인 것으로 그렸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것들은 식민지적 일상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적으로 바뀌어갔다. 예컨대 초기에 전등은 다 밝은 것으로 그려졌지만, 1920~30년대가 되면 희미한 전등, 쓸쓸한 느낌을 주는 전등, 신경증을 유발하는 전등이 등장하게 되며, 일부 작품에서는 전등이 일제 통치의 결과물이거나 빈부격차를 상징하는 전형이 되었다. /p304

과학과 인문·예술의 관계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 위한 한 가지 출발점은 상상력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과학의 핵심을 발견에 둔다. 하지만 과학도 무엇인가를 만드는 활동이기 때문에 과학에서도 상상력이 매우 중요하다. “과학과 인문학이 상호보완적이다라는 취지의 언급을 맨 처음 했던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는 과학은 이성에만 근거하고 인문학은 상상력에 근거한다고 했지만, 과학에서도 상상력이 중요하다. 과학도 결국 인간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p326

칼 세이건은 우주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지구에서 버텨야 하고, 이를 위해서 서로와 환경을 아껴야 한다는 점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우리 인간들은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우리 은하의 한 귀퉁이에 있는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인 지구에서 지금 이렇게 아웅다웅 살고 있는 것이다. 우주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알게 되면 우리의 삶의 터전인 희미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한다는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p344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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