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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 낙관주의자 - 번영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매트 리들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0년 8월
평점 :
2019-023 <이성적 낙관주의자(매트 리들리 지음/김영사)>
번영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인류의 미래에 관한 담론을 지배해온 것은 비관주의적 관점이다.
1960년대에는 인구 폭발과 세계적 기근이, 1970년대에는 자원 고갈이, 1980년대에는 산성비가, 199년대에는 세계적인 전염병이, 2000년대에는 지구 온난화가 이를 대표했다.
이에 대해 10만 여 년에 걸친 인류의 역사를 망라한 이 책은 인류의 역사가 ‘번영의 역사’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인류는 교환하고 전문화하는 습성으로 집단지능을 창조했다. 인류가 놀라운 번영을 성취한 까닭은 아이디어들이 서로 만나고 짝짓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문화는 진화론의 자연선택 과정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게다가 오늘날 인류의 집단지능은 IT기술의 발전으로 전에 없던 수준에 도달했다.
600페이지가 넘는 인류사를 통해 우리 앞의 종말의 위기에 굴복하지 않을 이성을 확인할 수 있다.
프롤로그_아이디어들이 섹스할 때 / 나는 이성적 낙관주의자다. 이성적이라고 하는 것은 기질이나 본능 때문이 아니라 증거를 살펴본 결과 낙관주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1 더 나아진 현재_전례 없는 번영 / 옛 시대 농부의 삶을 미화하기는 쉽다. 배설물 떨어지는 소리가 한참 뒤에야 나는 재래식 화장실을 직접 사용해야 하는 게 당신이 아니라면 말이다.
인류가 각자 생산하는 물건의 종류는 점점 더 적어지면서 소비는 점점 더 다양하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전문가들이 누적해온 지식 덕분이다. 나는 이 지식이 바로 인류의 핵심 내력이라고 믿는다.
이노베이션은 세상을 변화시키지만,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다. 노동 분업의 완성을 돕고 시간 분업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교환과 전문화의 급격한 변화, 그것이 초래한 발명, 그리고 시간의 ‘창조’. 잠시 뒤로 물러서서 인간이라는 종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자. 지난 10만 년간 진보해온(가끔 후퇴도 있었지만) 인류의 웅대한 사업에 눈을 돌려보는 것이다.
2 집단지능_20만 년 전 이후의 교환과 전문화 / 교환은 전문화를 촉진했고 전문화는 기술 혁신을, 기술 혁신은 더 많은 전문화를 초래했으며, 이것이 또다시 더 많은 교환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진보’가 이루어졌다.
내가 말하는 진보는 기술과 관습이 해부학적 구조보다 더 빨리 변하는 것을 뜻한다. 이들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카탈락시(catallaxy, 노동의 분업이 진전됨에 따라 탄생한, 가능성의 무한한 확장)라고 명명한 것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인류학자 조 헨리치Joe Henrich에 따르면, “인간이 서로 기술을 배우는 방법은 명망 있는 사람을 모방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방상의 실수가 개선책이 되는 아주 드문 경우에 이노베이션이 일어난다. 이것이 문화의 진화 방식”이다. 관련된 사람이 많을수록, 모방할 선생의 기술이 뛰어날수록 유익한 실수의 가능성이 커진다. 역을 관련 인원이 적을수록 전래된 기술이 지속적으로 퇴보할 가능성이 커진다.
3 덕성의 형성_5만 년 전 이후의 물물교환, 신뢰, 규칙 / 친족관계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은 인간만이 이룩한 업적인 듯하다. 다른 종에서는 과거에 전혀 만난 적이 없는 두 개체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재화와 용역을 교환하는 일이 없다.
내 주장의 핵심은 단순하다. 인류의 역사에서 신뢰는 후퇴하는 일도 자주 있었지만 대체로 점진적이고 발전적으로 성장하고 넓어지고 깊어졌다. 이는 교환 덕분이다. 교환은 신뢰를 낳으며 그 역도 똑같은 정도로 진리다. 당신은 의심스럽고 부정직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막대한 신뢰의 수혜자다. 신뢰가 없었다면 사람들을 잘살게 만드는, 노동의 작은 조각들의 교환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사회가 경쟁 사회들보다 먼저 교환과 전문화의 이익을 누리고 시민들의 삶을 물질적으로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개선할 수 있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새로운 규칙을 지키게 만듦으로써 그것이 가능해진 경우가 흔하다.
4 90억 명 먹여살리기_1만 년 전 이후의 농업 / 농업 덕분에 인구밀도가 높아진 사회들은 협동, 조직화, 노동의 분업이라는 잠재력을 더 잘 이용해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최초의 농업 정착지들과 관련해 흥미로운 점 가운데 하나는, 이들 지역이 교역 타운이기도 했건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5 도시의 승리_5천 년 전 이후의 교역 / 도시가 존재하는 것은 교역을 위해서다. 도시는 사람들이 노동의 분업, 전문화, 교환을 위해 찾아오는 장소다. 도시는 교역이 팽창할 때 커나간다.
황제나 잉여 농산물 덕분에 도시혁명이 가능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태를 거꾸로 보는 것이다. 교역 증대가 먼저 일어났다. 잉여 농산물을 이끌어낸 것은 교역이다. 농작물을 다른 곳의 가치 있는 물건들로 전환할 수단을 농부들에게 제공한 것이다. 지구라트(ziggurat, 피라미드 모양의 고대 신전)와 피라미드를 가진 황제들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도 교역 덕분인 경우가 많았다.
정부는 권력이 제한적이거나(약탈 행위가 광범위하게 일어날 정도로 약해서는 안 되지만) 공화제로 통치되거나 혹은 쪼개져 있는 편이 노동의 분업이 발전하는 데 뭔가 유리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강한 정부는 그 정의상 독점 체제이기 때문이다. 독점 기관은 언제나 현실에 안주하고, 침체하고, 스스로에게(고객이 아니라) 봉사힉 마련이다. 그렇지만 군주들은 독점 기관을 좋아한다. 스스로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경우에는 팔거나 자기가 총애하는 인물에게 넘긴 뒤 세금을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 노르베리Johann Norberg는 말한다. “무역은 감자를 컴퓨터로, 혹은 무언가를 다른 무언가로 바꿔주는 기계나 마찬가지다. 그런 기계를 손에 넣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6 맬서스의 함정을 피해_1200년 이후의 인구 / 오늘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인구 폭발보다 고령화다. 출산율이 매우 낮은 국가들에서 노동 인구 중 고령자 비율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맬서스주의자들의 훌륭한 구식 이론인 ‘인구 한계론’이 실제로 인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인간이 교환하고 전문화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식량 공급에 비해 수가 너무 많아졌을 때 기근과 역병으로 죽어가는 대신, 전문화 수준을 높여 가용 자원만으로도 더 많은 사람이 존속하게 할 수 있다.
앞으로 인구학적 천이에 관해 분명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국민들이 더 건강하고 부유해지고, 교육을 더 잘 받고, 도시화가 더 많이 진행되고, 여성이 더 해방되면 국가의 출산율은 낮아진다.
7 노예 해방_1700년 이후의 에너지 / 현대와 같은 생활수준이 가능한 것은 피스톤을 움직이고 발전기를 돌리는 화석연료 덕분이다. 석탄 같은 자원은 재생 불가능하지만 양은 충분히 풍부하다.
이제 수송용 연료를 재배하기 위해 땅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석유가 말먹이용 건초를 대체했다). 난방용 연료(천연가스가 목재를 대체했다), 동력(석탄이 수력을 대체했다), 조명(원자와 석탄이 밀랍과 짐승 기름을 대체했다)이 모두 그렇다.
8 발명의 발명_1800년 이후의 수확 체증 / 지식이 놀랍고 멋진 것은 진실로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디어, 발명, 발견이 고갈된다는 것은 심지어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낙관주의의 가장 큰 근거는 여기에 있다.
무엇이 수확 체증에 시동을 걸었는가? 계획이나 지시, 명령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전문화와 교환에서 생겨나 상향식으로 진화했다. 지난 세기의 특징은 부의 성장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는 것이다. 무엇이 여기에 동력을 제공했을까? 그것은 아이디어가 교환되고 사람들이 오고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 덕분이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기술이었고.
9 전환점 소동_1900년 이후의 비관주의 / 혹시 당신이 세상은 점점 좋아져왔다고 말한다면, 순진해빠졌고 둔감한 사람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세상이 지금까지와 같이 앞으로도 점점 좋아질 것이라고 말한다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할 것이다.
세계는 지금과 똑같은 상태로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인류 진보의 핵심이자 문화 진화가 보내는 가장 중요한 주제다. 진정한 위험은 변화의 속도를 늦추는 데서 온다.
어느 시사해설가가 내린 결론을 보자. “조류독감 대유행에 대한 대중적 히스테리는 하늘이 무너진다고 호들갑을 떠는 미디어, 저작자, 야심 찬 보건관리, 제약 회사에 매우 좋은 일을 해주었다……하지만 공황을 일으킨 많은 사람이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숨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히스테리의 흔적은 여전히 남았다. 더 심각한 다른 건강 문제에서 빼내온 수십억 달러도 잘못 배정된 채로 남았다. 종말을 말하는 사람들이 끼친 손실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10 오늘날의 양대 비관주의_2010년 이후의 아프리카와 기후 / 아프리카인들의 1인당 화석연료 소비량을 늘리지 않으면서 이들을 아시아인들만큼 잘살게 할 방법이 있을까?
에너지 가격이 높아지면 가장 크게 타격을 입는 것은 빈민들이다. 기후 변화 완화 문제를 서툴게 관리하면, 기후 변화만큼이나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11 카탈락시_2100년을 바라보는 이성적 낙관주의 / 역사를 보면 낙관주의가 종말론적 비관주의보다 실제로 더 현실적인 태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의 오랜 진보는 우리의 절망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내가 독자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생물학적 진화를 누적시키는 것이 섹스이듯, 문화적 진화를 누적시키고 지능을 집단화하는 것은 교환이다. 그러므로 인간 남녀의 혼란스러운 행동 뒤에는 인간사를 꿰뚫고 흐느는 불변의 흐름이 존재한다. 그 흐름은 썰물이 아니라 밀물이다.”
21세기에는 카탈락시(catallaxy, 하이에크의 용어로 교환과 전문화가 만들어내는 창발적 질서)의 팽창이 계속될 것이라고 나는 전망한다. 지능은 더욱 집단화할 것이고, 혁신과 질서는 점점 더 상향식이 될 것이며, 일은 점점 더 전문화하고, 레저는 더욱더 다양해질 것이다. 대기업, 정치단체, 정부 관료기구는 무너져 작은 조각으로 나뉠 것이다. 과거의 중앙계획 기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