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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시그널 - 2025년 삼성의 운명이 결정된다
서영민 지음, 이승우 감수 / 한빛비즈 / 2025년 2월
평점 :

삼성전자는 늘 위기 속에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다르다. 단순한 경기 침체나 일시적인 실적 부진이 아니라, 삼성을 성장시켜온 근본적인 전략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시그널》은 삼성전자가 처한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며, 과거의 성공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에서 삼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탐색하는 책이다.
이 책은 2024년 3월 방영된 다큐멘터리 〈삼성, 잃어버린 10년〉을 기반으로, 방송에서 다루지 못한 이야기와 추가 취재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 서영민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부터 용인 기흥까지 발로 뛰며 삼성전자의 전·현직자, 반도체 업계 전문가, 학계·금융계 인사들을 만나 삼성전자의 위기를 해부했다.

삼성전자의 기술력, 왜 이렇게 뒤처졌는가?
책은 삼성전자의 위기를 두 번의 공식 사과에서 시작해 분석한다. 2022년 GOS(게임 옵티마이징 서비스) 사태와 2024년 10월의 사과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삼성전자의 핵심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는 그 위기가 더욱 뚜렷하다.
삼성전자는 오랫동안 D램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지만, 최근 HBM(고대역폭 메모리) 기술에서는 뒤처지고 있다. 엔비디아가 삼성 제품 대신 SK하이닉스 제품을 선택한 것은 단순한 선호 문제가 아니다. "삼성 제품의 성능에 엔비디아가 만족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기술력의 격차를 보여준다." (p.201) 반도체 업계에서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기술력 부족이 아니다. 삼성의 연구개발 전략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과거 삼성은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지만, 최근에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안정적인 전략을 고수하며 신기술 개발을 늦추고 있다. "10나노대 공정에 처음 들어선 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10나노대에 머물러 있다." (p.175) 반면, TSMC와 SK하이닉스는 신기술 도입에 적극적이었고, 결국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는 위치에 올랐다. 삼성의 기술력이 뒤처진 것은 단순한 개발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연구개발 방향과 결단력의 문제라는 점이 더욱 심각하다.

혁신을 방해하는 조직 문화
삼성전자의 조직 문화는 과거에는 '스피드 경영'과 '실력주의'를 강조하며 빠른 의사 결정과 과감한 도전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의 삼성은 "기술적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문제를 축소하려는 대응"과 "근본적 문제 해결보다 단기적 수익과 이미지에 치중"하는 태도가 만연하다. (p.228)
특히 경영진이 현장의 기술적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실패를 인정하기보다 성공을 가장하려는 문화가 삼성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 연구개발 부서는 상부의 눈치를 보느라 솔직한 의견을 내기 어렵고, 실무자들은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 상사의 지시에 맞춰 안전한 선택을 하는"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다. (p.245) 이는 과거 도전과 혁신으로 성장했던 삼성의 강점을 갉아먹고 있는 심각한 문제다.
과거의 삼성 vs. 지금의 삼성
삼성전자는 과거에도 수많은 위기를 맞았지만, 그때마다 과감한 투자와 혁신적인 기술 개발로 이를 극복했다. 1983년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을 때, 삼성의 기술력은 일본 기업들보다 6년 뒤처져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불황에도 투자를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연구 개발을 가속화했다." (p.112) 그 결과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삼성전자는 과거와 다르다. 위기를 인정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 단기적인 실적 방어와 기업 이미지 관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 "위기의 징후를 감지한 TSMC와 SK하이닉스는 이미 변화를 시작했지만, 삼성은 여전히 기존 전략을 고수하며 변화에 둔감했다." (p.190)

삼성의 미래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저자는 단순히 삼성전자의 위기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삼성전자가 다시 성장하려면 "지속적인 소통과 피드백", "협력의 생태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p.289) 단기적인 실적보다 장기적인 혁신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재와 기업 문화다. 과거 삼성전자는 최고 인재를 영입하고,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을 통해 혁신을 이끌어 왔다. 하지만 최근의 삼성은 변화에 둔감해지고, 관료주의적인 조직 문화가 강해지고 있다. "젊고 싱싱하고 혁신적인 에너지를 끌어들이지 못하면, 삼성이 미래를 개척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p.310)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은 단순히 삼성전자라는 기업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한국 경제 전반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삼성의 위기는 곧 한국 경제의 위기와 연결된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혁신은 단순히 기업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논의가 필요한 문제다.
"이 책의 목적은 삼성이 실패했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남은 가능성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p.328) 이 문장에서 보듯, 저자는 삼성전자가 여전히 재도약의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삼성전자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 그 해답은 결국 삼성 내부의 혁신과, 이를 지켜보는 우리 사회의 선택에 달려 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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