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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눈망울
작은시인들 지음 / 시와정신사 / 2025년 11월
평점 :

교실에서 매일 마주하던 아이들이 이번에는 시인으로 내 앞에 섰다. 웃고 떠들던 모습 뒤에 숨겨 두었던 생각과 감정들이, 한 편의 시가 되어 조심스럽게 말을 건다. 창작반 시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공책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던 한 학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그 아이가 쓰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나는 작품을 감상하기보다, 아이들이 글을 쓰던 순간을 함께 떠올리게 되었다.
〈매미〉는 기다림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시다. "매미는 애벌레로 / 짧게는 2년 길게는 13년을 산다"는 객관적 사실에서 출발해, "하지만 기억하라 / 언젠가는 자유롭게 나는 / 성충이 될 것이라는 걸"이라는 희망으로 나아간다. 성장은 각자의 속도로 온다는 사실을, 조급하지 않은 언어로 말한다.
〈채석강아지씨〉는 글을 기억의 저장소로 바라본다. "그때의 감정과 숨도, 온도까지 글씨 하나하나에 담아내고 싶다"는 고백은 쓰기의 본질을 꿰뚫는다. 감정의 온도와 순간의 습도를 남기고 싶다는 바람은 이미 시인의 시선이다.
〈사춘기〉는 설명하지 않아서 더 정확하다. "잠자기 웃기고 / 어떨땐 슬프고 / 조금 짜증나고 / 가끔은 화나고"로 이어지는 감정의 나열, 그리고 "울렁울렁 / 간질간질 / 몽글몽글"이라는 의성어. 흔들리는 감정을 정의하지 않고 나열하는 방식이 이 시기의 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휴식〉은 누군가에게 건네는 문장이다. "삶이 고되면 / 쉬엄쉬엄 해"라는 다정한 조언 뒤에, "힘들어서 쓰러지면 / 혼자서 일어날 수 없으니까"라는 현실적 염려가 따라온다. 쉬어도 괜찮고, 넘어지면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가 조용히 마음에 닿는다.
〈보라색〉은 관찰의 밀도가 돋보이는 시다. "내가 기억하는 그녀는 / 보라색 같다"는 발상부터 독특하다. 사람을 색으로 기억한다는 것, "결국 난 그 보라색의 / 매력에 폭 빠져버렸다"는 솔직한 고백까지, 감각적 이미지가 생생하다.
〈밤의 것들〉은 "낮의 햇빛 비춘 거리 위에서 / 대부분의 것은 모습 드러내지만 / 밤의 달빛 비춘 하늘 아래서 / 숨겨진 것들은 빛에 고개를 든다"며, 낮에는 드러나지 않던 마음들이 비로소 고개를 드는 순간을 포착한다.

96편의 시를 관통하는 것은 '솔직함'이다. 아이들은 사랑, 외로움, 성장, 두려움, 희망을 있는 그대로 꺼내놓았다. 때로는 서툴고 때로는 투박하지만, 그래서 더 진실하다. 이 시집의 가장 큰 미덕은 잘 쓰려 애쓰지 않았다는 데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속도로, 말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이 시들은 아직 작지만, 분명히 살아 있다.
이 책을 덮으며, 한 사람의 교사로서 이런 생각이 남는다. 이 아이들이 앞으로도 계속 쓰기를. 평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마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망울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시선을 계속 기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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