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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 - 파국의 시대를 건너는 필사적 SF 읽기
강양구 지음 / 북트리거 / 2025년 7월
평점 :

감시 사회, 기후 재앙, 혐오와 불평등. 디스토피아는 더 이상 소설 속 가상의 미래가 아니다. 강양구는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에서 18편의 SF 작품을 통해, 이처럼 무너진 현실을 직시하고 ‘그다음’을 상상하려는 시도를 펼친다. SF는 오락이 아니라 질문이다. 과학기술이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에 대한 정교한 사고실험이자, 새로운 가능성의 예고편이다.
책은 ‘리셋–폭로–실험’이라는 3부로 구성된다. 익숙한 사회 규범을 초기화하는 1부에서는 서구 중심주의, 인종, 수명, 생존의 의미를 해체한다. 2부는 디지털 감시, 역사 왜곡, 자원 고갈, 전쟁을 폭로하며 우리가 보지 못했던 현실의 틈을 드러낸다. 3부에서는 AI, 뇌과학, 인공 자궁, 시간여행 등 기술이 인간성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날카롭게 실험한다.

특히 저자의 시선은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의 관점을 통과한다. “SF는 처음부터 STS SF였다”는 그의 선언처럼, SF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이 인간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 윤리적 질문, 권력의 재배치를 탐색한다. 《소멸 세계》에서 인공 자궁은 출산을 해방하는가, 통제하는가? 《노인의 전쟁》의 생체 개조는 노인의 존재를 어떻게 재정의하는가?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의 《스테이션 일레븐》에서 문명이 붕괴된 이후에도 예술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유랑 극단의 공연은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 “예술은 생존을 기념하고, 미래를 꿈꾸는 의례”라는 통찰을 담고 있다. 생존과 상상, 그 사이에 놓인 인간다움이 책 전반에 흐른다.

강양구는 SF 작가들을 “따뜻한 낙관주의자”라 부른다. 파국을 그리는 그들은, 사실 그런 세상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이다. 《1984》의 감시보다는 《멋진 신세계》의 쾌락이 더 무서운 통제라는 닐 포스트먼의 통찰을 인용하며, 우리는 지금 정보와 오락의 과잉 속에서 감각이 마비된 시대를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이 책은 SF 독자를 위한 안내서이자, 처음 SF에 입문하려는 이들을 위한 친절한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각 작품의 주제뿐만 아니라 해당 작가의 세계관과 연관 도서까지 함께 소개하며,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독서 여정을 가능하게 한다. SF를 통해 인간과 사회, 과학기술과 윤리를 동시에 바라보는 방식은 단순한 취미 독서를 넘어 지적 탐구로 나아가는 관문이 된다.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은 SF를 읽는 새로운 렌즈이자, 우리 시대를 성찰하는 철학적 안내서다. 디스토피아는 끝이 아니다. 오히려 시작이다. 상상력이 희망이 될 수 있음을 믿는 이들에게, 이 책은 한 권의 묵직한 이정표가 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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