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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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유성호 지음/21세기북스)>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강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죽음. 그 죽음을 마주하는 직업을 가진 저자의 이야기.

그러나 죽음 자체라기보다는 죽음을 통한 삶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인생의 마침표인 죽음을 살펴보면서 지금의 인생이 가진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법의학자이다. 전국에 등록된 의사의 수는 2017년 기준으로 121571명인데, 이 가운데 법의학자 수는 정확히 40명이다. 사건, 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뿐 아니라 많은 경우에 이루어지는 부검과 많은 수업부담 등 어려운 현실을 담담히 소개된다.

또한 부검을 통해 진실을 밝혀낸 사례들이나 조선시대부터 연연히 내려오던 법의학의 전통이 일제강점기에 끊어지는 아픈 역사도 소개된다.

 

그러나 저자가 가장 강조해서 설명하고 있는 주제는 죽음을 통해 삶의 의의를 확인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주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저자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의 인생이 나의 것이면 나의 죽음도 나의 것이다. 그 죽음을 저주나 실패로 보지 않도록 하자. 부끄럽지 않은 나의 죽음을 준비하자는 이야기를 달리 표현하면 최선을 다한 인생을 살자는 이야기가 아닐런지.

 

법의학자로서 특별히 죽음과 인연 깊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인연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욱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아닌 삶이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도인은 아니지만 죽음을 생각하고 살피고 돌아보는 과정에서 삶의 경건함과 소중함이 더욱더 절실해지는 것이다. 더 나아기 법의학자로서 우리 사회에 죽음을 숙고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그래야 우리들 삶이 행복해지겠다는 깨달음 아닌 깨달음을 갖게 된 것이다. /p166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의 삶이 있고 100가지의 죽음이 있는 것이다. 나만의 고유성은 죽음에서도 발휘되어야 하지 않을까?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삶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꼭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죽음으로 삶을 묻는 이유다. /p246

 

1부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

1년에 두 번씩 개최하는 학회에 참석할 때도 법의학자들은 절대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 혹시 같은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가 만약 사고라도 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혹시 사고가 발생해 한꺼번에 죽는 일이 발생하기하도 하면 우리나라 법의학자가 전멸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농담이 포함된 진담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되도록 함께 이동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흩어져서 각자의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모인다. /p50

 

2부 우리는 왜 죽는가

현대사회에서는 과학과 자본주의의 발달로 죽음이 의학의 대상이 되었다. 의사라는 새로운 사제에 의해 마지막 순간이 결정되는 과학의 시대가 온 것이다. 또한 신과의 단절과 실존주의의 대두는 죽음에 대한 신의 심판에 기반된 두려움과는 도 다른 새로운 공포감을 고양하면서 쾌락주의의 대두 등의 복잡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p119

다양하게 제기되는 안락사 논쟁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입장을 띠고 있을까? 첫 번째는 연명희료 보류중지의 경우 우리나라 또한 보수적인 일본보다 늦기는 했으나 시행이 되고 있다. 두 번째 의사조력자실 또는 의사조력사망은 나름의 가치관에 따라 허용을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각자의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몇몇 나라에서 이미 법적인 보호 아래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아마도 우리 세대의 마지막쯤에서는 이슈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명히 이를 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적극적 안락사는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기는 하다. /p164

자살의 원인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된다는 부채 의식인데, 실제로 짐이 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본인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노인 자살이 많다.

두 번째 자살 원인으로는 소속감 부재와 그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소속감이 없어지면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단절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때 극심한 소외감으로 우울증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마지막 세 번째 원인은 죽음에 대한 무감각적인 학습이다. 이것은 사회적 역할이 방기되어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할 텐데,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문제의 해결책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p178

현재 우리나라 자살의 특징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노인 자살의 급등, 젊은 여성의 높은 자살률, 가족 동반 자살, 대중매체의 높은 자살 보도 영향이 그것이다. /p184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 자살 사고는 단계적으로 일어나는 일로, 우선 자살을 오래도록 계획한 후에 자살 시도를 하게 되기에 중간에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면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관심 그리고 사회적 안전망까지 잠재적 자실자에 대한 우리의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p192

 

3부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죽음에 관한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끝, 자연의 마지막 질서이자 나의 스토리의 마지막 종결로 보는 태도다. 이것을 중립적 수용 자세라고 한다. 종교적인 내세관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한 내세에 대한 믿음으로 접근적 수용 자세를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태도는 죽음에 관한 가장 안 좋은 자세라고 여겨지는데, 바로 죽음을 고통스러운 삶의 탈출로 받아들이는 탈출적 수용 자세다. /p216

우리에게 죽음학이라는 학문을 각인시킨 인물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그녀는 실제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죽음에 대한 인간의 심리학적 반응을 퀴블러 로스 사망 단계라는 5단계로 정리하였다.

첫 번째는 부정이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두 번째 심리적 단계는 분노. 어째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는지를 따지면서 화를 내는 것이다. 그 다음 세 번째 타협, 협상의 심리적 단계로 넘어간다. 의사를 상대로 하거나 신을 상대로 협상을 벌인다. 그러다 이내 네 번째 단계인 침체와 절망의 단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인 수용이 일어나게 된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p221

생을 하나의 여정 또는 작품이라고 본다면 죽음은 마지막 종착지 또는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즉 나만이 완성할 수 있는 내레이션인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죽음은 의사의 내레이션이 되고 말았다. 내 인생을 내가 끝내야 하는데, 인생의 결정권이 생판 모르는 의사나 가족에 의해 행사되고 있다. 물론 그것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각자의 삶은 각자의 소유이고 스스로가 결정권자여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서 본다면 연명의료는 현대 의학에서 가장 큰 문제다. /p223

영생에 대한 환상을 가지더라도, 즉 죽음을 어떻게 인지하든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언젠가는 소멸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의 죽음은 실존적으로 반드시 부딪쳐야 되는 사건이며 우리 주변에도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는 죽음에 대한 논의를 금기시하고,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를 혐오하고 두려워하며 영생이라는 말에 오히려 끌려왔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 여정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여야만 현재 우리의 삶을 더 온전하게 살 수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어떠한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깊은 의미를 품는다.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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