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픈 엑시트 - 불평등의 미래, 케이지에서 빠져나오기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5월
평점 :

한 번도 탈출을 꿈꿔본 적이 없다고? 그렇다면 이 책은 당신을 위한 책이 아니다."
이철승 교수의 도발적 문장으로 시작하는 《오픈 엑시트》는 단순한 사회비평서를 넘어, 한국 사회의 구조적 숨막힘을 진단하는 치열한 보고서이자, 탈출의 언어로 다시 써 내려간 희망의 지도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 갇혀 있다. 수십 년을 일해도 엑시트는커녕 자리를 지키는 것조차 버거운 노동자들, 결혼과 출산을 뒤로 미룬 채 커리어를 택할 수밖에 없는 청년 여성들, 그리고 각자도생이라는 단어 앞에 체념하는 수많은 개인들. 이 책은 그런 이들을 향해 묻는다. 왜 한국 사회에는 이토록 탈출구가 적은가?

이철승이 말하는 '소셜 케이지'는 이 질문에 답을 준다.
탈출을 막는 심리적·제도적·환경적 장벽. 벼농사 체제에서 기원한 이 구조는 한국 사회에서 학벌, 연공제, 내부 노동시장이라는 이름으로 구현되어 있다. 예전에는 한강의 기적을 일구는 원동력이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변화를 가로막는 족쇄로 기능한다.
이 책의 핵심은 세 가지 구조적 충격—인공지능, 저출생/고령화, 이민—이 이러한 케이지와 충돌하면서 어떤 새로운 불평등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데 있다.
"노동조합, 연공제, 학벌로 버텨온 시스템" 안에서, 학벌이 결정되고 연공제 직장에 입사하는 순간 "정주권 쟁취 게임은 얼추 끝난다"는 문장은 씁쓸하지만 너무도 현실적이다.

특히 젠더 분석은 탁월하다.
"청년 남성은 결혼을 위해 경쟁하지만, 청년 여성은 경쟁하기 위해 결혼하지 않는다."
오늘날 여성에게 직장은 생존을 위한 필수재이며, 가족은 사치재가 되었다. 개인적으론 가부장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엑시트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재생산 위기의 신호다. 저출생의 원인을 개인 탓으로 돌리기 전에, 이 구조를 먼저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이주노동자 문제 역시 예리하게 짚는다. 이미 300만에 육박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인의 ‘케이지 바깥’에서 게토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역시 우리의 엑시트 없는 시스템이 낳은 또 다른 피해자다. 세계화와 이민이 유럽에서 극우 정치의 배경이 된 것처럼, 한국도 비슷한 경로를 밟을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명확하다.
개인의 엑시트 옵션을 구조적으로 확장해야 한다.
‘왜 한국 사회는 제로섬 게임에 목을 매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서로의 발목을 잡으며 밀어내기 싸움에 목매는 이유는, 구조적으로 엑시트할 수 있는 선택지가 적기 때문이다.“
《오픈 엑시트》는 단순한 현상 진단서를 넘어, 한국 사회 구조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는 실천적 사유서다.
비판에만 머물지 않고,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독자를 이끈다.
이 책은 ‘탈출에 실패한 사람들’을 위한 위로가 아니다. 오히려 ‘탈출을 아직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전략서다.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왜 우리가 탈출을 꿈꾸는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이 문장은 지금 이 케이지 안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누군가에게 분명히 닿을 것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오픈엑시트 #이철승 #문학과지성사 #불평등3부작 #오픈엑시트_서평단 #책읽는샘 #함께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