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도둑 - 예술, 범죄, 사랑 그리고 욕망에 관한 위험하고 매혹적인 이야기
마이클 핀클 지음, 염지선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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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많은 예술 작품을 훔친 남자 스테판 브라이트비저는 끝내 자신을 도둑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작품을 팔지도, 암시장에 넘기지도 않았다. 훔친 그림과 조각을 어머니 집 다락방에 전시해 두고 매일 바라보고, 만지고, 사랑했다. 총액 2조 원이 넘는 예술품이 세계 어느 박물관도 부러워할 컬렉션으로 다락방을 채웠지만, 그의 눈에 그것은 범죄의 전리품이 아니라 자신만의 아름다운 왕국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도둑이 아니라 '예술 해방가'라고 믿었다.

 

저널리스트 마이클 핀클은 브라이트비저를 괴물처럼 그리지 않는다. 수년간의 인터뷰와 방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그의 심리를 집요하게 추적하면서도, 이를 단순한 정신질환이나 도벽으로 설명해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가 그의 눈으로 예술을 바라보게 만든다. 박물관 유리 너머로 몇 초밖에 감상할 수 없는 작품을 손끝으로 만지고, 침대 곁에 두고, 하루 종일 바라보고 싶다는 욕망.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법한 그 충동이 한 사람 안에서 어디까지 커질 수 있는지를 차분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따라간다. 이 은밀한 추적을 통해 독자는 어느새 도둑을 일방적으로 심판하는 자가 아니라, 예술을 향한 순수한 감탄이 언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맹목적 소유욕으로 뒤바뀌는지 성찰하는 관찰자가 된다.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은 브라이트비저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다. 연인 앤 캐서린은 망을 보며 그의 범행을 도왔고, 어머니는 다락방 가득 쌓여가는 명작들을 보면서도 아들을 막지 않았다. "이 사람 주변에는 단 한 명의 어른도 없었다"는 한 기자의 지적은 이 기이한 범죄의 본질을 관통한다. 상대의 어긋난 집착마저 '예술적 취향'이라는 핑계로 묵인해 준 주변인들의 관대는 사랑이 아니라 집단적 도취에 불과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도덕적 경계를 잃는 순간, 그것이 어떻게 가장 완벽하고도 끔찍한 형태의 공범으로 전락하는지를 이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도 드물다.

 

그러나 결국 '예술을 해방했다'는 그의 오만한 논리는 스스로 무너진다. 브라이트비저는 박물관을 유물의 감옥이라 비난했지만, 예술은 타인의 시선과 연결되고 끊임없이 공유될 때 비로소 공공의 생명력을 얻는다. 수백 년의 시간을 견뎌온 명작들을 단 두 사람의 에고(Ego)를 만족시키기 위해 다락방에 밀봉한 순간, 그것은 해방이 아니라 사적인 박제에 불과했다. 더욱이 체포 이후 수많은 장물이 어머니의 손에 의해 운하와 강에 던져져 영영 사라졌다는 사실은 지독한 아이러니다. 누구보다 아름다움을 사랑한다고 자부했던 이가, 역설적이게도 인류의 아름다움을 가장 참혹하게 훼손한 주범이 된 셈이다.

 

책을 덮고 나면 한 가지 질문이 오래 남는다. 예술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브라이트비저는 아름다움을 독점했고, 바로 그 순간 아름다움은 예술이 아니라 파괴적인 집착이 되었다. 예술 도둑은 역사상 가장 기이한 예술 절도 사건을 다룬 범죄 논픽션이면서도, 결국에는 무엇을 진정으로 소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끝내 생각하게 만드는 철학적 에세이다. 저자가 남겨둔 충분한 거리감 덕분에 이 낯선 읽기의 체험은 오래도록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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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시티피케이션 - 똥이 되어버린 플랫폼의 해부학
코리 닥터로 지음, 박희원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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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시티피케이션(Enshittification). 플랫폼 부패, 쓰레기화, 개똥화. 디지털 플랫폼이 수익을 추구하며 사용자 경험을 점점 악화시키는 현상을 뜻하는 이 낯설고도 불쾌한 단어는 미국방언학회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가 되었다. 페이스북, 아마존, 아이폰, 구글, 트위터. 한때 세상을 더 편리하게 만들겠다며 등장했던 플랫폼들은 왜 지금은 광고와 구독, 알고리즘과 독점으로 사용자를 지치게 만들고 있을까. 엔시티피케이션은 그 변화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책이다.

 

저자 코리 닥터로는 플랫폼의 타락을 네 단계로 설명한다. 처음에는 사용자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사람을 끌어모은다. 이어 사업자를 유치하기 위해 사용자의 편익을 조금씩 희생한다. 충분한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면 이번에는 사업자마저 압박해 양쪽 모두에게서 이익을 빨아들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용자도, 판매자도, 플랫폼도 함께 망가지는 '거대한 똥 더미'가 된다. 시장을 독점한 뒤 최혜 대우 정책으로 검색 결과를 조작하는 아마존, 지식재산권을 무기로 소비자의 '수리할 권리'를 제한하는 애플, 알고리즘으로 임금을 통제하는 우버의 행태는 사용자와 공급자가 서로를 인질 삼아 갇히는 네트워크 효과의 덫 속에서 이 부패 과정이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임을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플랫폼은 사용자를 가둬 두고 경험과 가치를 뻔뻔하게 빨아먹는다. 문제는 기업의 탐욕이 아니라 그 탐욕을 견제할 수 없게 만든 구조다.“

 

이 책이 단순한 빅테크 고발서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탐욕의 이면에 숨은 '구조적 모순'을 정조준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플랫폼을 비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좋은 인터넷을 만들기 위한 조건을 차분하게 제시한다. 그 해법은 네 가지 축으로 모인다. 먼저 경쟁이다. 독점이 해체되어야 플랫폼은 다시 사용자를 붙잡기 위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이유가 생긴다. 다음은 규제다. 반독점법과 개인정보 보호법, 그리고 유럽연합의 디지털시장법은 빅테크 권력을 견제할 현실적인 가능성을 보여준다. 세 번째는 상호운용성이다. 특정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고 사용자가 구매한 콘텐츠와 데이터 자산을 다른 플랫폼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기술 자결권'이 보장되어야 디지털 인질극이 끝난다. 마지막은 테크 노동자의 힘이다. 알고리즘에 맞서 파업한 구글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의 움직임은 변화가 플랫폼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엔시티피케이션은 그냥 자본주의일 뿐일까." 나가는 글의 이 질문은 오래 남는다. 코리 닥터로는 플랫폼 기업을 도덕적 악당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독점적 환경 앞에서는 그 어떤 선한 기업이라도 부패의 경로를 밟을 수밖에 없음을 냉정하게 분석할 뿐이다. 따라서 해법 역시 개인의 앱 삭제나 소극적인 불매운동을 넘어 경쟁과 규제, 상호운용성, 그리고 시민과 노동자의 사회적 연대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설득한다.

 

오늘도 우리는 원하지 않는 광고를 넘기고, 반복되는 구독 결제를 확인하며, 플랫폼을 떠나기 어려운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엔시티피케이션은 그 막연한 불쾌감에 이름을 붙여준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현상을 이해하는 일이고, 이해는 변화를 요구하는 첫걸음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플랫폼의 몰락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때 인터넷이 사람과 사람을 자유롭게 연결했던 공간이었듯, 경쟁과 규제가 살아 있고 이용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좋은 인터넷'은 다시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플랫폼을 비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디지털 사회를 선택할 것인지를 묻는,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 모두를 위한 가장 설득력 있는 플랫폼 자본주의 분석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엔시티피케이션 #코리닥터로 #흐름출판 #플랫폼자본주의 #테크노봉건주의 #기술자결권 #반독점법 #수리할권리 #좋은인터넷은가능하다 #책읽는샘 #함께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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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레이션 AI - AI와 함께 자라난 신인류는 무엇을 소비하고 욕망하는가
맷 브리턴 지음 / 다산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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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문은 클로드 AI가 썼다. 저자가 AI에게 "2035년의 관점에서 이 책의 서문을 써달라"고 요청했고, 그 결과물이 책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이 한 가지 설정이 제너레이션 AI의 성격을 압축한다. AI를 분석하는 책이 아니라 AI와 함께 만들어진 책, AI 세대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그 세대의 방식으로 쓰인 책이다.

 

2010년 이후 태어난 알파세대는 스마트폰을 배운 적이 없다. 태어날 때부터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AI 스피커와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틱톡으로 세상을 소비하며, 로블록스에서 친구를 만나고 경제 활동을 한다. 이들에게 AI는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공기와 같은 환경이다. 저자는 머지않아 이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소비 세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앞으로의 시장은 AI를 가장 잘 만드는 기업보다 AI와 함께 살아갈 인간을 가장 먼저 이해하는 기업이 주도하게 될 것이라는 통찰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이 책이 단순한 AI 전망서와 다른 이유는 교육, 미디어, 주거, 금융, 커리어 등 열 개 산업을 통해 인간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만 5조 달러의 화려한 시장성을 외치는 저자의 낙관 속에서, 교육자인 나의 눈길이 머문 곳은 역설적이게도 'AI의 그림자'였다. 생산성과 창의성의 극대화라는 화려한 폭죽 뒤에는 정체성의 혼란과 인간관계의 해체, 딥페이크와 가짜 뉴스 같은 서늘한 그늘이 함께 자라기 때문이다. 기술이 가져온 편리함만큼이나 우리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를 잊지 않으려는 태도가 절실한 시점이다.

 

교사로서 가장 오래 멈춘 대목은 '2030년 교실의 모습'이었다. AI 튜터가 학생마다 다른 속도와 수준에 맞춰 실시간으로 학습을 설계하는 교실. 산수 계산이 소젖 짜기만큼 구식 기술이 되고, 단 열 명의 직원이 10억 달러의 가치를 만드는 1인 기업가의 시대라면 교육의 패러다임 역시 완전히 전복되어야 한다. 이미 학생들은 AI를 활용해 과제를 수행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AI 이전의 방식으로 가르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책은 교육의 본질이 암기에서 질문으로, 정답을 찾는 능력에서 '해결할 가치가 있는 문제를 식별하는 역량'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분명히 일깨운다. AI 시대 교사의 역할 또한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에서 사고를 이끄는 사람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김대식 교수는 추천사에서 "지금 직장을 가진 우리 어른들은 어쩌면 AI 이전 시대를 경험한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책을 덮고도 오래 남았다. 제너레이션 AIAI를 공부하라는 책이 아니다. AI와 함께 살아갈 새로운 인간을 이해하라고 말하는 책이다. 알파세대를 키우는 부모와 가르치는 교사,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갈 모든 어른에게 매일 아침 교실 문을 열 때마다 마주하는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 이미 인류의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었음을 조용히 응시하게 만드는 서늘하고도 다정한 미래 보고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제너레이션AI #맷브리턴 #다산북스 #알파세대 #AI세대 #미래교육 #미래사회 #책추천 #책읽는샘 #함께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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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로 서기 - 어떤 순간에도 나를 책임지는 '1인분의 삶'을 위하여
임홍택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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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초임 교사 시절,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동료와의 갈등을 푸는 법, 월급 관리법, 번아웃을 견디는 법까지. 학교는 교과 지식을 가르쳤지만 삶의 기본기는 가르치지 않았다.

 

임홍택의 1로 서기를 읽는 내내 "그 시절 이런 조언을 해주는 선배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서재를 맴돌았다. 90년생이 온다로 세대의 문법을 읽어온 저자는 이제 막 야생 같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인생 1회차들을 향해 다정한 생존 지도를 건넨다. 커리어, 재정, 관계, 위기 대처, 생활 기술까지 자립에 필요한 다섯 가지 기본기를 촘촘하게 담아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 사회는 구조적 모순을 외면한 채 요즘 세대에게 여러 부정적인 꼬리표를 붙여왔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생존 규칙을 가르치지 않았다. 이 책의 미덕은 거창하지 않다는 데 있다. 업무 메일 한 통 쓰는 법부터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먼저 시작하는 법까지, 누구나 겪지만 아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현실의 문제들을 다룬다. 전세 사기를 피하기 위해 등기부등본을 확인하는 법, 직장 내 괴롭힘에 맞서 객관적 기록을 축적하는 방법, 빌런에게 맞서기보다 거리를 두라는 현실적인 조언은 청춘들의 삶을 지켜줄 강력한 방패가 된다.

 

가족을 떠나 자취방의 문을 여는 순간 원래 지닌 강점과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듯, 독립은 한 인간의 생활력을 시험하는 엄격한 필터다. 이 필터 앞에서 저자는 더 빨리 성공하는 법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법을 먼저 가르친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고 운이 따르지 않는 순간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남보다 앞서는 속도가 아니라 끝내 자기 몫을 해내며 땅을 딛고 서 있는 힘이다. 결국 ‘1로 서기란 남보다 앞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실패와 흔들림 앞에서도 자기 몫의 삶을 끝내 감당하는 일이다.

 

경력의 황혼에서 34년 차 교사로 서 있는 내게 이 책은 서툴렀던 과거에 대한 회고이자, 교단에 첫발을 내디딘 젊은 교사들을 위한 안내서다. 어깨너머로 배우고, 실수하며 익히고, 눈치껏 적응해야 했던 외로운 시간을 이 책은 조용하고 친절한 언어로 어루만진다. 초등학교 2학년이 1학년의 손을 잡아 주듯, 겨우 한 걸음 먼저 걸어본 사람이 뒤돌아 손을 내미는 마음이 이 책에는 가득 담겨 있다.

 

인생 1회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화려한 훈수가 아니라 기본기다. 1로 서기는 그 기본기를 가장 현실적이고 다정한 언어로 전하는 책이다. 이 다정한 생존 지도가 청춘들에게는 든든한 길잡이가 되고, 선배들에게는 후배에게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깊은 울림으로 남을 것이라 믿는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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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의 뇌과학 - 뇌과학으로 설계하는 22가지 집중력 극대화 솔루션 쓸모 많은 뇌과학 7
가바사와 시온 지음, 이은혜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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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이 부족한 사람은 의지가 약하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이렇게 믿어 왔다. 뇌과학자이자 정신과 전문의 가바사와 시온의 집중의 뇌과학은 이 오랜 통념부터 정면으로 뒤집는다. 집중력을 결정하는 것은 정신력이 아니라 전두엽의 상태와 뇌 호르몬의 분비라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끊임없는 알림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전두엽은 매 순간 비명을 지르고 있다. 저자는 집중력이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생체 리듬과 호르몬을 다스려 얻어내는 훈련된 시스템이라고 단언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집중력을 단순한 팁이 아닌 입력-출력-회복이라는 순환 설계로 다룬다는 점이다. 단기 기억을 처리하는 뇌의 작업 기억(RAM) 공간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저자는 우리의 주의력을 통제하는 망상활성계(RAS)부터 90분 집중의 초일주기 리듬까지, 복잡한 뇌과학적 개념을 일상의 언어로 친절하게 풀어낸다. 오전에 뇌가 맑을 때 고도의 집중 업무를 배치하고, 오후의 비집중 업무를 분리하여 뇌의 부하를 줄이는 집중도 기반 투두리스트는 뇌의 처리 용량을 고려한 현실적인 시스템이다. 항목당 최대 3개로 제한하고 완벽보다 빠른 완성을 추구하는 출력의 법칙은 생산성을 극대화한다.

 

다만, 이 책은 정교한 과학적 메스로 무장했음에도 대중 실용서가 가진 본질적인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한다. 저자의 솔루션이 지나치게 개인의 철저한 자기통제와 행동 교정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교대근무자나 돌봄 노동자처럼 생활 리듬을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스마트폰 사용을 하루 두 시간 이하로 줄이라는 제안은 현실의 장벽이 높다. 거시적 노동 환경의 모순을 소거한 채 모든 문제를 자기통찰력 부족으로 환원하는 태도는 독자에게 또 다른 부채감을 지울 위험이 있다. 이러한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가치가 쉬이 바래지 않는 이유는, 저자가 던진 설계도를 각자의 삶에 맞게 변형하여 적용하는 주체적인 몫이 결국 독자의 몫임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6월 한 달 동안 거대한 인문학과 역사의 격랑을 헤쳐오며 숨 가쁘게 지적 영토를 확장해 온 나에게, 이 책은 분열된 에너지를 한곳으로 정렬하는 완벽한 마침표가 되어주었다. 망치를 내려놓고 다양한 도구를 쥐었다면, 이제는 그 도구들을 날카롭게 벼려내어 목표를 향해 정확히 내지를 차례다. 결국 집중력은 버티는 의지가 아니라 설계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무너진 주의력의 방패를 다시 세우고, 다가올 하반기의 문을 압도적인 몰입으로 열어젖히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명징한 설계도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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