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엔진 너머의 미래 - 누가 자동차 산업의 패권을 차지할 것인가
안병기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2021년, 새 차를 구입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이게 내 인생 마지막 내연기관차겠지.” 전기차의 시대는 자연스럽게 도래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2025년 지금, 그 확신은 흔들리고 있다. 테슬라 신화는 빛이 바랬고, GM과 포드는 전기차 계획을 축소했으며, 오히려 하이브리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엔진 너머의 미래는 바로 이 혼란스러운 질문에 답해 주는 책이다. 모빌리티 엔지니어이자 자동차 산업 전략가인 안병기 박사는 전기차 전환을 단순한 기술 진보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 정책, 소비자 심리, 국제 정치가 동시에 얽힌 산업 구조의 재편 과정으로 분석한다.

책은 놀라운 역사적 장면으로 시작한다. 1900년대 초 미국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 10대 중 4대가 전기차였다는 사실이다. 헨리 포드의 아내, 에디슨, 록펠러 역시 전기차를 탔다. 그러나 배터리 기술의 한계와 내연기관의 비약적 발전, 대량생산 체계의 등장 속에서 전기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저자는 우리가 지금, 120여 년 전과 유사한 전환점에 서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통찰은 전기차의 성패가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배터리 가격, 충전 인프라, 화재 안전성, 전력 공급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정부 보조금 없이 산업이 자생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에 미·중 갈등, 유럽의 중국 전기차 견제 같은 지정학적 변수까지 더해지면, 캐즘의 기간은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전환의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둘러싼 조건들이라는 진단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래서 저자는 ‘속도’보다 ‘타이밍과 포트폴리오’를 강조한다. 테슬라는 앞서 있지만 수익성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고, GM과 포드는 막대한 투자에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도요타와 현대차그룹은 하이브리드를 중심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소비자의 마음을 얻지 못한 전환은 지속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은, 지금의 시장 상황을 정확히 꿰뚫는다.
책의 백미는 7~8장이다. 저자는 미래 자동차 패권의 핵심이 더 이상 엔진이나 모터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배터리 기술력, 자율주행 알고리즘, 데이터와 소프트웨어를 지배하는 능력, 즉 SDV(Software Defined Vehicle)가 진짜 승부처다. 전기차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만회할 수 있지만, SDV 경쟁에서 뒤처지면 산업의 주도권 자체를 잃게 된다는 경고는 묵직하다.

교실에서 미래 산업을 이야기할 때마다 느끼지만,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을 맞히는 예측’이 아니라 이렇게 복잡한 전환기를 읽어내는 판단 기준이다. 『엔진 너머의 미래』는 전기차의 성공을 예언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이 제공하는 것은 미래를 바라보는 기준이다. 무엇이 옳은지를 선언하기보다, 지금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전기차 시대는 끝난 것이 아니라, 현실의 조건 속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다. 다음 차를 무엇으로 살지 고민하는 평범한 소비자부터, 산업의 방향을 고민하는 이들까지. 격변의 시대에 길을 잃고 싶지 않다면, 이 책은 가장 신뢰할 만한 안내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엔진너머의미래 #안병기 #흐름출판 #전기차캐즘 #미래산업읽기 #자동차산업전략 #기술과정치 #책읽는샘 #함께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