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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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어떤 장소를 지워야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소설은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영두는 창경궁 대온실 보수공사의 '수리 보고서'를 맡게 되지만, 그 공간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이미 고통이다. 과거를 견디기 위해 특정 장소를 지워왔던 사람에게, 다시 그곳을 들여다보는 일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다. 그것은 망각으로 버텨온 삶을 뒤흔드는 일이다.

 

작품은 현재의 보수공사와 일제강점기 대온실 건립 과정을 교차시키며 서사를 밀어붙인다. 대온실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제국주의의 흔적이자, 여러 시대를 지나며 의미가 뒤틀린 채 살아남은 '생존자' 같은 공간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발견된 흔적은 이야기의 방향을 바꾼다. 땅 밑에 묻혀 있던 것은 단지 과거의 잔해가 아니라, 지워지지 않은 역사와 개인의 상처였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수리'는 건축의 문제가 아니다. 균열을 덮는 일이 아니라, 그 균열이 왜 생겼는지 끝까지 따라가는 일이다. "묻어버리면 전체를 알 수 없다"는 문장처럼, 상처를 외면한 채 진행된 복원은 결국 또 다른 붕괴를 낳는다. 이는 개인의 삶도 다르지 않다. 지우고 싶은 시절을 통째로 밀어내며 살아왔던 인물들이 결국 다시 그 기억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는 교실에서 아이들을 보며 비슷한 생각을 자주 한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누구 하나 균열 없이 서 있는 아이는 없다. 그 균열을 덮으려 할수록 더 불안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수리는 낯설지 않다.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다.

 

그 기억의 중심에 문자 할머니가 있다. 현대사의 거친 파고 속에서 평생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품고 살아온 인물. 영두가 그 비밀을 따라가는 과정은 타인을 이해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린 산아의 말처럼, 역사는 좀처럼 해피엔드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인상적인 것은 이 작품이 끝내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처를 겪은 사람들은 여전히 누군가를 믿으며 살아간다. 믿어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슬픔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관계와 회복의 가능성을 놓지 않는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덮고 나면 한동안 걷고 싶어진다.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그런 일이기 때문이다.
멈춰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아프지만, 그래도 끝내 따라가야 하는 것.

 

#대온실수리보고서 #김금희 #창비 #역사소설추천 #기억과망각 #상처와회복 #책읽는샘 #함께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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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 패스트 트랙은 공정할까? - 공정과 정의 질문하는 사회 14
오찬호 지음, 원혜진 그림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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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 패스트 트랙은 공정할까?’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당연히 불공정하지.” 그런데 곧 멈췄다. 왜 나는 그것을 당연하다고 느꼈을까. 오찬호가 청소년을 위해 쓴 이 신간은, 바로 그 당연함을 의심하게 만드는 데서 출발한다.

 

책에서 가장 오래 머문 대목은 패스트 트랙 사례였다. 저자는 비행기 퍼스트클래스 우선 탑승과 놀이공원 패스트 트랙을 나란히 놓는다. 겉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결정적으로 다르다. 비행기에서는 누군가 먼저 타도 내 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놀이공원에서는 다르다. 누군가 돈으로 줄을 건너뛰는 순간, 나의 기다림은 그만큼 늘어난다.
한 사람의 선택이 다른 사람의 기회를 줄이는 구조 속에서,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소비의 문제가 아니다.

 

읽기 전의 나는 공정을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이해했다. 열심히 한 사람이 더 가져가는 것, 그것이 공정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달리기 비유 하나가 생각을 흔들었다. 출발선이 다르고 트랙 상태가 다른데 결과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공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과 구조의 문제라는 사실을 이 책은 집요하게 드러낸다.

 

이 책은 총 40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닌가?”, “~잖아?”로 끝나는 문장들은 독자의 동의를 자연스럽게 끌어낸다. 그러나 저자는 그 동의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 하나씩 흔들고, 뒤집고,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정답을 주지 않고,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가게 하는 힘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쓰였지만, 오히려 어른에게 더 필요한 책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판단을 당연하다는 감각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감각이 얼마나 쉽게 만들어지고, 또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토론 수업을 준비하는 학생, 공정에 대해 고민하는 청소년, 그리고 그 기준을 가르치는 교사와 부모에게 이 책을 권한다. 서로 다른 답을 내놓는 그 과정 자체가 이 책이 의도한 배움이기 때문이다.

공정은 하나의 답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해야만 유지되는 기준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놀이공원패스트트랙은공정할까 #오찬호 #나무를심는사람들 #공정과정의 #청소년인문 #책읽는샘 #함께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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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거리 내게 말을 건다
박성주 지음 / 담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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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뭐라고 생각해요?”
직장 후배의 물음에 나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여행이지 싶다.”

 

그 대답이 얼마나 진지한 것이었는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박성주 작가의 낯선 거리 내게 말을 건다는 여행 에세이이지만, 읽는 내내 자꾸 내 인생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이다.

 

저자는 묻는다. 여행을 떠나야만 여행일까요?”
이 질문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마닐라, 오사카, 다낭을 거치는 1장부터 태백과 해파랑길, 강원도의 국내 여정을 담은 2장까지 저자가 찾는 것은 유명 관광지가 아니다. 3,000엔짜리 게스트하우스, 편의점 도시락, 크록스를 신고 걷는 골목. 여행은 화려할수록 좋다는 통념을 조용히 내려놓는다.

 

특히 마음에 남은 구절이 있다.
글자는 읽히지 않고 눈은 종이 위 햇빛에 머무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그 순간이 가장 깊은 여행이라는 것을, 저자는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 여행은 결국 어디를 갔느냐보다 어떤 시선으로 시간을 보내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3오십일곱 번째 여행에서는 여행의 의미가 한 번 더 확장된다. 장소가 사라지고 삶의 장면들이 등장한다. 일곱 살의 기억, 딸의 여행 가방, 그리고 가족의 시간들. 그 순간 독자는 깨닫게 된다. 삶의 장면들 자체가 이미 여행이었다는 사실을.

 

4장에서 저자는 여행과 글쓰기를 잇는다.
글쓰기는 또 다른 여행이다.”
생각해 보면 이 책 역시 하나의 여행이다. 독자는 저자의 골목을 함께 걷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골목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책의 마지막은 이 문장으로 수렴된다.
큰 꿈을 꾸는 게 아니다. 겨울이니 골목마다 쌓인 질퍽한 눈을 밟고 싶다. 그뿐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그뿐이어도 충분하다.

이 책이 건네는 위로는 그런 종류다. 지금 당장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사람에게, 그리고 이미 충분히 여행 중인 자신의 삶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사람에게 조용히 권하고 싶은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낯선거리내게말을건다 #박성주 #담다 #여행에세이 #인생은여행 #책읽는샘 #함께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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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멸종 -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
크리스틴 로젠 지음, 이영래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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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64%가 투표권보다 소셜 미디어를 선택하겠다고 답했다. 이 한 줄의 통계가 책의 문을 여는 순간, 독자는 이미 저자가 던지려는 질문의 무게를 감지하게 된다. 문화 비평가이자 역사학자인 크리스틴 로젠은 이 책에서 기술 비판을 넘어 훨씬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경험들이 하나씩 사라져갈 때, 우리는 무엇이 되는가.

 

책은 대면 소통, 손 글씨, 기다림, 감정, 쾌락, 공간이라는 여섯 가지 경험 영역을 차례로 해부한다. 구조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다. 몸의 감각에서 출발해 공동체의 소멸로 끝나는 이 여정은, 기술이 단순히 편의를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 존재의 층위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로젠이 가장 예리하게 포착하는 것은 매끄러움의 역설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약속하는 자동적이고 수월하며 매끄러운세계는 실은 실패와 마찰을 제거한 세계다. 그런데 바로 그 실패와 마찰이 인간을 형성하는 핵심 재료였다. 지루함을 견디는 능력, 낯선 길에서 길을 잃는 경험, 상대의 얼굴을 보며 말로 하지 않은 감정을 읽는 일. 이것들은 불편하지만 우리를 우리이게 만드는 것들이다. 시몬 베유의 말처럼 관심은 가장 희귀하고 순수한 형태의 관대함인데, 우리는 그 관대함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철학자 로버트 노직의 쾌락 기계사고실험은 책의 논지를 가장 선명하게 압축한다. 기계에 연결되었다는 기억 없이 무한한 쾌락을 느끼게 해주는 기계가 있다면 연결하겠는가. 대부분은 거부한다. 우리는 경험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 직관이 바로 로젠이 지키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교실에서 학생들을 바라보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치고 있지만, 정작 세상을 직접 경험할 기회를 점점 줄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화면을 통해 세상을 보는 일에 익숙해질수록 현실의 마찰과 불완전함을 견디는 힘도 약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기술 비관론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경험의 멸종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이다라고 말하며 개인의 각성을 넘어 공동체의 집단적 대응을 촉구한다. 혼란을 제거하는 것이 진보가 아니라, 혼란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능력이 인간다움이라는 역설. 이 책은 그 역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AI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묻는 시대에 이 책은 오히려 다른 질문을 던진다.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추는 일, 어쩌면 그것이 인간다운 삶을 지키기 위한 첫 번째 저항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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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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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는 이상하게 조용한 소설이다.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우연히 영문학을 만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죽는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사실 그게 전부다. 화려한 성공도, 극적인 사건도 없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면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게 된다.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 남기 때문이다.

 

스토너는 자신의 인생을 거창하게 돌아보지 않는다. 과거를 곱씹으며 후회하거나 미래를 계산하며 살아가지도 않는다. 그저 눈앞에 놓인 일을 묵묵히 감당하며 살아간다.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그의 삶은 성공과 거리가 멀다. 학문적 명성을 얻은 것도 아니고, 가정 역시 평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토너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흔들리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다.

 

이 소설이 1965년 출간 당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가 수십 년이 지나 유럽 독자들에 의해 재발견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성공과 성취의 서사가 지배하던 시대에 스토너의 삶은 지나치게 소박하고 패배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끊임없이 경쟁하고 평가받는 피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의 삶은 오히려 더 깊이 다가온다. 성공하지 못한 삶도 존엄할 수 있는가. 이 소설은 그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던진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자꾸 아버지를 떠올렸다. 사회적인 기준으로 보면 특별히 성공한 삶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며 묵묵히 살아오신 분. 화려하지는 않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삶의 태도 말이다. 스토너의 삶이 실패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끝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려 했기 때문이다. 그 태도 하나가, 조용히 빛난다.

 

존 윌리엄스의 문장은 절제되어 있고 담담하다. 감정을 과장하지도, 인생의 의미를 크게 설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담담함 속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이 흐른다. 스토너가 작은 성취를 얻는 순간에도 독자가 묘한 처연함을 느끼는 이유는, 작가가 그를 끝까지 이해하고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선은 자연스럽게 독자에게도 전해진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어 생각한다. 하지만 스토너를 읽고 나면 다른 기준이 떠오른다.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높이 올라갔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삶을 끝까지 지켜냈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화려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끝까지 살아가는 것. 이 조용한 진실을 말해주는 소설이 바로 스토너. 책을 덮고 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조금씩 스토너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토너 #존윌리엄스 #RHK #인생소설 #책읽는샘 #함께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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