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범우 사르비아 총서 638
헤르만 헤세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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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2.  14. ~ 2008.  2.  19.

중학교 2학년때 선생님의 권유로 몇 번 읽어보기는 했으나 그다지 뚜렷한 감동이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다시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언젠가 TV드라마에서 어떤 학생이 데미안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유난히 기억에 많이 남기도 했던 그 장면을 보면서 내 지적 수준은 데미안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지도 못할 만큼 수준 이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이제 내 나이 36살이니까... 나름대로 이젠 데미안을 이해할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여러 해 미루어 두었던 데미안을 다시 읽어 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

긴 호흡으로 차분하게 읽어내려갔지만, 그다지 큰 감명은 느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는 데미안에 감명을 느끼기엔 철학적 사고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

내가 재미를 느낀 부분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중학교 2학년 시절에 느꼈던 그 부분과 일치했는데, 데미안의 초반부분 곤경에 빠진 싱클레어를 돕는 데미안의 스토리까지이다.

조금 나아진 점이 있다면, 중반까지는 나름대로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 그러나, 여전히 중반 이후부터는 솔직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10대 후반의 청소년들이 하기에는 너무 수준이 높은 철학적 대화가 오가는 것도 좀 이해하기 힘들고, 싱클레어와 에바 부인 사이에 오가는 어색한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내가 이 소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사소한 부분에 집착함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소설의 주제나 작품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 아니 내가 능동적으로 알았다기 보다는 피동적으로 알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것 같다 ─ 눈물을 흘릴 만큼의 감명은 내 가슴 속으로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좀 서글픈 일이다.

좀 더 독서의 내공을 쌓은 후 데미안에 다시 도전을...

독서에 지장은 없긴 하지만 몇 군데에 등장하는 오자, 탈자, 잘못된 맞춤법 등이 눈에 거슬렸고, 번역이 자연스러운 곳도 있고 어색한 곳도 있어서 좀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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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권창은 외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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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2.  3. ~ 2008.  2.  13.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그에 대해서 내가 무엇을 알고 있을까?

기껏해야 그가 플라톤의 스승이라는 것, 그의 후원자 크리톤, 독배, 악법도 법이다, 그의 악처였다는 크산티페(과연 악처였을까?) 정도가 내가 아는 단편적인 지식들이다.

사실 소크라테스 철학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흔히 소크라테스를 서양철학의 시조 내지 형이상학의 시조라고 하지만, 그의 철학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모를 뿐더러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다만, 학창시절부터 뇌리에 남아 있던 구호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소크라테스가 했다라는 교육을 받았을 뿐이고, 그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에 대하여 고등학생때까지는 의문을 가졌으며, 법대 법철학 강의시간때 소크라테스가 그런 말을 만약 했다면 실질적 법치주의 시대인 현대에서는 인용해서는 안될 말이며 논리모순이라는 강의를 들었다.

이 논문에서는 소크라테스는 결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 플라톤의 저작인 <크리톤>과 <소크라테스의 변명> 등을 분석하고, 국내외 여러 학설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들의 위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한 과잉의욕이 오히려 독이 되어 결국 소크라테스가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으나 그렇게 해석될 만한 말은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권창은 교수는 <크리톤>을 분석하면서 결국 소크라테스를 사형으로 몰고간 불경죄에 관한 법은 악법이 아니고 배심원들의 잘못된 재판이 문제이며, 소크라테스는 인격화된 아테네 법과의 대화를 통하여 잘못된 재판이라도 그것이 법의 효력을 지지해주는 버팀목이기 때문에 그러한 법의 효력을 지키기 위해 탈옥하지 않았다라는 좀 이상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결국 권창은 교수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실체법이 아니라 절차법을 지키기 위해 탈옥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수긍하기 어려웠다.

특히 저자들이 법조계와 법철학 학자인 라드부르흐의 소크라테스 법사상에 대하여  비판한 부분에 대해서는 저자들이 법학분야를 전공하신 분들이 아니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라드부르흐 저서의 전후맥락을 파악하지 않은 채 저자들이 맘에 들지 않는 부분만 들춰 내어 비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악법과 법>을 논하기 전에 과연 "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대체로 법철학계에서는 <악법>이라는 단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데, 법의 성질과 효력에 관한 법철학적 논의를 이해하면 "법"앞에 "악"을 붙이는 것은 논리모순임을 알 수 있다.

즉 악법은 법일 수가 없으며 법이 아니기 때문에 준수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준수할 것을 강요당하면 시민불복종권 행사의 대상이 될 뿐이라는 것이 법학계의 논리이다.

물론 나보다야 더 대단하신 분들이겠지만, 저자들이 법철학과 헌법학에서의 관련 주제에 대해 조금 더 세심하게 고찰했다면 하는 생각을 감히 해봤다.

한편, 소크라테스의 후원자였던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 비해 상당히 저평가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과연 크리톤이 그렇게 후세 사람들로부터 저평가를 받아야 할 만큼 무능하고 무지한 사람인가? 하는 의구심도 생겼다.

소크라테스가 탈옥하지 않은 이유는 혹시 자신이 70세까지 장수를 하여 살만큼 살았고, 이것 저것 귀찮기도 하고 하여 독배를 마신 것은 아닐까 하는 단순한 생각도 해봤다.

마지막으로, 논문의 문체가 너무 산만하고 장황한데다가 간혹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문장도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그나마 정치학 교수인 강정인 교수의 논문은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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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4 - 율리우스 카이사르 (상)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4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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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  21. ~ 2008.  2.  2.

만약 카이사르가 지금 살아 있다면, 본인이 주인공인 <로마인 이야기 4권>을 읽은 후 뭐라고 평을 했을까?

아마도 카이사르는 나나미에게 "뭐야 이거! 내 작품을 그대로 가져다가 풀과 가위로 오려붙여 만든 거 잖어?"라고 비아냥거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 "풀과 가위"란 표현은 몇 년전에 서울대 법대 양 아무개 교수가 사법시험잡지에서 민법교과서(사실은 교과서라고 할 수도 없지만)의 베스트셀러인 연대 법대 김 아무개 교수의 <민법강의>를 "남의 연구성과물을 풀과 가위로 오려 붙여 만든 쓰레기"라고 힐난하던 표현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를 먼저 접했는데, <로마인 이야기 4권>의 상당부분은 갈리아전기를 그대로 따 온 것이었다.

그나마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에서는 번역자(김한영)가 원문의 잘못된 부분과 연구자들의 잘못된 해석, 카이사르의 이면 의도 및 과장된 표현 등을 적절하게 지적해 주어 균형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나나미의 카이사르에 대한 사랑이 너무 지나쳐 카이사르를 絶對善으로 묘사하여, 이 책을 읽으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작가의 자질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정도로 유치하다고까지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렇게 일방적 사랑이기 때문에 독자가 속 시원하게 읽을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것저것 생각하게 만들면 골치만 아플 터이니... 바로 이 점이 베스트셀러가 된 요인이 아닐까 싶으나, 과연 서울대에서 권장한다는 100권에 포함될 만한 책인가는 의문이다.

<로마인이야기 4권>을 읽다보면 지도자가 공익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저자의 논리가 카이사르의 행태를 빌려 교묘하게 세뇌되고 있다. 또한 저자의 일반 국민에 대한 폄하적인 사상, 엘리트주의 등이 절묘하게 역사적 사실로 버무려진 채 <로마인이야기 4권>에 녹아 있는 것을 읽으면서 기득권층이나 기업계에서 얼씨구나 좋아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로마의 갈리아 지배와의 관계를 논한 대목에서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과거 식민지지배에 대하여 감사하지 못하고 쫑알쫑알댄다고 비아냥거리는 듯 암시하는 대목이 있어 완전 기분 잡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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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아 전쟁기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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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1. 16. ~ 2008.  1. 21.

작년부터 시작했던 로마인이야기를 어떻게 해서든지 완독해 볼 요량이다.

사실, 로마인이야기 3권을 너무나도 재밌게 읽었다.

그런데, 저자의 의도대로 그저 재밌게, 그리고 무비판적으로 읽었다가는 저자의 로마편애주의 및 제국주의 사상에 나도 모르게 동화되어 버릴 것 같다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나름 생각해 낸 것이 로마인이야기 각 시리즈를 읽기 전에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를 해당시리즈에 대응하는 장마다 먼저 읽어보는 방안이었으나, 이것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각 시리즈에 대응하는 대표적인 저서를 먼저 읽어보기로 정했는데, 로마인이야기 4~5권이 카이사르 이야기이므로, 4권을 읽기 전에는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를, 5권을 읽기 전에는 카이사르의 내전기를 먼저 읽어 보기로 했다.

대학다닐 때 2학년때인가 전공교양과목으로 "라틴어"를 수강했었다. 당시 라틴어 강독교재가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때의 배웠던 몇몇 문구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무튼 그 때의 기억으로도 라틴어 원서인 갈리아 전기는 매우 간결하고 해석도 쉬웠던 것 같았다.

카이사르 만큼 역사가나 일반인들 사이에서 꾸준하게 회자되는 인물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역사에 남긴 족적이 크다는 반증이겠지만...

갈리아 전기를 읽으면서, 비록 번역서이긴 해도, 참 잘 썼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군더기기 없는 간결한 문장이며, 전달력이 빼어난 사건묘사는 단연 일품이었다.

전쟁기이면서도 각 피정벌민족의 문화와 풍속에 대해서 관심을 둔 점을 보아도 카이사르가 비범한 인물이 아님을 보여 주는 것 같으니, 요새로 말하자면 종합교양인이라고나 할까?

카이사르 자신이 저술한 전쟁기이니 만큼 피정벌민족에 대하여는 드러내놓고 내려다 보는 내용이긴 하나 그다지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은 참으로 묘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카이사르가 생각한 갈리아가 오로지 진실만은 아닐 것이라 본다. 어차피 역사란 승리자의 영역이니...

이 책은 무엇보다도 번역자의 적절한 해설주석이 돋보이는데, 원전의 오류나 당시 배경의 해설이 이 책을 재밌게 읽게 했던 감초역할이었다.

번역자는 이 정도의 역할까지 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자는 제2의 저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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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과 참고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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