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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ㅣ Mr. Know 세계문학 5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 2008. 2. 19. ~ 2008. 3. 9.![](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60024174359138.jpg)
크리스챤들이 지탄해 마지 않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의 작가 카잔차키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라는 소설의 내용은 잘 모르지만, 나도 비록 크리스챤이긴 하나, 자만심과 독선에 빠져 있고 도대체가 본이 되지 않는 무리들인 한국의 크리스챤들의 분노를 사고 있는 소설을 썼다라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관심을 끌 만한 작가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대학생때부터 읽고 싶은 소설목록에 항상 있었지만, 평범하면서도 범상치 않은 제목에 쉽사리 범접할 수 없어 매년 미루어 놓기만 하다가 드디어 책장을 펴보게 된 것이다.
작가가 러시아 사람이었다면, 도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콜린 윌슨의 격찬이 책 뒷표지에 쓰여져 있는 것을 보고,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일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20여일에 육박하는 기나긴 시간 동안 이 책을 읽고 나서 - 물론 내가 책을 읽는 시간은 출퇴근할 때 뿐이지만 - 느낀 점은 결국 인생을 망나니처럼 살았던 노인과 사업하다 망한 이야기를 뭘 이렇게 길고도 지루하게 썼는지.. 하는 것이었다.
이 소설을 떠 받드는 사람들에게는 분노를 살만한 후기겠지만, 나와는 그다지 궁합이 맞지 않는 소설이다.
도대체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이다"라는 명제가 과연 성립하는 것일까?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고, 조용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인생에 부침이 많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사람이 한 번 태어나서 한 번 죽는 것이라면, "이런 삶이 정답이다"라고 과연 누가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으며, "이런 삶이 정답이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좀 웃긴 얘기 아닐까?
물론, 나는 이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이 소설의 화자가(아마도 작가) 고민하는 것들에 대해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기는 했다. 그러나 실존인물이라는 '조르바'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남자들끼리 농반진반 얘기하는 '남자들의 로망'이 아닌가 하는 우스개소리로 치부할 수는 있겠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조르바의 그런 삶의 태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느낌이 매우 강했고, 거부감 마저 느끼기도 했다.
진정 조르바의 삶이 '자유로운 삶'라는 이름으로 미화될 수 있을 만큼 카잔차키스가 동경할 만한 것이었을까? 조르바처럼 인생을 자기 멋대로, 남이야 상처를 받거나 말거나 내 욕정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책임감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 따위는 부셔버려야 할 족쇄로 취급하는 것이 과연 자유로운 삶인지는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극찬하는데, 왜 나는 별 다른 감동이 없는 것일까. 나는 그냥 법학서적이나 추리소설, 판타지 소설이나 읽어야 할 팔자인가..
번역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역자이신 이윤기 교수님이야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감히 지적하기가 좀 그렇지만, 문장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곳이 많은 편이다.
물론, 역자께서 관형어나 부사어 등을 선택함에 있어서는 나 스스로 감탄이 나올만큼 번역서 가운데 상당히 수준급에 속하는 것 같기는 한데, 문장을 좀 더 자연스럽게 물흐르듯이 번역해 주셨다면 더 훌륭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