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튀데모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6
플라톤 지음, 김주일 옮김 / 이제이북스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2008. 3. 26. ~ 20008. 4. 6.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현관 기둥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글귀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우리들의 가장 큰 오해는 뭐니 뭐니 해도 그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굳건히 믿는다는 것이 아닐까?

사실, 소크라테스가 서양철학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으며,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소크라테스가 남겼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 때문에 이미 나의 마음속에서는 소크라테스에 대하여 ‘형식논리적이고, 말장난을 일삼는 소피스테스-여태까지 ‘소피스트’로 알고 있었으나, ‘소피스트’는 영어식 표기이며, ‘소피스테스’는 옛 그리스어 음사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우회적으로 알게 되었다-와 별다를 것이 없는 철학자’정도로 평가절하된 상태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이러한 오해는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라는 책을 읽은 뒤에도 그다지 개선되지는 않았는데, 저자들의 전달력 부족과 논리의 오류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비록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해석될 만한 말은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혹만 오히려 증폭될 뿐이었다.

그런데, ‘에우튀데모스’를 읽고서 소크라테스에 대한 나의 편견은 오해였음을 깨닫게 되었으니, 무지에 대한 충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에 소크라테스가 커다란 충격을 받은 이유를 어렴풋이 알 듯하다.

소크라테스는 에우튀데모스와 디오뉘소도로스 같은 소피스테스들의 논쟁술이 무익한 것임을 그의 아이러니한 행동과 대화로서 지적하고 있는데, 에우튀데모스와 디오뉘소도로스 같은 자들은 지금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 점을 보면, 2400년전에 벌어졌던 대화임에도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소크라테스의 지적-지식이란 습득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습득된 지식을 옳게 사용하여야 참된 지식이다-은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 이런 것을 두고 ‘溫故而知新’이라 하는가 보다.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이 자식의 교육문제에 대하여 조언을 구할 때 ‘철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쓸모 있든 쓸모 없든 상관하지 말게’라고 말한 대목이 있는데,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테스들을 공격하면서도 이들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소크라테스는 궤변론을 연구하여 상업화하는 소피스테스라 할지라도 참된 지혜를 연마할 수 있는 상대역으로서는 쓸모있는 존재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나의 해석이 맞는다면 소크라테스는 ‘학문의 자유’를 주장한 최초의 철학자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듯 싶다.

에우튀데모스와 디오뉘소도로스의 말도 안되는 궤변을 읽으면서 도대체 이해도 안가고 매우 짜증이 났지만(이로 인해 이 책을 3번이나 읽어야 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현대판 에우튀데모스와 디오뉘소도로스에게 한 수 가르쳐 줄 현대판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닌지.

한편 나 자신도 에우튀데모스와 디오뉘소도로스처럼 내 상황에 따라 모순된 주장을 하지는 않는지,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이 다른 적은 없는지, 지식도 없으면서 아는 척을 하지는 않는지, 논쟁을 통해 자가당착에 빠진 적은 없는지, 이 책을 통해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고전읽기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비교적 얄팍하고 그나마도 주석과 해설이 절반을 넘게 차지하는 책이지만, 번역작업에 얼마나 심오한 정성을 들였는지 느껴질 정도로 만족감이 매우 높았다. 일어판 또는 영어판을 중역한 것이 아니라 역자가 직접 연구하고 텍스트 자체를 완전히 소화한 상태에서 작업을 하여 마치 ‘번역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훈수하는 것 같았다.

나 자신 나름대로 꽤 많은 책을 읽어왔다고 자부하는 바이나, 이처럼 완벽에 가까운 인문학 번역서를 접해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근래 들어 선택한 책 중에 단연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체불명의 실용주의가 판을 치면서 이른바 ‘돈 되는 학문’에 밀려 그 존재마저 위태로운 인문학 초토화 위기의 시대에 남들이 알아주거나 말거나 묵묵히 기초학문의 기반을 닦아 주시는 이 책의 역자와 같은 학자들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청소년을 위한 권장도서는 바로 이런 류의 책이지 제국주의와 엘리트주의를 세뇌시키는 로마인이야기 따위가 아닐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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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erver 2008-05-16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서평 감사합니다. 잘 읽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