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에떼 - 문화와 정치의 주변 풍경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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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 군대에 가기 전까지 독서를 해본 적이 없었다. 읽고 싶은 책을 사기 위해 자발적으로 서점에 간 적이 없다는 의미다. 동시에 군대에선 독서를 제대로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당시에 독서의 즐거움을 깨닫고 가리지 않고 많은 책을 읽었었는데, 특히 유명한 논객들의 책을 많이 봤다. 홍세화, 진중권, 박노자, 강준만, 고종석 등의 책을 주로 읽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날 키운 8할은 그 때 읽은 책들의 저자들이다. 그 중 고종석은 특히 각별하다. 복거일이 고종석에게 개인의 자유를 알려준 스승이라면 내겐 고종석이 집단의 무서움을 알려준 스승이기 때문이다. 집단주의에 둘러싸인 한국 사회에서 독서 한 번 안 하며 사회가 일러준 길을 충실히 따라온 나였다. 그랬던 내가 당시 고종석의 <서얼단상>, <자유의 무늬>등을 읽으며 여성, 동성애자 등 소수자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권이란 단어도 그 때 처음 알게 되었다. (물론 중학교 사회시간에 천부인권을 배우긴 했지만, 당시 인권과 천부인권은 다른 것이라 생각했다.)
 

한국일보도 안 보고 그가 낸 언어관련 서적엔 별 관심이 없었던지라 고종석을 잠시 잊고 살았다. 그리고 얼마 전 고종석의 <바리에떼>를 읽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난 잠시나마 군대로 되돌아 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고종석의 생각 구석구석에 숨어있던 군 시절의 추억들이 <바리에떼>를 통해 뿜어져 나온 것이다.(지금도 난 그 당시 읽었던 진중권의 <엑스리브리스>나 홍세화의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박노자의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등을 보면 군 시절의 추억에 사로잡힌다.) 고종석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받았던 충격과 열정도 떠올랐다. 내 안에 있던 기존의 낡은 세상이 아닌, 새로운 세상이 존재함을 알았을 때 느꼈던 충격, 그리고 그 새로운 세상을 내 안에 굳건히 건설하고자 다짐했던 열정을 <바리에떼>속에서 다시금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그의 글을 읽으며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언제 부턴가 내 모든 생각은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진리는 없다는 사실이 진리다’란 말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고 다녔었다. 나는 ‘~주의자'들이 싫었으며 진보나 보수의 가치를 신처럼 숭배하는 이데올로그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네 말도, 네 말도 다 맞다’는 황희정승의 답답한 말을 곱씹으며 모든 교조화된 모든 급진적 운동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여성주의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계급과 인종 문제를 경시했던 초창기 미국 여성 운동가들을 비판하는 식으로 말이다. 단순한 사안이라도 이데올로기에 맞춰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일을 극도로 경계했으며, 진보건 보수건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생각이 그러하다보니 회색분자란 비판도 받고 보수적으로 변했단 이야기도 들었다. 내가 쓴 글을 읽은 한 친구는 ‘네 글은 뭘 주장하려는지 모르겠다.’며 ‘그래서 네 글은 재미가 없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이것도 저것도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식으로 글을 쓰니 글이 너무 약하단 의미였을 게다. <바리에떼>를 읽으며 알게 됐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고종석 때문이었다.  

 
<바리에떼>에 나타난 그의 글들을 보는 순간 알게 됐다. 고종석은 “남한의 일부 운동세력이 북한을 높이 평가하는 바로 그 이유가 내게는 북한을 위험스럽게 보아야 할 이유가 됐다.”며 집단주의(민족주의)를 비판한다. 또 그는 “불확실한 방향으로 치닫는 집단적 열정이 낳을 수 있는 파멸적 결가가 두려웠다”며 교조적 방식의 운동에 의문을 제기한다. “진리에 대한 사랑을 줄이는 것, 열정의 사슬을 자유로써 끊어내고 광신의 진국에 의심의 물을 마구 타는 것”이라고도 한다. 내가 확실한 주장들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된 것은 결국 5-6년 전 고종석이 내게 전달해준 생각 때문이었던 것이다. 내가 하던 고민들은 고종석이란 큰 강에서 흘러나온 지류였던 셈이다.
 
이처럼 난 <바리에떼>를 읽으며 추억에 잠기기도, 또 내 고민의 원류를 발견하기도 했다. 균형을 잃지 말자며, 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이제는 내 정체성을 조금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아마 고종석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S; 하지만 그가 하는 호남 이야기만큼은 수긍하기가 쉽지 않다. 지역주의 공포가 있어서인지 난 ‘호남 민심’어쩌고 하는 말만 들어도 기분이 나빠진다. 결국 지역주의란 근거를 없애기 위해선 호남 민심이란 단어조차 없애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걸 없애는 것이 반드시 호남인의 상처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P.S 2: 복거일의 <죽은 자를 위한 변호>에 대한 그의 반론은 나중에 따로 그에 관한 글을 써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좀 더 고민한 후에.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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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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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 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슨 번개를 맞은 것도 아니었는데, 난 딴 사람이 되어있었다. 중간고사 기간이 한창이던 그 때. 여느 때 같으면 '시험 끝나고 강남역 가서 옷도 좀 사고 노래방도 가고 그동안 못 본 영화도 몰아 봐야지' 라고 생각했을 터인데. 그 땐 '시험 끝나면 밀린 학습지 다 풀어야지' 라는 정신 나간 생각을 했었다. 그 때부터 난 변했다. 고3시절. 정말 공부 밖에 안 했다. 먹고 자고 싸는 시간을 빼곤 공부만 했다. 10분이 아깝던 당시, 6시에 성당 미사가 시작하는 줄 알고 갔다가 6시 15분 쯤, 미사시간이 6시 30분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 그 15분을 견디지 못해 가방에서 문제집을 꺼내 화장실서 공부를 하는 식이었다. 도서관에서 10분 정도 졸면 머리통을 때리며 자학했다. 집에 돌아오며 100% 노력을 하지 않은 스스로를 나무랐다.

 

이런 내 성격이 오늘날의 나를 만든 건 사실이다. 게다가 열심히 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문제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나쳐 강박 증세를 보인다는 사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교수님이 한 달 전에 리포트 과제를 내준다. 그럼 난 그 과제를 받은 날부터 고민한다. 보통 제출 2주전에 과제를 완료하고 퇴고를 거듭한다. 가끔은 과제 제출 후, 중간에 리포트 주제가 바뀌어 미리 한 숙제를 버려야 하는 아픔도 겪었다. (교수도 생각한 거다. 정상인이라면 누가 설마 한 달 뒤 제출할 숙제를 미리 하겠냐.) 노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던지 뭐라도 해라. 그렇게 빈둥거리지 말고' 라며 부모님의 잔소리 거리를 스스로 덜어드리곤 했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책을 읽고 나면 항상 글을 써서 정리해라' '꾸준히 운동해라' '다큐멘터리나 영화도 많이 봐야지' '독서하는 습관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여행도 다니면서 견문을 넓혀라' '신문도 보고 세상에 관심을 잃지 마라' 라고 스스로 명령한다. 잦은 자학 때문인지, 난 내가 내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다는 사실도 잊곤 했다. 항상 긴장을 하며 사는 내 모습, 즉 빡센 모습이 본래 내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난 환자가 됐다. 생산성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환자. 무언가를 생산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자본주의의 완성품. 완성품이 된 결과 남부럽지 않은 학교와 회사에 들어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오십 견에 걸린 듯 딱딱하게 뭉친 내 어깨를 생각하면 어째 이 자본주의 완성품의 삶이 행복해 보이진 않았다.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한다는 행위 자체는 잊을 수 있지만, 채찍에 맞은 상처는 그대로 남는 법이다. 이 생활에는 익숙해졌지만 내 내면은 너무나 힘들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여 의미 있는 것을 산출해내야 한다는 극도의 강박증. 발 한번 뻗고 잠을 자 본적 없는 레옹처럼 나 역시 항상 마음속에 긴장감을 유지한 상태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게 바로 내 병의 원인이었다.
 

환자가 되고 나니, 내 인생에서 즐거움이 사라졌다. 입으로는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처럼 우린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해야 해' 라고 말하며 오직 결과를 향해 과정이란 고행을 겪었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이야기처럼 때론 우리 삶을 돌아보며 느리게 사는 법을 깨달아야 해.'라고 부르짖으며 어떻게 더 완벽한 자본주의의 상품이 될 지를 궁리했다. '레제르의 <원시인>에서처럼 우린 가끔 스스로 억압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내부의 욕망을 인정해줘야 해' 라고 떠들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규제하는 수많은 법안을 만들었다. 결국 내가 읽은 책의 내용은 피곤한 심신을 달래주는 뽕에 불과한 것. 아니, 과도하게 빡센 내 모습을 숨기기 위한 외투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경제상황은 나아졌지만 항상 세상은 위기이기에 개발에 땀나듯 열심히 일해야 하는 샐러리맨처럼, 나 역시 원하는 결과를 얻으면서도 또 다른 결과를 위해 프로테스탄트의 고통스런 금욕과 성실을 스스로에게 강제했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공중그네>에 나오는 수많은 강박증 환자는 전부 내 안에 들어있다.  항상 야쿠자의 가오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다 뾰족한 것을 무서워하게 된 이노세이지처럼, 사회적 상위층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다 자기도 모르게 유치한 장난을 치고 싶어 괴로워하는 이케야마 다쓰로처럼, 최고의 야구선수가 되어야 했고, 그 성공한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다 사소한 송구도 못 하게 된 반도 신이치처럼,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원치 않는 연애소설만 쓰다가 울렁증이 생겨버린 호시야마 아이코처럼 나 역시 강박증의 반대급부로 수많은 비정상적 욕망이 내 안에서 억눌린 채 활동하고 있다. 그 욕망이 그들처럼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내용은 전부 비슷하다. 내 병의 치료약은 단 하나다. 과학적이고 정교한 치료가 아닌, 그저 <공중그네>의 주인공 이라부 이치로의 성향이 필요할 뿐이다. 단순하고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아이의 모습. 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하는 자연스러운 모습.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 세상을 즐거운 것과 즐겁지 않은 것으로 나눌 수 있는 단순함만이 이 병을 낫게 할 수 있다. 
 

살면서 많은 질문을 받는다. "왜 이 일을 하려고 해" "왜 이 사람이랑 결혼하려 해" "왜 그 공부를 하려는데" "왜 이 회사를 그만둔 건데" "왜 집에서 나와 사는데." 등등. 사실 지금처럼 이 질문들에 복잡하게 대답할 필요가 없다. "재밌으니까" "재미없으니까"로 답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이라부처럼. 게다가 종종 '이 사람은 착하고 날 잘 이해해주고 생각도 깊고 외모도 예쁘고 해서 결혼을 하려고 한다' 보다는 '그냥 같이 있으면 재밌다' 가 더 정확한 답변이기도 하다. 니체를 읽고 박민규의 소설을 읽어도 변하지 않은 나였다. <공중그네>를 읽고 단번에 의사 이치로 같은 삶을 내 안에 녹여 낼 것 같진 않다. 하지만 무위자연 하는 기분으로 단순해지자고 다짐한다. 결과가 어떻건 간에 말이다. 올 해 초 세 가지 목표를 정했다. 그 중 하나가 "즐겁게 일하자"이다. 아직 까지는 지키지 못하고 있다. 올 해 가기 전, 꼭 지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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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지다 - 상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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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무라 간이치로 선생 귀하

 

요시무라 간이치로 선생님.
방금 사스케에게 선생의 죽음을 들었습니다. 그 처참한 죽음을 말이죠. 선생은 신센구미 대원복과 갑옷을 단정하게 개켜놓고 이빨이 빠진 낡은 칼로 배를 힘겹게 가르셨습니다. 쉽사리 죽어지지 않던 선생은 결국 목과 눈을 칼로 찌르고 몸에 있는 모든 피를 밖으로 빼낸 후에야 돌아가셨습니다. 선생은 마치 선생의 생애에 할당된 고통의 양을 다 채우지 못한 듯,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간 선생의 모습을 생각하니 제 마음 속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모리오카의 기타카미 강을 범람케 할 것 같습니다. 선생 같은 의인이 비참하게 죽어가야 하는 곳이 이 세상이라면, 전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당함’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지당하게’ 산 결과가 선생의 고통이라면, 전 정말 어떻게 살아가야 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 과연 정의(正義)란 것이 있는지 전 정말 도통 모르겠습니다.
 

사실 선생님, 전 정의란 말을 믿지 않았었습니다. 아니요. 오히려 혐오하고 냉소했었습니다. 우리를 억압하고 학살한 많은 행위들이 정의란 이름으로 행해졌으니까요. 선생이 그러셨지요? 무엇을 위한 무사도인지, 정의인지 모르겠다고요. 선생이 살던 시기, 백성들에겐 관군이고 역적 군이고 없었습니다. 그저 눈앞에 들이닥친 굶주림과 추위만이 있을 뿐이었죠? 그럼에도 사무라이들은 사쓰마 조슈가 어쩌고 존왕양이가 어쩌고 하며 백성을 기아의 지옥으로 내몰았습니다. 오히려 정의란 이름으로 동료에게 할복을 강요하고 전장에서 죽는 것이야 말로 무사의 영예이자 정의라며 가난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정의란 이름이 굶어죽는 가족을 위해 탈번한 선생에게 천하의 죄인이란 낙인을 찍었으며, 선생의 가족을 고향땅 모리오카에서 시즈쿠이시로 쫓아냈습니다. 선생의 말씀대로 무엇을 위한 정의이며 무사도인지 저도 모르겠더라고요.

 

 선생님. 지금이라고 선생이 살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일랜드 독립투쟁을 다룬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데미안은 잉글랜드의 폭정에 고통 받는 아일랜드 사람들을 위해 잉글랜드에 저항합니다. 하지만 데미안은 어쩔 수 없이 아일랜드를 배신한 어린 소년 크리스를 죽입니다. 아일랜드의 독립이란 대의를 위해 13세 소년을 총으로 쏴 죽인 겁니다. 선생님. 도대체 아일랜드의 독립이란 대의는 무엇인가요? 왜 그 정의를 위해 형이 동생을 죽이고 그 동생이 또 다른 동생을 죽여야 하나요? 그런 정의가 진정 정의인가요? 지금 한국에서도 모두가 정의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가치만이 정의랍니다. 자신의 정의를 무기로 다른 사람의 정의를 탄압하고 억압합니다. 지로에 나리도 난부 번을 지키기 위해, 천황에게 반역한 신센구미를 보호해줄 수 없다는 명분을 위해, 선생에게 할복을 명합니다. 아니, 명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로에 나리는 정녕 대의(大義)를 위해 소의(小義)를 희생하신 것인가요? 천황에게 복종하는 것,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위해 살아가는 것, 가족을 지키기 위해 다른 가족의 일원을 죽여야 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과연 정의인가요?
 

하지만 선생님. 누군가 제게 그러더군요. 그렇다면 정의가 없는 것이냐고요? 정의에 대한 극단적인 냉소는 결국 아리아 민족 부흥을 기치로 유태인을 학살한 히틀러의 행위나 조선 독립을 위해 일본인을 공격한 한국독립투사들의 행동을 동일하게 만드는 것 아니냐고요. 한 동안 무엇이 정의이고 대의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선생의 모습을 보기 전까진 말이죠. 처음에는 선생이 가족을 위해 무사도의 정의를 깨는 모습이 쉽게 이해가 갔습니다. 아내가 아프고 자식들이 굶어죽는 상황에서 무사도의 정의는 무엇을 위한 정의냐고 하셨던 내용 말에요. 개인의 행복을 억압하는 정의에 대항하는 모습으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순간 걸리는 것이 있더라고요. 선생은 가족을 보기 위해 목숨을 구걸하고 수전노처럼 행동하며 세상의 모욕까지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선생이 탈주할 수 있었음에도 패배가 명백한 전쟁터에 남아있었습니다. 소위 정의란 것을 위해서 선생은 한 번도 못 본 막내 아이를 볼 기회를 저버렸습니다.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적으로 향하던 장남 가이치로에게 돌아가라고 하셨던 선생입니다. 그런 선생이 정의를 위해 가족을 버리시다니요? 

하지만 이내 전 깨달았습니다. 무엇이 진정한 정의인지 말이죠. ‘지당함’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정의란 허울을 쓰고 개인을 억압했을 뿐, 진정한 정의는 희미하게 어둠 속에서 빛을 내고 있단 사실을 전 선생의 모습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이케다 시치사부로가 선생에 대해 했던 말을 그대로 인용해보고자 합니다.
 
“인간이 아닌 무엇인가가 그곳에 서 있었어요. 사무라이라는 허깨비, 인간의 껍데기를 쓴 사무라이라는 허깨비가, 닥쳐드는 새로운 시대 앞을 가로막고 선 것처럼 보였습니다./ 의를 위하여, 라고 요시무라 선생은 분명하게 말했어요.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의란 인간으로서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이지요. 그러나 의를 위하여 싸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잘 알 수 없었어요./ 인간으로서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을 위하여 요시무라 선생은 싸우고 죽었다. 얘기가 그렇게 되는가요? 요시무라 선생이 단신으로 맞섰던 상대는 천왕도 아니고 관군도 아니고 뭔가 좀더 거대한 불합리 같은 것이었을까요?요시무라 선이 단신으로 맞 불합리 같은 것이었을까요?”  


 맞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의를 가장한 허깨비들이 판치는 세상에 맞서셨습니다. 인간의 껍데기를 쓰시고요. 진정한 정의를 보여주신 거죠. 선생님. 인간이 없는 정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빠진 정의가 바로 허깨비 정의입니다. 미천한 개인도 보호할 수 있는 가치가 바로 진정한 정의인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은 항상 그런 모습을 지키며 살아오셨습니다. 가족을 위해 허울뿐인 정의를 내버렸지만 동고동락하며 지냈던 곤도 이사미, 히지카타 도시조, 사이토 하지메 등을 차마 홀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가족에게 갈 수 있었음에도 탈주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었던 게죠. 임전무퇴의 무사도 정신이란 정의를 지키기 위해 그곳에 남은 것이 아닌, 동료들에 대한 인간애를 지키기 위해 그곳에 계셨던 것이란 말이죠. 그게 바로 정의고 대의입니다. 정의를 위해 소의를 아무렇지 않게 희생시키는 정의는 정의일 수 없습니다. 설령 희생시킨다 하더라고 그 정의를 위해 희생한 개개인에게 피눈물을 흘려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정의였던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모든 혼란스런 퍼즐이 한꺼번에 정리가 됩니다. ‘공자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인간의 기본적 정의는 처자식에 대한 의에서 시작된다.’ ‘죽이지 않으면 죽기에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참여한다.’ ‘설령 무사도에 어긋나는 것이라도 사람의 길에서 어긋나는 것이어서는 안 되겠지.’ 라며 진정한 정의의 모습을 보여준 선생의 모습을 통해서 말입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정의가 진정한 정의임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난부 무사라고 생각했다. 사내대장부라고 생각했다. 난부 무사라면, 난부 사내라면, 나의 목숨을 이어주는 밥줄인 난부 백성을 목숨 걸고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마음이야 그토록 간절했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불볕 내리는 네거리에서 가만히 국화꽃에 파묻혀 있는 너를, 사무라이의 색시가 되게 해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무사도라는 건 기껏해야 그런 정도의 것이다.

요시무라 간이치로 선생님. 선생님 말씀처럼 정의란 것이 꼭 거대한 가치를 담고있는 것만은 아니네요.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올바르게 행동하는 모든 것이 곧 정의인게죠? 선생님의 모습을 오랫동안 제 가슴 속 한편에 담아두고 살아가겠습니다. 그렇게라도 선생의 혼이 제 안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선생처럼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실천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이만 펜을 놓겠습니다.
 
그곳에서 장남 가이치로와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긴 편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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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 1 - 레제르 만화 컬렉션
장 마르크 레제르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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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올드보이를 보고 친구와 논쟁을 한 적이 있다. 영화가 현실을 어떻게 반영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인간은 선천적으로 악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니 영화 속 인물들도 실제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고 보았다. 천사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아니꼽게 본 것은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달랐다. 굳이 영화가 어두운 인간의 면모를 다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악한 인간 속에서 산다고 굳이 그 현실을 직시하며 괴로워 할 필요는 없다는게 요지였던 것 같다. 논쟁의 끝은 지금에서야 기억이 안 난다. 다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논쟁의 내용을 생각해 볼 때 우리 둘 다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점에서는 동의를 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그 때와 생각이 조금 다르다. (순자처럼 성악설을 주장하는 건 아니란 의미다.)  지금도 인간에겐 악한 부분이 있다고는 생각한다. 바로 인간의 이기적인 특성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이기심의 핵심엔 우리의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 난 프로이드 식으로 인간의 본성을 정의한다. 우리 안에는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은 어둡다. 욕망은 파괴적이고 본능적이며,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섹스하고 싶으면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욕망이다. 욕망만이 존재하는 현실은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사회는 법칙과 질서를 만들어냈다. 인간은 현실 유지를 위해 좋든, 싫든 사회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시험 때문에 잠을 참으며, 다이어트를 위해 밥을 굶으며, 사회적 안정을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솟아오르는 성욕을 억누르는 사춘기 남학생 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회가 만든 법과 질서는 우리 내부의 욕망에 전적으로 배치된다. 파괴적이고 탐욕적인 욕망은 사회가 요구하는 질서와 절제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조절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 안의 소위 자아(ego)란 것이 이 조절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욕망도 적당히 억압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법칙과 타협하여 적당히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존재, 그 존재가 바로 자아란 의미다. 인간 안에는 결국 어두운 욕망과 사회적 법칙, 그리고 이를 조절하는 장치가 함께 존재한다. 인간이 악하기만 한 것도, 그렇다고 전혀 악한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란 의미다. (사실 프로이드는 욕망 대신 id란 표현을 썼죠. 엄밀히 말해 id는 욕망과는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제가 그냥 그렇게 이해한 것일 뿐이죠. 이진경씨는 거시기란 번역을 했던데.. 그것도 좀 거시기합니다.^^)
 

시대에 따라 우리 안에 있는 욕망과 사회적 법칙의 힘의 균형이 깨지기도 한다. 요즘엔 사회적 법칙의 힘이 욕망의 힘을 압도하고 있다. 욕망은 어두운 것이니 무조건 억압하면 좋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욕망도 결국 우리 안의 일부다. 사회적 법칙의 힘이 지나치게 약화됐을 경우 우리 사회가 혼돈에 빠지듯, 욕망이 지나치게 억압되었을 경우 개개인은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개인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부여하고 있다. 마치 사회적 법칙만이 옳은 것이며 욕망은 ‘없어야 할 것’, ‘더러운 것’ ‘죄악’ 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내 욕망을 사회적 법칙으로 옥죄느라 가끔 참 피곤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 안의 욕망을 시원하게 까발린 책이나 영화를 보면 감옥에 갇힌 욕망에게 잠시 외출을 허용한 것 같은 자유로움을 느끼곤 한다. 장 마르크 레제르의 <원시인>이 내겐 갑갑한 이 사회를 잠시 벗어나게 해준 파란 하늘이자 턱 트인 공터처럼 느껴진 것은 이 때문이다.  


 
<원시인>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사회적 법칙이 형성되기 이전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등장인물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물론 레제르는 욕망의 추악함을 드러내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사회적 법칙의 힘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우리 안의 분명한 일부분이었던 잃어버린 욕망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그는 그저 보여줄 뿐이다. 사회적 법칙은 언어로 이루어졌다. 솔직한 욕망으로 가득한 이 책엔 그래서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압축적인 그림만을 통해 우리 안의 욕망을 가볍고 재밌는 터치로 다룬다. 이런 식이다. 코끼리 한 마리가 농부의 밭을 다 망쳐버린다. 코끼리의 계속된 횡포에 농부는 자살을 한다. 그 때서야 코끼리는 눈물을 흘리며 뉘우친다. 슬퍼하는 그에게 여자친구가 다가온다. 둘은 어느새 하나가 된다. 섹스를 마친 코끼린 언제 슬퍼했냐는 듯, 새로운 농장을 망치러 향한다. (채소밭)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나타나는 선교사. 영업사원이 화장품 하나 더 팔려고 하듯, 그도 원시인에게 선교를 한다. 선교에 성공한 그는 만족스러운 듯 장부에 표시를 하고 술을 마신다. 술에 취한 그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옷을 벗고 이웃의 물건을 파손하고 여성에게 치근덕거린다. 그리고 술에서 깬다. 그는 다시 옷을 입고 선교를 하러 나간다. (선교사) 그의 그림 스타일 역시 매우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인상주의 작가들처럼 한 순간에 그린 것 같은 거칠고 빠른 선, 압축적인 형상화는 우리 안의 욕망을 어둡지 않게 다루기에 매우 적절해 보인다.  

레제르의 만화는 ‘보여주며 말하기’가 강력한 표현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단순하고 거친 레제르의 그림은 억압된 우리 안의 욕망을 살며시 꺼내준다. 꺼내는 방식은 웃음이다. 웃음으로 끌어내기에 오랜 세월 감옥에 익숙했던 우리의 욕망도 자연스레 나올 수 있다. 동시에 사회적 법칙이 우리에게 주입한 것처럼 욕망이 이상해 보이지도 않는다. (보통 사회적 법칙에 세뇌당한 우리의 자아는 욕망과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 욕망은 없어져야 하는 것이라 믿기에.) 지금의 난 예전처럼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한 때 악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욕망)이 우리에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어두운 부분도 자연스런 우리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부정적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을 뿐이다.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잠시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애마부인을 보았던 과거 선배들의 모습들, 그게 바로 우리의 자연스런 모습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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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만화 - 개정판 우리가 아직 몰랐던 세계의 교양 4
성완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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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리치오토 카뉴도란 사람이 ‘영화는 제7의 예술’ 이란 선언을 한다. 이 말을 들으면 제일 먼저 그럼 나머지 6개의 예술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나머지 6가지 예술은 건축, 회화, 조각, 음악, 시, 무용이다. 카뉴도는 여기에 20세기 초에 막 탄생한 영화를 새로운 예술 장르에 포함시켰다. 번호 붙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면 또 다른 예술이 탄생하는 소리가 들린다. ‘제9의 예술...’ 1911년 예술가(家)의 7번째 자식이 탄생한데 이어 100여년 만에 9번째 탄생이 진행 중인 것이다. 그 9번째 자식은 만화. 만화가 예술이라니. 어렸을 적 재수를 하기 위해 서울 우리 집으로 올라온 사촌 형은 만날 방에서 만화책을 쌓아놓고 봤었다. 당시 우리 엄마는 그런 형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공부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해댔었다. 그래서 나 역시 몰래 형 방에서 만화를 훔쳐봐야만 했다. 그런데 그런 만화가 제9의 예술이라니.
 

 사실 만화 입장에선 참으로 억울할 일이다. 탄생이 조금 찜찜하였을 뿐인데 많은 사람들의 인식에 저질 대중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졌으니 말이다. 1896년 2월 16일, 뉴욕의 일간신문 <뉴욕 월드>에 실린 <옐로 키드>와 함께 이 세상에 만화가 태어났다. 만화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상류계급이 발행하는 신문의 논조에 염증을 느끼던 대중들은 <옐로 키드>의 서민적인 유머와 구어체 대사에 환호를 보냈다.’ ‘내용이 쉽고, 코믹하다’ 란 <옐로키드>의 이미지는 이후 만화 전체의 이미지를 결정짓게 된다. 하지만 만화는 말한다. 자신은 충분히 예술가의 9번째 자식이 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단순하게 쉽게 읽고 즐기는 오락만이 아니라고. (그래서 쥐의 작가 아트 슈피겔만은 만화를 Comics란 단어 대신에 ‘함께 섞는다’는 의미의 Comix로 표기하자고 주장한다.)  

실제로 만화란 장르가 지닌 특성은 지난 번 언급한 뮤지컬 못지않게 무한하게 발전할 수 있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 요소란 바로 만화 속에는 텍스트와 이미지, 즉 문자와 그림(영상)이 공존한다는 사실. 만화는 문자가 등장한다는 면에서 소설이나 시가 갖고 있던 예술적 특성을 표현할 수 있다. 동시에 그림이 있기에 회화가 지니고 있던 특성도 살릴 수 있다. 컷이 나눠진다는 점에서는 영화가 지닌 강점도 드러낼 수 있다. 칸과 칸 사이의 공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다. 성완경씨는 "그림과 말의 상호결합이 낳는 힘의 핵심은 이처럼 '사로잡는 것'과 '잘 알게 해주는 것'이 있다"고 말하며 "'보여주며 말하기'는 모든 예술, 모든 지식의 가장 강력하면서도 우월한 형태"라고 말한다. 그렇다. 만화는 늦게 태어난 장르이기에 가능한 강점, 다시 말해 기존의 예술이 지니고 있던 특성들을 적절하게 융합하여 만들어낸 강점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박이 있을 수 있다. 만화의 내용은 조금 저질스럽지 않냐고. 물론 그런 만화도 있다. 하지만 성완경의 <세계만화>에 등장하는 만화들을 보면 만화가 또 다른 형태의 문학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인문 사회적 가치를 창조하여 문화 발전을 돕는 작품을 예술이라고 정의한다면 기존의 만화들도 충분히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조지헤리만의 <크레이지 캣>은 시적인 대사로 프로스트의 시를 읽는 듯한 감동을 제공한다. 에르제의 <땡땡의 모험>은 이야기를 통해 동양과 서양의 다양한 문명을 소개해주는, 인문서적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칠레의 현실을 비판한 네루다처럼 브레시아의 <빼라무스>는 불합리한 당시 아르헨티나 사회를 고발한다. 로버트 로웰이나 실비아 플라스의 시가 현대 문화를 비판했듯, 로버트 크럼이나 장 마르크 레제르는 기존의 주류문화가 지닌 보수성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 문화를 제시하기도 한다. 클레드 브레테셰의 <욕구불만자들>은 시몬드 보부아르의 작품 못지않게 남성 중심의 사회에 반발한다. 그 밖에 만화는 동시에 그 사회의 문화를 읽는 창이 되기도 한다. <아스테릭스>엔 프랑스인의 기질이 잘 나타나있으며 <슈퍼맨>류의 미국 영웅 만화 속에 나타난 미국인들의 세계관이 드러나있다. 

  박성봉 교수는 “예술을 존재의 만남”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엄마의 김치찌개에서 익명화되어가는 자신의 존재를 만날 수 있었다면 그 김치찌개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술자리에서 서투른 음정과 박자로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순간 고마운 마음과 함께 존재의 만남이 이뤄진다면 그 형의 노래도 예술이 될 수 있다. 절대적으로 동감한다. 이 세상에는 널린 것이 예술이며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제9의 예술이라는 만화의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제9의 예술이란 이름을 얻고 태어난 아기 예술답게 만화는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신대륙이다. 우리가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만화를 접한다면 더 잦은 존재의 만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더 이상 만화를 숨어서 볼 필요는 없다. 만화는 예술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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