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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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 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슨 번개를 맞은 것도 아니었는데, 난 딴 사람이 되어있었다. 중간고사 기간이 한창이던 그 때. 여느 때 같으면 '시험 끝나고 강남역 가서 옷도 좀 사고 노래방도 가고 그동안 못 본 영화도 몰아 봐야지' 라고 생각했을 터인데. 그 땐 '시험 끝나면 밀린 학습지 다 풀어야지' 라는 정신 나간 생각을 했었다. 그 때부터 난 변했다. 고3시절. 정말 공부 밖에 안 했다. 먹고 자고 싸는 시간을 빼곤 공부만 했다. 10분이 아깝던 당시, 6시에 성당 미사가 시작하는 줄 알고 갔다가 6시 15분 쯤, 미사시간이 6시 30분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 그 15분을 견디지 못해 가방에서 문제집을 꺼내 화장실서 공부를 하는 식이었다. 도서관에서 10분 정도 졸면 머리통을 때리며 자학했다. 집에 돌아오며 100% 노력을 하지 않은 스스로를 나무랐다.

 

이런 내 성격이 오늘날의 나를 만든 건 사실이다. 게다가 열심히 한다는 건 좋은 일이다. 문제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나쳐 강박 증세를 보인다는 사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교수님이 한 달 전에 리포트 과제를 내준다. 그럼 난 그 과제를 받은 날부터 고민한다. 보통 제출 2주전에 과제를 완료하고 퇴고를 거듭한다. 가끔은 과제 제출 후, 중간에 리포트 주제가 바뀌어 미리 한 숙제를 버려야 하는 아픔도 겪었다. (교수도 생각한 거다. 정상인이라면 누가 설마 한 달 뒤 제출할 숙제를 미리 하겠냐.) 노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던지 뭐라도 해라. 그렇게 빈둥거리지 말고' 라며 부모님의 잔소리 거리를 스스로 덜어드리곤 했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책을 읽고 나면 항상 글을 써서 정리해라' '꾸준히 운동해라' '다큐멘터리나 영화도 많이 봐야지' '독서하는 습관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여행도 다니면서 견문을 넓혀라' '신문도 보고 세상에 관심을 잃지 마라' 라고 스스로 명령한다. 잦은 자학 때문인지, 난 내가 내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다는 사실도 잊곤 했다. 항상 긴장을 하며 사는 내 모습, 즉 빡센 모습이 본래 내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난 환자가 됐다. 생산성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환자. 무언가를 생산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자본주의의 완성품. 완성품이 된 결과 남부럽지 않은 학교와 회사에 들어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오십 견에 걸린 듯 딱딱하게 뭉친 내 어깨를 생각하면 어째 이 자본주의 완성품의 삶이 행복해 보이진 않았다.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한다는 행위 자체는 잊을 수 있지만, 채찍에 맞은 상처는 그대로 남는 법이다. 이 생활에는 익숙해졌지만 내 내면은 너무나 힘들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여 의미 있는 것을 산출해내야 한다는 극도의 강박증. 발 한번 뻗고 잠을 자 본적 없는 레옹처럼 나 역시 항상 마음속에 긴장감을 유지한 상태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게 바로 내 병의 원인이었다.
 

환자가 되고 나니, 내 인생에서 즐거움이 사라졌다. 입으로는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처럼 우린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해야 해' 라고 말하며 오직 결과를 향해 과정이란 고행을 겪었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이야기처럼 때론 우리 삶을 돌아보며 느리게 사는 법을 깨달아야 해.'라고 부르짖으며 어떻게 더 완벽한 자본주의의 상품이 될 지를 궁리했다. '레제르의 <원시인>에서처럼 우린 가끔 스스로 억압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내부의 욕망을 인정해줘야 해' 라고 떠들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규제하는 수많은 법안을 만들었다. 결국 내가 읽은 책의 내용은 피곤한 심신을 달래주는 뽕에 불과한 것. 아니, 과도하게 빡센 내 모습을 숨기기 위한 외투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경제상황은 나아졌지만 항상 세상은 위기이기에 개발에 땀나듯 열심히 일해야 하는 샐러리맨처럼, 나 역시 원하는 결과를 얻으면서도 또 다른 결과를 위해 프로테스탄트의 고통스런 금욕과 성실을 스스로에게 강제했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공중그네>에 나오는 수많은 강박증 환자는 전부 내 안에 들어있다.  항상 야쿠자의 가오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다 뾰족한 것을 무서워하게 된 이노세이지처럼, 사회적 상위층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다 자기도 모르게 유치한 장난을 치고 싶어 괴로워하는 이케야마 다쓰로처럼, 최고의 야구선수가 되어야 했고, 그 성공한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다 사소한 송구도 못 하게 된 반도 신이치처럼,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원치 않는 연애소설만 쓰다가 울렁증이 생겨버린 호시야마 아이코처럼 나 역시 강박증의 반대급부로 수많은 비정상적 욕망이 내 안에서 억눌린 채 활동하고 있다. 그 욕망이 그들처럼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내용은 전부 비슷하다. 내 병의 치료약은 단 하나다. 과학적이고 정교한 치료가 아닌, 그저 <공중그네>의 주인공 이라부 이치로의 성향이 필요할 뿐이다. 단순하고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아이의 모습. 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하는 자연스러운 모습.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 세상을 즐거운 것과 즐겁지 않은 것으로 나눌 수 있는 단순함만이 이 병을 낫게 할 수 있다. 
 

살면서 많은 질문을 받는다. "왜 이 일을 하려고 해" "왜 이 사람이랑 결혼하려 해" "왜 그 공부를 하려는데" "왜 이 회사를 그만둔 건데" "왜 집에서 나와 사는데." 등등. 사실 지금처럼 이 질문들에 복잡하게 대답할 필요가 없다. "재밌으니까" "재미없으니까"로 답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이라부처럼. 게다가 종종 '이 사람은 착하고 날 잘 이해해주고 생각도 깊고 외모도 예쁘고 해서 결혼을 하려고 한다' 보다는 '그냥 같이 있으면 재밌다' 가 더 정확한 답변이기도 하다. 니체를 읽고 박민규의 소설을 읽어도 변하지 않은 나였다. <공중그네>를 읽고 단번에 의사 이치로 같은 삶을 내 안에 녹여 낼 것 같진 않다. 하지만 무위자연 하는 기분으로 단순해지자고 다짐한다. 결과가 어떻건 간에 말이다. 올 해 초 세 가지 목표를 정했다. 그 중 하나가 "즐겁게 일하자"이다. 아직 까지는 지키지 못하고 있다. 올 해 가기 전, 꼭 지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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