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랑 - 김충선과 히데요시
이주호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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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겐지모노가타리를 읽었었다. 일본문화의 단면을 보고 싶다는 욕심에 읽은 책이었다. 헤이안시대에 무라사키시키부라는 작가가 쓴 연애소설이다. 후궁의 아들로 태어난 겐지라는 남자의 이야기지만 당시 일본의 시대적 배경이 흥미롭기는 했다. 400년정도 이어졌다는 교토의 역사를 헤이안시대라고 한다. 일본은 이 시기에 문학적으로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고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대립의 시기이기도 했으니, 헤이안시대를 거쳐 막부시대가 열린다. 국유지는 귀족들의 사유지가 되어가고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 다이묘를 중심으로 한 무사계층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경호를 담당했던 사무라이는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실질적으로 무사들을 움직일 수 있었던 쇼군들이 세력다툼을 벌이면서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 도쿠가와 막부의 시대를 거친다. 일본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우리의 역사속에서도 임진왜란을 통해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다. 바로 그 때가 이 소설의 시대배경이다. 우리에게는 울분을 토하게 하는 역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조선 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을 통한 엉뚱한 당파싸움의 현장. 결국 임진왜란은 일어났고, 그 당시 가토 기요마사를 따라 선봉장으로 조선으로 들어왔으나 귀순하여 역으로 왜군을 치게 되는 사가와라는 인물을 그렸다. 그가 조선으로 귀화해 받은 조선이름이 김충선이다. 책의 말미에 김충선에 대한 연혁이 보인다. 이기고 싶으면 적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속에 그려지는 시대적인 배경이야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조선 관료층의 아들 석운으 태어났으나 일본인 히로로 길러지는 아이. 그에게 찾아왔던 정체성의 혼란에서 안타까움이 전해지기도 한. 팩션이기에 어느정도는 작가의 상상력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이 사실처럼 느껴진다. 흥미로웠던 점은 조선의 입장이 아니라 일본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굵직한 둥지에서 가지처럼 뻗어나오는 이야기들은 책장을 넘길때마다 살짝 궁금하게도 하지만 왠지 진부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뒷맛은 그리 개운치가 않았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만나지는 일본문화의 단면들이 시선을 끌었다. 노가쿠, 앵앵전, 가케무사, 데루마사의 그림자... 노가쿠는 중국의 경극과 같은 일본의 전통 가면극이다. 지금은 일본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것이라 하니 기회가 된다면 한번 보고싶은 욕심이 생긴다. 가케무사는 말 그대로 그림자무사다. 적을 속이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무사를 자신처럼 꾸며 비상시를 대비하는 것이다. 앵앵전을 찾아보니 장생과 앵앵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로 중국 당나라 시대의 소설이라고 나온다. 덕분에 노가쿠의 시작이 중국의 산가쿠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대배경을 같이 하는 조선의 역사와 일본의 역사를 함께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 난은 말이야. 습도가 높은 것을 좋아하나 뿌리가 늘 젖어 있으면 썩고 만다.

귀하고 비싼 것이라고 생각되어 매일 애지중지 들여다보면서 물을 주는 초보자는

난을 반드시 죽이게 되지.

그렇다고 해서 너무 오래도록 물을 주지 않으면 탈수로 죽고.

그래서 언제가 물을 주기에 적합한 때인가를 안다는 것은

난을 키우는 첫걸음이면서 이해와 교감의 첫 관문이라는 거지.

2~3일에 한번씩 분의 표토로부터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깊이의 식재를 뒤적여 본 뒤

젖어있지 않으면 그 때가 물을 줄 적기라는 거야."

105쪽. 히로를 아꼈던 겐카쿠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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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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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화라고 하면 동식물 혹은 사물을 인격화시켜서 그들의 움직임속에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숨겨놓는다. 하지만 동식물이나 사물에 빗대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렇게 사람을 바로 등장시켜 그들의 행동에서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 어쩌면 더 큰 울림을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화나 동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책은 오랜만에 받아보는 선물 같았다. 寓, 부칠 우.. 이 글자를 찾아보면  부치다, 보내다,  맡기다, 붙어 살다, 머무르다, 핑계 삼다, 구실 삼다 등의 뜻이 나온다. 이야기를 핑계삼아 우리에게 교훈을 전하기 위함이라는 뜻일게다. 일단 그림이 정감있게 다가왔다. 어쩌면 저리도 동글동글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는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 (202쪽)

 

바보들만 사는 마을에 똑똑한 사람이 가면 누가 바보일까?  책을 읽다보면 마치 바보들만 사는 마을에 내가 들어간 느낌이 든다. 전혀 바보같지 않은 바보들의 이야기는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된다. 여전히 바보같이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내려놓기, 비우기를 아무리 외치고 살면 뭐하나 싶은 생각에 슬그머니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가난했지만 행복한 웃음이 항상 떠나지 않았던 물장수 가족 이야기를 보면서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속상했던 것은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어느 날 닭 한마리를 팔아 생긴 돈으로 작년에 셔츠에서 떨어져 나간 단추를 사기 위해 가족 모두 근처 도시로 나갔다. 단추 하나만 바꾸면 될 것을 점원은 그 새 단추에 어울리는 셔츠로 바꾸라고 말했고, 그 셔츠에 어울리는 바지로 바꾸라고 했다. 다시 또 새것에 어울리게끔 모든 것을 바꿔야 하는 처지에 이른다. 하지만 그가 들고 있었던 것은 단추 하나를 살만한 동전 하나뿐었으므로 단추 하나만 빼고 모든 것을 다시 제 자리로 돌려보내야 했다. 그 상실감을 어찌해야 할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신들이 보잘것 없는 존재라고 느꼈다. 집으로 돌아와서야 그들은 깨달았다. 모든 것이 그 단추 한개때문이었다는 걸. 그 단추가 없어도 그들은 살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들은 그 단추를 버렸다!  우리는 항상 내가 가진 것보다 남이 가진 것에 더 시선을 빼앗긴다. 그리고 남이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사실은 내게 없어도 되는 것인데도.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셨던 무소유의 개념은 모든 것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을 갖고 살라는 말씀이셨는데... 단추를 버릴 수 있었던 물장수의 마음... 그래서 나는 물장수의 현명함앞에 없어도 살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나의 욕심이 부끄러워진다.

 

이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고 그 위치에 그대로 놓아두는게 더 좋은 것이 있다. (208쪽)

 

인간 세상을 바라보던 신이 마침내 두 명의 천사를 내려보냈다. 한 천사의 임무는 지혜로운 영혼들을 모아 어리석은 자들이 사는 곳에 떨어뜨리는 것으로 그 임무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어리석은 영혼을 모두 자루에 담아 데려와야 하는 또 한 천사의 임무는 너무 어려웠다. 숫자가 너무 많기도 했지만 그들이 자루에 들어가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자루가 가득 찬 천사는 지체없이 신이 있는 곳으로 날아 올랐다. 하지만 그 자루는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키 큰 소나무에 걸려 자루가 찢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자루속의 어리석은 영혼들은 쏟아져 내렸고 그들이 떨어진 곳은 폴란드의 헤움이라는 마을이었다. 그렇게해서 세상의 모든 바보들이 한 곳에 모여살게 되었다. 이 책은 그 헤움이라는 마을에서 살게 된 바보들의 이야기다. 가만히 책을 읽다보니 그림때문일까? 마치 작은 인형극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의 머리와 마음을 맞대는 그들의 이야기는 정말 구수했다. 아름다운 달빛이 사라지지 못하게 달을 우물에 가두는 이야기도, 해시계를 보호하기 위해 지붕과 가림막을 설치하여 해와 만나지 못하게 하는 이야기도  전혀 바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야기속에는 우리가 지금의 세상을 살면서 외면하거나 잃어버렸거나, 잊고 살았던 마음의 속삭임이 들어있었다. 남보다 나를 우선시하고, 나와 다른 면을 인정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이야기속에 있었다. 나의 어리석음은 보지 못하고 남의 어리석음만 탓하는 우리의 서글픈 현실과, 어리석은 것을 진리라 말하며 우겨대는 현실적인 정치인의 모습도 들어 있었다. 어찌할 수 없는 씁쓸함이 남고 말았다.

 

<하루 단어 사용량>과 <흔하디 흔한 생선 가게에 생긴 일>은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지혜로운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무의미한 잡담과 수다에 열중하게 되어버린 사람들의 모습. 말이 많아진만큼 소움과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의회는 하루에 250개의 단어만 말하기로 법을 정했다. 헤움의 사람들은 그 규칙에 반대하지 않고 무의미한 말들과 언쟁을 자제했다. 세상에~~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말로써 말을 이겨내는 이 시대야말로 그런 규칙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장사가 시원찮아서 고민하던 생선장수가 '매일 신선한 생선 판매'라는 간판을 걸었다. 그러자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했다. 신선하지도 않으면서 신선한 생선을 판다고 하느냐, 생선가게에서 생선을 팔지 그럼 뭘 파느냐, 생선이라는 글자때문에 비린내가 더 나는 것 같다느니...  이렇듯 생각없이 던지는 말 한마디에 얼마나 큰 무게 실리는지에 대한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말의 가치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일지 모르겠다. 서글프게도.

 

이야기는 가벼웠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하는 울림은 크고도 무겁다. 흥, 지금같은 세상에서 그렇게 사는 게 가당키나 하냐? 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너나 그렇게 살아라, 한다해도 역시 할 말은 없다. 딱히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그렇게 살라고 강요하는 건 아닐테니까. 그러나 지금의 우리가 무엇을 잊고, 무엇을 잃어버렸는가에 대해 한번쯤은 고민해 볼 일이다. /아이비생각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나만 더 소개하고 싶다. <세상의 참견쟁이들>이란 이야기다. 젊은 부부가 살았다. 남편은 아이가 세 살도 되기전에 아내를 잃었고, 아이는 잘 생긴 청년으로 자랐다. 세상에 둘도없는 부자관계였다. 더 많은 세상을 알고 싶다는 아이의 소망에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마을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의사를 존중했다. 마을을 떠나 길을 걷던 부자는 낯선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아들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먼저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사람, 더 늦기전에 아이에게 어떤 기술이라도 익혀야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사람. 왜 아이를 혼자 보내지 못하고 따라다니느냐는 사람, 빈둥거리면서 인생을 낭비한다는 사람.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신의 뜻을 알아야 한다는 사람.... 마침내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이제 우린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우리 삶에 대해 참견하고 지적하지 않을까요? 전 이해가 가지 않아요. 자신들의 일도 아닌데 왜 우리 일에 나서죠?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요? 아버지는 왜 아무 말도 안 하셨죠?"

 

"아들아, 우리가 어떻게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참견하고 지적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보다 가진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우리보다 가진 것이 없으면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보다 못한 존재라고 여긴단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다."

 

마침내 침묵을 깨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헤움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그곳이야말로 사람들이 자신의 지혜에 따라 살면서 필요할 때 도움을 주되, 함부로 참견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살도록 허용하는, 세상의 유일한 장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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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강민호 지음 / 턴어라운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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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줄기()를 잡다(), 즉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 는 의미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범학문적 연구를 일컫는다... 통섭이라는 말을 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온다. 이 책을 읽은 후에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다. 책표지에서 보면 저자의 이름앞에 마케터라고 써있다. 그러니 이 책은 분명 마케팅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영업전략? 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런 주제를 가지고 세상에 나온 책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혹시나하는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 역시~ 하면서 끝내게 되는 게 대부분이다. 일종의 자기계발서라고해도 틀린 말은 아닐것이다. 우연한 기회로 나에게 온 책이었지만 (아마도 책의 제목때문이었을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책장을 열면서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판매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고객의 마음을 붙잡아 둘 수 있는지... 아마도 그런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짐작한대로였다.  하지만! 이 책은 거기에서 끝내지 않았다. 명령조의 말투나 느낌도 없이 잔잔하게 풀어가는 이야기솜씨에 그만 빠져들고 말았다. 단순히 마케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사는 이야기가 이 책속에 녹아 있었다.

 

여러분은 돈을 잃어도 상관없습니다. 큰 액수여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평판을 잃지 마십시오. 인격을 잃지는 마십시오. 우리에겐 돈을 잃을 여유는 충분히 있으나 평판을 잃을 여유는 조금도 없습니다. - 워렌 버핏의 말

 

가치를 추구하면 이익은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익을 구하느라 가치를 놓치고 마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결론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기업이 추구해야 할 근본적인 목적은 이익창출이 아닙니다. 바로 가치창출입니다. - 111쪽

 

빠름과 편리함만을 위해 끝없이 달려가는 혁신이라는 이름 앞에서, "그래서 더 행복해졌습니까?" 라고 묻는 저자의 질문에 진심으로 행복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몇이나 될까?  계획은 대충 세우는 거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계획만  세우다 밤새지 말고 행동하면서 그때그때 유연하게 대처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은 마케팅에 한하지 않고 우리 삶의 여정에도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앞서 말한 워렌 버핏의 말이나 111쪽의 말도 그렇다. 평판을 잃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이미지 상실이며 신용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굳건하리라 여겼던 믿음도 한순간의 실수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내린다. 그러니 기업 혹은 어떠한 제품이 가지고 있던 평판을 잃는다는 것은 상당히 큰 피해를 입는다는 뜻일게다. 기업이나 제품뿐일까? 사람도 마찬가지다. 단 한번의 실수로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책은 크게 세가지 주제로 나뉘어져 있다. 1. 마케팅의 기본 원칙 "현상보다 본질", 2. 고객 관점 재정의 "거래보다 관계", 3. 차별화 전략 수립 "유행보다 기본"... 각 장의 제목에서 보이듯 마케터로써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세세하게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을 공감하게 되었다. 나는 사업가도 아닌데. 이른바 자신만의 가치를 살리며 잘 나간다는 브랜드들이 그 이름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기까지 기업주들의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솔직하게 나는 그 이름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잘 몰랐었다. 그럼에도 저자가 말하는 가치창출이란 말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마케팅에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저자의 말처럼 사람을 알지 못하면 그 무엇도 할 수가 없다. 결국 사람과 사람의 일인 것이다. 부화뇌동하지 말고,  한번보고 다시 안 볼 사람처럼 관계를 맺지 말고, 자신만의 것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힘은 마케팅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정표로 삼는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마케팅이란 주제를 설명하면서 다방면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 주변의 일들을 사례로 들며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니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무엇보다도 전문적인 용어를 많이 쓰지 않아 더 편하게 다가왔던 듯 하다. 고객에 관한 주제를 다룬 부분에서는 마치 심리학 책을 읽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수많은 광고들도 하나의 마케팅일 게다. 평소에 쇼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인데도 가만히 앉아 있다 당한 기분이 들어 피식, 웃고 말았다. 이런, 바로 그런 심리를 이용한 거였군 ^^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이란 제목을 보면서 나는 묻고 싶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 그가 대답해 주었다. 인간의 욕구와 욕망은 변하지 않는다고. 읽다보니 그 말에 공감하게 된다. 인간의 욕구와 욕망.... 참 무서운 말이다. 그것으로 인해 지금의 우리 사회는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저자의 질문을 다시한번 해보고 싶다. 그래서 더 행복해졌습니까? 라고.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더 행복해 진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본질은 '변화'가 아니라 '행복'입니다. 변화는 수단일 뿐이지만 행복은 그 자체로 목적입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변화를 선택하는 것이지, 변화를 위해 행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248쪽  다시한번 되새겨보는 말이다. 책이 아니라 강의로 들었다면 더 재미있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울림이 크다. / 아이비생각

 

7층에 위치. 매장에 테이블이 하나도 없음... 샌드위치 가게란다. 발상의 전환이 대단한 사례라고 한다. 호주 멜버른의 명소란다.- 94쪽

7층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샌드위치의 맛은 어떨까?  나도 먹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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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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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leap.. 시간여행을 소재로 같은 기간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을 타임리프라고 한다. 당연히 SF장르다. 그런 소재를 다루었던 영화가 몇 편 기억은 나지만 그다지 관심있는 주제가 아니다보니 이렇다 할 느낌은 없었다고 말하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 죽으면 다시 태어나고 죽으면 또 다시 태어나고... 우리가 알고 있는 환생과 같은 말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환생이라는 의미와는 별개의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사실 SF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몰입해서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제목을 보면서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일전에 읽었던 <달의 영휴>라는 작품이었는데 책의 내용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던 까닭이다. 그러니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말부터 나왔다. 그런데 이 책의 소개글에서 한 줄의 문장을 보고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짜릿하고 행복한 상상을 부추기는 타임루프물을 생각한다면 큰 코 작은 코 다 다친다, 고.

 

읽으면서 내내 헤맸다. 도대체 뭘 말하고 있는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는 말이다. 주인공 해리 오거스트가 몇 번의 삶을 살아가면서 겪어내는 일들은 쉽게 퍼즐이 맞춰지지 않아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하녀 리사가 주인의 강간으로 인해 해리를 임신했고, 그녀는 기차역 화장실에서 그녀를 낳고 죽었다. 어찌어찌해서 친아버지의 가문으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관리인 부부에게 입양되어서 키워진다. 1919년에 태어난 그가 1989년에 죽었으니 70년을 살다가 죽은 것이 그의 첫 삶이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태어나고 또 다시 태어남을 반복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예전에 살았던 삶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번째 삶에서야 자신의 삶이 특이하다고 생각했고 그 이후로 그는 자신의 삶과 얽힌 일을 알아내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지식을 터득하게 된다. 그리고 알게 된다. 자신과 같은 사람이 또 있으며 심지어 그들만의 클럽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미래를 알고 과거를 안다고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던 듯 싶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일곱살 소녀가 나타나 세상의 종말을 말하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말한다. 자, 이제 그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수많은 역사의 순간들이 그를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인간의 문명은 끝없이 발전하여 과학이라는 테두리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것이었을까? 이 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 끝없는 과학의 힘은 신의 영역을 넘보게 되지만 결코 그 영역까지는 침범할 수 없었다. 아니 그가 그 영역까지 침범할 수 없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그칠 줄 모르는 과학의 광기에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던가 보다. 그 수많은 역사의 순간들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읽고 생각해 낸 결말이다. 아니라해도 할 수 없고.

 

해리 오거스트의 삶은 열다섯번이나 반복되었고 반복되는 그의 삶은 어지러웠다. 그가 겪었던 모든 일의 퍼즐을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완전하게 맞출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까지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왜일까?  그럼에도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책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웠던 책.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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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 잔혹사 - 설계자 이방원의 냉혹하고 외로운 선택
배상열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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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가끔 우리나라의 이름을 생각해 볼 때가 있다. 현재 우리의 문화 밑바닥을 형성하는 것은 대부분 조선의 문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인 그림도 조선의 비중이 상당한 크기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이름은 KOREA다. 왜 그럴까?  세계 여러나라와 자유롭게 무역을 했던 조선 이전의 나라 고려가 있었다. 그때 고려를 출입했던 무역인들에 의해 고려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그것이 KOREA가 된 것이다. 조선이 아니라 고려가 우리나라를 세상에 알렸다고 보면 된다. 고려는 외부의 침입도 여러차례 막아냈다. 그랬던 고려가 그 이름을 조선이라는 새로운 이름에게 밀려나게 된 것은 학창시절을 통해 배운 역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음이다. 이 책은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조선의 건국과 그 시기의 정세를 말하고 있다. 1392년 태조 이성계에 의해, 아니 더 사실적으로 말한다면 정도전이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게 되는 조선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정말 무궁무진할 정도로 많다. 그러나 그 가운데 기록된 역사에 의문을 가진 이야기는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일전에 사도세자라는 주제를 가지고 기성학자와 다툼의 여지를 보여주었던 이덕일이란 역사학자를 통해서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정말 흥미로웠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속내를 말하는 부분이 보인다. '새로운 사실을 발굴하거나 기존에 통용된 사실을 반박할 수 있거나, 최소한 기존의 주장을 보완할 수 있는 증거를 제출하는 것(-298)'이 사학의 영역을 누비면서 세운 철학이라고. 또한, '실록은 결코 진실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사실과의 관계를 구획해아 할 필요가 절실하다.(-357)' 라는 한줄만으로도 그가 왜 이 책을 써야했는지를 짐작해 보게 된다.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배상열이라는 이름을 검색해 그의 작품을 한번 찾아보았다. 얼마전에 읽었던 <조선을 홀린 무당 진령군>, 이미 오래전에 읽었던 <반역 패자의 슬픈 낙인>, 그리고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던 <비열한 역사와의 결별 징비록>... 모두 같은 작가의 글이었다는 걸 이제사 알게 된다. 새삼스럽다. 딱히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많은 부분에 공감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던 '하여가'와 '단심가'는 없다, 우리가 알고 있던 '함흥차사'는 없다, 와 같이 책이 보여주고 있는 소제목들은 눈을 크게 뜨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이야기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럼에도 그가 주장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한 해석은 논리정연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했다. 그러니 당연히 기록되어진 것들에 대한 오류를 찾아내는 것도 후대의 일일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이미 우리 주변에서 잘못된 역사의 흔적은 많이 보여지고 있으며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손길도 많이 볼 수 있으니. 한번 믿은 것을 수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우리의 의식이 문제일뿐.

 

사실 조선사를 읽다보면 부글부글 화가 치밀어오를 때가 많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당연하게 그런 마음을 다스려야만 했다. 세자를 결정하고 이제 국호를 변경하기 위한 승인을 받기 위한 상황에서 朝鮮과 和寧으로써 국호를 고치기를 청했다는 대목에서 사대주의의 정점을 찍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두고두고 부끄러운 역사가 아닐 수가 없다. 제 나라의 이름조차 스스로 정하지 못했던 그 때의 상황을 나열하며 분함을 떨쳐내지 못하던 저자의 심경에 역사를 잘 모르는 나조차도 백번 공감하게 되니 어찌된 일일까?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광해군, 소현세자, 정조, 효명세자... 어느 방송에선가 역사속에서 다시 불러내고 싶은 이가 누구냐고 사람들에게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나왔던 이름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이름이기도 하다. 광해군이 반정으로 내쳐지지 않았다면, 정조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소현세자와 효명세자가 죽지 않고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다면.... 물론 그 때의 상황을 우리가 살아보지 못했기에 단지 유추할 뿐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인물들이 좀 더 오래 살아주었더라면 아마도 昨今의 우리 모습은 상당히 달라져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좀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우리의 역사가 조선이 아닌 고려에서 끝났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여러번 했었다. 고려는 생각보다 모든 면에서 개방적인 사회였던 것 같다. 이방인들과의 자유로운 무역도 그렇고, 여러가지 사회문화적인 측면을 보더라도. 각설하고, 정말 흥미로웠다. 읽는 내내 각각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래서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우리에게는 다른 각도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그리고 응원을 보낸다. 아주 많은 응원을! /아이비생각

 

이번 작업을 통해 다시 한 번 절감하는 것은 합리적 의심이 외면당한다는 점이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격살하도록 명했다는 것과, 주도적으로 반역을 이끌어 이성계를 보위에서 끌어내렸다는 내용이 실록에 기재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록에 나타났다고 해서 사실일 수 없거니와, 진실일 리는 더더욱 만무하다. 그럼에도 합리적 의심이 외면당하는 것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과 영화처럼 돈과 직접적으로 결부되는 바닥에서 그런 기록들을 기반으로 하는 것은 맹수들이 먹잇감을 찾아 나서는 것만큼이나 당연하다. 거짓의 역사가 그들에 의해 다시 가공된 다음 대중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움직일 수 없는 진실로 응고되는 것은 대단히 흔쾌하지 못하지만, 이쪽에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 나가는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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