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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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화라고 하면 동식물 혹은 사물을 인격화시켜서 그들의 움직임속에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숨겨놓는다. 하지만 동식물이나 사물에 빗대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렇게 사람을 바로 등장시켜 그들의 행동에서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 어쩌면 더 큰 울림을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화나 동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책은 오랜만에 받아보는 선물 같았다. 寓, 부칠 우.. 이 글자를 찾아보면  부치다, 보내다,  맡기다, 붙어 살다, 머무르다, 핑계 삼다, 구실 삼다 등의 뜻이 나온다. 이야기를 핑계삼아 우리에게 교훈을 전하기 위함이라는 뜻일게다. 일단 그림이 정감있게 다가왔다. 어쩌면 저리도 동글동글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는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 (202쪽)

 

바보들만 사는 마을에 똑똑한 사람이 가면 누가 바보일까?  책을 읽다보면 마치 바보들만 사는 마을에 내가 들어간 느낌이 든다. 전혀 바보같지 않은 바보들의 이야기는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된다. 여전히 바보같이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내려놓기, 비우기를 아무리 외치고 살면 뭐하나 싶은 생각에 슬그머니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가난했지만 행복한 웃음이 항상 떠나지 않았던 물장수 가족 이야기를 보면서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속상했던 것은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어느 날 닭 한마리를 팔아 생긴 돈으로 작년에 셔츠에서 떨어져 나간 단추를 사기 위해 가족 모두 근처 도시로 나갔다. 단추 하나만 바꾸면 될 것을 점원은 그 새 단추에 어울리는 셔츠로 바꾸라고 말했고, 그 셔츠에 어울리는 바지로 바꾸라고 했다. 다시 또 새것에 어울리게끔 모든 것을 바꿔야 하는 처지에 이른다. 하지만 그가 들고 있었던 것은 단추 하나를 살만한 동전 하나뿐었으므로 단추 하나만 빼고 모든 것을 다시 제 자리로 돌려보내야 했다. 그 상실감을 어찌해야 할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신들이 보잘것 없는 존재라고 느꼈다. 집으로 돌아와서야 그들은 깨달았다. 모든 것이 그 단추 한개때문이었다는 걸. 그 단추가 없어도 그들은 살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들은 그 단추를 버렸다!  우리는 항상 내가 가진 것보다 남이 가진 것에 더 시선을 빼앗긴다. 그리고 남이 가진 것을 나도 가져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사실은 내게 없어도 되는 것인데도.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셨던 무소유의 개념은 모든 것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을 갖고 살라는 말씀이셨는데... 단추를 버릴 수 있었던 물장수의 마음... 그래서 나는 물장수의 현명함앞에 없어도 살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나의 욕심이 부끄러워진다.

 

이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고 그 위치에 그대로 놓아두는게 더 좋은 것이 있다. (208쪽)

 

인간 세상을 바라보던 신이 마침내 두 명의 천사를 내려보냈다. 한 천사의 임무는 지혜로운 영혼들을 모아 어리석은 자들이 사는 곳에 떨어뜨리는 것으로 그 임무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어리석은 영혼을 모두 자루에 담아 데려와야 하는 또 한 천사의 임무는 너무 어려웠다. 숫자가 너무 많기도 했지만 그들이 자루에 들어가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자루가 가득 찬 천사는 지체없이 신이 있는 곳으로 날아 올랐다. 하지만 그 자루는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키 큰 소나무에 걸려 자루가 찢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자루속의 어리석은 영혼들은 쏟아져 내렸고 그들이 떨어진 곳은 폴란드의 헤움이라는 마을이었다. 그렇게해서 세상의 모든 바보들이 한 곳에 모여살게 되었다. 이 책은 그 헤움이라는 마을에서 살게 된 바보들의 이야기다. 가만히 책을 읽다보니 그림때문일까? 마치 작은 인형극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의 머리와 마음을 맞대는 그들의 이야기는 정말 구수했다. 아름다운 달빛이 사라지지 못하게 달을 우물에 가두는 이야기도, 해시계를 보호하기 위해 지붕과 가림막을 설치하여 해와 만나지 못하게 하는 이야기도  전혀 바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야기속에는 우리가 지금의 세상을 살면서 외면하거나 잃어버렸거나, 잊고 살았던 마음의 속삭임이 들어있었다. 남보다 나를 우선시하고, 나와 다른 면을 인정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이야기속에 있었다. 나의 어리석음은 보지 못하고 남의 어리석음만 탓하는 우리의 서글픈 현실과, 어리석은 것을 진리라 말하며 우겨대는 현실적인 정치인의 모습도 들어 있었다. 어찌할 수 없는 씁쓸함이 남고 말았다.

 

<하루 단어 사용량>과 <흔하디 흔한 생선 가게에 생긴 일>은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지혜로운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무의미한 잡담과 수다에 열중하게 되어버린 사람들의 모습. 말이 많아진만큼 소움과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의회는 하루에 250개의 단어만 말하기로 법을 정했다. 헤움의 사람들은 그 규칙에 반대하지 않고 무의미한 말들과 언쟁을 자제했다. 세상에~~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말로써 말을 이겨내는 이 시대야말로 그런 규칙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장사가 시원찮아서 고민하던 생선장수가 '매일 신선한 생선 판매'라는 간판을 걸었다. 그러자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했다. 신선하지도 않으면서 신선한 생선을 판다고 하느냐, 생선가게에서 생선을 팔지 그럼 뭘 파느냐, 생선이라는 글자때문에 비린내가 더 나는 것 같다느니...  이렇듯 생각없이 던지는 말 한마디에 얼마나 큰 무게 실리는지에 대한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말의 가치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일지 모르겠다. 서글프게도.

 

이야기는 가벼웠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하는 울림은 크고도 무겁다. 흥, 지금같은 세상에서 그렇게 사는 게 가당키나 하냐? 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너나 그렇게 살아라, 한다해도 역시 할 말은 없다. 딱히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그렇게 살라고 강요하는 건 아닐테니까. 그러나 지금의 우리가 무엇을 잊고, 무엇을 잃어버렸는가에 대해 한번쯤은 고민해 볼 일이다. /아이비생각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나만 더 소개하고 싶다. <세상의 참견쟁이들>이란 이야기다. 젊은 부부가 살았다. 남편은 아이가 세 살도 되기전에 아내를 잃었고, 아이는 잘 생긴 청년으로 자랐다. 세상에 둘도없는 부자관계였다. 더 많은 세상을 알고 싶다는 아이의 소망에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마을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의사를 존중했다. 마을을 떠나 길을 걷던 부자는 낯선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아들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먼저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사람, 더 늦기전에 아이에게 어떤 기술이라도 익혀야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사람. 왜 아이를 혼자 보내지 못하고 따라다니느냐는 사람, 빈둥거리면서 인생을 낭비한다는 사람.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신의 뜻을 알아야 한다는 사람.... 마침내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이제 우린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우리 삶에 대해 참견하고 지적하지 않을까요? 전 이해가 가지 않아요. 자신들의 일도 아닌데 왜 우리 일에 나서죠?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요? 아버지는 왜 아무 말도 안 하셨죠?"

 

"아들아, 우리가 어떻게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참견하고 지적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보다 가진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우리보다 가진 것이 없으면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보다 못한 존재라고 여긴단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다."

 

마침내 침묵을 깨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헤움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그곳이야말로 사람들이 자신의 지혜에 따라 살면서 필요할 때 도움을 주되, 함부로 참견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살도록 허용하는, 세상의 유일한 장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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