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랑 - 김충선과 히데요시
이주호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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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겐지모노가타리를 읽었었다. 일본문화의 단면을 보고 싶다는 욕심에 읽은 책이었다. 헤이안시대에 무라사키시키부라는 작가가 쓴 연애소설이다. 후궁의 아들로 태어난 겐지라는 남자의 이야기지만 당시 일본의 시대적 배경이 흥미롭기는 했다. 400년정도 이어졌다는 교토의 역사를 헤이안시대라고 한다. 일본은 이 시기에 문학적으로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고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대립의 시기이기도 했으니, 헤이안시대를 거쳐 막부시대가 열린다. 국유지는 귀족들의 사유지가 되어가고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 다이묘를 중심으로 한 무사계층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경호를 담당했던 사무라이는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실질적으로 무사들을 움직일 수 있었던 쇼군들이 세력다툼을 벌이면서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 도쿠가와 막부의 시대를 거친다. 일본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우리의 역사속에서도 임진왜란을 통해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다. 바로 그 때가 이 소설의 시대배경이다. 우리에게는 울분을 토하게 하는 역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조선 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을 통한 엉뚱한 당파싸움의 현장. 결국 임진왜란은 일어났고, 그 당시 가토 기요마사를 따라 선봉장으로 조선으로 들어왔으나 귀순하여 역으로 왜군을 치게 되는 사가와라는 인물을 그렸다. 그가 조선으로 귀화해 받은 조선이름이 김충선이다. 책의 말미에 김충선에 대한 연혁이 보인다. 이기고 싶으면 적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속에 그려지는 시대적인 배경이야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조선 관료층의 아들 석운으 태어났으나 일본인 히로로 길러지는 아이. 그에게 찾아왔던 정체성의 혼란에서 안타까움이 전해지기도 한. 팩션이기에 어느정도는 작가의 상상력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이 사실처럼 느껴진다. 흥미로웠던 점은 조선의 입장이 아니라 일본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굵직한 둥지에서 가지처럼 뻗어나오는 이야기들은 책장을 넘길때마다 살짝 궁금하게도 하지만 왠지 진부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뒷맛은 그리 개운치가 않았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만나지는 일본문화의 단면들이 시선을 끌었다. 노가쿠, 앵앵전, 가케무사, 데루마사의 그림자... 노가쿠는 중국의 경극과 같은 일본의 전통 가면극이다. 지금은 일본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것이라 하니 기회가 된다면 한번 보고싶은 욕심이 생긴다. 가케무사는 말 그대로 그림자무사다. 적을 속이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무사를 자신처럼 꾸며 비상시를 대비하는 것이다. 앵앵전을 찾아보니 장생과 앵앵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로 중국 당나라 시대의 소설이라고 나온다. 덕분에 노가쿠의 시작이 중국의 산가쿠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대배경을 같이 하는 조선의 역사와 일본의 역사를 함께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 난은 말이야. 습도가 높은 것을 좋아하나 뿌리가 늘 젖어 있으면 썩고 만다.

귀하고 비싼 것이라고 생각되어 매일 애지중지 들여다보면서 물을 주는 초보자는

난을 반드시 죽이게 되지.

그렇다고 해서 너무 오래도록 물을 주지 않으면 탈수로 죽고.

그래서 언제가 물을 주기에 적합한 때인가를 안다는 것은

난을 키우는 첫걸음이면서 이해와 교감의 첫 관문이라는 거지.

2~3일에 한번씩 분의 표토로부터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깊이의 식재를 뒤적여 본 뒤

젖어있지 않으면 그 때가 물을 줄 적기라는 거야."

105쪽. 히로를 아꼈던 겐카쿠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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