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만화책 -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만화사, 한국만화 100년 특별기획
황민호 지음 / 가람기획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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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우리만화라는 거다. 어린시절 TV를 통해서 보았던 만화들이 모두 우리만화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일본판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사실에 꽤나 놀랐었다. 우리만화의 수준이 가히 세계적이라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는데 어째서 만화라는 문화가 활발하게 우리곁에 머물지 못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돈되는 것만을 쫓아야하는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반가움이 앞섰던 것은 내 어린시절을 다시한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정말 그랬다. 유행가처럼 지나가버린 어린시절속으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었고, 저자가 일러주는대로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훌쩍 커버린 나의 모습과 만나기도 했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이나 차갑게 삶과 마주서게 했는지는 모를일이지만 저자의 말대로 만화가 있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치 두치 세치 네치 뿌꾸뿌꾸 빵빵 ♪♬ 할아버지 할머니 어렸을적에 ♬ 검정고무신 ♪ 마루치 아라치 태권동자 마루치 정의에 주먹에 파란해골 13호 납작코가 되었네 ♪ 요리보고 죠리보고 둘리 ♬ 호이호이 둘리는 초능력 내친구 ♪♬ ...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나의 어린시절을 수놓았던 만화의 주제곡을 이렇게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도록 잊지않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만화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하겠다. 동네에서 텔레비젼이 있던 친구집의 마루에 걸터앉아 만화를 얻어(?) 본 적이 있었는데, 거지새끼처럼 남의 집에서 그러고 있는 꼴이 보기 싫다고 어느날 텔레비젼을 사오신 아버지 덕분에 나는 든든한 오빠를 빽삼아 동생과 늘 싸워가며 만화를 보곤 했었다. 아기공룡 둘리같은 경우야 이미 내가 다 커버린 다음에 인기를 끌었던 만화이긴 하지만 둘리의 귀여움에 푹 빠져들기도 했고, 둘리라는 캐릭터 하나가 김수정이라는 만화가를 돈방석에 앉히게 했다는 소문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둘리가 몰고 온 파장은 엄청 났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은 온통 캐릭터 시대라고도 할 수 있으니 작은 인형들을 통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아 그 미세한 움직임들이 가볍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지금도 명절만 되면 심심치않게 만날 수 있는 머털이가 생각난다. 어리숙하기만한 머털이가 머리털 하나를 뽑아 요술을 부리는 걸 보면 서유기의 손오공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그 수더분한 모습에 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한 때 '다모폐인'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 '다모'가 이미 만화로 먼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학창시절에는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만화속에서 우리를 안타깝게 했었던 까치와 엄지의 사랑을 등에 업고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라는 노래가 유행하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아쉽기만 했던 시절이었다. 샐러리맨의 애환을 잘 그려주고 있었던 김수정의 날자,고도리편을 보면서 현재 모신문에서 연재되고 있는 386C라는 만화가 생각났다. 네컷짜리 만화였지만 주변사람들은 그날 그날의 만화를 보면서 그 만화가의 일상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단다. 만화가의 두 아들이 커가는 모습을 만화를 통해 보던 나조차도 웃음을 지을 수 있었으니 어련할까! 

처음부터 시리즈물로 만들어져 나오는 만화가 있는가하면, 네 컷만으로 보여지는 만화가 있고, 단 한 컷만으로 모든 것을 압축히켜 보여주는 만화(일종의 삽화)가 있다. 어느것이 우선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네 컷이나 단 한 컷의 만화속에 압축되어져 있는 시류를 읽어낸다는 것은 정말 짜릿하다. 단 한 컷의 만화를 보면서도 웃을 수 있고 가슴 찡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말이다. 거기에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그림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품어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단순히 만화라고 불리기 보다는 일러스트라고 불리워지는 그림들이 나는 좋다. 많은 것을 장황하게 보여주지 않아도 간결하게 요약되어진 그 속에서 작가의 의도를 읽어낸다는 것도 의미있는 일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대별로 나누어진 만화의 주인공들이 이채롭다. 40-50년대의 만화야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니 그저 아스라한 기억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신문의 네 컷만화에서 자주 보았던 고바우나 코주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가장 신나는 만화들이 아무래도 60-70년대의 만화가 아닐까 싶다. 명랑만화라는 이름으로 소년잡지에 많이 실렸던 까닭이기도 하지만 다소 엉뚱한 캐릭터들이 많았다는 기억이다. 꺼벙이나 땡이도 있었지만 시커먼 눈썹에 동그란 얼굴을 하고 있던 따개비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가슴 찡하게 다가왔던 것은 아무래도 독고 탁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만화가 아니었나 싶다. 도깨비 감투나 발명왕 요철이도 기억난다. 사람처럼 말하고 걸어다녔던 검둥이 강가딘도 생각나고 박수동의 꼬불꼬불한 그림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상하게 생겼네 하면서 아이스크림을 선전하던  주인공이 바로 박수동의 그림이니 질긴 생명력에 다시한번 놀란다. 그래도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던 만화가라면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우영이 아닌가 싶다. 주로 스포츠신문을 통해 그 분의 만화를 보았었는데 성인만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재미난 말투때문에 배꼽을 잡았었다. 성인만화라고 하면 지금도 기억할 수 있는 변금련뎐이나 한희작의 여자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보니 내 기억속에서 이렇게 많은 주인공들이 살아있었나 싶다. 그만큼 무언가를 던져줄 수 있는 힘이 만화속에 존재한다는 말이 아닐까?

시대적으로 어떤 만화가 생겨났고, 그 만화의 생명력이 짧았거나 길었거나 했던 배경과 이유를 따져보기도 하고, 그 만화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었던 것, 혹은 그 만화때문에 겪어야 했던 풍랑들이 어떤 것이 있었는가를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 순간이었다. 검열이 심했고 반공 방첩을 이야기하던 시절이었으니 오죽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만화 한 컷이 주는 메세지 전달 효과가 얼마나 컸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 만화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타인의 힘에 의해 끝내는 붓을 꺾어야 했던 만화가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대중을 향해 소리없는 메세지를 전달한다는 것이 그토록이나 힘겨운 일인줄을 미루어 짐작하겠다.

한동안 유적지 답사 동호회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나름대로는 의미있는 일이라 여겨 쉽게 생각하지 않고 덤벼들었던 일이기도 했지만, 찾아가고자 하는 곳에 대한 사전지식을 안고 가는 것과 그저 알량한 호기심만을 안고 찾아가는 것에는 정말이지 천지간의 차이가 있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알고 대한다는 것이 무섭다는 말일게다. 내가 즐길 수 있는것조차도 그것에 대해 알고 즐긴다면 참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하는 소리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름 만화를 좋아한다고는 했지만 그저 펼쳐지는 화면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그 때 그 시절의 만화를 살펴보면서 그 만화가 안고 있는, 혹은 그 만화속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언행을 통해 작가정신과 시대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고수들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조금만 더 주의깊게 알려고 하는 마음으로 다가갔더라면 놓치고 지나쳤던 부분들이 적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감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옛 시절을 돌이켜 볼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기억을 되돌려 다시한번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젖어들기도 했다. 우리의 만화, 우리의 캐릭터들이 좀 더 활성화되어 우리곁에서 뛰어놀아 줄 때 작가의 말처럼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나도 해 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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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함정 - 무엇이 우리의 판단을 지배하는가
자카리 쇼어 지음, 임옥희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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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에 숨겨진 놀라운 심리의 비밀'이라는 말조차도 나는 거부하고 싶었다. 그다지 비밀스러운 것도 없어보였던 까닭이다.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모른 척 하는 것들, 모두가 인정하면서도 모두가 아닌 척 하는 그런 것들.. 어쩌면 우리가 범하고 있을 모든 우愚가 선택해야만 했던 그 순간부터 존재하는거라고.. 하지만 그렇게 선택하도록 만든 것은 누구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곤 이렇게 결정을 내려버리고 말았다. 선택에 숨겨진 놀라운 심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는 오직 나만이 가지고 있는 거라고.. 학습되어진다는 모든 시스템 역시 우리가 만든 것이기에.. 실행되어졌던 모든 사실속에서 오류가 발생하고 그 오류들을 모아 분석하고 정리하여 이정도면 되겠지 하며 다시 만들어지는 시스템들이 어디 하나둘일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직접적으로 대면하지는 못하지만 수많은 시스템속에서 그런 일들은 정말 많이 생겨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류의 책이 작가의 말처럼 주관적인 관점으로 쓰여진다는 것은 그 오류의 발생률을 좀 더 적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정도는, 이정도쯤이야, 여기 혹은 거기까지만 등등등.. 우리가 그어놓은 선은 참 많다. 그런데 그 선들의 모양이 모두가 제각각이니 문제다. 중용이라는 말이 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딱 중간쯤이라는 말일텐데 그것조차도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일런지도 모르겠다. 이분법적 사고라거나 양극화현상이라는 말처럼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도 없을텐데 어느 틈엔가 우리는 그런 말들의 노예가 되어 있는 듯하다. 그 내면을 살펴보자면 나 편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나온다. 내편이라면 더이상 아무런 생각없이 받아들이면 그만일테고 저쪽편이라면 나를 힘들게 할테니 없애버리거나 무시해버린다는 식이다. 그런데 이 책속에서는 경계해야할 항목으로 그런 관념의 틀을 콕집어 말해준다. 우리도 안다. 앎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이기적인 사고가 그것을 막아버린다. 그러니 문제라는 말이다.

겉으로는 강한척 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파헤쳐보면 나약함과 유약함이 존재한다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다. 그것을 들키지 않기위해 강한척 한다는 말에도 어느정도는 공감한다. 때로는 들키고 싶지 않은 내면이 타인들에게는 나의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을까하는 불안심리도 있을 것이다. 약한쪽보다는 강한쪽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나 역시 그런 사람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그 내면을 숨기고 사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아 왠지 가슴을 쓸어내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사람들은 강해지고 싶고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고 싶어하는 묘한 감정을 숨기고 사는 모양이다. 책속에서야 이렇다하게 알 만한 사람들의 이름을 사례로 들려주며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들만이 그런건 아닐테니 하는 말이다.

작가는 나약함이 노출될 것을 두려워하는 노출불안이나, 복잡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원인혼란등, 많은 예를 들어가며 심리적인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1차원적으로 세상을 본다는 평면적인 관점 편에서는 정말이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신이 알고 있는 혹은 자신이 배웠던, 그것도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테두리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 무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범주화에 대한 강박증이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대부분의 사건들이 이 틀때문에 생겨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더군다나 상대도 나와 같을 것이라는 착각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작가가 거울 이미지라는 말로 미화하고는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결과물들은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뻔하다.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고 나의 가정일 뿐인데 상대의 욕망이나 생각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그 자체는 정말 다시한번 돌이켜볼 일이다. 나 역시도 그 거울 깨뜨리기에 적극 동참하고 싶다. 어려운 일일테지만...

많은 이야기속에서 유독 나의 시선과 마음을 붙잡았던 부분은 아무래도 정보에 관한 항목이 아닐까 싶다. 잘 알고 있는 모파상의 <목걸이>를 예로 들면서 진주목걸이를 빌려갔던 여인과 그 목걸이를 빌려주었던 여인이 서로 정보만 교환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의 함정에 빠지게 해 주었다. 정말 그렇구나 싶었다. 그 진주목걸이가 모조품이라는 말만 미리 해 주었어도, 그 진주목걸이를 잃어버렸다는 말만 일찍 했어도 그렇게까지 힘겨운 인생을 살지 않아도 되었을 거라는 말은 나에게 각인되듯이 다가왔다. 수많은 정보에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람들.. 정보를 공유하게 되면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정보를 독점하기도 하고, 모든 정보를 차단시킴으로 정보의 공백상태를 유지시키며 정보를 회피하기도 하는 것이 오로지 이기적인 마음때문이라면 정말 슬픈일이다. 물론 때로는 감춰야 할 비밀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피해야 할 정보도 있을테지만 그런 모든 상황을 판단하는 선택권이 자신에게 있음은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봐야 할까?

역사적인 사실을 여러가지로 보여주며 그 상황에서는 왜 그랬을까?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과 해답을 적절하게 잘 조화시켜 나가는 책의 흐름을 따라잡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라면,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을 한번쯤은 하게 만들어주니 저절로 생각늪에 빠져버리곤 한다. 그것조차도 생각의 함정이었을까? 알 수 없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중에 선입견이나 편협된 생각이라는 것이 있다. 모든 것들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갖지 못하는 상태가 아닐까 싶어 경계하기도 하지만 잘 안된다. 지독히도 강한 주관적인 관념때문이다. 고집스럽다는 성격을 탓하기 보다는 어쩌면 변화를 거부하는 게 아닐까하는 염려스러움도 있다. 책속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변화하는 세계를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상실을 초래하는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가끔씩은 드물게 변화를 거부하여 성공하는 사례도 있지만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면 열린 마음으로 주변을 넓게 바라보며 생각해야 하는 것이니 그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 너무 민감하게 변화에 대응하는 것도 문제가 있겠지만 말이다.

"무엇이 우리의 판단을 지배하는가" 라는 책의 부제처럼 나의 선택으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그 판단이 옳았다거나 틀렸다해도 그 결과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때로는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힘겨워하는 주변도 생겨나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다. 돈 좀 있다고, 덩치가 크다고, 목소리가 크다고 이기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그런 세상속에서 살고 싶진 않다. 그 순간만큼은 비록 약하게 보여질지라도, 비록 머리를 숙여야하는 상황이 만들어질지라도 잘못을 알고도 나의 입장을 고수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같다. 그것이 또다른 나를 만들어가는 지름길일테니 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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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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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다니는 사람들의 1/3이 정신병자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그런 말을 여과지를 통과하지 않고 그대로 듣는다면 정말 끔찍한 말이겠지만 그것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비추어 말하는 것이라고 위안삼으면서 그 섬뜩함을 달래보기도 한다. 미쳐가고 있다는 말이 갖는 양면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온 정신을 다 빼앗긴 채 살아가는 것이니 행복할 수도 있는 일일테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회피가 아닐까 싶기도 하여 왠지 서글퍼지기도 한다.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은 자, 과연 누구인가?' 라고 묻고 있는 이 책의 소개글을 보면서 범인은 우리가 아니라 사회라고 떠밀고도 싶어진다. 그러나 어쩌랴, 그렇게 미쳐가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인 것을... 일단은  특이하다. 처음부터 문맥을 찾아 헤매느라 정신을 못차렸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이해하려고만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뭔가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되는 책..

책속에서 주인공처럼 보여지는 미모의 여인 아구스티나는 어린시절부터 억압되어져 있던 감정의 소용돌이안에 갇힌 채 살아가는 정신병자이다. 가끔씩은 제 정신으로 돌아와 주변사람들에게 잠깐의 행복을 전해주고 가는 그런 안타까움의 존재.. 그런 그녀를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으로 감싸며 감정의 소용돌이로부터 꺼내기 위해 노력하는 환상같은 남자 아길라르.. 아이러니하게도 그 두사람에게서 보여지는 공통점이 있다면 그러면서도 끝없이 서로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는 거였다. 차갑고 형식적이기만 했던 가족들. 그 틈새속에서도 일종의 모성애와 같았던 자신의 사랑을 어린 동생 비치에게 쏟아부을 수 밖에 없었던 아구스티나.. 단 한번도 거역하지 않은 채 자신이 처해진 상황안에서 사랑을 찾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던 어린소녀 아구스티나는 어쩌면 이미 자신만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리저리 정신없이 왔다갔다하는 책속의 시선을 쫓다보니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타인의 시선으로 돌아가버린 듯 느껴진다. 같은 장소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는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두사람을 보고 있다. 듣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말하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옮긴이의 말을 빌려보자면 내면과 외면의 세계를 동시에 왔다갔다 하는 까닭이라고 하지만 왠지 거북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구스티나의 행적을 자신과 제3자의 시선으로 혹은 제3자의 목소리를 빌려 나에게 들려주고 있으니 조금은 혼동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편함을 참으며 책장을 넘기다보면 어느샌가 아구스티나라는 여인의 광기에 대한 공감이 생겨나기 시작한다는 거다.

아구스티나를 향한 아길라르의 마음은 묘하다. 어느날 갑짜기 출장에서 돌아와 전화기에 녹음된 목소리를 듣게 되는 아길라르. 웰링턴 호텔에서 당신 부인을 찾아가시오... 이 뜬금없는 소리에 그 흔한 아내의 부정을 떠올리게 되는 남자. 미친 아내곁에서 자신도 서서히 미쳐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결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남자. 아내의 과거를 따라가면서 아내의 주변에 대하여 더 많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자신을 탓하는 남자. 그러면서도 언뜻언뜻 자신이 원하는 작은 행복의 고리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남자.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아구스티나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그리하여 아길라르와 같이 자신을 감싸안아줄 그런 존재를 기다리며 꿈꾸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러면서 나는 똑같은 질문에 부딪히게 되어버렸다.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은 자, 과연 누구인가?"

색다른 시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나를 헤매게 하고 지치게 했지만 말이다. 누군가는 말해야 하는 이 세상속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친 그런 느낌을 전해주었던 책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형식의 옷을 하나씩 하나씩 벗어버리며 자신의 알몸으로 다가가고 있는, 그야말로 피하지 않고 부딪혀야 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의 울림이 전해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의 이력이 눈에 띈다. 소설속에서 마약거래나 돈세탁과 같은 상류층의 냄새나는 부에 대해 과감하게 칼을 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조국 콜롬비아의 비극을 외면할 수 없었던 정치인의 숨결이 거기에 살아 숨쉰다고 한다. 실제로도 작가는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고 하니 그 표현들이 모두 조국에 대한 절절한 작가의 마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먼 자들의 도시>를 통해 인간의 숨겨진 내면을 시원하게 파헤쳐버렸던 주제 사라마구의 칭찬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유혹을 이겨낼 수 없었다. 작가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라는 이름을 보면서 오랜동안을 나의 책장에 꽂힌 채 눈 앞에서 서성거렸던 <백년동안의 고독>을 떠올렸다.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저 흐름을 따라 가다보니 자연스럽게 와닿는 그 무엇과 마주치던 순간들, 그 기다림을 내게 알려주었던 작품들을 떠올렸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선택했던 내가 받을 수 있었던 선물로 충분했다. 조금은 거북스러웠지만, 나에게 인내심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읽고나니 후련하다. 그러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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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 행복해 마음별에서 온 꼬마천사 2
쿠르트 회르텐후버 지음, 이승은 옮김 / 꽃삽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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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오는 날 출근길에 갑작스럽게 불어 온 바람이 내 우산을 훌러덩! 뒤집어 버렸을 때, 비 개인 오후 화창한 날씨를 노래하며 걷던 거리에서 철퍼덕! 버스가 튕기고 가는 흙탕물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야 했을 때... 등 그런 황당한 상황들에 대처하는 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 머피의 법칙이란 기가막힌 우연성에 대처하는 법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못난 내가 반박하던 소리였다.  그런 작은 일들이 모여 내 모든 시간을 불만 투성이로 덧칠해가고 있어도, 그것이 덜마른 물감처럼 내 삶의 전체에 번질거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못하면서.. 아니 가끔씩은 번져가는 물감을 잡아보려고도 하지만 그것이 그만 또하나의 투정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기억이 누구나에게 한번쯤은 있지 않았을까? 나는 이 책을 보면서 궁시렁거리고 투정부리고 왜 나만 이래야 하는 거냐고 짜증부리고, 내가 그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늘 걱정만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건 아닌지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처음 마음별에서 온 꼬마천사를 만나게 되었을 때 어찌나 귀엽던지 깨물어주고 싶었다. 마음별 시리즈 1편 <행복은 어디에나 있어>를 통해서 우리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은 주변에 너무나도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2편 <사랑해서 행복해>는 그 행복을 지켜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해보게 한다.  손으로 한 뼘 만큼의 거리안에도 행복은 있었고, 그저 눈을 크게 뜨고 있기만 해도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 행복이었다면 사랑 또한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그러니 모두가 사랑의 열쇠를 찾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는 꼬마천사와의 두번째 만남 역시 소중하고 또 소중하게 다가온다.

사랑에 빠져버린 꼬마천사의 가슴은 뛰었고 해님과 내기라도 한 것처럼 환한 얼굴이 되었다는( 이 표현은 나에게 정말 기막히게 아름다운 표현으로 다가왔다) 그 말에 내가 그만 환한 웃음을 짓게 되어버렸다.  꼬마천사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제니의 웃음. 그 웃음이 전해 주었던 행복바이러스에 감염되어버린 꼬마천사를 통해 엄마도 할아버지도 모두가 기쁨 가득한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르겠다. 꼬마천사와 할아버지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던 사랑에 관한 짧은 의미들이 내게 어린아이같은 두근거림을 전해주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함께 기뻐해 줄 줄 알아야 하고, 매일같이 정성껏 관심을 갖고 보살펴야 하며, 사랑하고 있는 바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그렇게 마음속에 품고 있는 한 그 사랑은 영원한 것이 될거라고...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노력한다면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게 될거라고..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어 큰소리로 말하고 싶겠지만 많은 말을 해야만 알 수 있는 게 사랑은 아니라고.. 사실 꼬마천사와 할아버지가 함께 나누었던 대화가 새삼스러울 것은 하나도 없었다. 늘 듣는 말, 늘 곁에 두는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한번 읽게 되었던 것은, 이제 막 시작되는 꼬마천사의 순수한 느낌과 모든 것을 이미 다 알아버린 그러나 후회를 앞세울 수 밖에 없었던 할아버지의 성숙됨이 어울어져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에 더 좋게 다가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랑이란 서로에게 자유공간을 허락하고 상대방이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라는 것이다. 관심과 믿음이 밑거름이 되어 뿌리를 내리는 사랑이라면 집착도 소유도 날아와 앉지 않는 꽃을 피울 수 있을거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은 기억해 둘 만하다.

마지막 장을 열었을 때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던 그 작은 편지봉투를 기억한다. 과연 그 속에는 어떤 메세지가 들어있을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었다. 꼬마천사가 내게 전해줄 메세지는 무엇일까? 너무 조심스럽게 대하다보니 봉투의 한쪽이 조금 찢어지고 말았다. 한 장, 두 장, 석 장, 넉 장, 다섯 장... 모두 다섯 장의 작은 카드. 전해받은 메세지는 다섯 장뿐이었지만 내가 다른이에게 다시 전해주어야할 느낌은 그보다도 훨씬 많은 듯 하다. 

모든 것에서 사랑을 발견하려는 노력, 그게 바로 사랑의 열쇠야.
그러니까 모든 것에서 사랑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멈추지마.
사랑해서 행복한 거니까.

아직도 사랑의 열쇠를 찾고 있다면 손 한 뼘만큼의 거리안에서 찾아보기 바란다. 사랑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꼬마천사가 가르쳐주었으니까. 그리고 그 사랑이 있어서 우리는 행복한 것일테니까. 사족같지만 2편 <사랑해서 행복해>의 주인공 꼬마천사와 제니의 모습이 너무나도 이뻤다. 그림 하나만으로도 그토록 난해한 사랑에 대하여 어쩌면 저렇게 잘 표현할 수 있는지 부럽기도 했다. 아주 짧지만 아주 긴 여운을 남겨주는 이야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알아채는 것'이 행복이라면,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하나남은 마지막 이야기가 기대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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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armony 조화로운 인생 - 진정한 부를 이루는 5가지 절대 조건
제임스 아서 레이 지음, 송택순 옮김 / 엘도라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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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머니 머니해도 머니가 최고! 라는 말, 흔하게 쓰는 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웃으면서 쓰는 말이지만 그 뒷면은 참 씁쓸하기도 하고, 그다지 유쾌한 느낌을 전해받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종종 마주치는 질문중의 하나이기도 한 이 말은 어떨까?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나는 속된 사람이라서 그런지 돈이 많으면 행복하냐고 묻는 질문에 무조건 yes! 를 외쳐댄다. 돈이 많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사람나고 돈났지 돈나고 사람났냐? 하고 물어오면 그래 너 잘났다, 이렇게 비꼬기를 예사로 한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일상들이 돈으로 해결되고 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그랬기에 금전만능주의가 생겨났을테고 좀 더 많은 부를 누리기 위해 돈에 집착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돈이 건강을 잃고 난 뒤에 온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다. 아주 가볍게 스쳐지나갈 아픔이라면 물론 돈이 해결해줄 수도 있겠지만 우리 주변을 흘러다니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그 많은 돈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 건강이라고 말해주고 있으니 그것 또한 부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진정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진정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은 자기 자신안에 있음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의 모든 원천을 밖에서만 찾으려고 한다. 이 책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그 조화로운 인생이라는 것도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가를 안내해주고 있는 지침서이다.  금전의 풍요, 관계의 풍요, 정신의 풍요, 육체의 풍요, 영혼의 풍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금전의 풍요를 다루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돈의 거짓말에 속지말고 돈 자체를 목표를 세우지 말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그 돈을 떠나서는 나머지 네가지의 풍요를 충분하게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가난은 죄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물론 어쩔 수 없어서..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가난은 죄임에 분명하다. (요즘의 실태를 바라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가난이 죄일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가는 우리의 사회를 보라!)  돈은 내면을 드러내는 하나의 도구라는 말을 이 책속에서 만날 수 있지만 사실 그렇다. 돈이 없다면 그 내면을 표현한다는 것조차도 궁색해지는 까닭이기도 하다.

모든 계발서나 인생의 지침서에서 다루고 있는 공통분모는 아무래도 자기최면이 아닐까 싶다. 좋게 말한다면 의식의 변화쯤 되겠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충분히 그럴 능력과 자격이 있다, 이것쯤이야..하는 등의 자기최면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해서 일단 의식의 변화부터 겪어야 한다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음이다. 각설하고 이쯤되면 머리부터 아파온다. 또 그 타령이야? 하는 마음이 앞서는 까닭이다.  이런 지침서가 그야말로 지침서의 역할을 제대로 했던 사람들은 성공할 것이고, 나처럼 또? 하고 외친다면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어내는 것은 변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 탓일게다. 가장 먼저 자신과 친해져야 하고 스스로 사랑에 빠지고 싶은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관계의 풍요나, 생각이 바뀌어야 행동이 바뀐다(정신의 풍요)는 뻔한 진리를 다시한번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변화에 대한 갈증때문일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깊이 각인되는 한마디를 찾아보자면 이렇다. 자신의 힘을 스스로 지배하고 싶다면 먼저 정서를 지배하라는 말이다. 정서를 지배하는 첫번째 단계는 인생의 경험이 외부 사건들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인생의 모든 것은 당신이 그것에 부여하는 의미 외에는 다른 어떤 의미도 없다.(-172쪽) 사실 우리가 판단하는 모든 것들이 나로부터 비롯되어지는 주관적인 관점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멋진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부적인 요인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활이 어디 그런가 말이다!

마지막으로 영혼의 풍요편을 통해서 알게 된 인간은 신보다 자신의 내면을 따른다(-274쪽) 는 말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놀라웠다. 사람들 대부분은 스스로를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영적이라고 정의할 뿐이고, 종교 지도자의 권고를 따르기 전에 자기 내면의 인내를 따른다고 하니 이 얼마나 자기주관적인가 말이다. 아니 바꾸어 말하면 신에 대해 알기를 원하지만 그다지 크게 기대하며 살지는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또하나의 불편한 진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영혼의 풍요를 위하여 하나의 수단이 되는 종교조차도 자의식에 밀린다면 역시 모든 것은 자기 자신안에 있음을 역설하고 있는 것만 같아 왠지 서늘하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다섯가지의 풍요는 모든 것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만 제대로 된 것이라고, 그러니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문득 인간이 완벽하다면 신이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완벽하지 않기에 완벽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는 말도.. 글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너무 어렵다. 역시 나는 小人인 모양이다. 백만장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내 주어진 조건에서 작은 행복을 느끼며 아프지 않고 잘 살아가는 것만이 나만의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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