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만화책 -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만화사, 한국만화 100년 특별기획
황민호 지음 / 가람기획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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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우리만화라는 거다. 어린시절 TV를 통해서 보았던 만화들이 모두 우리만화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일본판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사실에 꽤나 놀랐었다. 우리만화의 수준이 가히 세계적이라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는데 어째서 만화라는 문화가 활발하게 우리곁에 머물지 못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돈되는 것만을 쫓아야하는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반가움이 앞섰던 것은 내 어린시절을 다시한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정말 그랬다. 유행가처럼 지나가버린 어린시절속으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었고, 저자가 일러주는대로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훌쩍 커버린 나의 모습과 만나기도 했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이나 차갑게 삶과 마주서게 했는지는 모를일이지만 저자의 말대로 만화가 있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치 두치 세치 네치 뿌꾸뿌꾸 빵빵 ♪♬ 할아버지 할머니 어렸을적에 ♬ 검정고무신 ♪ 마루치 아라치 태권동자 마루치 정의에 주먹에 파란해골 13호 납작코가 되었네 ♪ 요리보고 죠리보고 둘리 ♬ 호이호이 둘리는 초능력 내친구 ♪♬ ...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나의 어린시절을 수놓았던 만화의 주제곡을 이렇게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도록 잊지않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만화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하겠다. 동네에서 텔레비젼이 있던 친구집의 마루에 걸터앉아 만화를 얻어(?) 본 적이 있었는데, 거지새끼처럼 남의 집에서 그러고 있는 꼴이 보기 싫다고 어느날 텔레비젼을 사오신 아버지 덕분에 나는 든든한 오빠를 빽삼아 동생과 늘 싸워가며 만화를 보곤 했었다. 아기공룡 둘리같은 경우야 이미 내가 다 커버린 다음에 인기를 끌었던 만화이긴 하지만 둘리의 귀여움에 푹 빠져들기도 했고, 둘리라는 캐릭터 하나가 김수정이라는 만화가를 돈방석에 앉히게 했다는 소문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둘리가 몰고 온 파장은 엄청 났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은 온통 캐릭터 시대라고도 할 수 있으니 작은 인형들을 통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아 그 미세한 움직임들이 가볍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지금도 명절만 되면 심심치않게 만날 수 있는 머털이가 생각난다. 어리숙하기만한 머털이가 머리털 하나를 뽑아 요술을 부리는 걸 보면 서유기의 손오공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그 수더분한 모습에 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한 때 '다모폐인'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 '다모'가 이미 만화로 먼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학창시절에는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만화속에서 우리를 안타깝게 했었던 까치와 엄지의 사랑을 등에 업고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라는 노래가 유행하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아쉽기만 했던 시절이었다. 샐러리맨의 애환을 잘 그려주고 있었던 김수정의 날자,고도리편을 보면서 현재 모신문에서 연재되고 있는 386C라는 만화가 생각났다. 네컷짜리 만화였지만 주변사람들은 그날 그날의 만화를 보면서 그 만화가의 일상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단다. 만화가의 두 아들이 커가는 모습을 만화를 통해 보던 나조차도 웃음을 지을 수 있었으니 어련할까! 

처음부터 시리즈물로 만들어져 나오는 만화가 있는가하면, 네 컷만으로 보여지는 만화가 있고, 단 한 컷만으로 모든 것을 압축히켜 보여주는 만화(일종의 삽화)가 있다. 어느것이 우선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네 컷이나 단 한 컷의 만화속에 압축되어져 있는 시류를 읽어낸다는 것은 정말 짜릿하다. 단 한 컷의 만화를 보면서도 웃을 수 있고 가슴 찡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말이다. 거기에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그림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품어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단순히 만화라고 불리기 보다는 일러스트라고 불리워지는 그림들이 나는 좋다. 많은 것을 장황하게 보여주지 않아도 간결하게 요약되어진 그 속에서 작가의 의도를 읽어낸다는 것도 의미있는 일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대별로 나누어진 만화의 주인공들이 이채롭다. 40-50년대의 만화야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니 그저 아스라한 기억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신문의 네 컷만화에서 자주 보았던 고바우나 코주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가장 신나는 만화들이 아무래도 60-70년대의 만화가 아닐까 싶다. 명랑만화라는 이름으로 소년잡지에 많이 실렸던 까닭이기도 하지만 다소 엉뚱한 캐릭터들이 많았다는 기억이다. 꺼벙이나 땡이도 있었지만 시커먼 눈썹에 동그란 얼굴을 하고 있던 따개비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가슴 찡하게 다가왔던 것은 아무래도 독고 탁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만화가 아니었나 싶다. 도깨비 감투나 발명왕 요철이도 기억난다. 사람처럼 말하고 걸어다녔던 검둥이 강가딘도 생각나고 박수동의 꼬불꼬불한 그림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상하게 생겼네 하면서 아이스크림을 선전하던  주인공이 바로 박수동의 그림이니 질긴 생명력에 다시한번 놀란다. 그래도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던 만화가라면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고우영이 아닌가 싶다. 주로 스포츠신문을 통해 그 분의 만화를 보았었는데 성인만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재미난 말투때문에 배꼽을 잡았었다. 성인만화라고 하면 지금도 기억할 수 있는 변금련뎐이나 한희작의 여자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보니 내 기억속에서 이렇게 많은 주인공들이 살아있었나 싶다. 그만큼 무언가를 던져줄 수 있는 힘이 만화속에 존재한다는 말이 아닐까?

시대적으로 어떤 만화가 생겨났고, 그 만화의 생명력이 짧았거나 길었거나 했던 배경과 이유를 따져보기도 하고, 그 만화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었던 것, 혹은 그 만화때문에 겪어야 했던 풍랑들이 어떤 것이 있었는가를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 순간이었다. 검열이 심했고 반공 방첩을 이야기하던 시절이었으니 오죽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만화 한 컷이 주는 메세지 전달 효과가 얼마나 컸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 만화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타인의 힘에 의해 끝내는 붓을 꺾어야 했던 만화가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대중을 향해 소리없는 메세지를 전달한다는 것이 그토록이나 힘겨운 일인줄을 미루어 짐작하겠다.

한동안 유적지 답사 동호회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나름대로는 의미있는 일이라 여겨 쉽게 생각하지 않고 덤벼들었던 일이기도 했지만, 찾아가고자 하는 곳에 대한 사전지식을 안고 가는 것과 그저 알량한 호기심만을 안고 찾아가는 것에는 정말이지 천지간의 차이가 있었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알고 대한다는 것이 무섭다는 말일게다. 내가 즐길 수 있는것조차도 그것에 대해 알고 즐긴다면 참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하는 소리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름 만화를 좋아한다고는 했지만 그저 펼쳐지는 화면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그 때 그 시절의 만화를 살펴보면서 그 만화가 안고 있는, 혹은 그 만화속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언행을 통해 작가정신과 시대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고수들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조금만 더 주의깊게 알려고 하는 마음으로 다가갔더라면 놓치고 지나쳤던 부분들이 적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감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옛 시절을 돌이켜 볼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기억을 되돌려 다시한번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젖어들기도 했다. 우리의 만화, 우리의 캐릭터들이 좀 더 활성화되어 우리곁에서 뛰어놀아 줄 때 작가의 말처럼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나도 해 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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