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명화 한 점 - 명화 같은 인생, 휴식 같은 명화
이소영 지음 / 슬로래빗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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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언제부터인가 내게 무언가를 찾아 읽게 되는 습관이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지하철을 타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처럼 되어버린 것, 詩 한편 읽기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두 편도 좋고 세 편도 좋다. 익히 알고 있었던 시인의 이름이나 시의 제목이라도 눈에 들어오게 되면 가끔 들어오는 지하철을 무시할 때도 있다. 그냥 그 시를 읽는 순간이 좋아서. 왜 좋으냐고? 그냥 좋다.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느낌이라서 뭐라고 말해 줄 수 없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좋아서. 그날의 상태에 따라 같은 시라도 느낌이 강한 날이 있는가 하면 그다지 앞에 머물고 싶지 않은 날도 있다. 한 편의 시가 이렇듯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그림은 또 어떨까? 그림 역시 다르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솔직하게 말해 그림을 모른다. 한마디로 그림 볼 줄을 모른다는 말도 될게다. 언젠가 내게 공부를 가르쳐주던 선생님과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던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전시된 작품들을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지를 몰라 그 작품들에 대해 선생님께 물었던 기억이 있다. 무엇이 느껴지길 원해요? 그냥 자신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정답일거예요... 라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오래도록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림이 하나 있다.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되었는데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을 온통 빼앗겨버린 그림이다. 단원 김홍도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다. 그림은 볼 줄 모르지만 그림이 주는 느낌이 한없음에 놀랐던 작품이기도 하다. 채워지지 않았으나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그림이기도 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그림의 형식은 진경산수화쪽인 듯 하다. 자신만 알아챌 수 있는 어떤 의도를 숨겨놓은 그림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깔끔한 그림형식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내게 추상화라는 개념은 아무런 느낌조차 전해주질 못한다. 다행인지 이 책속에서는 추상화가 보이지 않는다.

 

첫 작품으로 소개해 준 '장밋빛 인생'이란 그림이 참 좋았다. 보자마자 새콤달콤한 맛이 떠오르는 그림이라는 글쓴이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전체적인 색감이 다소 유치해보일 수 있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쩌면 저리도 상큼함을 담아낼 수 있을까 싶었다. 다시 시작되는 월요일을 위한 그림으로는 제격이다. 이 책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그림은 고전파, 낭만파, 야수파, 인상파... 장르도 여러가지다. 작품마다 붙여준 화가에 대한 짧은 소개글쓴이가 부록처럼 껴넣은 미술사조를 한번 더 보게 된다. 특별하지 않은 글쓴이의 일상이 하나의 작품과 만나는 순간처럼 너무 멀지 않은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명화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같은 글, 같은 그림일지라도 사람마다 느낌은 다르다. 같은 사람일지라도 그날의 상태에 따라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니 정말 명화를 본다는 것에 대한 정답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앙리 마티스의 '노을지는 창가의 젊은 여인'과 카스파르 프리드리히(이름도 어려워라!)의 '창가의 여자', 알프레드 스티븐스의 '은하수' 라는 세 점의 그림을 다시한번 찾아서 보았다. 세 그림 모두 밖을 내다보며 서 있는 여인들의 모습이다. 마티스의 그림은 제목처럼 노을지는 풍경이 창 밖으로 보이고, 프리드리히의 그림에서는 여인이 뒷모습을 보이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창 밖 풍경이 그다지 유쾌해 보이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스티븐스의 그림속 여인이 바라보고 있는 창 밖의 풍경은 은하수가 쏟아져 내릴 듯한 밤바다의 풍경이다. 살풋 웃음이 난다. 이 세 점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명화로 일상을 사유하고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책표지의 글이 부럽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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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탄생 - 사라진 암호에서 21세기의 도형문까지 처음 만나는 문자 이야기
탕누어 지음, 김태성 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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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만났던 이름이 창힐과 허신이 아닐까 싶다. 창힐과 허신은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찾아보니 창힐은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황제의 신하로 모래에 새겨진 새나 동물의 발자국을 보고 처음으로 문자를 만들었다는 사람이고, 허신은 <설문해자>라는 책의 저자였다. <설문해자>는 말 그대로 문자를 풀어서 해석했다는 뜻이다. 창힐은 도교사상에서 네 개의 눈을 가진 신으로 표현되는데, 눈이 네 개여서인지 사물을 보면 순식간에 그 특징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학문의 신으로 받들어지는 문창제국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설문해자>는 한자 하나하나에 대해 본래의 글자 모양과 뜻, 그리고 발음을 종합적으로 해설한 책이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모양이나 뜻, 그리고 그것을 읽는 소리에 대해 해설한 책으로 중국 최초의 字典이라고 한다.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에서조차 약 4천 자 정도의 한자를 알고 있어야 무리없이 신문을 읽을 수 있으며, 고전을 읽으려면 최소한 7천 자 이상의 한자를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하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렇다면 지금 우리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문자의 기원은? 문자의 종류는? ... 문득 궁금해진다. 문자는 초기의 그림문자(반구대암각화와 같은)를 시작으로 으미를 가진 단어를 표현하는 표의문자와 소리를 표현하는 표음문자로 크게 나뉘어지는데, 표의문자는 보통 그림문자와 사물의 형상을 그대로 본떠 만든 상형문자를 말한다. 한글이나 로마자의 경우에는 표음문자에 속하고, 한자는 대표적인 표의문자다. 이 책은 아마도 허신의 <설문해자>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자면 일단 갑골문자를 알아야 할 것 같다. 중국 은나라때 점치는 데 사용했다는 귀갑수골문자라고도 한다는 갑골문자가 거북이 등딱지나 짐승의 뼈를 이용한 점은 신석기시대부터였다. 하지만 여기에 문자를 새긴 것은 오직 은나라만의 특징이라고 한다. 그 문자의 수가 3천자 정도인데 그 중에서 해독된 것은 절반정도라고 한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제사나 군사, 농경이나 왕의 거둥, 안부에 관한 것이 많이 보여서 은나라 시기의 정치나 사회문화를 알 수 있게 해 준다고 하니 아직 해독되지 않은 절반의 문자가 앞으로 들려줄 수많은 이야기가 기대된다.

 

책표지에서 보이는 그림문자처럼 책을 펼치면 만날 수 있는 상형문자가 볼수록 신기하다. 지금까지 접해왔던 한자와는 다르게 모든 것을 담아낸 그림같은 문자들의 생김새가 이채로운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글자의 원형이었던 그림문자들을 보면서 하나씩 상상해가는 맛도 꽤나 좋았다. 더구나 이 책속에서는 처음의 문자에 담았다는 인간의 심리적인 면이나 사회상까지 보여주고 있다. 그림 혹은 문자속에 사랑이나 미움을 담기도 했으며 귀하고 천함을 담기도 했다. 성애의 표현이나 죄를 응징하는 벌의 표현까지 너무나도 다양했다. '醢' 자는 육장 '해'자다. 젓갈이나 형벌이름이란 뜻도 있지만 절이다, 삶다라는 뜻도 있는 글자이다. 하지만 갑골문에서 보면 음식이 아니라 혹형의 의미였다. 옛글자의 형태를 살펴보면 큰 절구 안에 죄수를 넣어놓고 회자수가 산 채로 사람을 절굿공이로 내리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말이 보인다. 얼마나 무서운 글자인지 상상만해도 오싹해진다. '走' 자와, '奔' 자는 똑같이 달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약간 서두를 때는 '走'자를 쓰고, 속도를 높여 미칠듯이 달릴 때는 '奔'자를 쓴다고 한다. 옛글자의 형태를 봐도 '走'자에서는 사람의 발을 하나만 표현했지만, '奔'자를 보면 양손을 크게 휘두르며 달리는 사람의 발이 세 개로 표현되었으니 지금봐도 그 뜻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밖에도 정말 많은 그림문자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책을 읽던 중에 이 책의 이해를 돕지 않을까 싶어 한자의 조자() 원리라는 六書에 대해 찾아보았다. 六書는 한자를 만들고 실제로 응용하는 지사(), 상형(), 형성(), 회의(), 전주(), 가차() 등을 가리킨다. 지사()는 추상개념을 점과 선을 이용하여 도형화한 것이다. 상형()은 물건의 형태를 형상화한 것으로 그림이 근본이 되며, 하나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글자를 쪼개는 것이 거의 의미가 없다. 상형자는 나중에 복잡한 뜻을 가지는 글자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구성요소로, 일반적으로 부수로 사용된다. 획수가 비교적 많은 부수는 거의 대부분이 상형자다. 형성()은 이미 만들어진 글자를 합성한 것으로, 한쪽이 뜻을 나타내고 다른 한쪽이 소리를 나타낸다. 의미를 나타내는 부분과 소리를 나타내는 부분을 조합해서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여러 가지 한자를 만들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한자에서 형성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으로 높다. 회의()는 같은 글자나 서로 다른 글자를 합쳐서 또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전주()는 한 글자의 뜻을 다른 뜻으로도 쓰는 방법으로, 쓰기는 같은 글자를 쓰되 다르게 읽고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다. 가차()는 말로는 존재하나 문자로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나 글자를 문자로 나타내기 위해 소리가 같은 글자의 글자꼴을 빌려쓰는 것을 말한다. 이 책속에서도 六書에 관한 말들이 많이 보인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앞서 말했던 <설문해자>의 형식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랬다면 더 재미있었겠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한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한자를 쉽게 풀이해놓았다는 책을 보고 있긴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약간의 맛을 보았으니 기회가 된다면 <설문해자>를 접해보고 싶다. 이런 저런 사설없이 온전히 한자의 원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다. 연습장을 펴고 글자를 써가며 다시한번 읽어봐야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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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엮음 / 채륜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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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라는 말을 듣게 되면 무심결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모던보이'나 '모던걸'이란 말이다. 아마 영화제목도 있을 것이다. 'modern' 이란 단어를 찾아보니 '현대의, 근대의, 현대적인' 과 같은 의미로 나온다. 당시의 시각으로 본다면 그야말로 최신식을 좇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 터다. 전통의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것에 심취되고자 했던 젊은이들의 바램은 시대가 아무리 바뀐다해도 변할 수 없는 욕망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전통이란 것이 그저 구태의연한 어떤 것으로 정의된다면 그것도 곤란한 일이다. 모든 지나난 것들은 역사가 된다고 했다. 그 역사를 쓰는 것이 바로 우리일테니 막연하게나마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근대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나라에 신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던 대한제국의 시기다. 마치 옛날이야기 하듯 들려오는 그 시대의 이야기들이 사실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세상이 아니었던 까닭에 당시 신문물에 대한 의식은 상당히 놀랍고도 괴이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급변하는 역사의 흐름을 겪어냈다는 말일 터다. 어쩌면 수면 아래 잠겨있던 격동기의 폐해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관습을 척결해야 한다고 일어났던 중국의 '문화대혁명'만큼은 아니었지만 분명 우리도 격동기를 거쳐왔음이다.

 

책의 서문을 보니 전통문화가 변화하여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과정, 그 장면을 포착한 것이 이 책의 내용이라는 말이 보인다. 첫번째로는 서양식 의복과 화장술의 유입으로 외모에 대한 기준이 달라지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두번째로 아이들의 놀이문화와 더불어 어른들의 놀이문화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준다. 세번째로 지금 우리에게 당연시되는 일상의 문화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재미있는 사진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만들어진 전통>이란 책이 생각났다.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며 받아들여왔던 그 '전통'이라는 의미가 얼마나 커다란 허상이었는지를 밝혀냈던 책이었는데, 현재의 필요를 위해 과거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말이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었다. 집단적으로 행하는 기념 행위가 국민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말은 정말 놀라웠었다. 상당히 두꺼운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의 풍속 중에서 애나 어른이나 모두 같이 즐겼던 연날리기를 통해 당시 아이들의 모습과 지금의 아이들 모습을 비교하는 부분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족끼리 혹은 친구와 연을 만들고, 아무리 추워도 동네 언덕에 모여 함께 웃고 떠들며 연을 날리던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하며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소통의 부재'라는 말따위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어떤가. 방안에 틀어 박혀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놀이문화속에 빠져 있다. 바깥 세상과의 소통보다는 자신만의 생활을 선호하는 지금의 아이들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 것이 옳은지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다. 근본적인 문제부터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제대로 이름을 찾았지만 일제 강점기에 동물원으로 격이 추락했던 창경궁의 역사를 보게 된다. 나 어릴적에도 '창경원 밤벚꽃놀이'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던 것 같다. 한때 벚나무를 일제의 잔재라 하여 닥치는대로 베어내기도 했지만,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왕벚나무였다는 게 밝혀지면서 진해에 심어진 벚나무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에서 신혼여행이 보편화된 시기가 1970년대 이후라는 말이 이채롭다. 1960년대까지만해도 혼례식을 마치면 남산을 한 바퀴 돌거나 가까운 곳에 가서 1박 하는 정도가 전부였단다. 1970년대에 예식장에서의 결혼이 일반화되면서 경주나 설악산, 혹은 제주도등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의 전통 혼례에는 없는 의식이 신혼여행이었다는 말이다. 19세기 이전까지는 서구에서도 신혼여행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는 말도 놀라웠는데, 일본을 통해 우리에게 유입된 문화의 한 단면이 신혼여행이었다는 말은 더 놀랍다. 여기저기에서 일제 식민 정책에 의해 생겨난 문화의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 유쾌한 느낌은 아니었어도 우리 근대문화를 다시한번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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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래보고서 2045 - 더 이상 예측 가능한 미래는 없다
박영숙.제롬 글렌.테드 고든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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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이면 나이지리아의 열대우림 소멸하고 2020년이면 생각만으로 문자메세지를 전송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특정상황에서 스스로 형태를 바꾸는 4D 프린팅 기술도 등장한다. 2023년에는 잃어버린 기억을 복원해주는 뇌 신경보철 이식이 실현되고, 아울러 보르네오의 열대우림이 소멸하면서 많은 생물종이 멸종.. 2027년, 절단된 사지를 재생하는 기술 완성.. 2030년이면 인도의 인구가 15억명으로 세계 최대에 이른다. 2036년이면 인공 안구가 인간의 시각을 능가하게 되고, 10년 뒤면 해수면 상승으로 우리의 서해안 지방과 제주도 등에 수몰 지역이 생긴다. 드디어 2045년이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린다. 일상 생활속에 로봇이 보편화되는 시기는 2049년이고, 2053년이면 부모가 성별이나 외부적인 신체조건등을 원하는대로 결정해서 만들어지는 아기가 등장한다. 2059년이면 화성에 사람이 살게 되고, 2060년이면 냉동인간을 되살리는 기술이 완성됨.. 그것뿐만이 아니다. 투명망토가 등장하고 인간의 두뇌나 마음을 사이보그 등으로 옮기는 기술이 완성되면서 2130년이면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휴머노이드가 등장한다. 이때가 되면 인간의 수명이 평균 200세에 이르게 된다..... 놀랍지 않은가! 이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보여주는 미래 연대표의 이야기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저런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 결국 21세기가 되면 인간이 200년동안이나 살게 된다는 말인데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물론 현재 인간의 오만과 욕심이 앞으로 어떤 세상을 만들어내게 될 것인지 유추해 본 것이긴 하지만 왠지 저런 세상이 올 것만 같아서 하는 말이다.

 

나 어렸을 적에 재미있게 보았던 미국 드라마 두 편이 있었다. 제목이 < 600만불의 사나이>와 <소머즈> 였던가? 그 600만불의 사나이는 뚜두두두두 소리를 내며 달리는 속도가 완전 빛의 속도였던 것으로 기억되고, 소머즈는 집중해서 듣자고 하면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속삭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여자였다. 모두 사고로 인해 인공적으로 인체를 이식한 결과물이었는데 그 드라마와 같은 상황을 앞서 말했던 미래 연대표에서 망설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거기에 보태고 싶은 영화 세 편이 있다. 첫번째로 '인간복제' 를 다루었던 영화 <아이랜드 The Island>다. 철저하게 규격화되어진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바깥 세상에서 자신과 똑같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삶을 마감하게 되어있는 만들어진 인간들이었다. 다시말해 신체부위를 제공해야 할 복제인간이라는 말이다. 두번째가 상당한 인기를 얻었던 <터미네이터 The Terminator>.. 이 영화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마지막으로 <A.I. Artificial Intelligence>.. 불치병에 걸려 냉동되어 있는 상태의 아들을 대신하여 입양된 인공지능 로봇이 주인공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로봇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아들의 병이 나아 집으로 돌아오자 숲속에 버려지고 마는 어린아이 로봇을 그린 영화였지만 영화가 끝나고도 상당히 크고도 묘한 울림을 주었던 영화였다. 그 영화의 배경이 빙하가 녹아 바다의 수면이 상승되자 많은 해안도시들이 바다에 잠겨버린 후의 세상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 했다. 어쩌면 그다지 멀지 않는 미래에 우리에게 닥쳐올 현실일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말이다. 영화속의 배경이 보여주고 있는 미래의 현실은 끔찍했다. 자원을 소모하지 않는 '로봇'이 필요불가결한 존재로 등장했다는 씁쓸함 역시 앞서 말했던 미래 연대표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입맛이 쓰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시베리아의 얼음이 녹으면서 러시아가 세계 식량강국이 된다는 2038년도,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절반이상 소멸한다는 2050년도 따지고 보면 그리 먼 미래가 아니다. 그만큼 작금의 이상기온현상이 심각하다는 말일터다. 지구본 속에 표시되어있는 모든 국가에서 지구를 살려야 한다고 마음과 뜻을 모으지 않는 한 지구는 다시한번 RESET 되어지지 않을까? 그 옛날 빙하시대와 홍수처럼 말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새롭게 다시 시작되어지는 지구로 거듭났으면 좋겠다는 게 나 한사람만의 생각일 뿐일까? 문명의 발전만이 능사는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조화로움을 인정할 때 안정되어진다.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이 보여주고 있는 유엔미래보고서는 그저 유추해 본 이론에 불과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서 파생되어진 미래의 모습일 것이기에 가슴 한 켠이 싸아해진다.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에 한계점이 있기는 한 것인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가져야 이제 되었다고 손을 놓게 되려는지... 알 수 없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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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정신분석
이창재 지음 / 아카넷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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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먼저 만났던 신화는 아마도 그리스로마신화가 아닐까 싶다. 어릴 때 신비로운 이미지로 다가왔던 건 두말 할 필요도 없이 공룡이야기와 신들의 전쟁이야기였다. 학창시절 이윤기님의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었을 때의 짜릿함으로 지금까지도 신화에 빠져있는 내 자신을 보게 된다. 신들끼리의 싸움도 싸움이지만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중간계의 인물들이 펼치는 무용담이 주는 재미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속에 내재된 정신적인 의미를 한번 분석해보자고 한다. 철저히 학문적인 입장이다. 자신의 무의식에 잠재된 '아이의 마음'과 '원시인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자고 한다. 그런데 그 두가지의 주제가 상당히 흥미롭다. 심리적인 면에서 자신을 말할 때 누구나 자신안에 또하나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말을 한다. 그것뿐인가, 거기에 하나 더 보태 원시적인 마음 또한 숨겨두고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렇다면 아주 먼 시절부터 우리에게 각인된 인류의 근원적인 심리상태를 파헤쳐보자는 말일까? 어쩌면 우리가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 그 어떤 것을 찾아나서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속에는 세계의 여러 신화가 담겨 있다. 한국신화부터 중국, 일본, 수메르, 이집트, 북유럽, 그리스... 덕분에 다시한번 세계의 신화와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책속의 신화들을 만나다보니 왠지 정형화되어진 느낌이 든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가르는 것처럼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 시기에 신화의 틀이 만들어졌다고는 해도 어떤 이유에서인가 무언가를 위해 혹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흔적을 지울 수 없는 까닭이다. 우리의 신화 역시 조선시대에 이르러 어떠한 형태를 갖추었다는 말이 보인다. 대표적으로 바리데기 신화를 들었다. 그저 흥미롭게 읽었던 내용속에서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내면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게 되니 왠지 신비로움이 가셔지는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그럴수도 있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일곱째 공주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고 알 수 없는 곳에서 키워진 바리데기가 자라서 자신을 버린 부모를 살리기 위해 서천서역국으로 떠난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거기에 여러 주인공의 심리적인 상태를 저 밑바닥부터 보여주자고 작정한 저자의 목소리가 상당히 크게 들리기도 한다.

 

신화에는 그 민족의 고유한 정신성이 담겨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신화 혹은 설화의 주인공들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파헤치며 그 이야기가 만들어내고 있는 부분들을 속속들이 살펴보는 시선이 이채롭다. 신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각 민족마다의 창세신화가 재미있다. 카오스 상태였던 우주로부터 비롯되어지는 세상의 모든 틀. 그 틀이 만들어지기 위한 과정이 각 민족마다 다르게 표현되었긴해도 가만히 살펴보면 어느 정도의 공통점도 보여진다. 수많은 영웅신화부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같은 가족간의 엉킴을 정신분석으로 풀어내는 저자의 말을 듣다보니 은근히 몰입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반복적인 표현들이 많이 보여 약간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게 흠이라면 흠일까?

 

신화에서 볼 수 있는 샤머니즘이나 종교적인 내용은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특징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건국신화보다는 창세신화가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박제상의 '부도지'에서 말했던 마고할미처럼 거대한 존재가 어느날 산을 만들고, 강을 만들고, 바다를 만들고 아울러 비를 내리고 바람이 불게 하는 것과 같은 자연의 법칙을 지배하는 여러 신을 만들었다. 일본의 창세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도, 중국의 거인 반고도, 이집트의 오시리스와 이시스도, 북유럽의 오딘과 프리그도, 그리스의 제우스도... 반가웠다. 이집트 태양의 신 호루스를 만나는 시간도, 북유럽 광명의 신 발데르를 만나는 시간도... 정말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된 신화였는데 역시 재미있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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