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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명화 한 점 - 명화 같은 인생, 휴식 같은 명화
이소영 지음 / 슬로래빗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언제부터인가 내게 무언가를 찾아 읽게 되는 습관이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지하철을 타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처럼 되어버린 것, 詩
한편 읽기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두 편도 좋고 세 편도 좋다. 익히 알고
있었던 시인의 이름이나 시의 제목이라도 눈에 들어오게 되면 가끔 들어오는 지하철을 무시할 때도 있다. 그냥 그 시를 읽는 순간이
좋아서. 왜 좋으냐고? 그냥 좋다.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느낌이라서 뭐라고 말해 줄 수 없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좋아서. 그날의 상태에 따라 같은 시라도 느낌이 강한 날이 있는가 하면 그다지 앞에
머물고 싶지 않은 날도 있다. 한 편의 시가 이렇듯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그림은 또 어떨까? 그림 역시 다르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솔직하게 말해 그림을 모른다. 한마디로 그림 볼 줄을 모른다는 말도 될게다. 언젠가 내게 공부를 가르쳐주던 선생님과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던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전시된 작품들을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지를 몰라 그 작품들에 대해 선생님께 물었던 기억이 있다. 무엇이 느껴지길 원해요? 그냥 자신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정답일거예요... 라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오래도록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림이 하나
있다.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되었는데 그 순간부터 내 마음을 온통 빼앗겨버린 그림이다. 단원 김홍도의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다. 그림은 볼 줄
모르지만 그림이 주는 느낌이 한없음에 놀랐던 작품이기도 하다. 채워지지 않았으나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그림이기도 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그림의 형식은 진경산수화쪽인 듯 하다. 자신만 알아챌 수 있는 어떤 의도를 숨겨놓은 그림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깔끔한 그림형식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내게 추상화라는 개념은 아무런 느낌조차 전해주질 못한다. 다행인지 이 책속에서는
추상화가 보이지 않는다.
첫 작품으로 소개해 준 '장밋빛 인생'이란 그림이 참 좋았다. 보자마자 새콤달콤한 맛이 떠오르는 그림이라는 글쓴이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전체적인 색감이
다소 유치해보일 수 있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쩌면 저리도 상큼함을
담아낼 수 있을까 싶었다. 다시 시작되는 월요일을 위한 그림으로는 제격이다. 이 책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그림은 고전파, 낭만파, 야수파, 인상파... 장르도 여러가지다. 작품마다 붙여준 화가에 대한 짧은 소개나 글쓴이가 부록처럼 껴넣은 미술사조를
한번 더 보게 된다. 특별하지 않은 글쓴이의 일상이 하나의 작품과 만나는 순간처럼 너무 멀지 않은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명화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같은 글, 같은 그림일지라도 사람마다 느낌은 다르다. 같은 사람일지라도 그날의 상태에 따라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니 정말 명화를 본다는 것에 대한 정답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앙리 마티스의 '노을지는 창가의 젊은 여인'과 카스파르 프리드리히(이름도 어려워라!)의
'창가의 여자', 알프레드 스티븐스의 '은하수' 라는 세 점의 그림을 다시한번
찾아서 보았다. 세 그림 모두 밖을 내다보며 서 있는 여인들의 모습이다.
마티스의 그림은 제목처럼 노을지는 풍경이 창 밖으로 보이고, 프리드리히의 그림에서는 여인이 뒷모습을 보이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창 밖 풍경이 그다지 유쾌해 보이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스티븐스의 그림속 여인이 바라보고 있는 창 밖의 풍경은
은하수가 쏟아져 내릴 듯한 밤바다의 풍경이다. 살풋 웃음이 난다. 이 세 점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명화로 일상을
사유하고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책표지의 글이 부럽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