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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정신분석
이창재 지음 / 아카넷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가장 먼저 만났던 신화는 아마도 그리스로마신화가 아닐까 싶다. 어릴
때 신비로운 이미지로 다가왔던 건 두말 할 필요도 없이 공룡이야기와 신들의 전쟁이야기였다. 학창시절 이윤기님의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었을 때의 짜릿함으로 지금까지도 신화에 빠져있는 내 자신을
보게 된다. 신들끼리의 싸움도 싸움이지만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중간계의
인물들이 펼치는 무용담이 주는 재미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속에 내재된 정신적인 의미를 한번 분석해보자고 한다. 철저히 학문적인
입장이다. 자신의 무의식에 잠재된 '아이의 마음'과 '원시인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자고 한다. 그런데 그 두가지의 주제가 상당히 흥미롭다.
심리적인 면에서 자신을 말할 때 누구나 자신안에 또하나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말을 한다. 그것뿐인가, 거기에 하나 더 보태 원시적인 마음 또한
숨겨두고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렇다면 아주 먼 시절부터 우리에게 각인된 인류의 근원적인 심리상태를 파헤쳐보자는 말일까? 어쩌면 우리가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 그 어떤 것을 찾아나서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속에는 세계의 여러 신화가 담겨 있다. 한국신화부터 중국, 일본, 수메르,
이집트, 북유럽, 그리스... 덕분에 다시한번 세계의 신화와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책속의 신화들을 만나다보니 왠지 정형화되어진 느낌이 든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가르는 것처럼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 시기에 신화의 틀이 만들어졌다고는 해도 어떤 이유에서인가 무언가를 위해 혹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흔적을 지울 수 없는 까닭이다. 우리의 신화 역시 조선시대에
이르러 어떠한 형태를 갖추었다는 말이 보인다. 대표적으로 바리데기 신화를 들었다. 그저 흥미롭게 읽었던 내용속에서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내면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게 되니 왠지 신비로움이 가셔지는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그럴수도 있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일곱째 공주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고 알 수 없는 곳에서 키워진 바리데기가 자라서 자신을 버린 부모를 살리기 위해 서천서역국으로 떠난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거기에 여러 주인공의 심리적인 상태를 저 밑바닥부터 보여주자고 작정한 저자의 목소리가 상당히
크게 들리기도 한다.
신화에는 그 민족의 고유한 정신성이 담겨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신화 혹은
설화의 주인공들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파헤치며 그 이야기가 만들어내고 있는 부분들을 속속들이 살펴보는 시선이 이채롭다. 신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각 민족마다의 창세신화가 재미있다. 카오스 상태였던 우주로부터 비롯되어지는 세상의 모든 틀. 그 틀이 만들어지기
위한 과정이 각 민족마다 다르게 표현되었긴해도 가만히 살펴보면 어느 정도의 공통점도 보여진다. 수많은 영웅신화부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같은
가족간의 엉킴을 정신분석으로 풀어내는 저자의 말을 듣다보니 은근히 몰입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반복적인 표현들이 많이 보여
약간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게 흠이라면 흠일까?
신화에서 볼 수 있는 샤머니즘이나 종교적인 내용은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특징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건국신화보다는 창세신화가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박제상의 '부도지'에서 말했던 마고할미처럼 거대한 존재가 어느날 산을 만들고, 강을 만들고, 바다를 만들고 아울러 비를 내리고 바람이
불게 하는 것과 같은 자연의 법칙을 지배하는 여러 신을 만들었다. 일본의 창세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도, 중국의 거인 반고도, 이집트의 오시리스와
이시스도, 북유럽의 오딘과 프리그도, 그리스의 제우스도... 반가웠다. 이집트 태양의 신 호루스를 만나는 시간도, 북유럽 광명의 신 발데르를
만나는 시간도... 정말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된 신화였는데 역시 재미있었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