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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탄생 - 사라진 암호에서 21세기의 도형문까지 처음 만나는 문자 이야기
탕누어 지음, 김태성 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평점 :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만났던 이름이 창힐과 허신이 아닐까 싶다. 창힐과 허신은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찾아보니 창힐은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황제의 신하로 모래에 새겨진 새나 동물의 발자국을 보고 처음으로 문자를
만들었다는 사람이고, 허신은 <설문해자說文解字>라는 책의 저자였다. <설문해자>는 말 그대로 문자를 풀어서 해석했다는 뜻이다.
창힐은 도교사상에서 네 개의 눈을 가진 신으로 표현되는데, 눈이 네 개여서인지 사물을 보면
순식간에 그 특징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학문의 신으로 받들어지는 문창제국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설문해자>는 한자 하나하나에 대해 본래의 글자 모양과 뜻, 그리고
발음을 종합적으로 해설한 책이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모양이나 뜻,
그리고 그것을 읽는 소리에 대해 해설한 책으로 중국 최초의
字典이라고 한다.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에서조차 약 4천
자 정도의 한자를 알고 있어야 무리없이 신문을 읽을 수 있으며, 고전을
읽으려면 최소한 7천 자 이상의 한자를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하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문자의 기원은? 문자의 종류는? ... 문득 궁금해진다. 문자는 초기의
그림문자(반구대암각화와 같은)를 시작으로 으미를 가진 단어를 표현하는 표의문자와 소리를 표현하는 표음문자로 크게
나뉘어지는데, 표의문자는 보통 그림문자와 사물의 형상을 그대로 본떠 만든 상형문자를 말한다. 한글이나 로마자의
경우에는 표음문자에 속하고, 한자는 대표적인 표의문자다. 이 책은 아마도
허신의 <설문해자>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자면 일단 갑골문자를 알아야 할 것 같다. 중국 은나라때 점치는 데
사용했다는 귀갑수골문자라고도 한다는 갑골문자가 거북이 등딱지나 짐승의 뼈를 이용한 점은 신석기시대부터였다. 하지만 여기에 문자를 새긴 것은 오직
은나라만의 특징이라고 한다. 그 문자의 수가 3천자 정도인데 그 중에서 해독된 것은 절반정도라고 한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제사나 군사,
농경이나 왕의 거둥, 안부에 관한 것이 많이 보여서 은나라 시기의 정치나 사회문화를 알 수 있게 해 준다고 하니 아직 해독되지 않은 절반의 문자가 앞으로
들려줄 수많은 이야기가 기대된다.
책표지에서 보이는 그림문자처럼 책을 펼치면 만날 수 있는 상형문자가 볼수록 신기하다.
지금까지 접해왔던 한자와는 다르게 모든 것을 담아낸 그림같은 문자들의 생김새가 이채로운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글자의 원형이었던 그림문자들을
보면서 하나씩 상상해가는 맛도 꽤나 좋았다. 더구나 이 책속에서는 처음의 문자에 담았다는 인간의 심리적인 면이나 사회상까지 보여주고 있다. 그림
혹은 문자속에 사랑이나 미움을 담기도 했으며 귀하고 천함을 담기도 했다. 성애의 표현이나 죄를 응징하는 벌의 표현까지 너무나도 다양했다. '醢'
자는 육장 '해'자다. 젓갈이나 형벌이름이란 뜻도 있지만 절이다, 삶다라는 뜻도 있는 글자이다. 하지만 갑골문에서 보면 음식이 아니라 혹형의
의미였다. 옛글자의 형태를 살펴보면 큰 절구 안에 죄수를 넣어놓고 회자수가 산 채로 사람을 절굿공이로 내리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말이
보인다. 얼마나 무서운 글자인지 상상만해도 오싹해진다. '走' 자와, '奔' 자는 똑같이 달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약간
서두를 때는 '走'자를 쓰고, 속도를 높여 미칠듯이 달릴 때는 '奔'자를 쓴다고 한다. 옛글자의 형태를 봐도 '走'자에서는 사람의 발을 하나만
표현했지만, '奔'자를 보면 양손을 크게 휘두르며 달리는 사람의 발이 세 개로 표현되었으니 지금봐도 그 뜻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밖에도 정말 많은 그림문자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책을 읽던 중에 이 책의 이해를 돕지 않을까 싶어 한자의 조자(造字) 원리라는 六書에 대해 찾아보았다. 六書는 한자를
만들고 실제로 응용하는
지사(指事), 상형(象形), 형성(形聲), 회의(會意), 전주(轉注), 가차(假借) 등을 가리킨다. 지사(指事)는 추상개념을 점과 선을 이용하여 도형화한 것이다.
상형(象形)은 물건의 형태를 형상화한 것으로 그림이
근본이 되며, 하나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글자를 쪼개는 것이 거의 의미가 없다. 상형자는 나중에 복잡한 뜻을 가지는 글자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구성요소로, 일반적으로 부수로 사용된다. 획수가 비교적 많은 부수는 거의 대부분이 상형자다. 형성(形聲)은 이미 만들어진 글자를 합성한 것으로, 한쪽이
뜻을 나타내고 다른 한쪽이 소리를 나타낸다. 의미를 나타내는 부분과 소리를 나타내는 부분을 조합해서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여러 가지 한자를 만들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한자에서 형성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으로 높다. 회의(會意)는 같은 글자나 서로 다른 글자를 합쳐서 또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전주(轉注)는 한 글자의 뜻을 다른 뜻으로도
쓰는 방법으로, 쓰기는 같은 글자를 쓰되 다르게 읽고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다. 가차(假借)는 말로는 존재하나 문자로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나 글자를 문자로 나타내기 위해 소리가 같은 글자의 글자꼴을 빌려쓰는
것을 말한다. 이 책속에서도 六書에 관한 말들이 많이 보인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앞서 말했던 <설문해자>의 형식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랬다면 더 재미있었겠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한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한자를 쉽게
풀이해놓았다는 책을 보고 있긴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약간의 맛을 보았으니 기회가 된다면 <설문해자>를 접해보고 싶다. 이런 저런 사설없이 온전히 한자의 원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다. 연습장을 펴고 글자를 써가며 다시한번 읽어봐야겠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