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엮음 / 채륜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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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라는 말을 듣게 되면 무심결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모던보이'나 '모던걸'이란 말이다. 아마 영화제목도 있을 것이다. 'modern' 이란 단어를 찾아보니 '현대의, 근대의, 현대적인' 과 같은 의미로 나온다. 당시의 시각으로 본다면 그야말로 최신식을 좇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 터다. 전통의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것에 심취되고자 했던 젊은이들의 바램은 시대가 아무리 바뀐다해도 변할 수 없는 욕망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전통이란 것이 그저 구태의연한 어떤 것으로 정의된다면 그것도 곤란한 일이다. 모든 지나난 것들은 역사가 된다고 했다. 그 역사를 쓰는 것이 바로 우리일테니 막연하게나마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근대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나라에 신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던 대한제국의 시기다. 마치 옛날이야기 하듯 들려오는 그 시대의 이야기들이 사실은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세상이 아니었던 까닭에 당시 신문물에 대한 의식은 상당히 놀랍고도 괴이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급변하는 역사의 흐름을 겪어냈다는 말일 터다. 어쩌면 수면 아래 잠겨있던 격동기의 폐해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관습을 척결해야 한다고 일어났던 중국의 '문화대혁명'만큼은 아니었지만 분명 우리도 격동기를 거쳐왔음이다.

 

책의 서문을 보니 전통문화가 변화하여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과정, 그 장면을 포착한 것이 이 책의 내용이라는 말이 보인다. 첫번째로는 서양식 의복과 화장술의 유입으로 외모에 대한 기준이 달라지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두번째로 아이들의 놀이문화와 더불어 어른들의 놀이문화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준다. 세번째로 지금 우리에게 당연시되는 일상의 문화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재미있는 사진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읽었던 <만들어진 전통>이란 책이 생각났다.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며 받아들여왔던 그 '전통'이라는 의미가 얼마나 커다란 허상이었는지를 밝혀냈던 책이었는데, 현재의 필요를 위해 과거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말이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었다. 집단적으로 행하는 기념 행위가 국민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말은 정말 놀라웠었다. 상당히 두꺼운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의 풍속 중에서 애나 어른이나 모두 같이 즐겼던 연날리기를 통해 당시 아이들의 모습과 지금의 아이들 모습을 비교하는 부분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족끼리 혹은 친구와 연을 만들고, 아무리 추워도 동네 언덕에 모여 함께 웃고 떠들며 연을 날리던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하며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소통의 부재'라는 말따위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어떤가. 방안에 틀어 박혀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놀이문화속에 빠져 있다. 바깥 세상과의 소통보다는 자신만의 생활을 선호하는 지금의 아이들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 것이 옳은지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다. 근본적인 문제부터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제대로 이름을 찾았지만 일제 강점기에 동물원으로 격이 추락했던 창경궁의 역사를 보게 된다. 나 어릴적에도 '창경원 밤벚꽃놀이'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던 것 같다. 한때 벚나무를 일제의 잔재라 하여 닥치는대로 베어내기도 했지만,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왕벚나무였다는 게 밝혀지면서 진해에 심어진 벚나무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에서 신혼여행이 보편화된 시기가 1970년대 이후라는 말이 이채롭다. 1960년대까지만해도 혼례식을 마치면 남산을 한 바퀴 돌거나 가까운 곳에 가서 1박 하는 정도가 전부였단다. 1970년대에 예식장에서의 결혼이 일반화되면서 경주나 설악산, 혹은 제주도등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의 전통 혼례에는 없는 의식이 신혼여행이었다는 말이다. 19세기 이전까지는 서구에서도 신혼여행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는 말도 놀라웠는데, 일본을 통해 우리에게 유입된 문화의 한 단면이 신혼여행이었다는 말은 더 놀랍다. 여기저기에서 일제 식민 정책에 의해 생겨난 문화의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 유쾌한 느낌은 아니었어도 우리 근대문화를 다시한번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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