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에디터스 컬렉션 10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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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바로 전에 읽었던 책의 저자가 사르트르를 이야기 했었다. "지식인은 고독하며, 고독은 지식인의 운명"이라고 사르트르가 말했다는 것이다. 또한 피지배 계급은 지식인에게서 '이데올로기'가 아닌 '실천'을 요구한다며 '실천적 지식인'이 되기 위한 두 가지 자세를 요구했다. 첫째, 지식인은 끊임없이 자기비판하면서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둘째, 혜택 받지 못한 계급의 행동에 구체적으로, 거리낌 없이 참여해야 한다...<대한민국은 왜 무너지는가>라는 책속에서 정병석 교수가 했던 말이다. 그래서 사르트르가 궁금했다. 돌이켜보니 사르트르의 작품을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내친김에 사르트르에 대해 알아보고 넘어가기로 한다. 장 폴 사르트르. 1905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고 외조부 밑에서 자랐다. 그의 외조부가 바로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의 큰아버지였으니 가풍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할 만 하다. 1929년에 철학교수자격시험에 합격했고 그 때 계약결혼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던 평생의 연인 시몬 드 보부아르를 만난다. 사르트르가 수석이고 보부아르가 차석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1931년 군복무를 마치고 르아브르의 고등학교 철학교사로 부임했는데 그 항구도시가 바로 이 작품 <구토>의 무대가 되었다고 한다. 1938년에 <구토>를 출간했다는 말이 시선을 끈다. 20대초반에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게 이채롭게 다가왔다. 세계제2차대전에 참전했을 때 독일군의 포로가 되기도 하고,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한때 마르크스 사상에 매료되어 공산당을 지지하는 글도 썼으며, 반전 운동을 하기도 했다. 1964년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문학성에 등급을 매기는 것은 부르주아적인 것이라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참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 실존주의 철학자로 유명했던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말도 보인다. 실존주의라는 말을 보면서 그와 비슷한 극사실주의라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작품해설에서도 극사실주의라는 말이 보이긴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은 두사상이 같아 보인다. 그래서 정병석 교수가 사르트르의 말을 거론한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솔직하게 말한다면 이 책을 읽는 시간이 그다지 즐겁지는 않았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할만큼. 그저 주변의 일상을 문자로 그렸을 뿐이다. 보여지는 일상이 무의미해보이고, 보여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어 보인다. 그저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것일뿐. 그 무료함을, 글로 달래려고 애쓰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라면 뭔가를 찾아서라도 써야 될 것처럼. 그런 무의미한 일상을 바라보며 하나씩 문자로 써나가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고민거리가 없다. 난 연금생활자만큼이나 돈이 있고, 섬겨야 할 상관도 없으며, 아내도, 자식도 없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이 존재한다는 고민은 너무나 애매하고 형이상학적인 것이라서 부끄러울 정도다.(-248쪽) 집도 없이 호텔에서 거주하면서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한 남자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하마터면 거울의 덫에 걸려들 뻔했다. 나는 거울의 덫은 피했지만, 결국에는 유리창의 덫에 걸려들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서 창문으로 다가간다.(-79쪽) 대부분 그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카페와 도서관이다. 그곳에서도 역시 늘 만나는 사람들과 눈길을 주고 받는다. 카페 여주인과 묘한 관계를 맺기도 하며, 먹을 것을 시키며 여종업원과 노닥거리기도 하고, 도서관에서는 A부터 시작하여 모든 책을 읽기로 한 듯한 독서가와 짧은 대화를 주고 받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속에 그의 마음과 영혼은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듯 하다. 그저 피상적인 인사나눔일 뿐이다. 우리가 살 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배경이 계속 바뀌고,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갈 뿐이다. 여기에 시작은 결코 없다. 날들이 아무 이유없이 날들에 덧붙여지는데, 이것은 끝나지 않는 단조로운 덧셈이다.(-100쪽) 나는 멋진 문장들을 꾸며낼 필요가 없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어떤 상황들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서다. 문학을 경계해야 한다. 멋진 말을 찾아내려 하지 말고, 펜 가는대로 써야 한다.(-136쪽) 그런데 참 희안한 것은 책을 읽을수록 그가 표현하는 모든 일상이 마치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무엇일까? 이 낯설지 않음은. 어딘가로 떠나고 싶지만 맘대로 되지 못하는 일상속의 내 모습을 이 책속에서 보게 된다.나는 떠나고 싶다. 진정한 나의 자리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내가 딱 들어맞는 곳으로.... 하지만 내 자리는 아무데도 없다. 나는 잉여적인 존재다.(-285쪽) 그 낯설지 않음속에서 그가 찾고 싶어하는 것들이 무언인가를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누가 그랬던가, 가장 위대한 것은 평범한 것이라고. 이 책은 내게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작품해설을 읽는다고 이해되는 건 아니다. 철학자로서보다는 작가로서 더 유명하다는 사르트르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고 위안삼는다. 어쩌면 한번 더 읽을 수 있는 기회마저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긴 시간이 흐른후에 다시 책장을 펼칠지도... 그가 그 도시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듣고 싶어했던 노래의 제목이 알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Some of these days 머지않아서 You'll miss me honey 당신은 나를 그리워할거예요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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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왜 무너지는가 - 특권과 반칙 극복할 돌파구, 신뢰와 법치에 대하여
정병석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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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인가? 누구에게나 법이 평등하게 적용되는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로 시작하는 대한민국의 헌법. 정말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에 의해 흘러가고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죽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모든 일은 미리 정해진 법률에 의해서만 시행되어야 한다는게 법치주의의 원칙이라 한다. 그런데 지금의 국회를 보면 마치 법을 만들어내는 공장처럼 보인다. 무슨 사건만 터지면 ㅇㅇ법, ㅇㅇ법, ㅇㅇ법, ㅇㅇ법... 참 많이도 만들어내니 말이다. 법을 만든다는 게 저리도 쉬운 일이었는가 다시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법을 아무리 만들어도 그 법에 저촉되는 일들은 쉼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그 문제를 피상적으로 들여다보았으며 겉으로 보이는 것만 졸속처리를 하여 법을 만든 탓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들여다보지도 않았다는 말이거나 보여주기식 행동에 불과하다는 말일터다. 기가 막힌 일이다. 한나라를 대표한다는 국회의원이,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아가는 사람들이 어쩌면 저리도 가벼울수가 있는지....

대한민국의 사회는 공정한가?

아니 그렇지 않다. 절대로! 공평하고 올바르게 처리되는 일이 그만큼 많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有錢無罪 無錢有罪 라는 말을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엊그제 뉴스만 보더라도 가습기 살균죄에 대한 판결이 무죄로 결정되었다. 정말 그들이 무죄였는지는 그들 자신이 더 잘 알것이다. 오죽했으면 그것을 연구했던 연구진들이 항의회견을 했을까 싶다. 현실을 무시한 처사가 아닐수가 없다. 제나라의 국민이 병에 걸리고 죽었음에도 그들에게는 그런 사실조차 강건너 불구경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코팅제로 인해 많은 사람이 병에 걸렸음을 알았던 한 변호사가 끝까지 싸워 마을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기사로 본 적이 있었다. 그 재판은 아직까지도 진행중이라 한다. 왜냐하면 기업이 여전히 코팅제를 써서 주방기구를 만들고 있는 까닭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대한민국의 사회는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 오죽했으면 돈만 있으면 살기좋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말이다.

대한민국의 사회는 정의로운가? 또한 대한민국의 사회는 도덕적인가?

이 또한 그렇지 않다. 올고 바름을 제대로 구분할 수 없다. 뜻이 맞으면 같은 편이고, 뜻이 다르면 적으로 간주하는 현상태를 돌아보면 대한민국 사회를 절대로 정의롭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라는 말을 그야말로 밥먹듯이 쓰면서 오로지 '나' 아니면 '너'만 존재하는 세상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이 사회가 도덕적인 모습을 보여줄리 만무하다. 위안부 할머니께서 눈물을 흘리며 기자회견을 하게 만들었던 사람은 지금 버젓이 국회활동을 하고 있다. 그 사건에 대한 결말은 흐지부지된채로. 비정상적인 노조의 움직임만 봐도 이 사회를 정의롭거나 도덕적이라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능력만큼 대우를 받은 사회인가?

이 질문은 참으로 서글픈 느낌을 불러온다. 타고난 신분이나 계급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능력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그 능력에 맞는 대우를 해준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많은 사람은 생각할 것이다. 깨지지않는 관료주의 아래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학연이나 지연에 얽힌 파벌주의가 난무하는 현실속에서 과연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렇게 저렇게 따지고들면 어디 썩지않은 곳이 있을까 싶다. OECE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1위라 한다. OECE에 따르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가 꼴찌라 한다. 시민의식을 탓하기에 앞서 사회 지도층이 특권의식을 빨리 버려야 한다. 특권을 버리고 공개하고 투명하면 국민들의 신뢰는 당연히 높아진다. 대한민국도 스웨덴처럼 국회의원의 모든 공식적인 일을 투명하게 처리하면 얼마나 좋을까?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하자고 몇번 목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그들 스스로 언제 그랬냐는 듯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 걸 보면 저들은 자신의 손아귀에 쥔 걸 보여주기도 싫고 내놓기도 싫은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다시한번 시선을 끈다. 대한민국은 왜 무너지는가...

사회의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속에서 아픈 청춘들의 아우성은 날로 심해져만 간다. 한쪽으로 치우친 정치는 기울대로 기울어 배가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는 듯 하다. 국민은 국민대로 살려달라고 아웅성이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가 일어서서 이정표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 염려로 이 책이 나왔을 것이다. 지식인들이 일어나야 한다고. 하지만 이 책 역시도 현실적인 대안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안타깝다.

한국에서 30년을 살았다는 영국의 기자 마이클 브린은 < 한국, 한국인>이라는 작품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당면 과제는 성공에 이르는 길을 다변화하고 사회적 서열을 자존감과 분리시키는 것이다" 라고. 브린은 '성공'을 판단하는 기준도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브린은 유교 전통의 영향을 받은, "체면을 중시하고 타인의 시각을 자신의 생각보다 더 따지는 문화에서 탈피하자"고도 이야기 했다. 다른 사람의 시각을 의식하는 체면 중시 문화에서 성공의 기준이 너무 단순화되었고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만 성공했다고 대우하는 풍토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은 이제 정치인, 관료, 볍조인, 의사가 과도하게 대우받는 문화에서 탈피해야 한다. 대개 체면 중시 문화의 유산이다. 조선의 문화유산은 아직도 한국인의 의식속에 남아 있다.(-214쪽) KOREA는 고려에서 온 이름이다. KOREA는 조선을 거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쯤 이 작은 나라가 덩치 큰 나라에게 호령하며 살고 있지 않을까? 고려는 여러가지로 충분히 그럴만한 가능성을 지닌 나라였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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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청궁일기
박영규 지음 / 교유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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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 일본의 떠돌이 무사, 봉건제도의 잔재이자 군국주의의 전초병, 한마디로 말해 무법자다. 그런 낭인들의 손에 의해 조선의 국모가 살해되었다는 건 한마디로 말해 치욕이다. 조선의 국모를 살해하기로 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이들은 낭인이 아니었다는 말을 이 책에서 보게 된다. 놀라운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그토록이나 낭인들에 의해 조선의 국모가 살해되었다고 배워야만 했을까? 우리를 하찮게 보이게 하기 위한 일본의 전략적인 말이었음에도. 이제는 스토리텔링에 의지하지 않는 제대로 된 역사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명성황후의 모습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 하다. 흔히들 말하는 "내가 조선의 국모다!" 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영화와 같이 떠도는 이야기만 무성할 뿐이다. 건청궁에 갈 때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갈 때마다, 덕수궁 석조전에 갈 때마다 늘 답답했었다. 도대체 한 나라의 국모였다는 명성황후의 얼굴을 우리는 왜 볼 수 없는 것일까? 하고. 그 당시의 나라 상황으로 볼 때 궁궐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사진은 많았다. 고종의 얼굴, 순종의 얼굴, 하다못해 엄귀비의 얼굴까지 다 볼 수 있는데 외국영사부인들과 그토록이나 가깝게 지냈다던 명성황후의 사진이 단 한장도 없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엉뚱한 생각도 해 보았었다. 일본의 낭인들이 죽인 것은 조선의 국모가 아니었지도 모른다고. 분명히 어딘가에서 오욕의 세월을 견디며 살다가 죽었을 거라고.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그런 엉뚱한 상상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되다니! 그것도 아니라면 정치적인 어떤 모종의 합의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상상일 뿐이지만.


이 책은 명성황후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다. 한명의 여인으로, 아내로, 어머니로 살았던 여자의 이야기다. 오래전부터 왕비를 배출했던 집안의 딸로 태어나 막연히 왕비를 꿈꾸었던 소녀. 그 소녀가 대원군의 며느리가 되고 왕비가 된다. 남편의 여자를 보면서 질투를 하고, 아이를 유산하는 아픔을 겪게 되지만 세월의 풍랑을 겪으며 강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모두가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어찌 그 안에 욕망이 없었을까? 힘든 시절에 만난 무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녀에게 자신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마저 느끼게 된다. 대원군과의 힘겨루기는 지금까지도 자주국방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게 하여 씁쓸한 뒷맛을 남기게 한다. 이 책을 통해 한일합병이 되기까지의 전반적인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지금의 우리에게 자주 들려오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이 조선의 마지막을 닮아 간다고. 빼다 박은 듯이 조선의 마지막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고.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묻지 않을수가 없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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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알고, 바로 쓰는 빵빵한 관용어 우리 아이 빵빵 시리즈 2
현상길 지음, 박빛나 그림 / 풀잎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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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생각할 일이 많이 생길때면 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속 시끄러워 미치겠네... 이렇게 말하면 옆에 있던 엄마가 얘, 너는 어떻게 속이 시끄럽냐? 거참 희한도 하다..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버릇처럼 하던 말이라 내친김에 한번 찾아보았는데, 언찮거나 걱정되는 일이 있어서 마음이 불편하다는 뜻이라고 나온다. 이렇듯이 관용어는 둘 이상의 말이 합쳐져 원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는 표현을 말한다. 속이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시끄러울수가 있겠는가만 그만큼 마음이 불편하다는 뜻이라는 거다. 원래의 말과는 전혀 상관없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보니 상황에 맞춰서 잘 생각해보아야 그 뜻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책속에 나와 있는 말로 예를 들어보자면 우리가 쉽게 쓰는 말로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말이 있다.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이 해인데 해가 서쪽에서 뜬다? 그만큼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거나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을 때 이런 표현을 쓴다. 또 '열이 오른다'는 말도 그렇다. 이것은 그만큼 흥분했다거나 화가 났을 때 혹은 무엇인가에 푹 빠져서 정신을 못차릴 때 쓰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뚜껑 열린다'라는 표현도 비슷한 경우에 쓰는 말이 아닐까 싶다. 뭔가를 끓이면 열이 오르고 그 열에 의해 뚜껑이 열리기도 하니 원래의 뜻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상황이 어느 정도는 이해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책표지에 빵빵시리즈라고 되어 있는 이 책은 어린이용임에도 어른이 보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빵빵한 관용어는 빵빵한 맞춤법에 이은 두번째 책이다. 첫번째 맞춤법에 관한 책은 보지 않았지만 관용어 책을 보니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은 관용어를 설명해주는 식빵 가족의 모습이 재미있다. 식빵 아빠, 슈크림빵 엄마, 시나몬롤빵 딸, 밤만쥬 아들... 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도 식빵 가족의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에 빗대어 관용어를 하나씩 배우다 보면 아이들도 이해하기 편할 듯 싶다. 어릴 적 어른들이 쓰는 말중에 뜨거운 국물을 들이키면서 어, 시원하다~ 하시던 걸 이해한다는 게 어렵긴 했지만 어려운 말도 쉽게 풀어 알려준다면 나쁘지 않을 것이다. '가난이 들다' 라거나 '가슴에 멍이 들다', '귀를 의심하다', '누구 코에 붙이겠는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 '담을 지다', '뜸을 들이다', '밑도 끝도 없다', '속이 타다', '얼굴에 씌어 있다' 와 같은 표현은 시간이 조금 필요해보이긴 하지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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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더브레 저택의 유령
루스 웨어 지음, 이미정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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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떨어져 외진 곳에 멋진 저택이 있다. 주변은 조용하고 경치도 좋으니 찾아가는 사람 발걸음이 꽤나 가벼웠을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저택이 최첨단의 시설을 갖춘 곳이었다. 앱을 작동시켜 모든 것을 조정할 수 있는 저택의 내부는 그야말로 고급스러움 그 자체였다. 말 한마디로 커텐을 열고 닫을 수 있으며, 하나의 버튼만을 눌러 자신이 필요로 하는 곳을, 혹은 제어해야만 하는 곳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욕실의 물온도도, 전등의 밝기도 모든 것을 그렇게 아주 짧고 간단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곳... 그야말로 대단한 곳으로 여겨졌다. 그런 집에서 살 수 있다면 지금 살고 있는 런던의 작고 좁은 아파트쯤은 미련없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 그 집에서는 아이돌보미를 구하고 있다! 게다가 보수도 감히 상상할 수 없을만큼 많다. 어떻게 그런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단 말인가.

로완은 면접을 보고 나오던 날 그 집의 딸아이가 자신에게 속삭였던 그 한마디를 잊을 수 없었다. 유령들이 싫어할 거예요... 그럼에도 로완은 그 집을 선택했고 아이돌보미로 들어가던 다음날부터 세아이의 보모가 되었다. 아니 기숙사에 있다는 아이까지 합하면 모두가 넷이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중요한 것은 그 최첨단 시설이 과연 로완의 생활속에서 얼마나 이롭게 작동할 것인가, 였으니. 개인적으로 최첨단 시설보다는 아나로그적인 삶을 지향하는 쪽이다보니 책속에 등장하는 그 저택에 그다지 마음이 열리지는 않았다. 도심을 벗어난 곳에 굳이 저렇게 집을 꾸며야했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는 말이다. 결국 그런 마음에 반응이라도 하듯이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로완의 일상이 꼬이기 시작한다. 아이들도, 최첨단이 주는 이로움도 무엇하나 로완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니.

이야기의 형식은 편지글이다. 로완이 어느 변호사에게 자신의 변호를 맡아달라고 편지를 쓰고 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의 시작과 끝을 편지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헤더브레 저택으로 가게 된 사연부터 지금 자신이 이 곳 감옥에 갇히게 된 사연까지 덤덤하지만 절실하게. 감옥안에서 당신의 이름을 들었노라고 말하면서. 당신이라면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믿어줄 것 같아서 편지를 쓴다고. 그 아이는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고. 그 아이라고? 로완이 돌봐주기로 약속했던 네 아이중에 둘째아이가 죽었다. 그 아이는 로완의 방 창문에서 떨어진채로 발견되었다. 유령이 싫어할 거예요... 라고 말했던 아이, 왜 죽었을까? 그 아이를 정말 로완이 죽인 것일까? 구구절절한 편지를 받은 변호사는 로완의 변호를 하게 될까? 단순한 편지글 형식으로 스릴러와 추리소설의 맛을 적절하게 섞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흡입력이 무척이나 강한 작품이다.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거침없이 책장을 넘기게 된다. 이채롭게 느껴지는 줄거리도 아니고 씨줄 날줄 복잡하게 꼬인 것도 아닌데 왠지 긴장하게 되는 쫄깃함까지 있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다는 말을 이해하기에 충분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결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화가 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사람은 사람끼리의 믿음과 서로에게 보여주는 관심, 그리고 서로를 향한 배려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걸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돈이 많다고해서, 최첨단의 시설을 누리며 산다고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은 누구였을까?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 헤더브레 저택의 유령이 누구였는지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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