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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ㅣ 에디터스 컬렉션 10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평점 :
마침 바로 전에 읽었던 책의 저자가 사르트르를 이야기 했었다. "지식인은 고독하며, 고독은 지식인의 운명"이라고 사르트르가 말했다는 것이다. 또한 피지배 계급은 지식인에게서 '이데올로기'가 아닌 '실천'을 요구한다며 '실천적 지식인'이 되기 위한 두 가지 자세를 요구했다. 첫째, 지식인은 끊임없이 자기비판하면서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둘째, 혜택 받지 못한 계급의 행동에 구체적으로, 거리낌 없이 참여해야 한다...<대한민국은 왜 무너지는가>라는 책속에서 정병석 교수가 했던 말이다. 그래서 사르트르가 궁금했다. 돌이켜보니 사르트르의 작품을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내친김에 사르트르에 대해 알아보고 넘어가기로 한다. 장 폴 사르트르. 1905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고 외조부 밑에서 자랐다. 그의 외조부가 바로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의 큰아버지였으니 가풍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할 만 하다. 1929년에 철학교수자격시험에 합격했고 그 때 계약결혼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던 평생의 연인 시몬 드 보부아르를 만난다. 사르트르가 수석이고 보부아르가 차석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1931년 군복무를 마치고 르아브르의 고등학교 철학교사로 부임했는데 그 항구도시가 바로 이 작품 <구토>의 무대가 되었다고 한다. 1938년에 <구토>를 출간했다는 말이 시선을 끈다. 20대초반에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게 이채롭게 다가왔다. 세계제2차대전에 참전했을 때 독일군의 포로가 되기도 하고,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한때 마르크스 사상에 매료되어 공산당을 지지하는 글도 썼으며, 반전 운동을 하기도 했다. 1964년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문학성에 등급을 매기는 것은 부르주아적인 것이라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참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 실존주의 철학자로 유명했던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말도 보인다. 실존주의라는 말을 보면서 그와 비슷한 극사실주의라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의 작품해설에서도 극사실주의라는 말이 보이긴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은 두사상이 같아 보인다. 그래서 정병석 교수가 사르트르의 말을 거론한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솔직하게 말한다면 이 책을 읽는 시간이 그다지 즐겁지는 않았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할만큼. 그저 주변의 일상을 문자로 그렸을 뿐이다. 보여지는 일상이 무의미해보이고, 보여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어 보인다. 그저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것일뿐. 그 무료함을, 글로 달래려고 애쓰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라면 뭔가를 찾아서라도 써야 될 것처럼. 그런 무의미한 일상을 바라보며 하나씩 문자로 써나가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고민거리가 없다. 난 연금생활자만큼이나 돈이 있고, 섬겨야 할 상관도 없으며, 아내도, 자식도 없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이 존재한다는 고민은 너무나 애매하고 형이상학적인 것이라서 부끄러울 정도다.(-248쪽) 집도 없이 호텔에서 거주하면서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한 남자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하마터면 거울의 덫에 걸려들 뻔했다. 나는 거울의 덫은 피했지만, 결국에는 유리창의 덫에 걸려들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서 창문으로 다가간다.(-79쪽) 대부분 그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카페와 도서관이다. 그곳에서도 역시 늘 만나는 사람들과 눈길을 주고 받는다. 카페 여주인과 묘한 관계를 맺기도 하며, 먹을 것을 시키며 여종업원과 노닥거리기도 하고, 도서관에서는 A부터 시작하여 모든 책을 읽기로 한 듯한 독서가와 짧은 대화를 주고 받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속에 그의 마음과 영혼은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듯 하다. 그저 피상적인 인사나눔일 뿐이다. 우리가 살 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배경이 계속 바뀌고,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갈 뿐이다. 여기에 시작은 결코 없다. 날들이 아무 이유없이 날들에 덧붙여지는데, 이것은 끝나지 않는 단조로운 덧셈이다.(-100쪽) 나는 멋진 문장들을 꾸며낼 필요가 없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어떤 상황들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서다. 문학을 경계해야 한다. 멋진 말을 찾아내려 하지 말고, 펜 가는대로 써야 한다.(-136쪽) 그런데 참 희안한 것은 책을 읽을수록 그가 표현하는 모든 일상이 마치 지금의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무엇일까? 이 낯설지 않음은. 어딘가로 떠나고 싶지만 맘대로 되지 못하는 일상속의 내 모습을 이 책속에서 보게 된다.나는 떠나고 싶다. 진정한 나의 자리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내가 딱 들어맞는 곳으로.... 하지만 내 자리는 아무데도 없다. 나는 잉여적인 존재다.(-285쪽) 그 낯설지 않음속에서 그가 찾고 싶어하는 것들이 무언인가를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누가 그랬던가, 가장 위대한 것은 평범한 것이라고. 이 책은 내게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작품해설을 읽는다고 이해되는 건 아니다. 철학자로서보다는 작가로서 더 유명하다는 사르트르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고 위안삼는다. 어쩌면 한번 더 읽을 수 있는 기회마저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긴 시간이 흐른후에 다시 책장을 펼칠지도... 그가 그 도시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듣고 싶어했던 노래의 제목이 알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Some of these days 머지않아서 You'll miss me honey 당신은 나를 그리워할거예요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