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청궁일기
박영규 지음 / 교유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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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인... 일본의 떠돌이 무사, 봉건제도의 잔재이자 군국주의의 전초병, 한마디로 말해 무법자다. 그런 낭인들의 손에 의해 조선의 국모가 살해되었다는 건 한마디로 말해 치욕이다. 조선의 국모를 살해하기로 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이들은 낭인이 아니었다는 말을 이 책에서 보게 된다. 놀라운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그토록이나 낭인들에 의해 조선의 국모가 살해되었다고 배워야만 했을까? 우리를 하찮게 보이게 하기 위한 일본의 전략적인 말이었음에도. 이제는 스토리텔링에 의지하지 않는 제대로 된 역사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명성황후의 모습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 하다. 흔히들 말하는 "내가 조선의 국모다!" 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영화와 같이 떠도는 이야기만 무성할 뿐이다. 건청궁에 갈 때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갈 때마다, 덕수궁 석조전에 갈 때마다 늘 답답했었다. 도대체 한 나라의 국모였다는 명성황후의 얼굴을 우리는 왜 볼 수 없는 것일까? 하고. 그 당시의 나라 상황으로 볼 때 궁궐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사진은 많았다. 고종의 얼굴, 순종의 얼굴, 하다못해 엄귀비의 얼굴까지 다 볼 수 있는데 외국영사부인들과 그토록이나 가깝게 지냈다던 명성황후의 사진이 단 한장도 없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엉뚱한 생각도 해 보았었다. 일본의 낭인들이 죽인 것은 조선의 국모가 아니었지도 모른다고. 분명히 어딘가에서 오욕의 세월을 견디며 살다가 죽었을 거라고.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그런 엉뚱한 상상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되다니! 그것도 아니라면 정치적인 어떤 모종의 합의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상상일 뿐이지만.


이 책은 명성황후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다. 한명의 여인으로, 아내로, 어머니로 살았던 여자의 이야기다. 오래전부터 왕비를 배출했던 집안의 딸로 태어나 막연히 왕비를 꿈꾸었던 소녀. 그 소녀가 대원군의 며느리가 되고 왕비가 된다. 남편의 여자를 보면서 질투를 하고, 아이를 유산하는 아픔을 겪게 되지만 세월의 풍랑을 겪으며 강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모두가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어찌 그 안에 욕망이 없었을까? 힘든 시절에 만난 무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녀에게 자신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마저 느끼게 된다. 대원군과의 힘겨루기는 지금까지도 자주국방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게 하여 씁쓸한 뒷맛을 남기게 한다. 이 책을 통해 한일합병이 되기까지의 전반적인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지금의 우리에게 자주 들려오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이 조선의 마지막을 닮아 간다고. 빼다 박은 듯이 조선의 마지막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고.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묻지 않을수가 없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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