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신
이동원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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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첫발생지로 대구가 지목된 것은 어떤 종교단체에 의해서였다.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접촉할 수 있다는 종교단체의 특성때문에 일파만파 확진자가 퍼져 나가고 있었지만 정작 우리는 그 종교단체가 어떤 곳인지를 알지 못했다. 더구나 그 종교단체의 포교행위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해 접촉자들을 알아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동선을 숨기기 바빴다. 결국 많은 확진자를 내고서야 서서히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나둘 밝혀지던 그들의 정체에 우리는 경악했다. 바로 신천지 이야기다. 이만희라는 교주를 내세워 그가 죽지 않는 사람이라고 떠들어대던 그들만의 종교는 세상의 지탄을 받았고 끝내 교주가 사회를 향해 무릎을 꿇게 되는 일까지 벌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결속력은 약해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우습게도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조금 있으면 유명 정치인 한두사람 죽어나가겠다고. 그 정도의 뒷배가 있으니까 저렇게까지 당당하게 나올 수 있는거라고. 그만큼 대한민국의 정치가 썩었다는 말도 되겠지만 정치 혹은 권력의 힘을 등에 업었을 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해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신천지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미 짜여진 각본처럼. 이 무슨 소설같은 이야기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그런 소설이 나왔다. 바로 이 책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그리고 신천지라는 새로운 종교를 바라보면서 흔들리고 또 흔들렸을 사람들에게서 이 책의 저자가 어떤 동기를 얻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핏 스쳐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말이 '신천지'였기에 하는 말이다. 언론매체를 통해 밝혀진 신천지의 포교방법과 이 책속 사이비종교단체의 포교방법이 묘하게 겹쳐보인다. 황당한 이야기처럼 보여지지만 의외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 어차피 같은 속성을 가진 탓인지 정치와 종교를 한데 묶었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게다. 사실 정치인이 쉽게 표를 얻기 위해서 종교집단을 이용하는 것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닌 까닭이다.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은 사이비종교를 만든 1대 교주가 자신이 만든 집단을 없애기 위해 싸워나갔다는 점이다. 진정한 종교란 무엇일까? 자신이 만든 종교집단으로부터 악마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사람은 왜 그것을 없애기 위해 그토록이나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던 것일까?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가는 자신이 판단해야 할 몫이다. 수많은 정보가 우리곁을 떠도는 세상에 살면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결국 그 정보에 휩쓸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기 보다는 누군가가 대신 선택해주고 대신 판단해주기를 바라면서 살고 있는 듯 하다. 그러다보니 생각없이 편을 가르고 이 편 저편에 서서 서로 삿대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자세는 어떤가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저자는 묻고 있었다. 당신은 무엇을 믿으며 살고 있느냐고. 당신들의 신은 어떤 존재냐고. 신은 종교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 크게 공감하게 된다. /아이비생각


다들 뭔가를 믿고 산다는 말이야. 살아가기 위해선 누구나 믿음이 필요해. 돈이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믿음이고, 안정된 직업이 있으면 미래가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믿음이지. 어떤 사람과 함께한다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믿음이고, 어떤 사상이 세상을 좋게 바꿔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믿음이야. 결국 사람들은 저마다 갖고 있는 믿음에 인생을 거는 거야. 겨우 일주일에 교회 한 번 다녀오는 게 아니라 1년 내내 미친 듯이 돈을 벌고, 공부를 해. 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자신이 믿는 사상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까지 내놓는 사람도 있어. 이게 신앙이 아니면 뭐겠어?(-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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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뒤바꾼 가짜뉴스 - 거짓으로 대중을 현혹시킨 36가지 이야기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장하나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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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스 사건이라고 있었다. 19세기 말에 일어났던 사건이다. 프랑스군의 유대인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군사기밀을 독일대사관에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었고, 비공개 군법회의에서 종신유형을 선고 받았다. 드레퓌스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대위라는 계급을 박탈당했다. 당시 진범을 찾아냈고 진상 은폐의 증거도 찾아냈지만 드레퓌스는 '악마의 섬'으로 유배당했다. 간수를 제외한 유일한 주민은 드레퓌스뿐이었다고 한다. 간수들은 그에게 말을 걸지 말라는 명령도 받았다. 하지만 드레퓌스가 반유대주의에 희생당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소설가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프랑스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발표하기도 했다. 드레퓌스 사건은 드레퓌스파와 반드레퓌스파로 갈라지는 프랑스 사회의 분열을 불러왔다. 그의 죄를 입증하는 것은 파리의 독일대사관에서 몰래 빼내온 정보 서류의 필적이 드레퓌스의 필적과 비슷하다는 것뿐이었다. 단지 유대인이었다는 점이 그를 간첩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가족들과 사회의 분위기가 재심을 청구하며 일이 커지자 군부는 형식석인 심문과 재판을 거쳐서 그를 무죄로 석방시켰다. 당시의 유럽 열강들은 영토 확장 경쟁이 치열했다. 또한 당시의 유럽인들은 백인 우월주의에 빠져 있었다. 그런 모든 상황들이 드레퓌스 사건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드레퓌스 사건은 19세기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지만 그만큼의 희생이 필요하다. 드레퓌스 사건은 이 책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사람들이 거짓된 정보에 얼마나 잘 녹아드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명분만 그럴싸하다면 거짓인 줄 알면서도 그것이 마치 진실인양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역사는 이긴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을 그럴싸한 영웅으로 만들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남을만한 인물임에도 잔다르크처럼 마녀사냥을 당하기도 한다. 드라큘라 백작이 적의 침략에 맞선 루마니아의 국민 영웅이었지만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흡혈귀가 되기까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는 말이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했던 것은 마리 앙트와네트의 말이 아니었으며, 미국의 노예해방선언으로 역사에 남은 링컨 역시도 말처럼 그렇게 노예해방을 위해 힘쓰지 않았다는 걸 이제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이 책은 그렇게 조작된 가짜뉴스 36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그 가짜뉴스들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뀔 수 밖에 없었다는 말과 함께. 문득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된 '조선왕조실록'이 떠오른다. 인류 역사상 단일왕조의 역사서로는 가장 규모가 큰 책이기도 하지만, 만약 후대의 왕들이 선대 왕의 기록을 마음대로 볼 수 있었다면 지금의 '조선왕조실록'은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제대로 된 것을 지켜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 책속에 실린 30가지의 이야기는 사실 특별함을 전해주지 못한다.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은 이미 많은 까닭이다. 현재는 인터넷을 통한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너무나도 쉽게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거짓들을 쉽게 판별해내는 건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좀 더 많은 것을 의심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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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맛 - 짜장면부터 믹스커피까지 한국사를 바꾼 아홉 가지 음식
정명섭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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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부터 믹스커피까지 한국사를 바꾼 아홉 가지 음식'이라는 부제가 흥미로웠다. 목차를 들여다보면 음식을 통한 우리의 근대사가 보인다. 그야말로 대중적인 음식들을 앞세워 변화되어가는 한국인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면 아무래도 맛을 내는 조미료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때는 미원과 미풍의 대결이 대단했었다. 미원은 사실 일본의 조미료 아지노모토(味の素)에서 온 것이다. 味元... 맛의 으뜸이라는 뜻도 있겠지만 우리가 원조라는 의미도 담겨 있는 말이다. 우리집은 언제나 미원가족♬이라는 CM송이 아직까지도 기억난다. 지금이야 화학조미료가 몸에 좋으니 나쁘니하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솔직하게 말해 미원을 넣었을때와 넣지 않았을 때 맛의 차이는 엄청나다. 그러던 것이 미원도 미풍도 아닌 다시다가 천하통일을 이루어냈다. 결론적으로 따지자면 미풍의 승리다. 어떤 음식이든 맛있게 잘 먹고 행복함을 느낀다면 몸에 좋은 것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화학조미료의 사용에 대해 그다지 많은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자장면이 맞다느니, 짜장면이 맞다느니 하면서 '짜장면'이라는 말이 한동안 세상을 시끄럽게 한 적이 있었다. 자장면이면 어떻고 짜장면이면 어떤가, 어차피 외래어에서 온 이름인 것을. 짜장면에는 한국으로 건너온 중국인들의 애환이 서려있다. 그야말로 서민의 음식이었던 것이다. 일본의 스시가 그랬다. 일본의 근대화가 시작되던 시절 지방에서 도시로 돈벌이를 하러 왔던 근로자들은 돈이 없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싼 값으로 많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던 것이 스시의 원조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고급화가 되었다. 일본인들이 돈까스를 먹게 된 유래가 재미있다. 돈까스는 육식을 하지 않던 일본인들에게 육식을 먹게 하기 위해 고안된 음식인 것이다. 지금은 일본인들이 소비하는 참치나 소고기 소비량이 엄청나다고 한다. 이채로운 것은 짜장면도 돈까스도 한국으로 건너온 후 완벽하게 한국식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지방을 대표하는 음식이 있다는 것이 미식가들에게는 분명 즐거운 일일 것이다. 경주나 군산의 유명한 빵집을 한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주변에서 일부러 찾아가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먹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기도 하지만 입맛이야말로 확실하게 주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내게도 근처에 가면 일부러 찾아가는 음식점이 몇군데가 있기는 하다. 짜장면이나 돈까스외에도 카레나 단팥빵, 김밥이나 팥빙수와 같이 다채로운 서민음식을 통해 우리의 문화를 엿볼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울러 그 음식들에 담긴 역사를 배울 수 있었으니 一石二鳥가 아닐 수 없다. 책의 표지에 써있던 말처럼 조선인이 한국인으로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마지막 장에서 다룬 커피를 보면서 오래전에 찾아갔던 강릉 커피박물관이 떠올랐다. 커피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커피향이 좋아서 가끔 한잔씩 마신다. 커피맛이 이렇다는 둥 저렇다는 둥 커피애호가들이 아무리 말을 해줘도 역시 달달한 믹스커피만 한 게 없다.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한국의 커피라지 않은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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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불가 라틴아메리카
장재준 지음 / 의미와재미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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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중남미지역을 말한다. 쉽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잉카문명, 마야문명과 아즈텍문명이다. 이 두 문명의 중앙에 멕시코가 있었다. 멕시코는 신에게 축복을 받은 나라였을까? 또하나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권총으로 자살을 했다던)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서 가서 죽다>라는 소설이다. 새들이 왜 페루에 가서 죽는다는 건지 그 의미는 아직 찾지 못했지만... <자기앞의 생>을 쓴 에밀아자르가 그의 필명이기도 하다. 각설하고, 라틴아메리카만 그럴까? 대체불가, 라는 말을 보고 하는 말이다. 어느 곳인들 저마다의 사연이 없으며 저마다의 의미가 없을까 싶어 하는 말이다. 그만큼 글쓴이가 라틴아메리카에 빠진 사람이라는 말도 될 터다. 그러니 얼마나 세세하게 그렸을까 내심 기대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만큼 약간은 지루한 면도 있었다. 한편의 신화를 읽듯이 재미있게 읽히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냐고? 유럽열강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지구촌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싶어서. 지금 아프리카가 겪고 있는 지역간의 갈등과 배고픔의 고통도, 중남미지역의 고통도 모두가 유럽열강들로 인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힘없고 욕심없는 게 죄라면 죄일까? 사실 우리도 힘이 없어서 일제강점기를 겪었으니... 그렇게나 멋진 문명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그렇게나 많은 자연자원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그것을 제대로 이용하지도 못한 채 그것들로 인해 더 많은 고통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중남미지역을 보면서 그랬기에 그토록이나 짙은 역사가 탄생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역설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중에 애니깽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오래전 '애니깽'이라는 영화가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하와이농장이나 독일의 광부, 간호사로 팔려간 사실보다 기억되지 못하는 역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노예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으며 돈을 벌기는커녕 오히려 빚을 진채로 살아야 했다던 애니깽들의 서글픈 역사가 가슴을 숙연하게 만든다. 생각보다 쿠바에 관해 지면을 많이 할애한 듯 하다. 체 게바라라는 혁명가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쿠바의 문화나 사회현상등이 구구절절하게 쓰여져 있다. 왜 쿠바였을까? 많은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애니깽'에 대해 조사하러 갔던 여인이 쿠바의 남자와 사랑에 빠져버렸다는 <쿠바의 연인>이라는 영화도 등장한다. 그 영화를 통해 쿠바의 환부와 우리 사회의 치부를 덧대놓았다고 말하고 있다. 결핍과 과잉의 악순환, 독단과 배제의 논리, 속도와 소비 신화, 불평등과 비정규직 문제 등을 천천히 돌아보게 한다고. 책을 읽으면서 문득 <쿠바의 연인>이라는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정말 그렇게 그려졌다면 쿠바라는 나라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잉카제국 전성기에 관한 부분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잉카의 길을 따라 형성되었다던 그들 문화의 단면이 이채로웠다. 우리 역사속의 '역'이나 '원'같은 역참문화가 그들에게도 있었으며 우리의 파발마같은 전달수단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전달 수단은 '차스키' 라는 인간이었다. 하체가 튼실하고 폐활량이 좋은 아이들을 '차스키'로 양성했다는 말도 보인다. 어찌되었든 한나라의 역사를 알아간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텍사스가 원래는 멕시코의 땅이었다는 것도 이제사 알게 된다. 밭의 세자매로 불린다는 옥수수와 콩, 호박등과 같은 웬만한 식재료의 원산지가 멕시코였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지금의 그들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옛날에는 유럽열강들에 의해 사탕수수와 싸움을 했다면 지금은 미국의 기업들을 위해 옥수수와 싸움을 하고 있다. 그토록이나 풍성했던 그들의 대지가 사탕수수와 옥수수로 인해 폐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배부른 자들을 위해 배고픈 자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씁쓸한 인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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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금수저의 슬기로운 일상탐닉
안나미 지음 / 의미와재미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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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천대받던 존재들이 지금은 대접 받으며 산다는 말이 있다. 하나의 예로 들어보자면 개와 여자가 아닐까 싶다. 마당 귀퉁이에서 사람이 먹다남긴 찌꺼기를 받아먹으며 복날이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신세로 툭하면 걷어차이던 개가 이 시대에는 사람보다 더 잘 먹는다고 한다. 사람처럼 옷을 입고 하다못해 사람등에 업혀다니는 개도 본 적이 있다. 이뻐서 그렇단다. 부엌데기 신세를 못면하고 밥한그릇 제대로 먹기도 힘들었으면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죽도록 일만 해야했던 여자들의 위상이 조금은 좋아진 것도 사실이다. 남존여비사상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일부 기성세대의 시선에서는 아직도 놓여나지 못한 신세이긴 하지만. 조선시대 선비들에게도 반려동물이 있었다는 글이 보이기에 하는 말이다.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의 선비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것들에 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주제이다보니 그들이 탐닉했다던 여덟가지의 부제를 목록에서 먼저 보여주고 있다.


먹고, 놀고, 반려동물을 키우고, 꽃을 보고 즐기며 꽃그림자놀이를 했다. 3대에 걸쳐 문과 합격자가 없으면 양반행세를 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시험을 인생의 전부로 생각했다. 양반이라고해서 다 잘 먹고 잘 살았던 건 아니라서 그 시험을 보기 위해 패가망신한 사람도 있다고 하니 말이다. 자신이 머무는 곳에 대한 다양한 이견이 있었으며, 계모임이나 문학동호회를 즐겼고, 당시에도 한류스타가 있었다는데... 창덕궁 후원 답사를 가면 갈 때마다 주돈이의 '애련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조선의 선비들이 사랑했다는 꽃이야 뻔하지 않은가. 저마다의 이유를 붙여가며 사랑했던 꽃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것은 유교의 관념에 억눌린 인간의 본성을 숨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왕실에서도 꽃을 마음놓고 즐기지 못했다는데 그 이유가 참 허망하고 서글프다. 곡식을 심을 수 있는 땅에 먹지도 못하고 보고 즐겨야 하는 꽃을 심는일이 유행한다면 백성들의 삶이 고단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지금 사람들이야 꽃놀이를 가기 위해 일부러 꽃길도 조성하고 군락지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삶이 고단해지지는 않는다. 선비들을 굳이 금수저라고 바꿔 말한 이유를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3년에 한번씩 치루고 합격자가 33명밖에 되지 않는 과거시험에 급제를 하면 그 순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난장'이라는 말이 과거시험에서 나온 말이다. 빨리 문제를 보고 빨리 답을 써서 빨리 제출해야 유리했던 까닭에 있는집 자제들은 시험장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사람을 샀는데 그들이 서로 몸싸움을 하여 다친 사람도 많이 나왔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던 셈이다.


계영배라는 게 있었다. 잔이 차면 넘치니 넘치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술잔이다. 그런데 계일정이란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역시 넘치는 것을 경계한다는 의미다. 정자 밑에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 아래에 도랑을 파서 물이 차면 돌을 치워 물길을 열어주고 물이 줄어들면 돌을 막아 물을 가두었다고 한다. 선비가 머무는 집이라는 부제속에 보이는 글이다. 이것은 곧 사람의 욕심을 경계했다는 말일터다. 경계하며 살았다는 말을 듣게 되면 다산의 집 '여유당'이 떠오른다. 살얼음판 위를 걷듯이 신중하게 살라는 뜻으로 붙였다는 당호다.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난 이가 적지 않았으니 한사람의 마음이 오롯이 들어앉은 당호가 아닐까 싶다. 당나라 시인 유우석이나 허균이 '누실명'이란 당호를 붙여 불우한 삶을 불우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하니 사람에게 집이 주는 의미를 다시한번 새겨볼 만한 일화다. 누실陋室은 누추한 집이라는 뜻이고, 명銘은 스스로를 경계하거나 남의 공덕을 기린다는 뜻이라 한다. 치헌痴軒이라는 기가 막힌 당호도 있다. 先代에 어찌 이런 집이 많지 않았는지 한탄스러울 뿐이다.


친한 선비들 중에서 70세 이상되는 사람들끼리 모여 연꽃감상을 했다는 계모임이 있었다고 한다. 모두 12명의 계원들이 그날의 기록을 그림으로 그려 하나씩 간직했는데 지금은 단 하나만 남아 있단다. 그 하나 남은 '남지기로회도'에 발문을 써달라고 12계원중 한명이었던 이인기의 5대손이 박세당에게 그림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1691년 12월에 썼다는 그 발문이 또한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어 소개한다. " 오늘날 사대부들을 보면, 서로 교유하는 꼴이 한 배를 타고서도 서로 해치려 키를 뽑고 상앗대를 꺾으며, 같은 방을 쓰면서도 서로 해치려고 상을 던지고 의자를 밀치고, 심지어는 한 쪽은 고기가 되고 한 쪽은 식칼이 되고서도 분쟁을 그치지 않는다. 그러니 어떻게 다시 이 그림속의 선배들처럼 흰머리에 비둘기 지팡이를 짚고 자제들을 거느리고 한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기쁨을 나눌 일이 있겠는가."(-230쪽) 마지막으로 조선의 한류스타들을 다루고 있다. 대체적으로 문인들의 이름이 보인다. '지봉유설'을 쓴 이수광이라거나 당대의 문인으로 이름이 높았다는 이정귀, 허균, 허난설헌등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명나라 주지번의 역할이 컸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명나라가 망하는 바람에 한류열풍이 사그라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동남아시아권까지 우리 문인의 시가 읽혔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중국의 이백이나 두보를 따라하기 보다는 자신의 시를 쓰고 싶었다던 허균의 한마디가 시선을 끈다. 지금 이시대의 우리에게 전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지금 내가 시를 쓰는 목적은 이백과 두보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진정한 '나'를 찾는 데 있다. 나는 내 시가 당나라 시와 비슷해지고 송나라 시와 비슷해지는 것을 염려한다. 도리어 남들이 나의 시를 '허자許子의 詩'라고 말하게 하고 싶다."(-274쪽) 울림이 크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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