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동화
최용탁 지음 / 나무그늘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이상한 동화? 도대체 뭐가 어쨌길래 이상한 동화라는 제목을 붙여야 했을까? 이 책을 처음보는 순간 내가 한 생각이다. 무서운 동화도 나오는 세상인데 이상한 동환들 못나올 건 없잖아? 하면서도... 하지만 읽고난 뒤에 내가 붙인 제목은 이렇다. 단 세명의 어린이를 위해 지어진 아름다운 동화, 슬픈 이야기를 읽고도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동화..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어린이들의 시선만이 아닌 어른의 시선으로 동화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동화이기도 했다. 전혀 이상하지 않은 아홉편의 아름다운 동화속에서 내가 만날 수 있었던 메세지는 뜻밖에도 많았다. 단순히 동심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동화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위하여 하나씩 만들었다는 이야기속에는 아이들을 향한 아버지의 바램과 아버지로서의 노파심과 그리고 아버지의 염려, 한마디로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었음을 보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의 꿈을 우리는 얼만큼이나 배려하고 있는가? 비록 장애를 가졌더라도 그들이 품고 있을 꿈의 크기에 대하여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무시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다시한번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 <누리의 하루>.. 배고프고 힘겨웠던 계절속에서 아이들을 위하여 먹이를 구하러 나갔던 엄마 아빠노루. 하지만 엄마는 그만 인간들의 덫에 걸려 아이들의 곁을 떠나버리고 부상을 당한 아빠노루는 아이들을 위해 길을 떠나기로 한다. 힘겨울수록 함께 해야 한다는 <노루 가족의 겨울> 이야기속에는 사랑이라는 강한 메세지가 들어 있었다. 살기 위하여 가족이 함께 하지 못하는 삶의 여정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보고싶은 동생을 위해 분홍머리핀을 사는 아이 선재의 마음을 그렸던 <분홍 머리핀>은 삶의 힘겨움이 변화시키는 어른들의 세계와 그것을 바라보는 아이의 아픔 또한 함께 그려주고 있음이다. 오동나무의 가장 어린 잎이었던 끝동이가 엄마에게서 떨어져나와 바다로 가는 여정을 그려준 <바다로 간 끝동이>에서는 우리가 무심코 망가뜨리고 있는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 외에도 <아빠와 두더지>, <소진이의 일기장>, <은행나무 네 그루>를 통해 보여주었던 가족간의 끈끈한 사랑이야기는 슬며시 작은 감동을 일으키며 지나가기도 했다. 

얼마전에 읽었던 <두꺼비가 뿔났다>와 애니메이션으로 즐겨 보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떠올리게 했던 이야기, <참목이와 도토리 삼형제>.. 참목이는 어린 참나무이다. 하지만 아주 어린 나무가 아니었던 까닭에 인간에게 베임을 당해야 하는 빨간칠을 하게 된다. 이제 막 자신에게 생겨난 도토리,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도토리 삼형제를 끝까지 지켜주기 위해 애를 쓰던 참목이.. 그 참목이를 살려내기 위한 숲속 친구들의 노력과 바램도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늙은 밤나무 할머니의 죽음마져도 참목이를 구해내지는 못했다. 동물이 없으면, 그리고 나무와 자연이 없으면 인간들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인간들만 모르고 있다던 소나무 할아버지의 말이 울림처럼 나의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도토리 셋중에서 둘은 다람쥐에게 주고 하나만 심어주었으면 좋겠다던 참목이의 마지막 소원속에는 무엇이건 채워야만 하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질책이 들어있는 것만 같아 가슴 한 쪽이 찡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童話는 자연속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 자연과 가장 친밀하다는 童心.. 어쩌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아이들마져 동심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 아이같지 않은 아이들을 만나게 될 때마다, 아니 그런 아이들을 너무 많이 만나게 되는 이 세상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문예창작과를 나왔다는 작가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농부의 일이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 아이만큼은 진정 아이답게 살아가기를 원했던 그 마음을, 결코 이상하지 않은 그 마음을 이상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작가의 세 아이들, 정말 행복하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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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아나 존스> 아류작같은 기분이 든다. 브랜든 프레이저란 배우는 이제 저 길로 나선 모양이다.
오랜만에 보게 된 입체영화..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이라 그런지 깜짝깜짝 놀랬던 순간들이 재미있었다. 애들같이...

주인공은 세명이다.
브랜든 프레이저가 맡았던 지질학자 트레버와 그의 조카 션, 그리고 미모의 산악가이드 한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무래도 관심내역인 등산장면이다.  다급한 순간속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는 가이드의 역할은 보기만해도 기분 짱이다. 깜깜한 동굴속은 여지없이 오래전 폐쇄된 탄광으로 급진전하고..
이미 오래전에 생명을 잃어버렸던 탄광속 수레들은 주인공들을 태우기 위해 다시 깨어난다.
그리고 끊어져버린 레일위를 잘도 달린다. 붕붕 날아오르기도 하면서..

공룡에게 쫓기던 조카 션이 무중력 상태로 허공에 부유하는 자석 바위 징검다리를 넘는 장면도 볼만하다.
멋진 상상이다. 허공을 떠다니는 바위를 하나씩 뛰어넘는 션의 모습은 영락없이 아들녀석이 즐겨하는 게임속의 주인공이다. 바위가 뒤집혀도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탈출하기 위해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상황이지만 그들이 들어간 곳은 잃어버린 세계, 1억5천만년전에 사라졌다고 믿었던 그 세상이다. 거기가 지구의 중심이란다. 환상의 세계..
식인 식물, 날아다니는 식인물고기, 그리고 그 식인물고기를 먹는 거대뱀들, 역시 잊혀지지 않는 공룡.
그들이 공존하는 세상속에서 죽어간 주인공의 형은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메모를 남겨두었지..
그리고 아빠의 환생인양 아들을 도와주던 전기새의 모습 또한 새롭지는 않다. 1억5천만년전의 세상속에서 살던 전기새가 우리가 살고 있는 머나먼 미래속으로 들어왔어도 죽지않고 날아다니는 아이러니!

자, 폭발하는 화산의 용틀임을 뒷심삼아 세상속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주인공들은 그야말로 불사신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어디선가 누군가의 도움없이도 기가 막히게 되살아나오는 불사신들..
에쿠 깜짝이야. 입체적인 영상때문에 그 무시무시한 이빨을 들이대는 식인물고기한테 잡아먹히는 줄 알았다.

그냥 심심할 때 시간죽이기 작전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괜찮을 것 같다.
조금은 엉성해보여도 나름대로는 볼거리를 만들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여기저기 보여지니까.
하지만 가슴이 뻥 뚫릴만큼의 스릴을 기대한다면 실망하리라.. /아이비생각

<이미지는 영화포스터에서 빌려왔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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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
제임스 힐먼 지음, 주민아 옮김 / 도솔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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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이라는 제목부터가 이상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어디에 전쟁에 대한 사랑이 존재하는지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을 찾지 못했다. 이 책속에서 내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이 아니라 그만큼의 사랑을 가지고 전쟁을 바라보아야 하며 또한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목소리였다. 보편적으로 우리는 전쟁에 대한 사랑보다는 그야말로 말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단어들로 구성되어지는 안좋은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끔찍한 단어들이 지목하는 상황과 단한번만이라도 마주쳐본 적이 있을까? 나는 전쟁을 겪은 세대도 아니고 또한 앞으로 그런 전쟁을 겪을 가능성조차도 가늠할 수 없는 현실속에서 살고 있다. 단지 영화속에서나 책속에서 혹은 실제로 전쟁을 겪은 나이드신 어르신들의 기억을 통해서만 전쟁에 대하여 상상하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니 그럴 것이다, 혹은 그랬을 것이다라고만 예측할 뿐..

총 네장으로 구성되어져 있는 이 책의 내용은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힘겨웠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것인지 정리하기에도 벅찼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그가 했던 말 혹은 그의 저서들을 나열해가며 알아듣겠느냐고 외쳐대고 있었지만 나는 몇번씩이나 이미 지나쳤던 부분들을 되짚어 가야만 했다. 그야말로 나는 이해하고 싶었을 뿐이고~~를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제목만큼이나 끔찍한 시간이었다고 해도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1장에서는 전쟁은 정상적이며 심리학으로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현상이 무엇이든 그것에 공감해야 한다는 심리학의 제1원칙을 거론하며 전쟁에 대한 우리의 공감을 끌어내려하고 있다. 전쟁에 대한 혐오와 평화주의자들의 공포나 반감 따위는 멀찌감찌 치워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작가의 말처럼 그렇게 될 수가 있을까?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을 위한 전쟁을 해야만 한다는 말은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수월한 말은 아닐듯 싶다.

전쟁은 비-인간적이다라고 외치는 2장속에서는 전쟁으로 인하여 피폐해져가는 상황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쟁으로 인하여 변해가는 모든 것들이 그 속에 나열되어있다. 전쟁속에서 변해갈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의 비인간적인 모습들을, 그야말로 인간성을 포기해버린 인간들의 모습들을 끔찍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그렇게 변해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대며 그들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가? 를 따져묻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왠지 작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렇겠구나, 정말 그렇겠다, 그럴수도 있겠다 싶어서 인정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아 나 스스로도 깜짝 놀라고 만다. 일본이란 나라속에 발을 붙였던 총이 어느날 시나브로 그들곁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게 되는 그 배경은 사뭇 경이롭기까지 했다.

신화를 통해서 보는 전쟁이야기는 재밌었다. 전쟁의 신 아레스와 (마르스)를 끌어들여 우리의 마음속에서 용암처럼 부글거리는 전쟁에 대한 욕망, 전쟁으로 맛볼 수 있는 황홀한 광기, 전쟁이 있어 경험할 수 있는 공포감 따위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아름답다는 말로 포장하기까지 한다.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말이다. 전쟁이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온다는 것을.. (마치도 행복과 불행처럼..) 아레스와 바람난 아프로디테가 남편 헤파이토스에게 걸렸다. 다 아시겠지만 헤파이토스는 최고의 대장장이다. 그의 그물에 걸려버리고 만 두 신의 모습을 보며 던졌던 아폴론의 물음에 비록 발가벗은 채 그물에 걸렸지만 내가 아레스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던 헤르메스의 신화를 예로 들어 준 것은 적어도 내게만큼은 책속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신화속에 등장하는 신들을 거론하며 그들의 특징에 맞게끔 인간의 심리와 접목시킨 부분들은 정말이지 기가 막히다. 신의 형상과 닮은 인간이라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그들의 생각과 행동속에 인간의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는 말이 왠지 거북스럽지가 않았다.  

종교는 전쟁이라고 말하던 마지막장에서 다룬 전쟁과 종교의 이야기는, 어찌보면 마녀사냥과도 같은 특정 종교 때리기처럼 보일수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는 이미 기독교적인 인간들이라는 말이 왠지 서글프게 다가왔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 책을 통하여 어렴풋하게나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겉으로는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속으로는 모든 권력이나 야심, 즉 호전적인 (마르스)나 아레스적인 면을 숨기고 있다는 말 또한 거부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신화와 종교의 차이점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인간속에 머물러 인간과 함께 살아가느냐 아니면 인간위에 군림하느냐 하는 것은 분명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내가 잘 모르기는 해도 이미 우리곁에 머무는 유일신의 종교는 분명 인간위에 군림하고 있을테다.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전쟁은 사람들, 언론, '적'을 규정하고 싸움을 유도하는 지도자들의 마음속에 담긴 날카로운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그 현혹적인 격정과 기만적인 행위의 분출은 서로를 부추긴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는 절박한 심정에 사로잡혀 고귀한 선전포고라는 위선으로 우리 자신을 은폐한다.(321쪽)  색다른 주제를 다룬 책이 아니었나 싶다. 신선한 느낌도 있었지만 거부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던 책이었다. 어찌보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모든 현실 또한 전쟁일게다. 하나부터 열까지 따지고 들면 마르스나 아레스적인 면이 없지않다. 그렇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고 감히 말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전쟁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아주 작은 작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너무도 많은 것들을 나열하며 신들의 이름까지 거들먹거린 작가의 노고가 대단하다. 읽기에 아주 버거운 책이었지만 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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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올 해는 마무리가 영화쪽으로 흘렀다.  만남이 모두 영화보기로 가닥을 잡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 솔직하게 말하면 돈이 아깝다. 도대체 뭐지?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검색을 해보니 평점이 완전 극과 극이다. 아주 많거나 아주 적거나..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평점이 극과 극을 달리는 영화를 보면 다시한번 그 영화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진다. 참 아이러니!

지구가 멈추는 날.. 결론은 종말론이다. 영화를 보면서 왠지 성서속의 내용을 베껴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배우의 입을 빌려 은근히 성서쪽으로의 접근을 시도했다.  어떤 물체인지, 어디서 온 물체인지를 알 수가 없다. 거기에 인간모습을 하고 지구에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아닌 애매모호한 존재는 또 이렇게 말한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온거라고.. 하지만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그것을 거부하니 어쩔 수 없이 지구만이라도 살려야겠다고... 그러면서 그 괴이한 물체들이 지구속의 생명체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오직 하나 인간만을 제외한 채.. 마치도 신처럼! 아니 어쩌면 그가 신을 대변하고 있었던건지도 모르겠다. 노아의 방주다! 라고 속으로 외치고나니 배우의 입을 빌려 그 다음엔 홍수예요 라고 부연설명까지 해준다. 아주 친절하게.. 그 애매모호한 존재들이 이미 이 지구상에 내려와 살면서 인간에 대한 연구가 이미 끝난 상태였기에 이야기는 이미 끝난 상태다. 인간들은 너무나 파괴적이라고. 그들 자신도 이미 잘 알고 있지만 고치려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건 또 웬말?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미 제 2의 고향이 되어버린 지구를 떠나기 싫단다. 죽을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단 하나, 인간의 선한면 때문이란다. 그런데 우리의 변명 또한 걸작이다. 벼랑끝에 몰리면 달라지는 게 인간이니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한다. 그런 말을 인간 스스로가 하고 있으니 참 한심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불온한 인간들을 벌하기 위해 내렸다던 모세의 이야기 역시 이 영화속에 녹아있는 것 같다. 메뚜기떼를 보내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들의 영혼을 빼앗아갔다던 이야기가 물론 이 영화속에 직접적으로 표현된 것은 아니지만 그런 형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음이다. 어떤 이야기가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가를 보면서 지레짐작하게 되는 선입견을 버리려 애를 쓰기도 했었지만 이 영화는 굳이 선입견이라고까지 말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한마디로 아무것도 없음!이다.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했는지 묻고 싶은 영화이다. 환경파괴에 대한 각성을 요구하는 영화라고 보기에도 왠지 무리수를 두는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

키아누 리브스라는 배우를 좋아한다면 그 남자하나만을 보기 위해 이 영화를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제목과 스틸의 강렬함이 바로 이 영화의 유혹이 아닐까 싶다. 속지 마시라! /아이비생각

<이미지는 영화포스터에서 빌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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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자오선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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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선(子午線) ... 시각의 기준이 된다는 線...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대할 때 왠지 싸아한 느낌이 들었던 것을 기억해낸다. 표지그림은 사막이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책속의 소년이 시간에 등떠밀리며 이리저리 헤매고 다녀야만 했던 그 사막의 덧없음이 어쩌면 그 소년이 살아내야 했을 삶의 여정이었을 것이다. 어디에서 마주치던지간에 삶이란 것이 그리 평탄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삶이 아름답다고 예찬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정말 너무 지독하다. 열네살 어린소년이 버텨내야 했을 그 사막에서의 여정이 너무도 지독스럽고 잔혹하게까지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자신의 의지보다는 타인에 의해, 주변에 의해 끌리듯이 휩쓸려가던 그 소년의 시간들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정말 재미없다. 그리고 읽는 나로 하여금 달려갈 수 없게 만들었다. 아니 달려갈 수 없는 상황속으로 나를 밀어넣었다는 게 옳은 말일게다. 소년과 더불어 그 지독한 사막속을 헤매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헉헉거렸고 갈증에 힘겨워하기도 했다. 화살맞은 다리를 질질 끌며 살아야한다는 무의식속에서 소년의 시간이 버둥거릴 때 나도 함께 그 아픔을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느낌처럼 내게 전해져오는 확실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난해하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몰라 조바심을 태웠다. 그런데도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것은 그 잔혹한 실상을 너무도 아름다운 말들로 설명하고 있다는 아이러니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저 번역가의 욕심이려니 치부하고 싶었지만 번역가야말로 원작자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또하나의 사람일테니 그럴수도 없을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나니 정말 이렇게 지독한 현실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도 있는거구나 싶었다.

그들이 지나치는 곳마다 살인과 방화가 난무하고 그들이 머물때마다 약탈과 무질서가 춤을 춘다. 소년이 그 부대에 합류하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살아야한다는 것. 배곯지않으며 살아내야 한다는 것 뿐이었다. 글랜턴이라는 사람이 이끄는 부대속에는 홀든 판사와 전직 신부였다는 토빈이 있었다. 죽인다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느낌도 갖지 않은듯 보여지는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 홀든 판사는 아주 철저한 현실주의자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가는 곳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을 그림으로 그리며 역사를 쓰고자 했던 그는 아주 철저하게 과학적이기도 하다. 늘 소년의 곁에 머물며 소년 또한 그 곁에 머물렀던 전직신부의 역할이 소년에게는 그다지 커다란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 같지는 않다. 단지 함께 있음으로써 느낄 수 있는 아주 작은 감정 하나일뿐이다. 이렇게 세개의 구축점을 이루며 소년의 곁에 맴돌던 글랜턴과 홀든 판사와 전직신부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모습은 제각각 다른 것 같은데 나는 그들이 전해주고자 하는 메세지를 제대로 전해받지 못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아쉽고..그렇다. 그렇지만 이 책을 다시 손에 잡기에는 힘겨울 것 같다. 소년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나를 지치게 했던 까닭이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냉혹한 현실의 모습과 맞닥뜨린다는 게 자신없는 때문이기도 하다.

작자는 시간과 함께 자라는 소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 같다. 마냥 그 모습으로 그 힘겨운 여정속을 헤맸던 것 같은데 어느날 소년이 마흔살의 남자가 되어버리고 그 순간부터 시간을 끌어가는 주체가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판사의 손에 의하여 삶의 종지부를 찍어버린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마지막 부분에서 자꾸만 흔들리던 내 감정때문에 오래도록 멈췄던 것 같다. 소년이 마침내 어른이 되었는데 그 힘겨움의 끝자락에서 살아남았던 두 사람중 한사람에게 끝내는 시간을 약탈당하고야 마는 그 결말이 나는 너무도 싫었던 것 같다. 미국이 어떻고 멕시코가 어떻고, 배경적인 모습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었다. 단지 그 소년을 이끌고 갔던 시간속의 여정만을 따라갔을 뿐이었다. 이 헛헛함을 어찌할까... 자신도 모르게 변해가던 소년의 모습속에서, 그리고 그 소년을 변화시키던 현실속에서 내가 마주쳐야 했던 두려움의 실체에게 이렇게 무릎을 꿇어야하나 싶었다. 그 소년이 과연 '희망'을 가져보기나 했을까? 그랬다면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소녀의 이야기'라는 말에 동의할수도 있겠지만 왠지 나는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아 곤혹스럽기만 하다. 희망.. 과연 그 소년에게 희망이 있기나 했을까?  일상같은 죽음... 일상같은 무질서.. 일상같은 그 잔혹함 앞에서 아무것도 표현하지 못했던 소년의 그 무덤덤함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책장을 덮으며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책띠의 글을 본다. 과연 그 화면속에서 무엇이 살아 움직일 수 있을까?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려 했던 모습, 혹은 현실과 타협하지 못했던 모습이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같잖은 생각을 해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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