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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자오선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자오선(子午線) ... 시각의 기준이 된다는 線...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대할 때 왠지 싸아한 느낌이 들었던 것을 기억해낸다. 표지그림은 사막이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책속의 소년이 시간에 등떠밀리며 이리저리 헤매고 다녀야만 했던 그 사막의 덧없음이 어쩌면 그 소년이 살아내야 했을 삶의 여정이었을 것이다. 어디에서 마주치던지간에 삶이란 것이 그리 평탄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삶이 아름답다고 예찬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정말 너무 지독하다. 열네살 어린소년이 버텨내야 했을 그 사막에서의 여정이 너무도 지독스럽고 잔혹하게까지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자신의 의지보다는 타인에 의해, 주변에 의해 끌리듯이 휩쓸려가던 그 소년의 시간들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정말 재미없다. 그리고 읽는 나로 하여금 달려갈 수 없게 만들었다. 아니 달려갈 수 없는 상황속으로 나를 밀어넣었다는 게 옳은 말일게다. 소년과 더불어 그 지독한 사막속을 헤매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헉헉거렸고 갈증에 힘겨워하기도 했다. 화살맞은 다리를 질질 끌며 살아야한다는 무의식속에서 소년의 시간이 버둥거릴 때 나도 함께 그 아픔을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느낌처럼 내게 전해져오는 확실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난해하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몰라 조바심을 태웠다. 그런데도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것은 그 잔혹한 실상을 너무도 아름다운 말들로 설명하고 있다는 아이러니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저 번역가의 욕심이려니 치부하고 싶었지만 번역가야말로 원작자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또하나의 사람일테니 그럴수도 없을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나니 정말 이렇게 지독한 현실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도 있는거구나 싶었다.
그들이 지나치는 곳마다 살인과 방화가 난무하고 그들이 머물때마다 약탈과 무질서가 춤을 춘다. 소년이 그 부대에 합류하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살아야한다는 것. 배곯지않으며 살아내야 한다는 것 뿐이었다. 글랜턴이라는 사람이 이끄는 부대속에는 홀든 판사와 전직 신부였다는 토빈이 있었다. 죽인다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느낌도 갖지 않은듯 보여지는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 홀든 판사는 아주 철저한 현실주의자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가는 곳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을 그림으로 그리며 역사를 쓰고자 했던 그는 아주 철저하게 과학적이기도 하다. 늘 소년의 곁에 머물며 소년 또한 그 곁에 머물렀던 전직신부의 역할이 소년에게는 그다지 커다란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 같지는 않다. 단지 함께 있음으로써 느낄 수 있는 아주 작은 감정 하나일뿐이다. 이렇게 세개의 구축점을 이루며 소년의 곁에 맴돌던 글랜턴과 홀든 판사와 전직신부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모습은 제각각 다른 것 같은데 나는 그들이 전해주고자 하는 메세지를 제대로 전해받지 못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안타깝고 아쉽고..그렇다. 그렇지만 이 책을 다시 손에 잡기에는 힘겨울 것 같다. 소년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나를 지치게 했던 까닭이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냉혹한 현실의 모습과 맞닥뜨린다는 게 자신없는 때문이기도 하다.
작자는 시간과 함께 자라는 소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 같다. 마냥 그 모습으로 그 힘겨운 여정속을 헤맸던 것 같은데 어느날 소년이 마흔살의 남자가 되어버리고 그 순간부터 시간을 끌어가는 주체가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판사의 손에 의하여 삶의 종지부를 찍어버린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마지막 부분에서 자꾸만 흔들리던 내 감정때문에 오래도록 멈췄던 것 같다. 소년이 마침내 어른이 되었는데 그 힘겨움의 끝자락에서 살아남았던 두 사람중 한사람에게 끝내는 시간을 약탈당하고야 마는 그 결말이 나는 너무도 싫었던 것 같다. 미국이 어떻고 멕시코가 어떻고, 배경적인 모습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었다. 단지 그 소년을 이끌고 갔던 시간속의 여정만을 따라갔을 뿐이었다. 이 헛헛함을 어찌할까... 자신도 모르게 변해가던 소년의 모습속에서, 그리고 그 소년을 변화시키던 현실속에서 내가 마주쳐야 했던 두려움의 실체에게 이렇게 무릎을 꿇어야하나 싶었다. 그 소년이 과연 '희망'을 가져보기나 했을까? 그랬다면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소녀의 이야기'라는 말에 동의할수도 있겠지만 왠지 나는 그렇게 느껴지지가 않아 곤혹스럽기만 하다. 희망.. 과연 그 소년에게 희망이 있기나 했을까? 일상같은 죽음... 일상같은 무질서.. 일상같은 그 잔혹함 앞에서 아무것도 표현하지 못했던 소년의 그 무덤덤함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책장을 덮으며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책띠의 글을 본다. 과연 그 화면속에서 무엇이 살아 움직일 수 있을까?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려 했던 모습, 혹은 현실과 타협하지 못했던 모습이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같잖은 생각을 해본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