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우화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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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창 밖에 펼쳐져있을 풍경이 궁금하다. 저 조그만 창으로 그녀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저 조그만 창으로 그녀는 무엇이 보고 싶은 것일까? 쓸쓸히 앉아 작은 창으로 스며드는 햇빛을 느끼듯 그림처럼 앉아있는 그녀는 아마도 신경숙 자신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또 왜일까? 신경숙... 그녀의 소설은 참 아프다. 아파도 그냥 아픈게 아니라 저 깊은 내면으로부터 천천히 끌려나오는 울음소리처럼 그렇게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늘... 언제나... 그랬다. 이제쯤이면 세월도 지나 그 아픔이 덮혔을거라 생각했을 즈음 그녀가 발표했던 소설이 <엄마를 부탁해>였다. 사람들은 말한다. 작가는 작품속에서 자신을 표현한다고. 그 말은 다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듯 하다. 같은 시간을 다른 공간속에서 느꼈던 사람들은 안다. 그것이 같은 시대를 살아낸 동질감이라는 걸.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소설은 늘 나를 아프게 한다.

 

뒷부분의 해설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녀의 소설은 다분히 일상적이다. 그래서 특별하다고 말할 만한 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녀의 글은 이상하리만치 감성을 짓누르는 힘이 있다. '내적 독백, 혹은 방심의 문체' 라는 말이 보인다. 내가 처음 그녀의 글을 만났을 때 그 방심한 듯한 독백때문에 꽤나 오래도록 얼얼했었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이런 문체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문체속에 이토록이나 절절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일까?  그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나는 여전히 신경숙의 팬이라 자처한다. 작품마다 베어져 나오는 그 아련함이 싫어 잠시 딴청도 부려보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이름앞에서 다시 손을 내밀고 말았다.

 

신경숙의 작품을 읽다보면 금새 내가 그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마술에 걸려버리고 만다. 아마도 나와 같은, 특별하지 않은 일상때문이겠거니 한다. '예쁘다'는 말과 '아름답다'는 말의 차이를 생각나게 하는 순간이다. 그녀의 소설은 결코 예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하기에. 꾸며지지 않은 소소한 시간들이 그녀의 작품속에서 나를 기다린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작가는 그녀말고도 많다. 작품마다 내가 함께 살았던 같은 시대를 그리고 있으니 공감대가 큰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그것은 시대가 만들어낸 아픔이겠지만 마술에 걸린 듯 유독 그녀의 문체에 빠져드는 것은 그 안에 숨겨진 그녀의 모습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 듯한 착각 때문은 아닐까?  가끔은 그 모습속으로 내가 들어가 숨기고 싶은 나의 또다른 모습을 타인에게 들켜버린 듯한 느낌이 들게도 하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런 소설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잘 팔리는 작가의 이름을 빌어 잠시 잇속을 챙겨보자는 속내가 느껴져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다시 만난 <외딴방>은 반가웠다.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다시 찾아낸듯한 그런 느낌이랄까?  그리고 다시 떠오르는 단어, 결핍... 그녀의 작품을 늘 흥건하게 적시는 그 결핍의 깊이. 우리가 그리도 절실하게 찾아헤매야 할 것이 무엇인가 묻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가 희망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행복과 불행이 함께 손을 잡고 오듯이 결핍과 희망도 역시 그런거라고. 안일하게만 살 수 없는 게 우리의 일상이라고. 그러므로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찾아헤맬 수 밖에 없는거라고. 채워지지 않는, 채울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우리는 그래서 늘 외로운지도 모를 일이다. 한동안 다시없을 외로움이 곁에서 서성대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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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고전 : 동양문학편 - 서울대 선정 동서고전 200선 세상의 모든 고전
반덕진 엮음 / 가람기획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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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초보' 를 위한 책.. 그래서 택했다.  古典에 다가가고 싶어도 어려울거라는 선입견때문에 쉽게 손을 내밀지 못했던 게 사실이니까. 거기다가 古典이라고 불리워지는 책들은 왜 그리도 두꺼운지..  내용 또한 만만찮은 깊이를 보여주니 그것도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이유중의 하나라면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 어렵다는 고전읽기가 점점 쉬워지고 있는듯 하다. 몇몇 출판사에서 저마다의 특징으로 하나둘씩 풀이된 고전,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고전시리즈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오래도록 꾸준하게 사람들이 찾아주는 책을 가리키는 '스테디셀러'라는 말이 있다.  나는 솔직히 '베스트셀러'라는 말보다 저 말을 훨씬 더 좋아한다. 작가의 인지도나 출판사의 홍보전략에 의해 만들어지는 순위보다는 많은 세월이 흘러도 오래도록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겨지는 그런 책이 아닐까 싶어서.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古典이란 장르 또한 같지 않을까 싶다. 단순한 재미만을 위해서 그토록이나 오래도록 사람들 곁에 머물수는 없을테니까.

 

욕심을 부려 손을 내밀었는데 처음부터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무슨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도 아닌데 그런 기분을 느끼기에 딱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어서... 읽고 싶었던 책의 목록들이 목차에서 보였다. 그것부터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그 배경이나 작가에 대해 한번쯤은 제대로 알고 시작하는 것이 좀 더 좋은 책읽기였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받아들이고나니 책을 읽는데 속도가 붙었다. 책을 읽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다고 한다. 통독, 다독, 정독, 속독, 음독, 묵독... 꼭 필요한 부분만 찾아읽는다는 적독이나 소리내서 읽는다는 음독만 빼면 보통의 내 모습이긴 하지만 그런 방법을 말하자는 건 아니고 그만큼 이 책속에는 이렇게 저렇게 보여지는 친절함이 많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수험생을 위해 나온 책일거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나의 편벽함 때문인지...)

 

먼저 동양과 서양을 분류하고 문학이냐 사상이냐로 나누어서 총 4권으로 만들어졌다는 <세상의 모든 고전> 중에서 이 책은 동양문학편이다. 그래서그런지 조금은 가까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만큼은 꼭 읽어보리라하여 내가 읽고싶은 책의 목록에 다시 적어놓은 것도 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만큼의 분량만으로는 뭔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겐지모노가타리'나 '천일야화'는 그 양이 너무 많아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던 책인데 여기서 또 만나니 하루 빨리 만나고 싶다는 조바심이 인다. 고전을 위한 안내서라는 말이 딱 맞다.

 

동양의 최고문학작품 45편을 실었다고 하지만 가장 먼저 욕심을 부려야 할 것은 역시 우리의 고전이 아닐까 싶다. 소설류에서는 그래도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몇 편 보이긴 하지만, '수이전'이나  '역옹패설'과 같은 고대설화집을 꼭 한번은 읽어보고 싶다.  일전에 군산으로 답사를 갔을 때 '탁류'의 배경이 되었다는 표지석을 본 적이 있었다. 궁금해서 한번 찾아봐야지 했다가 잠시 잊고 있었는데, 1930년대의 시대상을 예리하게 풍자했다는 채만식님의 소설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어 참 반가웠다. 아울러 우리에게는 이름으로만 외워졌던 작가에 대해 일일이 소개를 해주고 있어 그 또한 내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카프문학'이나 '브나로드운동'과 같은 의미에 대해서도 숙지할 수 있어 참 좋았다.

 

동서양의 걸작 고전 200권... 언제 읽을까 싶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책을 고를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이런 책이 있어 고르는 재미는 있을 것 같다. 단지 이렇게 소개된 책만으로 내가 그 책을 읽었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도록 경계심을 늦추지 않아야 할 것 같다.  말로만 들어왔던 작품들에 대해 소개와 평가가 함께 들어있으니 뜻하는 이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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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경 - 중국 최고(最古)의 지리.의학.역술.보물.신화의 판타지
전발평.예태일 지음, 서경호.김영지 옮김 / 안티쿠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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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의 지리, 의학, 역술, 보물, 신화의 판타지... 제목부터 쉽지 않다. 고전읽기에 도전한다고 생각했지만 말처럼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런데 고전을 읽을거라 말한다면 이 책만큼은 꼭 읽어야 한다는 말이 많이 들렸다. 그리고 나 또한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사실 마다할 책이야 있겠는가만 이상하리만치 '古典'이란 말은 도전정신을 불러온다. 왜 그럴까?  이 책을 한번은 읽어봐야겠다고 다짐아닌 다짐을 했던 건 아마도 신화를 보게 되면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신화라는 게 그 성격이 참 특이해서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보니 그 흔한 서양신화보다는 왠지 동양신화가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던 까닭이다. 읽는데 정말 오래 걸렸다. 읽고 또 읽고.. 넘겼던 장을 다시 펼쳐 읽고..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지 길을 잃고 헤매기를 몇 번인지.. 이런 책은 누가 만들었을까 궁금해 찾아보니 지은이는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가 이 책을 읽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문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한다. 그냥 읽기로 했다. 그냥 읽다보면 무언가 들려오는 소리가 있겠지 싶어서.

 

중국 고대의 지리서라고 나온다. 그런데 순전히 지리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어디에 가면 어느 산이 있고, 그 산을 또 얼만큼 가면 어떤 계곡이 나오고, 또 거기에는 이렇게 저렇게 생긴 동물이 살고, 그런 동물이 있는가 하면 이러저러한 식물도 산다. 또 그 산이나 계곡에는 이런저런 광물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소개되는 동물이나 식물이 기이하다. 동물의 생김새를 말하는데 이건 도저히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식물 또한 그저 평범한 식물이 아니라 뭐에 좋고 뭐에 좋다는 약용식물이 많다. 기괴한 괴물들이 저마다의 성격 또한 달라 포악하기도 하고 사람을 잡아 먹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기괴한 것들을 잡아 먹으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하다. 요즘말로 치면 그야말로 초능력을 얻게 된다는 말이다. 판타지라고 말하기엔 좀 그렇다. 다분히 공상적인 요소가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어딘가를 가면 이런 부족이 살고 저편 어딘가에는 또 저런 부족도 산다. 뭐랄까.... 걸리버가 되어 다른 세상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 그것도 아니라면 엘리스처럼 알 수 없는 세상으로 빨려들어간 듯한 그런 느낌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따라왔다.

 

원래 산해도경(山海圖經)이라고 한단다. 지도책인지 그림책도 같이 있었다고는 하나 지금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참고나 하자고 찾아보았다. 산해경은 모두 18권으로 산경(山經) 5권, 해경(海經) 8권, 대황경(大荒經) 4권, 해내경(海內經) 1권의 약 31,000로 이루어져 있으며 100여 개의 주변국가, 550개의 산, 300개의 水道와 주변국가의 山水의 지리, 風土物產 등의 정보를 수록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전체적인 내용이 남산경, 서산경, 북산경, 동산경, 해외남경, 해외서경, 해외동경, 해외북경, 대황서경, 대황남경, 대황동경, 대황북경 등... 이런 식으로 분류되어져 있다. 각설하고  이 책은 정말 황당하다. 그리고 엉뚱하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책을 썼는지 궁금증만 더 커져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로 갈수록 끌리는 매력이 느껴지는 건 또 뭐란 말인가?!  황당하고 기묘한 이야기만 있는가 했더니 왠걸! 사람사는 이야기도 보인다. 일종의 철학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그런 이야기 말이다. 여자만 사는 여자국과 남자만 사는 장부국이 세상의 이치와 도리에 맞지 않는다 여겨 그들에게 다리를 놓아줄 생각으로 일을 꾸몄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억지로 어떻게 해보려 했지만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나온다. 거기에 쓰여진 말이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세상에는 결함이 많은 법인데 어떻게 모든 것을 일일이 완전하게 만들겠습니까? 세상은 넓은데 무엇인들 없는 것이 있겠습니까? 그들은 그곳에서 대대로 전해오는 격식을 만들어왔으니 굳이 하늘 아래 격식을 하나로 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고대에 쓰여진 글이라고는 하나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가 들어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 아닐까 싶어 하는 말이다.   

 

그렇게 기괴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쏠쏠하게 느낄 수 있었던 재미는 고대 중국신화를 만날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거였다. 일전에 중국의 이곳저곳을 돌아가며 보여주던 TV 다큐프로를 통해 눈과 귀로 중국여행길을 따라나섰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수많은 중국의 소수민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이 제각각으로 섬기던 그들만의 신을 소개받는 것도 꽤나 재미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장면들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 짓기도 했다. 역시 신화는 재미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런 신화들이 자연의 모습속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자연을 떠난 인간이 얼마나 버텨낼 수 있는지 두고 볼 일이다. 책을 읽는 기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역시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읽어준 내가 기특(?)하다. 틈나는대로 다시한번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번에는 각장마다 따로따로, 하나하나씩,천천히, 읽어봐야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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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로망스
김민관 지음 / 고려의학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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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 책을 좀 읽은 사람이 아닐지라도 이 사람의 소설 한권쯤은 분명 읽어보았을거라 생각한다. (설사 흥미없었다해도 당시 이슈가 되었던 작품이었기에 한번쯤은 손길이 가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처음으로 만났던 그의 작품은 <개미>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개미의 세계에 푹 빠져 마치 작가가 개미의 세상에 정말로 다녀온게 아닐까 하는 얼얼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 책을 읽는동안 나는 분명 '개미'가 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토록이나 오래전에 읽은 책의 느낌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걸 보면 참 멋진 작가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후로 다시 만나는 그의 작품마다 어떻게 이렇게 기발한 세계를 찾아낼 수 있는가 경이로웠었다. 그런데 이 책의 글쓴이가 바로 한국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꿈꾼단다. 그럴수도 있는 일이다, 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었지만 공감대를 형성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하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게다. 다소 어뚱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올랐던 것이 ' 각박한 삶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순수함 회복 에세이'라는 말이었다. 순수함 회복.... 그렇다면 글쓴이도 어느정도는 자연주의적인 면이 없지않아 있겠구나, 하는 나름대로 유추해낸 생각을 꼬리처럼 붙잡고 다시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가끔 정말 이랬으면 좋겠다, 상상을 할 때가 있다. 어떤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 이럴 땐 이렇게 이 문제가 풀렸으면 정말 좋겠다, 생각할 때도 많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라는게 언제 내 맘대로 된 적이 있었나? 안타깝게도 삶이라는 건 우리의 생각처럼 그리 녹녹치가 않다.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보았음직한 그런 일들이라고. 딱히 동화적인 요소가 들어가지 않아도 가끔은 우리의 정신이 터무니없이 황당한 세계속으로 달려갈 때도 있다. 이상한 나라로 빨려들어간 엘리스처럼 말이다. 가끔씩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는 그 황당한 세계는 사실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었다. 대부분은 내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지는 게 많은 까닭이다. 가끔은 슈퍼맨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꾸기도 하고, 가끔은 그 옛날 육백만불의 사나이처럼 끝내주게 달려보고 싶은 꿈을 꾸기도 한다. 하지만 이쯤에서  왜 그런 엉뚱한 꿈을 꾸게 되는지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우리의 일상은 너무 바쁘다. 빠른 것만을 쫓아가다보니 언제나 숨을 헐떡인다. 앞사람의 뒤꼭지만 쳐다보고 달리다보니 옆사람과 잠시 이야기 나눌 틈도 없다. 그러니 항상 지친다. 지쳤으나 지쳤다고 말하지 못한다. 누군가 너는 그렇게 항상 바빠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책의 부제처럼 - 만약 당신이 슈퍼맨을 동경한다면 - 한번쯤은 귀기울여봐야 할 목소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제목을 잠시 음미해보면 글쓴이가 왜 이런 글을 쓰고 싶어했는지 금방 눈치채게 된다. 물론 나처럼  지극히 '현실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어느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자로 잰듯이 살아지는 게 아니다. 과학만이 진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다가 정말 글쓴이의 말처럼 우리는 순수함회복 운동이라도 해야 할지 모른다. 도대체 왜 이런 말들이 필요한 거냐고 묻는 이도 있을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묻기전에 짧은 글속에 담겨진 글쓴이의 목소리를 듣게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리 잘쓴 이야기도, 그리 재미난 이야기도 아니지만 글쓴이의 안타까움이 조금은 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하는 말이다. 특별하지 않은 20편의 이야기는 책을 다 읽고 난 후에야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뜻있는 많은 이가 묻고 또 묻는 게 있다. '우리가 지금 잊거나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라고. 그러나 늘 잊으며 잃어버리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 고의적으로 외면하는 것이 너무도 많은 우리의 현실. '내'가 아닌 '네'가 먼저 해주길 원하는 것이 너무 많은 현실. 돌아보면 또 아프다. 생각하니 다시 아파온다. 당신도 생각해보라, 당신이 심심할 때 할 수 있는 100가지 일들을. 그것을 채워나갈 때 어쩌면 당신이 잊은, 잃어버린 어떤 것이 곁으로 돌아와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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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바도라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8
미켈라 무르지아 지음, 오희 옮김 / 들녘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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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바도라'라는 이상한 제목보다 더 시선을 끌었던 것은 '안락사' 라는 말이었다. 이 책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주제가 '안락사'와 '입양'이라는 것, 과연 세상은 '안락사'를 어떤 관점에서 보고 있는지 궁금했던 까닭이기도 했다. 죽음을 앞둔 말기환자와 그의 가족을 사랑으로 돌본다는 '호스피스'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이 묘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있어야 한다는 자체가 쉽지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죽음을 안고 마지막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간혹 우리는 듣고, 말한다. 죽음과 삶은 하나라고. 그래서 모두가 숭고하고 존엄하다고. 그런데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픈 몸과 싸워가며 처절하게 살아내는 그 짧은 동안의 삶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찾아낼 수 있을까?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과 그 고통을 바라보는 사람의 느낌은? ..... 지금도 우리는 주변을 통해 '안락사'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래서는 안된다느니, 그래야 한다느니, 그럴 수 없는 일이라느니... 이 문제에 있어서 내 생각은 이렇다.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할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안락사'라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는 사고는 그들이 어떤 문화속에서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냐가 가장 큰 문제이지 싶다. 장례풍습만 보더라도 그렇지않은가 말이다. 지금의 우리에게 '안락사'에 관한 문제는 오래도록 싸워야 할 과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바로 그 점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내 삶의 마지막을 살고 싶진 않다. 가끔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미련없이 '안락사'쪽을 택하게 해달라는 부탁 아닌 부탁을 가족들에게 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반대에 부딪히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어도 주변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듯 하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환자의 고통보다는 자신들이 겪어내야 할 마음의 고통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걸 보게 된다. 할 만큼은 해 봐야 한다는 그 말 한마디에 환자의 고통은 처절해진다. 그리고 비참해지기까지 한다. 그 인간성이라는 것을 모두 잃고난 후에야 죽음이 허락되어지는 모순은 어찌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오래전에 읽었던 김정현의 <아버지>라는 글이 생각났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요청을 받아들여 준 의사와 가족들에게 책을 읽고 있던 나조차도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리다. 하지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그 아버지의 마지막은 행복했을거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랬기에 이 책속에서 상대방의 고통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기꺼이 내 주었던 보나리아에게 나는 진정한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비록 자신의 양녀에게 이해받지는 못했어도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양어머니의 곁을 떠났던 마리아가 결국 다시 돌아와 양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본다는 설정속에서 알 수 없는 진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내가 마시지 않는 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마라"... 보나리아의 이 말을 이해하기까지 마리아에게는 참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끝내는 평안함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 보나리아의 마지막은 눈물겨웠다. 비록 양녀였으나 마지막까지 곁을 지킬 수 있었던 두사람사이의 끈끈함이 고여있는 듯 했다.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결국 자신의 몫이다. 어떤 선택을 하는가 역시 자신의 몫이다. 그런 모든 일속에 상대에 대한 마음이 기본적인 배경으로 깔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표현하지 못했던 마리아와 보나리아의 사랑, 서로에 대한 그 마음을 놓치지 않아 다행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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