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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바도라 ㅣ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8
미켈라 무르지아 지음, 오희 옮김 / 들녘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아카바도라'라는 이상한 제목보다 더 시선을 끌었던 것은 '안락사' 라는 말이었다. 이 책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주제가 '안락사'와 '입양'이라는 것, 과연 세상은 '안락사'를 어떤 관점에서 보고 있는지 궁금했던 까닭이기도 했다. 죽음을 앞둔 말기환자와 그의 가족을 사랑으로 돌본다는 '호스피스'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이 묘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있어야 한다는 자체가 쉽지않은 일이기도 하지만 죽음을 안고 마지막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간혹 우리는 듣고, 말한다. 죽음과 삶은 하나라고. 그래서 모두가 숭고하고 존엄하다고. 그런데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픈 몸과 싸워가며 처절하게 살아내는 그 짧은 동안의 삶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찾아낼 수 있을까?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과 그 고통을 바라보는 사람의 느낌은? ..... 지금도 우리는 주변을 통해 '안락사'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래서는 안된다느니, 그래야 한다느니, 그럴 수 없는 일이라느니... 이 문제에 있어서 내 생각은 이렇다.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할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안락사'라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는 사고는 그들이 어떤 문화속에서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냐가 가장 큰 문제이지 싶다. 장례풍습만 보더라도 그렇지않은가 말이다. 지금의 우리에게 '안락사'에 관한 문제는 오래도록 싸워야 할 과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바로 그 점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내 삶의 마지막을 살고 싶진 않다. 가끔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미련없이 '안락사'쪽을 택하게 해달라는 부탁 아닌 부탁을 가족들에게 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반대에 부딪히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어도 주변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듯 하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환자의 고통보다는 자신들이 겪어내야 할 마음의 고통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걸 보게 된다. 할 만큼은 해 봐야 한다는 그 말 한마디에 환자의 고통은 처절해진다. 그리고 비참해지기까지 한다. 그 인간성이라는 것을 모두 잃고난 후에야 죽음이 허락되어지는 모순은 어찌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오래전에 읽었던 김정현의 <아버지>라는 글이 생각났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요청을 받아들여 준 의사와 가족들에게 책을 읽고 있던 나조차도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리다. 하지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그 아버지의 마지막은 행복했을거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랬기에 이 책속에서 상대방의 고통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기꺼이 내 주었던 보나리아에게 나는 진정한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비록 자신의 양녀에게 이해받지는 못했어도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양어머니의 곁을 떠났던 마리아가 결국 다시 돌아와 양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본다는 설정속에서 알 수 없는 진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내가 마시지 않는 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마라"... 보나리아의 이 말을 이해하기까지 마리아에게는 참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끝내는 평안함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 보나리아의 마지막은 눈물겨웠다. 비록 양녀였으나 마지막까지 곁을 지킬 수 있었던 두사람사이의 끈끈함이 고여있는 듯 했다.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결국 자신의 몫이다. 어떤 선택을 하는가 역시 자신의 몫이다. 그런 모든 일속에 상대에 대한 마음이 기본적인 배경으로 깔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표현하지 못했던 마리아와 보나리아의 사랑, 서로에 대한 그 마음을 놓치지 않아 다행이다. /아이비생각